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대표하는 일간지 가디언의 간판 기자로 활동했던 글렌 그린왈드가 사표를 제출했다. 그린왈드 본인은 "평생 한번 올까 말까 한 기회를 잡은 때문"이라고만 밝혔다. 정황상 일생일대 기회란 건, 새로운 미디어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 소식을 처음 전한 버즈피드에 따르면 그린왈드는 "조만간 모든 걸 공개할 예정"이라고만 밝혔다. 


여기서 그린왈드가 누구인지 소개하는 게 순서일 것 같다. 대체 기자 한 명 퇴사했다고 온 언론들이 난리치는 지 궁금할테니. 그린왈드는 현직 변호사이면서 가디언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하루 종일 가디언에 붙어 앉아서 일하는 유형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진 출처는 위키피디아) 


좀 더 직접적으로 얘기하자. 올 들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 사찰 사실을 특종 보도한 기자다. '딥 스롯' 역할을 한 에드워드 스노든이 비밀 서류 뭉치를 폭로할 언론사로 가디언을 낙점한 것은 그린왈드 기자 때문이라고 알려져 왔다. 그린왈드는 평소 정부 비리와 부정부패 등을 집중 보도하면서 명성을 쌓아왔다. 


특종을 밥 먹듯 하는 기자. 어떤 언론사가 놓치고 싶겠는가? 게다가 전세계를 뒤흔든 대특종 여진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 기사를 쓴 기자가 그만두겠다면? 당연히 각종 억측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그린왈드와 가디언 측 모두 이런 부분이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둘 사이 관계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힌 것. 심지어 가디언은 "우린 아주 우호적인 관계로 잘 정리했다"고 까지 밝혔다. (이 정도 파워 있는 기자. 정말 부럽다. ^^)


그린왈드가 합류한 매체는 이베이 창업주 작품 


어쨌든, 그린왈드의 가디언 퇴사 소식은 버즈피드가 최초 보도했다.당연히 충격적인 소식이다. 그런데 오늘 로이터통신에 또 다른 뉴스가 실렸다. 그린왈드가 만들려고 하는 새로운 매체의 물주가 바로 이베이 창업자 중 한 명인 피에르 오미다르란 소식이다. 


오미다르는 이베이 하나 잘 만든 덕분에 85억 달러 가량의 자산을 갖고 있는 갑부다. 오미다르는 돈 많은 갑부들이 흔히 그렇듯, 적당한 자선 사업을 하면서 여러 비즈니스 쪽에 투자를 하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빌 게이츠와 함께 MS를 창업했던 폴 앨런은 프로농구와 프로풋볼 구단주로 활동하고 있다. 역시 부러운 인생들이다. ^^)


어쨌든, 가디언의 스타 기자 글렌 그린왈드는 오미다르가 만드는 미디어 책임자로 스카우트됐다는 게 로이터통신 보도다. 그린왈드는 새로운 매체를 처음부터 설계하는 역할을 담당할 예정이라고 한다.


내가 그린왈드 퇴사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는 딱 하나다. 최근 미디어 시장에도 '갑부'들이 자꾸 뛰어들고 있다는 것. 정상적인 비즈니스 모델로는 ROI가 제대로 안 나오는 언론사업 특성상, 원도 한도 없이 돈을 번 갑부들이 '이윤' 생각하지 않고 장기 투자하는 모델이 현재로선 유일한 장기 생존 모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때문이다.


제프 베조스의 워싱턴포스트 인수 때부터 이런 생각을 강하게 했는데, 오미다르가 글렌 그린왈드까지 빼갔다는 얘길 듣고 보니 더 확신이 생긴다. 게다가 최근엔 스티브 잡스 미망인(갑자기 이름이 떠오르질 않네.)까지 신생 미디어에 투자를 할 계획이란 보도까지 나오는 걸 보면…. 한국엔 건강한 미디어 육성을 위해 대가를 바라지 않는 투자를 할 갑부는 없는 걸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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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패드가 처음 나왔을 때 가장 많은 기대를 나타낸 건 잡지들이었다. '와이어드'를 비롯한 전위적인 잡지들은 경쟁적으로 혁신적인 콘텐츠를 쏟아내면서 독자들을 현혹시켰다. 일부에선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예언자일보' 같은 현란한 유저 인터페이스(UI)를 거론하면서 잡지 혁명을 기대했다.


그로부터 3년 여가 지난 지금. 태블릿은 잡지들의 구세주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한 때 반짝 화제를 모았던 와이어드는, 대표 태블릿 매거진으로 자리잡는 데 실패했다. 루퍼트 머독이 야심적으로 시작했던 더데일리 역시 투자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결국 폐간됐다. 


