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미드나잇이 개봉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9년 전 비포선셋을 본 뒤 썼던 글 한 편 방출. 
비포 미드나잇도 봐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팍팍 생긴다.) 


9년전 아쉬움을 남기며 헤어졌던 연인을 다시 만난다면?

 

누구나 한번쯤 떠올려 봄직한 질문이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는 것은 쉽지가 않다. '현실 속 좌표' 때문만은 아니다. 희미하긴 하지만, 아름답게 채색돼 있는 추억을 깨어버리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영화 '비포 선셋'은 이처럼 흔한 듯 하면서도, 쉽지 않은 소재를 택했다.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느(줄리 델피)는 9년전 우연히 기차 여행중 만나, 비엔나에서 '뜨거운' 하룻밤 사랑을 나눈 사이다.

 

이 영화의 전편인 '비포 선라이즈'를 본 관객이라면, 비엔나 기차역에서 두 연인이 이별하던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10년 뒤 여기서 만날까?" "아니 5년, 아니 1년." 그러다가 그들은 6개월 뒤 같은 장소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물론 연락처는 주고 받지 않는다. 그냥, 사랑에, 둘 사이의 운명에 모든 것을 걸었다. 하지만, 당연한 얘기지만, 그들은 만나지 못했다. 

 

그로부터 9년. 제시는 당시의 경험을 소설로 펴내 유명 작가가 됐다. 똑똑하고 야무지면서도 행동이 앞섰던 셀린느는 환경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비포 선셋'은 작가가 된 제시가 파리의 한 서점에서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 셀린느가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유명 작가가 된 제시가 조금 더 여유가 생긴 반면, 셀린느는 조금 더 '신경질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 배우 그대로 찍은' 이 영화는, 배우들의 얼굴에서 세월의 더께를 그대로 엿볼 수 있어, 보는 이들에게 실감을 더해 준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로맨스라면, 헤어진 연인들의 재회는 현실이다. 이 영화에 극적인 반전이나 휘황찬란한 로맨스가 들어갈 틈이 없는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처사다. 생각해보라. 9년 만에 만난 연인들이, 게다가 현실 속에 이미 자신들의 좌표를 마련해 둔 연인들이, 9년 전처럼 열정에 휘말린다는 것이 생각처럼 쉬울지를.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따발총처럼 많은 대사를 주고 받는다. 그리고 그 대사들은, 더 이상 영화의 대사가 아니다. 그건 현실 속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그런 대화들이다. 바로 그 점이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기의 로맨스'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뭐 이런 영화가 다 있어?'란 질문을 던질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비포 선라이즈'와 함께 늙어온 관객들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이 영화의 태생적 한계에 공감을 보낼 법도 하다.

 

그런 점에서 영화의 결말을 관객의 상상에 맡겨 버린 감독의 연출력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솔직히, 엔딩 신(scene)이 좀 허무하긴 했지만, 제시는 더 이상 "당신을 지금 보내버리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며 열차 위로 다시 뛰어들던 20대 청년이 아니질 않은가?

 

하지만 난 이 영화를 보면서 '굳이 9년 전 헤어진 두 연인들을 다시 스크린으로 불러낼 필요가 있었을까', 란 생각을 했다. 젊은 시절의 사랑은 끝난 지점에서 그냥 남겨두는 게, 더 아름답지 않을까? 아쉬워하는 두 사람을 같은 무대에 올려놓은 건 너무 잔인한 처사가 아니었을까?

 

그럼 이들의 9년전 모습은 어땠을까? 아래 사진들과 현재 모습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조금 짓궂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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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전에 네이버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결핵 공포 고양외고를 덮치다 란 기사였다. 고양외고는 바로 딸 아이의 모교. 당연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전교생 다섯 명 중 한 명이 결핵 잠복자인데, 학교 측은 쉬쉬하면서 덮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대학 진학에 눈 멀어 밀폐된 공간에서 공부하라고 강요한다는 내용의 기사도 있었다.


고양외고 안이한 대처 결핵 집단 발병 키웠다는 과감한(?) 기사도 눈에 띄었다. 고양외고 결핵 공포 라는 중앙일보 기사도 있다. 이 정도 보도가 나가면, 학교는 거의 쑥대밭이 된다.  


여기서 잠시 한국일보에 실린 기사 중 일부를 한번 보자. 


