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 매달 발간하는 <원자력문화> 2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소통'이란 테마 기획에서 블로그를 활용한 소통에 대해 쓴 글입니다.

마가렛 미첼(Margaret Mitchell)은 작가가 되기 전부터 ‘뭔가’를 쓰는 것을 좋아했다. 한 때 기자 생활을 하다가 다리 부상으로 집에서만 뒹굴어야 했던 마가렛 미첼에게는 ‘글쓰기’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는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쓰고 또 썼다.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존재였던 마가렛 미첼이 원고지에 써 내려간 글들은 훗날 눈 밝은 뉴욕의 한 출판사 편집자를 만나면서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다.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진정한 주인공, 나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세상에 알려지는 과정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의한 것이다. 비록 뛰어난 작품이었지만 출판사 관계자가 관심을 기울이기 전까지는 세상에 그 존재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철저하게 무명인 미첼이 세상을 행해 발언하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범위는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던 것이다. 좀 더 넓은 세상을 품기 위해선 거대한 네트워크를 가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인터넷, 특히 미니홈피와 블로그가 일상 생활 속으로 파고 들면서 소통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젠 누구나 세상을 향해 힘껏 소리칠 수 있게 됐다. 대형 미디어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불특정 다수에게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평범한 개인들이 초대형 메가폰을 하나씩 선물로 받은 격이라고 해도 크게 그르지 않을 정도다.

예를 들어보자. 2006년 여름 아마추어 기타 연주자인 임정현 씨는 자작 동영상 한 편으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을 수 있었다.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을 전자기타로 연주한 장면을 찍은 동영상을 UCC(이용자 제작 콘텐츠) 전문 사이트인 유튜브에 올린 것이 ‘대박 신호탄’이 됐던 것이다. 유튜브에서 임 씨의 동영상이 1000만 건이 넘는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화제가 되자 뉴욕타임스까지 ‘신기의 연주’라면서 극찬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지난 해 말 인터넷 세상에서 화제가 됐던 남아프리카 공화국 AIDS(후천성 면역 결핍증) 환자 돕기 모금 운동 역시 평범한 네티즌의 아이디어가 큰 파장을 불러온 경우다. 남아공에 거주하는 심샛별이란 블로거가 처음 AIDS로 부모를 잃은 남아공 고아들을 돕자고 올린 제안이 네티즌들의 반향을 얻으면서 결국 오프라인 공간의 자선 바자회로 이어지게 됐다.

예전 같으면 방송이나 신문사에서나 가능했던 모금 운동을 평범한 블로거가 주도했던 것이다. 남아공 AIDS 환자 돕기 바자회 소식을 전해줬던 국내 언론들은 특히 ‘블로거의 힘’에 큰 관심을 보였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이 지난 해 연말 ‘2006년 올해의 인물’로 ‘당신(You)’을 선정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던 것도 바로 이런 변화 때문이었다. 인터넷 공간에서 열심히 UCC를 만들어 낸 평범한 당신들이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진정한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타임은 또 UCC의 산실인 유튜브를 ‘올해의 발명품’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세상과의 소통을 한층 수월하게 해 준 변화

그럼 왜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됐을까? 사람들의 자기 표현 욕구가 갑자기 강해진 때문일까? 물론 기술이 발달하면서 아마추어들도 손쉽게 동영상을 비롯한 각종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더 근본을 따지고 들어가면 블로그와 미니 홈피 같은 개인 매체들이 ‘세상과의 소통’을 한층 수월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운영해 본 사람들은 알 알겠지만, 블로그나 미니홈피의 강점은 링크에서 나온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이들이 자연스럽게 인맥을 형성해 나가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블로깅의 재미다. 요즘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RSS나 트랙백, 태그 같은 것들도 세상과 나를 연결해 주는 소중한 기술들이다. 이런 기술을 바탕으로 자신과 비슷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블로그, 미니홈피가 주는 재미와 감동이다.

특히 학연과 지연 같은 지리적 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오프라인 공간의 소통과 달리 블로그 공간에서는 이슈를 중심으로 모일 수 있기 때문에 때론 더 강한 결속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시대의 열린 구조가 가져다 준 최고의 선물

미국의 디지털 문화 전문 잡지 ‘와이어드(WIRED)’의 편집장인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은 평범한 다수가 발휘하는 힘을 ‘롱테일(long tail)’이란 멋진 말로 표현해 냈다. 블로그 공간에서 긴 꼬리는 하루 방문자 수 100명에도 채 못 미치는 무명의 블로거를 의미한다. 하지만 그들이 모여서 내는 ‘롱테일 파워’는 때론 세상을 뒤흔드는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물론 롱테일 파워의 원천을 이루는 것은 바로 UCC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UCC는 인터넷과 블로그라는 네트워크를 타고 순식간에 세상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그 이전까지 일반 사람들이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남기기 위해서는 출판사나 신문, 방송 편집자들의 눈에 들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이 흘러가는 기본 틀에서 벗어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세상의 법칙에 자신을 맞추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블로그를 비롯한 각종 1인 매체들은 바로 그 기본 공식을 바꾸어버렸다. 이제는 평범한 당신이 직접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당신’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던 주류 매체들도 이젠 달라지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요즘 들어 각종 신문과 방송들이 앞다퉈 UCC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도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뒤지지 않기 위한 몸놀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인 김수영은 일찍이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고 노래했다. 그는 이 시 구절을 통해 세상을 향해 발언해야 할 시인들의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당시만 해도 세상을 향해 뭔가 발언하려면 시인이나 소설가처럼 특별한 재능이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 기침을 할 수 있게 됐다. 김수영의 시 구절을 빌자면 이젠 누구나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을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그게 블로그와 웹 2.0으로 대표되는 요즘 시대의 열린 구조가 가져다 준 최고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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