1954년 6월8일. 잉글랜드 체셔 주 윔슬로우의 한 조용한 저택에서 시체가 발견됐다. 그 무렵 동성애자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학적 거세'란 치욕적인 형벌을 받은 앨런 튜링이었다. 


하루 전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 튜링의 곁에는 한 입 베어문 사과가 놓여 있었다. (지난 해 작고한 스티브 잡스가 앨런 튜링을 굉장히 존경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 그래서 애플이 한 입 베어문 사과를 로고로 선택한 것은 튜링에 대한 잡스의 존경심 때문이란 설도 분분한 편이다. 물론 잡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부인했다.)


앨런 튜링. 현대 컴퓨터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튜링이 1936년 알고리즘 대한 엄밀한 수학적 정의를 위해 도입한 튜링 기계란 개념은 이후 컴퓨터 과학의 토대가 됐다. 


난 개인적으로 튜링의 글을 읽어본 적은 없다. 하지만 하마터면 튜링과 인연을 가질 뻔한 적은 있다. 그러니까 지난 2010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당시 볼터의 '글쓰기의 공간(Writing Space)' 번역을 막 끝내고 난 뒤 출판사에서 튜링 책을 한번 번역해보면 어떻겠느냔 얘기를 해 왔다. 당시 난 깊이 생각하지 않고, 거절했다. 


거절한 이유는 딱 두가지였다. 대가의 책을 번역할 깜냥이 못 된다는 겸손한 마음이 하나요. 또 하나는 번역하는 수고에 비해 비해 돈(이나 명예)가 그다지 뒤따라올 것 같지 않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또 하나였다. (대중성이 없는 거야 두 말 하면 잔소리일테고, 학계에서도 그 책 읽을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아 보였기 때문. 튜링에 관심을 가질 정도 학자면 원서로 그냥 읽어볼테고.)


어쨌든 이번 달 들어 튜링 이야기가 언론에 많이 보도되고 있다. 지난 6월23일이 튜링 탄생 100주년 기념일이기 때문이다. 국내 거의 모든 언론들이 튜링의 삶을 조명하는 짤막한 기사들을 쏟아냈다.


2년 전인가 앨런 튜링을 다룬 책이 국내에 번역 출간된 적이 있다. 그 당시 책 제목이 '너무 많이 알았던 사람'이었다. 물론 원서 제목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개인적으로, 저 책 제목은 앨런 튜링이란 천재를 묘사하는 적합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잠깐 몇 년전 유행했던 '뷰티플 마인드'란 영화를 한번 떠올려보자. 역시 불행한 삶을 살았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존 내시를 다룬 그 영화에 보면 내시가 암호를 해독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또 옆으로 새면, 미국에서 주파수 경매를 할 당시 존 내시의 이론이 많이 활용된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전쟁과 암호해독에서 진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앨런 튜링이다. 탁월한 천재였던 튜링은 전쟁 당시 '에니그마'란 독일군의 암호 시스템을 해독해냈다. 덕분에 연합군이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내가 더 관심을 갖는 건 컴퓨터 과학의 기초를 닦은 부분이다. 튜링은 1936년 'On Computation Numbers ~ ' 란 논문을 한 편 쓴다. 여기서 그는 후대 컴퓨터 과학의 토대가 된 중요한 주장을 하나 펼친다. 


that any computable problem could be computed on a machine, with calculations controlled by means of encoded instructions; and that code, rather than machine, was the essence of a computer.


여기서 튜링은 기계가 아니라 코드가 컴퓨터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빌 게이츠가 도스 기반으로 돌아가는 IBM PC를 선보이기 무려 45년쯤 전의 일이다. 이쯤 되면 애플의 로고가 튜링을 염두에 둔 것이란 주장이 나오는 것도 그리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튜링은 이 외에도 현대 과학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튜링이 어떤 사람인지 개략적으로 알고 싶은 사람은 위키피디아를 한번 뒤져보시라. 20세기 초반에 21세기적인 삶을 살았던 이 천재에 대해 좀 더 깊은 관심이 생기는 사람은 몇 년 전에 출간된 '너무 많이 알았던 사람'이란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지금 영국을 중심으로 튜링을 기리는 여러 모임들이 열리고 있는 모양이다. 당연히 그의 학술적 업적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튜링이 남긴 위대한 업젝은 Allan Turing's Legacy Lives On이란 와이어드 기사가 잘 정리했다.  


여담으로 한 마디.


2차 대전 승리의 숨은 공신이었던 튜링은 전쟁 이후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독특한 성적 취향 때문이었다. 인류 역사 속의 많은 천재들이 그랬듯, 튜링 역시 동성애자였다. 지금도 동성애자의 삶이 그다지 순탄하지 못하지만, 그 때만 해도 '동성애=정신 이상자' 수준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 인류 역사상 손꼽히는 천재였던 튜링은 결국 화학적 거세를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힘들게 살던 튜링은 결국 1954년 6월7일. 짧지만 강렬했던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 앞에 적은 것처럼 그의 곁에는 한 입 베어문 사과가 놓여 있었다. 튜링 옆에 놓여 있던 사과가 매킨토시 종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 잠깐 내 의견을 덧붙이자면. 물론 나는 동성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싫어한다. 하지만 단순히 동성애자란 이유만으로, 인류의 위대한 천재에게 화학적 거세란 수모를 안긴 폭력은 참을 수가 없다. 그러고 보면, 인간들은 자기와 다른 사람은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는 독선으로 똘똘 뭉친 존재인 모양이다.)

신고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