한 학부형은 "학교와 보건당국의 안일한 대응으로 많은 학생이 감염됐다"며 "아이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 사이트와 일부 포털사이트 게시판 등에는 "사태가 심각한데도 학교는 성적 올리기에만 눈이 멀어있다" "학교는 감염을 막기보다 학생들을 공부시키기에 급급하다" 는 등 비판의 글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학교측의 반응은 여전히 미온적이다. 고양외고 관계자는 "매뉴얼 상 1명이 발병하면 해당 학급을, 2명이 발병하면 학년 전체를, 발병 학생이 3명이면 전교생을 검사해야 한다"며 "결핵이 발생했다고 휴교 조치를 취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내가 이 부분을 인용한 것은 언론들이 잘 범하는 잘못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안이든, 한 두 명은 불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그걸 전체적인 맥락에서 봐야 하는 데, 이런 식으로 떼어놓으면 오해의 소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기사도 의심스럽긴 마찬가지다. '결핵 공포'라고 단정적으로 쓴 기사치고는 직접 취재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최소한 학교 당사자의 멘트라고 하나 들어가든가 해야 하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그냥 다른 기사 받아쓴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교수가 정부 비판 때문에 미운 털이 찍혔다고 가정해보자. 내가 만약 그 교수를 악의적으로 비난하려고 맘 먹었다면, 충분히 "수업에 충실하지 않았다"거나 "특정 학생을 편애했다" 혹은 "학생들을 배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어렵게 가르쳤다" 등의 멘트 한 두 개쯤은 받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대학 진학 성적 높이기에 혈안이 된 한 특목고가 결핵에 걸린 학생들을 비인간적으로 내몰고 있다는 논조의 기사들은 불과 하루 만에 확 바뀌었다. 질병관리본부가 전염성이 없다고 공식 발표한 때문이다. 고양외고 결핵감염 사실과 달라 란 기사에 따르면, 전체 국민 3명 중 한 명은 잠복감염 상태라고 한다. 결핵에 대한 상식만 제대로 갖고 있었어도 난리 칠 필요가 없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이번 사건은 한 학생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 발단이 된 것 같다. 그런 사안이 있으면 기자들은 당연히 취재해서 기사를 써야 한다. 만약 학교가 결핵에 집단적으로 감염됐는데, 그냥 방관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안이 있다. 직접 당사자들이 과도한 피해를 받지 않도록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당연히 취재를 해서 전후 맥락을 충분히 파악해야만 한다. 그게 기본이다.


직접 당사자(는 아니지만, 밀접한 관계자)가 되고 보니 언론 보도가 참 무섭다. 어, 다르고 아, 다르다는 걸 실감하겠다. 속보 경쟁도 좋지만, 제대로 취재를 하고,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해서 기사를 써야 한다는 기본을 잘 지켜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 그냥 마구 인용 보도해버리는 일도 좀 삼가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이번 일 때문에 맘 고생 많이 했음직한 고양외고 선생님이 올린 글를 하나 퍼왔다. (딸 아이가 굉장히 싫어할 테지만) 딸 아이가 페북에서 '좋아요'를 눌렀기에, 일삼아 들어가서 읽어봤다. (딸아. 이번 건은 정말 깜짝 놀라서 읽어본 것임. 링크 타고 들어가는 일 없음.)


그렇다고 해도요... 아이들이 토하는데 공부해야 산다고 무지막지하게 공부시키는 무식한 인간들은 아닙니다. 오늘 교장선생님은 시종일관죄송하다 얘기만 하셨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우리 교장선생님만큼 아이들을 아끼고 교사들을 귀하게 여기는 교장선생님 별로 없습니다. 정말 과실이 있었다해도 죄인처럼 몰아가지는 말아주셨으면 했습니다. 보건당국에 혼날 정도로 빠르게 빠르게 검사 재촉했구요, 보건당국에서 하라는대로 열심히 대응했습니다. 우리 바보 교사들은요, 결핵 걸렸을지도 모르는 우리 학생들 하나씩 데려다가 밥도 먹어가며 상담하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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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팔자에 없는 잡지 디자인 고민을 했더니, 머리가 몹시 아프다. 그래서 잠깐 쉬는 틈을 타 오랜 만에 야구 얘기를 한번 써 볼까 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 프로야구에선 '마무리 고민'이 적지 않았다. 지난 해에도 마찬가지였다. 오승환이 든든하게 자리를 지킨 삼성과 손승락이 평년 성적을 낸 넥센을 제외한 나머지 팀은 확실한 마무리 부재로 고민했다.


올해 들어선 그 상황이 더 심해졌다. 무엇보다 오승환 마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나 기아 같은 팀들은 뒷문이 여간 부실한 게 아니다. 역전패를 밥먹듯 하고 있는 한화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러다 보니까 9회 한 이닝을 확실하게 막아줄 마무리가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리베라의 시즌 아웃으로 허전해진 양키스 뒷문 


자, 그럼 시선을 미국으로 한번 옮겨보자. 그것도 내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가장 큰 뉴스는 역시 1990년대 이래 뉴욕 양키스 제국의 뒷문을 든든하게 지켜줬던 마리아노 리베라의 시즌 아웃 소식이다. 9회는 자동으로 끝내줬던 리베라가 빠지면서 양키스의 뒷문이 조금 허전해진 느낌이 든다. 게다가 임시 마무리를 맡았던 로버트슨마저 이탈하면서 '양키스의 9회'는 앞으로 흥미진진한 롤러코스트를 기대해 볼 수도 있게 됐다. 


