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나온 영화 ‘트로이’를 한번 떠올려보자.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건 병사가 아니었다. 장수간의 ‘맞장’에서 승패가 갈렸다. 역사가 기억하는 건 헥토르와 아킬레스 같은 영웅들 뿐이었다. 


이번엔 눈을 동양으로 돌려보자. 뻥이 심하게 들어가 있는 나관중의 ‘삼국지’를 한번 보라. 조자룡은 헌 창 한 자루로 조조 백만대군 속을 휘젓고 다닌다. 장비는 장판교 위에서 홀로 조조 군을 막아낸다. 역시 역사는 도원결의 삼형제와 조조, 손권 같은 영웅들만 기억한다. 


이런 시기를 우리는 ‘영웅시대’라고 부른다. 신들의 시대에서 인간의 시대로 넘어가던 과도기. 소설가 이문열은 자신의 얘기를 담은 소설에 <영웅시대>란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여기 또 다른 영웅이 두 명 있다. 월터 모스버그와 데이빗 포그란 영웅. 둘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 무렵부터 고정 코너를 맡아온 칼럼니스트들이다. IT시장이란 거대한 전장터에서 이들은 내로라하는 영웅이었다.



[월터 모스버그의 Personal Technology 칼럼]. 


1990년대 후반. 윈도95를 비롯한 수 많은 제품들을 다룬 모스버그의 칼럼은 그 시대의 성전(聖典)이었다. 덕분에 모스버그의 칼럼을 게재한 월스트리트저널도 큰 수혜를 봤다. 데이빗 포그가 쏟아낸 하드웨어 칼럼도 많은 IT 마니아들을 흥분시켰다. 


(그런데 난 왜 ‘성전’이란 단어에서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이 떠오르는걸까? 그 만화 초반부. 떠돌이 까치에게 초등학교 친구 엄지가 보내준 편지는 삶의 유일한 희망이자 목표였다. 나중에 엄지를 만난 그는 “네가 곧 나에게 신이었고, 그 편지는 내게 성전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이 둘이 자리를 옮긴다. (자세한 얘기는 지난 번에 올린 글을 참고하시길.) 월스트리트저널이 월터 모스버그와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한 것.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올싱스디지털과 제휴 계약을 끊었다. 그래서 모스버그는 더 이상 월스트리트저널과 관계를 갖지 못하게 됐다. 게다가 올싱스디지털이란 명칭 역시 남겨두고 떠나게 될 것 같다.


포그는 잘 아는 것처럼 뉴욕타임스의 품을 떠나 야후로 옮겼다. 이런 비유가 가능할 진 모르겠다. 동부 영웅이 서부로 건너가버린 셈이다.


뉴요커와 기가옴의 '같은 진단, 다른 해법' 


영웅의 부재. 그건 곧 권력 공백을 의미한다. 누가 그들을 대신할 것인가?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 궁금증을 참다 못한 뉴요커가 칼럼을 하나 실었다. WAITING FOR THE NEXT GREAT TECHNOLOGY CRITIC이란 칼럼. 제목에서부터 어떤 내용일지 확 들어온다. 


뉴요커의 논조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이제 테크 칼럼은 기술이 아니라 문화로 접근해야 한다. 이를테면, 성능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으론 독자들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한다. 생태계라든가, 생활이란 관점에서 좀 더 폭넓게 접근할 줄 알아야 한다. 


그 부분을 직접 인용해 보자. 


What people are choosing is less an iPhone 5s over a Moto X than an entire digital ecosystem that surrounds and permeates their life, and which will affect every other piece of technology that they buy. Not only are these decisions becoming more divorced from the traditional product cycle—it’s increasingly difficult for reviewers to fully evaluate these ecosystems as they grow deeper, more personalized, and more dependent on the technologies used by someone’s social circle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어떤 제품을 살 것(what to buy)이냐, 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how to live)를 고민하게 됐다는 것이다.


둘째. 그렇기 때문에 모스버그나 포그 같은 ‘영웅’들이 여전히 필요하다. 단순히 제품의 기술이나 성능을 설명하는 칼럼이 아니라 삶과 문화까지 포괄할 수 있는 내공을 가진 영웅. 과연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은 그 부분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란 걱정을 하고 있다.


이 칼럼이 나오자 기가옴의 매튜 잉그램 기자가 곧바로 반박하는 글을 실었다. 이제 영웅들의 시대가 가고 민중들의 시대가 열릴 것이란 관점을 견지한 글이다. 


이젠 모스버그나 포그 같은 장수들이 전투를 좌우하는 시기가 아니란 것. ‘차세대 모스버그’를 찾겠다는 건 ‘차세대 크롱카이트’를 찾아 헤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게 매튜 잉그램 기자의 주장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젠 그런 시대는 지났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뉴요커와 기가옴은 같은 관점에서 다른 해법을 내놓고 있다. 무슨 얘기인가? 둘은 IT가 이젠 기술이 아니라, 생활이고 문화라는 덴 인식을 같이 한다. 


그렇기 때문에 뉴요커는 모스버그나 포그 같은 영웅들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기가옴은 영웅들의 시대는 갔고, 이젠 무수히 많은 민중들이 그 자리를 충실히 메워줄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난 개인적으로 기가옴의 의견에 살짝 동의하는 편이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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