태블릿 잡지가 왜 생각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는 걸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건, 당연히 수익 모델이다. 동영상을 비롯한 현란한 편집으로 시선을 끄는 덴 성공했지만, 투자에 걸맞은 수익 모델을 발굴해내지 못했다.

현란한 편집 역시 강점만은 아니었다. 지나치게 현란한 잡지를 만들 경우 용량이 커져버리기 때문이다. 32GB 저장용량 제품이 주류를 이루는 태블릿 시장에서 한 호당 1GB에 육박할 정도로 무겁게 만드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앱의 폐쇄적 생태계?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앱의 폐쇄성이다. 이는 이미 2년 전 퓨리서치센터가 한 차례 지적한 부분이기도 하다. (난 당시 그 내용을 갖고 '태블릿은 과연 디지털 뉴스의 구세주일까?'란 글을 썼다.) 


오늘 기가옴에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태블릿 잡지는 왜 실패했는가(Why tablet magazines are a failure) 란 의미 심장한 제목을 단 기사다. 


기가옴의 지적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가옴은 우선 닐슨과 플러리 자료를 인용해서 앱 기반 생태계의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준다. 우선 닐슨 자료에 따르면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하루 평균 41개의 앱을 깐다. 하지만 이 중 실제로 열어보는 건 5분의 1이 채 안 된다. 모바일 전문 조사업체인 플러리에 따르면 하루에 열어보는 앱은 평균 8개 내외다.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여러분들도 한번 꼼꼼히 따져보시라. 열어보는 앱은 대부분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SNS이거나, 게임 관련 앱들이다. 잡지 앱을 열어서 꼼꼼하게 읽는 비중은 굉장히 낮다고 봐야 한다. 일단 선택되기도 힘들지만 선택되더라도 제대로 읽히는 경우가 극히 드물단 추론이 가능하다.


두 번째 이유 역시 앱 생태계의 폐쇄성과 관계가 있다. 검색이나 SNS에서 곧바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플립보드나 자이트 같은 큐레이션 앱들도 태블릿 잡지 안에 들어가 있는 콘텐츠를 연결해줄 방법은 없다. 그러다 보니 태블릿 매거진들은 콘텐츠를 널리 알리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가옴은 디자인도 태블릿 매거진의 약점으로 꼽았다. 종이 잡지에서 그토록 현란해 보였던 디자인이 막상 아이패드에서 볼 땐 그다지 단조로운 느낌마저 들었단 것이다. 


기가옴이 미국 미디어감사연합(AAM) 자료를 인용해서 소개하는 태블릿 잡지의 실상은 초라하기 그지 없다. 가장 잘 팔리는 25대 태블릿 잡지를 살펴본 결과 전체 잡지 구독에서 태블릿 구독이 차지하는 비중이 12% 수준에 머물렀다. 태블릿의 장점을 잘 살릴 것으로 기대했던 와이어드가 평균인 12%에 머물렀고, 또 다른 명품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4%에 불과했다. 


씨넷코리아 황치규 기자는 기가옴의 견해에 공감을 나타냈다. 결국 앱의 폐쇄된 환경이 문제란 얘기다. "아무리 콘텐츠가 좋더라도 웹과의 고립은 사용자들이 원하는 방향은 아닌 것 같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나 역시 대체로 동의한다.


과연 그게 앱 만의 문제일까? 


하지만 난 이 문제를 좀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고 싶다. 이건 태블릿 잡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웹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매체가 만들어내는 콘텐츠만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오픈 플랫폼이란게, 단순히 구두선으로 그칠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참고로, 1990년대 말만 해도 중앙일보나 조선일보 사이트의 독자 유인력은 엄청났다. 당시 조선 쪽에 근무했던 난, 아침에 출근하면 엄청난 댓글 공세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 태블릿 매거진 중에서도 플립보드나 자이트 같은 것들은 엄청난 각광을 받고 있다. 내가 감탄을 금치 못한 서카(Circa) 역시 위키피디아 식 뉴스 표출 방식에 힘입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역시 예전에 썼던 플립보드-자이트가 미디어의 미래 모습일까? 그리고 Circa와 모바일 뉴스의 새로운 지평을 참고하시라.)


결국 태블릿 매거진이 생각만큼 인기를 끌지 못하는 건, 표면적으론 앱 생태계의 폐쇄성 때문이지만, 곰곰 따져보면 미디어 소비 행태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도달한다. 굳이 구분하자면, 기가옴 기자가 진단한 것과 병명은 같지만, 병의 원인(혹은 감염 경로)는 다르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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