(탬파베이 있을 때 특급 마무리였던 라파엘 소리아노가 있긴 하지만, 대도시 뉴욕으로 간 뒤론 새가슴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사정은 보스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몇 년 9회를 책임졌던 조너선 파펠본이 필라델피아로 옮긴 때문이다. 최근 불안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올해 보스턴 경기를 보면 "구관이 명관"이었단 생각을 하게 된다. 그만큼 뒷문이 부실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탬파베이는 참 특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단 탬파베이는 '9회 한 이닝을 전담하는 공식 마무리'란 개념 자체를 별로 신통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단장부터 감독까지 같은 생각이다. "한 아닝을 막는 마무리에게 수 백만 달러를 쓰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공공연하게 떠벌릴 정도다. (얼마 전 내가 번역했던 '그들은 어떻게 뉴욕 양키스를 이겼을까'에도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일종의 집단 마무리 체제를 운영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렇게 하면서도 나름 시즌을 잘 이끌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0년엔 애틀랜타에서 라파엘 소리아노를 헐값에 데려와 리그 구원왕을 만들었다. 


한 해 뒤 탬파베이는 양키스에게 소리아노를 빼앗겼다. 돈 때문이다. 다들 탬파베이의 허전해진 뒷문 걱정을 했다. 그러자 지난 해엔 카일 판스워스란 듣도 보도 못한(?) 선수를 영입해 9회를 깔끔하게 책임지도록 했다.


올 시즌이 시작되면서 또 다시 탬파베이의 마무리 문제가 이슈가 됐다. 판스워스가 부상 때문에 시즌 중반 이후에나 복귀가 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호엘 페랄타를 비롯한 여러 선수들이 마무리 후보로 거론됐다.


탬파베이는 이번에도 싼 값에 마무리 투수를 영입해 왔다. 지난 해 LA 에인절스에서 마무리로 뛰다가 셋업맨으로 밀려난 페르난도 로드니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큰 돈 들이지 않고 마무리 감을 채워넣고 싶었던 탬파베이의 필요와, 마무리 자리 빼앗긴 뒤 기분 상해 있던 로드니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진 덕분이다.


"공식 마무리 투수는 없다"는 탬파베이의 논리  


물론 로드니는 특급 마무리는 아니다. 그 부분에 대해선 대부분의 야구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오죽하면 지난 해 신인에게 마무리 자리를 빼앗겼을까? 그리고 탬파베이가 그런 선수를 영입해 마무리를 맡기는 것에 대해 그다지 놀라워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탬파베이 단장이나 감독은 전문 마무리란 개념에 대해 그다지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탬파베이 팀의 조 매든 감독은 가장 구위가 좋은 선수를 9회만 전담하게 하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7회든, 8회든 가장 심각한 위기 상황이 될 때 그 선수를 쓰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리베라 같은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면 이런 태도를 보이진 않을 것이다. 문제는 리베라 급 선수를 영입하려면 돈이 엄청 든다는 점이다. 그리고 탬파베이 같은 가난한 팀에겐 한 이닝 막아줄 선수에게 거액을 투자할 여력이 없다. 그러고 나면 매일 출전할 선수를 제대로 꾸리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금까지 로드니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경이롭기 그지 없다. 오늘 토론토 전에서 9회 한 점차 리드를 깔끔하게 마무리하면서 11세이브 째를 올렸다. 평균자책점도 0.5점 수준에 불과하다. 이 정도면 전문 마무리 못지 않은 성적이다. 


탬파베이 지역 일간지들은 당연히 이런 성적에 대만족한 상태다. 탬파 트리뷴은 로드니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는 기사를 게재했을 정도다. 하지만 탬파베이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여전히 조 매든 탬파베이 감독은 '공식 마무리'란 직함을 그다지 탐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모양이다. 


프로야구에서 불가사의 중 하나는 9회 마무리다. 멀쩡하게 잘 하던 선수들도 9회 마무리를 맡겨놓으면 버벅대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표적인 게 몇년 째 마무리 고민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LG다. 미국 프로야구 뉴욕 양키스 역시 리베라가 시즌 아웃된 뒤 로버트슨이나 라파엘 소리아노 같은 선수에게 맡겨봤지만 신통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7, 8회는 잘 던지다가도 이상하게 9회를 맡기기만 하면 불질을 해댄 때문이다.


과연 야구에서 9회가 의미하는 건 뭘까? '한 이닝 마무리'는 호사스런 개념일까? 아니면 그 팀에서 가장 구위가 좋은 선수에게 9회를 맡겨야만 하는 걸까? 


뉴욕 양키스를 비롯한 많은 팀들은 '확실한 9회 마무리'를 잡기 위해 많은 돈을 쓴다. 반면 탬파베이는 현대 야구에서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9이닝 전담 마무리' 개념을 시큰둥하게 받아들이면서도 늘 괜찮은 마무리를 키워낸다. 과연 어떤 게 더 효율적인 전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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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교 다닐 땐 뒤늦게 철 든 아이들이 꽤 많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본고사가 폐지되면서 내신 비중이 커지긴 했지만, 우리 학번 땐 학력고사가 어렵게 출제되는 바람에 막판 뒤집기가 가능했다. 고등학교 1, 2학년 때 땡땡이 치다가 고2 겨울부터 대오각성해서 좋은 대학 간 친구들도 더러 있다. 그 중엔 지금 모 대학 교수로 열심히 활동하는 친구도 있다. 


갑자기 옛날 얘기를 꺼낸 건 어제 읽은 기사 때문이다. 중앙일보에서 본 '개천서 용 날 수 없나' SKY진학률 비교해보니 란 기사다. 외고나 강남 3구 일반고등학교의 SKY(공교롭게도 서울대, 연대, 고대의 이니셜이 스카이라니, 괜히 기분 나쁘다.) 진학 비율이 월등하게 높다는 기사다. 


지금은 모대학 교수로 활동하는 친구.... 요즘이라면?


저 기사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지금은 모 대학 교수로 활동하는 한 친구다. 아마도 그 친구는 지금 같았으면, 명문대 진학도 불가능했을 뿐더러, 교수는 아예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물론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열심히 공부했을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그건 논외로 하자.) 


그리고 생각한 건 선행학습, 소위 '과외발'이다. (이 뒤에서부턴 읽기에 따라선 자식 자랑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겁니다. 혹시 그런 얘기 빈정 상하시는 분들은 그만 읽으세요. 난 자식 자랑을 하는 게 아니라, 가슴 아픈 고백을 하는 겁니다.)


우리 집 아이는 소위 말하는 학원, 과외 근처에도 안 갔다. 당연히 선행 학습은 전혀 안 했다. 

(마눌의 항의 때문에 내용 조금 수정. 과외는 전혀 안 한 건 아니고, 중학교 때까지 5년 정도 어떤 선생님과 영어 공부를 같이 했다고. 그 때 그 선생님은 문법이나 영어 시험 대비법을 가르친 게 아니라, 같이 신문읽고, 책읽으면서 영어를 즐겼다고 한다. 따라서 과외를 전혀 안 했다는 건 팩트와 다른 얘기.)


중학교 땐 진짜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했다. 자세한 얘기는 딸 아이의 사생활이니 생략하기로 하자. 참고로, 외고 입시 한 달 쯤 전에 미국에 오케스트라 연주 여행을 2주 정도 다녀왔을 정도다.


남들 학원, 과외 받을 때 자유롭게 생활했지만, 하여간 어떻게 외고에 들어가게 됐다. 외고 들어가선 엄청나게 고전을 했다.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했지만, 시험 칠 때마다 한 바탕 전쟁을 벌여야 했다. 들어가보니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미 영어, 수학 공부를 따 끝낸 상태였다. 학교에서 시키는 만큼만 공부했던 우리 아이는 당연히 남들보다 두 배는 노력을 해야 헸다.


학교에서 중간, 기말고사 칠 때마다 우린 조마조마. 집에 오기 전에 전화가 오면 시험 망쳤다는 의미. 그럴 땐 남들보다 선행 학습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들어야만 했다. (다행히 나는 회사에 출근했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마눌이 그 불평불만 다 들었다.) 


그리고 나면 딸 아이는 분이 풀리고 평상심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때부터 우리는 갈등을 해야 했다. 학원이나 과외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란 의구심. 괜히 나중에 후회하는 것 아닌가 라는 불안감. 뭐 그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밀려 왔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던 딸 아이는 2학년 2학기가 되면서 성적이 최상위권으로 뛰어 올랐다. 그 때 이후 수능 때까지 그 성적을 쭉 유지했다.


나중에 물어봤다. "네가 2학년 2학기 때 모의고사 성적이 확 오른 이유가 도대체 뭐냐?"고. 그랬더니 딸 아이는 "그 때 쯤 모든 과목 한 바퀴 다 돌았어요."라고 대답했다. 결국, 그 때쯤이 되어서야 다른 아이들하고 비슷한 지점까지 갔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다. "열심히 공부하면, 정말 열심히 공부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가능할 것 같다는 자신감은 있어요. 하지만 진짜 극복하기 힘든 애들이 있어요. 구름 위에 있는 애들이요."


어땐 애들이냐고 물어봤다. 초등학교 때 미국 다녀온 애들. 그 곳에 가서 영어 마스터하면서, 수학 과외까지 같이 받아온 애들. 그리곤 중학교 때 돌아와서 과학 과목 선행 한 애들. 이런 애들은 도저히 물리적으로 따라잡을 방법이 없다고 했다. 자기는 죽어라 공부할 때, 여유를 부리는 데도, 늘 1, 2등을 찍더라는 애기였다.


대학가서도 여전히 영향력 미치는 '선행학습 효과'


어쨌든, 수능을 왕창 망친 딸 아이는 다행히 내신과 스펙, 기타 면접을 잘 한 덕분에 카이스트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학원, 과외 일절 안 하고 명문대 보낸 성공 사례야."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명문대학에 들어간다고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니었던 게다. 지금도 딸 아이는 고등학교 저학년 때 했던 고생을 또 하고 있다. 대학 들어가보니 벌써 대학과정 끝내고 들어온 애들이 수두룩했던 때문이다. 죽어라 밤샘 공부해서 준비해갔더니, "언니, 나 어제 그냥 놀았어요" 하던 애들보다 성적이 더 안 나오더란다. 왜 그런지 봤더니…. "그게 우리 고등학교 때 다 배운 거에요."란 답이 돌아오더란다. (참고로 과학고등학교 출신들은 99% 2학년 마치고 온다.)


그런 애기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남들은 학원, 과외 안하고 소신있게 (물론 대부분 마눌의 소신이지만) 대학 보냈다면서 굉장히 부러워한다. 하지만 다시 선택하라면, 또 다시 선행학습 안 시킬 지는, 솔직히 자신 없다. 먼저 출발해서 저 만치 달려가고 있는 애들 따라가느라 죽을 고생하는 딸 아이 모습을 너무나 애처롭게 봐온 때문이다.


개천에서 옹이 날 수 없는 구조. 간혹 개천에서 키워낸 용들이, 본 무대에 가서 또 다시 좌절할 수밖에 없는 구조. 이런 구조를 어떻게 봐면 바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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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영화 한 편이 있다. 당돌하게도 '개론'이란 고리타분한 제목을 붙이고서도 많은 관객들을 끌어모은 영화. 바로 '건축학개론'이다. 


영화의 배경은 1996년. 영화는 서연이 첫 사랑이었던 승민을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그리곤 뜬금없이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한다. 티격태격 끝에 집을 지어주기로 하는 승민. 설계를 하고 집을 짓는 과정이 이 영화가 그리고 있는 현실 속 얘기다. 



'건축학개론'은 전형적인 액자식 구조로 되어 있다. 현실 이야기 사이 사이에 한 없이 아름다웠던 둘의 풋사랑이 삽입된다. 현실에서 집을 지으면서, 동시에 폐가처럼 앙상한 추억 속 사랑의 집도 함께 지어나가는 것이 이 영화의 기본 구조다. 구성은 교묘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잘 되어 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영화 얘기는 생략. 아직 안 본 사람들의 재미를 감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고들 한다. 첫사랑의 완성에 감동 받았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난 보는 내내 불편했다. 꼭 그래야만 했을까? 굳이 그게 첫사랑이었다고, 확인해야 했을까? 그냥 묻어두면 안 되는 걸까?


그래서였을까? 이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지난 2004년 개봉된 영화 '비포 선셋'을 떠올렸다. 한 때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던 '비포 선라이즈'의 속편. 


잘 아는 것처럼 '비포선셋'의 주인공인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느(줄리 델피)는 9년전 우연히 기차 여행중 만나, 비엔나에서 '뜨거운' 하룻밤 사랑을 나눈 사이다. 전편인 '비포 선라이즈'를 본 관객이라면, 비엔나 기차역에서 두 연인이 이별하던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10년 뒤 여기서 만날까?" "아니 5년, 아니 1년." 그러다가 그들은 6개월 뒤 같은 장소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물론 연락처는 주고 받지 않는다. 그냥, 사랑에, 둘 사이의 운명에 모든 것을 걸었다. 하지만, 당연한 얘기지만, 그들은 만나지 못했다. 


(개그맨 황현희였다면,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그냥 만나면 될걸 왜들 저러는 걸까요?"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로부터 9년. 제시는 당시의 경험을 소설로 펴내 유명 작가가 됐다. 똑똑하고 야무지면서도 행동이 앞섰던 셀린느는 환경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비포 선셋'은 작가가 된 제시가 파리의 한 서점에서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 셀린느가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유명 작가가 된 제시가 조금 더 여유가 생긴 반면, 셀린느는 조금 더 '신경질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 배우 그대로 찍은' 이 영화는, 배우들의 얼굴에서 세월의 더께를 그대로 엿볼 수 있어, 보는 이들에게 실감을 더해 준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로맨스라면, 헤어진 연인들의 재회는 현실이다. '비포선셋'에 극적인 반전이나 휘황찬란한 로맨스가 들어갈 틈이 없는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처사다. 생각해보라. 9년 만에 만난 연인들이, 게다가 현실 속에 이미 자신들의 좌표를 마련해 둔 연인들이, 9년 전처럼 열정에 휘말린다는 것이 생각처럼 쉬울지를.


9년 만에 다시 불려나온 주인공들. 하지만 '비포선셋'이 비춰주는 그들의 모습은 어딘지 불안해 보인다. 따발총처럼 많은 대사를 쏟아내지만, 웬지 겉도는 느낌이다. 묻어둬야 할 것들을 다시 불러냈으니,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를 일이다.


비슷한 듯 다른 두 영화. '건축학개론'과 '비포선셋'의 주인공들은 모두 현실 속 좌표로 돌아간다. 물론 당연한 선택이요, 당연한 연출이다. 


하지만 두 영화가 강조하는 지점은 조금 다르다. 한국 영화 '건축학개론'에선 둘의 사랑을 확인해준다. 서로 상대에게 줬던 소품들을 15년 만에 다시 보면서, "그게 사랑이었다"는 확인을 한다. 


반면 '비포선셋'은 현실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둘의 거리를 보여준다. 열정보다는 어색함이 더 강하게 뭍어나온다. 


그래서였을까? 영화적인 재미로만 따지면 '건축학개론'이 좀 더 나았다. 하지만 공감 지수는 '비포 선셋'이 훨씬 더 높았다. 현실은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나는 영화 재미 있게 잘 봤다는 얘기를 왜 이렇게 어렵게 하는 걸까? 황현희 말마따나, "대체 왜 이러는 걸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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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내가 참 재미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무미 건조하다는 생각도.

계기는? 사실 별로 없다. 그냥 날 돌아보니 그런 느낌이 든다. 사람들과 모여서 떠들고 노는 것도 그다지 즐겁지 않다. 게다가 술자리라면, 거의 기겁 수준. 이러니 남들 보기에 삶이 재미 있을 턱이 있겠나?

블로그나 트위터를 운영하면서도 이런 내 한계를 많이 느낀다. 왜 내 트위터나 블로그엔 사람들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란 생각. (하긴 내 블로그 내가 다시 읽어봐도 재미 없다. 그나마 몇 개 올라오지 않은 글들은 죄다 책 서문이나 역자 후기 류이니. ㅠㅠ. 그런 것보면 난 참 관념적인 인물인듯.)

그런데 문제는, 나는 나름대로 재미있게 살고 있다는 거다. 별다른 일 없이 멍청하게 시간 죽이는 걸 좋아하고, 책 뒤적거리는 것도 즐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 마디. 책 읽는 걸 즐긴다는 얘긴 아니다. 필요 때문에 책을 읽긴 하지만, 요즘 들어 느긋한 독서의 즐거움은 잊은 지 오래다. 그걸 보면 난 분명 독서가는 아닌 듯.)

누군가는 사이버 공간에서는 현실 공간과 다른 캐릭터가 나타날 수도 있다던데, 난 사이버 공간에서도 딱 나만큼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것 같다. 트위터 같은 것에서 이야기를 주도하는 사람들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는 이런 내 모습을 "사람들 많이 있는 곳에서 입을 닫아버리는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는 것 같다. 근데 우리 딸아이도 그런가보다.

내가 아는 딸 아이는 무지 수다스럽고, 활달한 편이다. 학교에서 다녀오면 일단 하루 일과를 전부 털어놔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다. 그런데 그런 딸아이를 조금만 아는 친구들은 "굉장히 조신하고 상당히 여성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단다. (그 얘기 듣고 하마터면 뒤로 넘어갈 뻔했다.)

횡설수설 한 것 같다. 사실 요지는 딱 하나다. 사이버 공간에서도 오프라인 공간과 비슷한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 특히 트위터를 보면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는 것. 그래서 수다란 것은 온오프라인의 차이가 그다지 없는 것 같다는 것. 뭐 이런 얘기를 하고팠는데, 마감 시간에 쫓기며 후다닥 글을 써다보니 논지가 왔다갔다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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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아이가 'WATCH21'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전국 63개 학교 대표들이 참가한 대회에서 전체 2등을 했단다.

WATCH은 한국여성공학기술인협회가 교육과학기술부 지원을 받아서 매년 시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공계 대학생들과 고등학생들이 한 팀을 이뤄 프로젝트를 연구하고 발표하는 대회이다. 

전기·전자·통신, 생명·화학·고분자, 건축·대기환경, 컴퓨터, 화학공학, 기계·항공·선박, 생물화학 등 총 8개 분야로 나눠 겨루는 대회인데, 딸 아이는 생물화학 분야에서 1등을 한 뒤 본선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대상은 교육부 장관상이고 최우수상은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상이라고 한다.)

지난 여름 방학 때부터 대학원생 언니와 딸 아이네 학교 학생 4명이 한 팀을 이뤄서 열심히 실험을 하더니 결국은 한 건 해냈다. ㅎㅎ.

어제 딸 아이의 무용담을 들으면서 새로운 면을 발견했다.

원래 이 프로젝트는 고등학생들이 발표를 하면, 심사위원 교수님들이 질문을 하는 식으로 진행한다. 그런데 처음에 질문을 받았는 데, 좀 애매하더란다. 그래서 "저희들이 대학가서 열심히 연구해서 세상을 바꾸겠습니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나?

그래서 교수님들도 빙그레 웃고, 하여간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고. 교수님이 다시 질문을 해주셔서 준비한 대로 잘 대답했다는 얘길 들으면서 "참 엉뚱한 녀석"이란 생각을 했다. 앞에 나서길 좋아하는 걸 보면 날 닮은 것 같진 않고, 또 무대 체질인 걸 보면,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을 한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11월11일 서울역 대강당에서 시상식을 한다고. 시상식 끝나면 학교에서도 한번 더 하는 데, 아마 교문에 플래카드도 하나 붙여줄 것 같단다. (발표 전날 이틀 동안 통틀어 한 시간만 잤다고 하더니, 어제부터 오늘까지 꼼짝 않고 잠만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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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출한 지 3개월 만에 마침내 속초 정복에 성공했습니다. 지난 주말 회사 동료들과 하루 종일 자전거 강행군을 한 끝에 미시령 정상에 자전거를 올려놓는 데 성공한 겁니다. 평균에도 못 미치는 저질 체력과 곳곳에서 기다리는 업힐들, 그리고 (근래 최악의) 맞바람 공세를 이겨내고 이루어낸 쾌거입니다.

1. 속초 도전에 나서기까지

6월말 처음 자출족 대열에 가담했습니다. 자전거 경력 2년 쯤 되는 회사 선배(이자 이번 속초 여행을 충동질한 사람)의 꾐에 빠져 덜컥 '블랙캣 5.0'을 한 대 구입했더랬습니다. 하루 왕복 40km의 자출과 주말 라이딩. (그 덕에 가정적인 아빠, 남편에서 졸지에 바깥으로 도는 남편, 아빠로 전락.) 조금씩 자출 이력이 붙으면서 장거리 정복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8월 중순 하트코스 완주를 시작으로 체력 단련에 들어갔습니다. 하트코스 두 차례 완주에 헤이리 정복을 하면서 하루 주행거리를 100km까지 늘렸습니다. 그리고 8월말. 도로주행 겸 장거리 연습을 위해 양수리를 다녀오면서 '속초 정복'의 꿈이 무르익기 시작했습니다. 9월 초엔 남산 정복으로 업힐 연습 완료. 
 
체력 단련을 하는 틈틈이 자전거 책 독파. 자고로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문무를 겸비한 사람이 진정한 무인이라는 신념으로 주요 자전거 책들은 속속 읽어나갔습니다. <자전거 홀릭>은 자전거에 대한 상식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됐고, <자전거로 멀리가고 싶다>와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은 장거리 질주 본능을 일깨우는 불쏘시개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전거 이야기가 아닙니다>를 통해선 은근과 끈기, 그리고 집념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 <새크리파이스>란 자전거 소설에선 동료애와 희생정신을 배웠습니다.

 2. 속초를 외치며

 "누구나 속초로 갈수는 있지만, 아무나 속초를 정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디선가 읽었던 이 말에서 우리는 용기와 목표 의식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듣고 보니 해병대 구호 비슷하네요.)

 19일 결전의 날을 앞두고 16일 점심 식사 때 예비 모임. 각자 준비물 체크. 몸 만들기(출발 당일까지 고기 많이 먹기)에 대한 다짐 등을 하고 헤어졌습니다. "모든 건 하늘에 맡긴다. 아자, 아자, 화이팅." 

 19일 오전 5시 마포대교와 원효대교 사이에 있는 거북선 나루터 앞에서 집합하기로 했습니다. (그 때 우린 속으론 제 시간에 모든 멤버가 집합할 확률 50%, 그 멤버들이 속초까지 완주할 확률 25%라고 생각했지만, 겉으론 다들 "속초는 우리 땅"을 외쳐댔습니다.)

 3. 드디로 속초로

19일 새벽 3시40분. 요란한 벨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5시까지 거북선 나루터에 도착하려면 3시50분에는 집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눈꼽만 떼고 바로 고고싱. 새벽 4시 라이딩은 커녕 새벽 4시에 눈을 뜨고 있어본 기억도 별로 없는 저는, 오로지 속초 정복 일념 하나로 모든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두어달 전부터 "자전거 중독자' 취급하는 마눌님의 걱정어린 시선을 뒤로 하고 드디어 출발했습니다.

5시. 모든 멤버들이 거북선 나루터에 집결. 곧바로 이촌역으로 갔습니다. 5시23분발 국수행 첫 차를 타기로 했으니까요. 이촌역에서 출발 인증샷.

  
이촌역에서 기차를 타고 국수역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6시30분 경. 국수역에서도 또 다시 인증샷을 찍었습니다.

 

국수역에 내리니 아침 공기가 서울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온몸을 휘감는 한기. 하지만 우리는 벌써 '속초 정복'이란 '약물'에 취한 사람들. 그 정도 한기는 즐겁게 받아들이며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속초 가는 길은 평탄한 구간이 거의 없더군요. 특히 국수역에서 출발해서 강원도에 접어들 때까지는 시종일관 업힐-다운힐이 반복됐습니다. (자전거 타면서 배운 교훈이 딱 두가지 입니다. 업힐은 피할 수 없다. 즐기도록 하라. 또 하나는, 업힐이 있으면 반드시 다운힐이 기다리고 있다. '자전거 여행'으로 유명한 김훈 선생이 그랬다나요? 세상엔 업힐과 다운힐이 공평하게 배치돼 있다고.)

 

제 아무리 40대 후반 저질 체력들이라고 해도, 오전 라이딩은 신나고 즐겁게 마련입니다. 그 정도 체력들은 비축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용문휴게소에서 첫 휴식. 이 때까지만 해도 다들 얼굴에 생기가 살아있었습니다.

용문휴게소에서 연양갱과 바나나, 기타 영양식으로 체력 보충. 물은 철저하게 현지 조달 원칙을 세웠기 때문에 휴게소 식당에서 염치불구하고 실례했습니다.

 
첫 번째 고비였던 신당고개. 생각보다 길었던 업힐 탓에 다들 기진맥진. 오전 라이딩의 최대 고비였습니다. '환영합니다. 어서오십시오'란 홍천군의 간판이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었습니다. 

4. 오후 라이딩

"자 여기서 식사를 하고 쉬었다 가지."

번짱 형님의 이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팜파스 휴게소. 여기서 우리들은 국수와 냉면 등으로 요기를 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다지 배가 많이 고팠던 것도 아니고, 또 아직 체력이 풍부했기 때문에 가벼운 것으로 선택한 겁니다. (하지만 이 잘못된 선택 때문에 오후 라이딩 내내 '죽을' 고생했습니다. 장거리 뛰는 분들. 밥 잘 드세요. 먹는 게 남는 겁니다. 체력 고갈됐다 한탄말고, 체력 남아 있을 때 잘 먹자. 그래야 잘 달린다.)

꿀맛 보다 더 달았던 한 시간 가량의 휴식 시간이 끝나고, 12시 30분경 다시 출발. (팜파스 휴게소에서 몇 가지 응급 처방을 했습니다. 마찰 부위(?)에 바세린도 좀 발라주고. 지친 다리에 파스칠도 하고. 하여간 안전한 오후 라이딩을 기원하며 알찬 휴식 시간을 보냈습니다.)

 

팜파스 휴게소에서 속초로 가는 여러 팀들을 만났습니다. 이들은 앞서거니 뒤서기니 하면서, 미시령 정상까지 같이 갔습니다. (차와 함께 가던 팀들. 정말 부럽더군요.)

하지만 오후 라이딩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자꾸만 고갈되어 가는 체력에다 최악(?)의 맞바람 공세. 오전 라이딩 때만 해도 4시 전 미시령 옛길 도착, 5시 이전 미시령 정복이란 꿈에 부풀었던 우리는, 오후 내내 야속한 바람 때문에 한 시간 가량 예정 시간보다 늦어지는 아픔을 맛봤습니다.

어쨌든 오후 4시가 넘어갈 무렵 드디어 미시령과 진부령이 갈라지는 곳까지 당도했습니다. 그럭 저럭 우리들의 무모한 속초 여행도 끝이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이제 조금만 더 가자. 이정표에서 미시령이란 글자를 이 때 처음 본 것 같습니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샤방 샤방 달린 끝에 미시령 옛길 입구에 있는 매점에 도착. 이 때가 오후 5시 7분. 이 때쯤엔 보시다시피 우리들의 체력은 완전히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매점에서 산 간단한 빵과 음료소로 기력 보충.

자.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 마지막 힘을 내자. 5시 30분 미시령 옛길 입구를 출발. 30분 가량 기진맥진, 흐느적 흐느적을 거듭한 끝에 6시5분 전원 미시령 정상 정복. 우리들의 무모한, 겁 없는 도전이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겁니다.

미시령 옛길 입구에서 정상까지는 최악의 코스였습니다. 바닥난 체력 때문에 기진맥진한 동료들. 더 이상 쏟아낼 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믿기지 않겠지만, 가장 생생하게, 정상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미시령 정상 인증샷입니다. 사진 찍은 후 바로 다운 힐. 오후 7시 경 속초 터미널 도착. 8시30분 버스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총 주행 거리 175.66km. (나는 집까지 왕복 거리 더하면 218km)
총 주행 시간 9시간 15분

어쨌든 우리는 완주에 성공했습니다. 속초에서 버스를 타고 강남 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11시45분. 다시 집까지 30km를 달려서 다음날 새벽 1시30분에 거창했던 우리들의 속초 여행은 막을 내렸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한 주행 거리는 175km 이지만, 저는 덤으로 45km 정도 더 달렸습니다. 그럭 저럭 하루 주행거리 200km 를 훌쩍 넘겨버렸던 날. 다음 날도, 또 그 다음날인 오늘까지 속초 여행의 후유증을 톡톡히 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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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동안 벼르고 벼른 끝에 드디어 질렀다. 어제 회사 선배와 함께 합정역 근처 자전거나라란 곳에서 '블랙캣 5.0V' 기종을 한 대 장만. 나로선 꽤 무리를 한 셈이다.

하지만 저가형 자전거를 사면 타기도 힘들 뿐더러, 나처럼 의지 박약한 사람에겐 의무감이 생기지 않을 듯하여 조금 부담스러운 제품으로 골랐다. 사 놓고 보니 와인 레드색의 차체가 제법 '섹시(?)'하다.

회사 가는 길은 바로 한강 자전거 도로로 연결돼 있어 출퇴근하기엔 무난한 편이다. 주변에선 다들 걱정하시는 데, 어제 한번 달려보니 제법 다닐만 한 것 같다. 소요 시간은 약 1시간 10분 내외. 모쪼록 자전거 출퇴근을 통해 건강한 몸과 마음을 회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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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예전에 노무현에 대해 올렸던 글을 읽어보게 됐다. 2007년 12월 23일이었으니, 대선이 끝나고 난 뒤, 조금은 허탈한 기분이 배어 있는 글이었던 것 같다.

==>참고: 노무현을 위한 변명

이 글을 다시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 무렵엔 저 정도 글을 쓰는 것도 꽤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몇 안되는 댓글들을 보니, 아주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 그가 쓴 <여보 나 좀 도와줘>란 자전적 에세이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언론과의 싸움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뿌리가 깊고, 또 훨씬 더 격렬했다는 사실도 앍게 됐다.

어쨌든 노무현에 대해서는 분명 재평가가 이뤄질 것이다. 또 반드시 그래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걱정스러운 것이 있다. 갑작스런 서거 이후 다소 부풀려져 있을 수도 있는 감정적 지지가 가라 앉으면, 좀 더 냉정한 평가가 이뤄질 수 있을까? 노무현이란 정치인이 주류 세계로부터 그토록 미움을 받았던 것은, 그가 그 세계의 기본 질서를 건드렸기 때문일텐데, 그게 세월이 지났다고 해서 잠잠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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