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널리스트들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암울한 미래’란 말은 이젠 일상 용어가 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이나 뉴욕타임스 같은 메이저 언론사에서 인터넷 업체로 이직하더라도 전혀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뉴욕타임스, USA투데이 등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일간지로 꼽히던 워싱턴포스트가 아마존 창업자에게 팔렸을 때 보인 반응은 언론산업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워싱턴포스트에겐 정말 다행”이란 게 주된 반응이었다. 


(국내 대표적인 탐사보도 전문 언론사인 뉴스타파 대표가 ‘한갖 전자상거래 업체에 인수’ 어쩌고 하는 글을 올렸다가 호된 비판을 당하기도 했다.)


더 비참한 건, 저널리즘의 미래를 외부 동력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외부의 힘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점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궁금하신 분은 '헌집 고치기'와 새집 짓기' 란 글을 참고하시라. 


그런 점에서 내가 요즘 주시하는 인물이 두 명 있다. 야후의 마리사 메이어 최고경영자(CEO)와 이베이 창업자인 피에르 오미다르다. 


잘 아는 것처럼 오미다르는 미국 NSA의 전방위 사찰 사실을 폭로한 글렌 그린왈드 등과 함께 새로운 매체를 준비하고 있다. 난 그가 어떤 그림을 들고 나올 지 무지 무지 기대하고 있다. 그러니 오미다르 얘기는 그 때 하기로 하자. 오늘은 야후의 미디어 전략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마리사 메이어의 콘텐츠 왕국 건설기 


지난 해 여름 마리사 메이어가 처음 야후 CEO를 맡았을 때 다소 의아했다. 능력 있고 야심만만한 구글 여성 임원이 왜 야후 같은 난파선 선장 노릇을 하려고 하는 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올 초 섬리(Sumly)란 앱을 인수하는 것을 보고 생각을 바꿔 먹었다. 마리사 메이어가 왜 야후 CEO를 수락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물론 내 짐작이 틀릴 가능성도 많다.) 당시 그 뉴스를 접하자 마자 흥분해서 잠든 언론사에 돌직구 던진 17세 천재란 칼럼을 쓰기도 했다.


그 때 이후 야후의 행보를 조심스럽게 살피기 시작했다. 메이어는 지난 1년 사이에 20개가 넘는 기업을 인수했다. 인수한 기업의 면면들을 한번 살펴보라. 엔지니어 확보를 위해 인수했을 법한 기업들 빼고 나면 메이어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대충 보일 것이다. (야후 1년 새 20개 기업 인수…어떤 속셈? 참고. 특히 기사에 삽입돼 있는 표를 유심히 볼 것.)


소셜 큐레이션, 개인맞춤형 콘텐츠, 뉴스 요약, 모바일 블로그 등이 눈에 띈다. 뭔가 새로운 콘텐츠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지 않는가? 잘 모르겠다고? 내가 보기엔 마리사 메이어는 지금 ‘콘텐츠 제국’ 건설이란 원대한 꿈을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또 있다. 마리사 메이어가 최근 들어 저널리스트, 혹은 그 비슷한 역할을 할 사람을 끌어모으고 있다는 점이다. 플랫폼을 어느 정도 갖췄으니, 그 다음 단계로 그 플랫폼을 활용해 콘텐츠 제국을 건설할 장수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 같단 얘기다.


데이빗 포그 얘기는 많이 했으니, 그냥 패스하자. 


이젠 저널리스트 영입에 총력 


오늘 올싱스디지털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야후 인력 채용 담당자가 자사 기자 두 명에게 이직을 권유하는 이메일을 보냈다는 뉴스다. 그리고 메일 전문을 공개했다. (이런 뉴스를 싣는 올싱스디지털. 역시 대단하다. 이건 콘텐츠 지형도 내의 권력 투쟁이란 공적 가치가 충분한 뉴스이기 때문이다.)



[야후가 올싱스디지털 기자에게 스카웃 제안한 사실을 폭로한 기사]


이 기사를 쓴 기자 이름이 카라 스위셔다. 월터 모스버그와 함께 올싱스디지털을 이끌고 있는 인물. 이 기사에 링크돼 있는 또 다른 기사를 보니 카라 스위셔는 데이빗 포그 때 이미 나와 비슷한 해석을 하고 있었다. (물론 난 올 초부터 그런 느낌을 받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얘기. 절대로 내가 카라 스위셔보다 더 뛰어난 통찰력을 가졌단 ‘깔대기’가 아님. ㅋㅋㅋ 이런 얘기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는 분 없겠죠?)


이 메일에서 야후 관계자는 ‘테크 버티컬’의 새로운 움직임을 선도할 능력 있는 저널리스트를 물색한다고 돼 있다. 


카라 스위셔의 기사에는 야후가 CBS의 인기 앵커 케이티 쿠릭도 노리고 있다고 돼 있다. 케이티 쿠릭이 누군지 궁금하신 분? 여성 앵커로는 사상 최초로 미국 3대 지상파 TV 중 한 곳인 CBS의 저녁 뉴스를 단독 진행하고 있는 인물이다. 


마리사 메이어는 케이티 쿠릭을 영입한 뒤 인터뷰 형식의 뉴스 쇼를 만들 계획이란 소문이 있는 모양이다. 아마도 성사된다면 손석희 씨가 JTBC 9시 뉴스 앵커 맡는 것 만큼 센세이셔널하지 않을까 싶다.


야후는 또 미키 로젠의 이직 이후 공석인 미디어 책임자 자리를 채울 인물도 물색 중이라고 한다. 이렇게 진용을 갖춘 야후가 어떤 미디어를 갖고 나타날 지 심히 궁금하다. 


동영상과 테크 뉴스가 야후 콘텐츠 전략의 출발점 


야후 미디어 전략의 핵심은 동영상(video)과 테크 뉴스인 것 같다. 하지만 카라 스위셔는 메이어는 표면에 드러난 것보다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 마디로 테크 뉴스를 앵커(anchor)로 삼아서 확장해나가려는 것 같단 얘기다. 


(앵커가 뭔지 궁금하신 분. 월드와이드웹이나 하이퍼텍스트에서 연결 고리를 의미한다. 우리가 클릭하는 곳이 앵커라고 보면 된다. 그 앵커들이 링크로 거미줄처럼 연결된 것이 바로 웹이다.)


메이어는 구글에 있을 때도 콘텐츠 쪽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구글의 자갓(zagat)인수를 주도했다고. 하지만 카라 스위셔는 메이어가 구글에 있을 때는 콘텐츠 쪽에서 별다른 재미를 보진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야후에선 상황이 다를 수도 있다. 거대한 콘텐츠 제국을 만들겠다는 마리사 메이어의 꿈. 아니 야후의 꿈은 성공할까? 참고로 난, 마리사 메이어가 야후 부활 전략의 초점을 잘 잡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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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나온 영화 ‘트로이’를 한번 떠올려보자.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건 병사가 아니었다. 장수간의 ‘맞장’에서 승패가 갈렸다. 역사가 기억하는 건 헥토르와 아킬레스 같은 영웅들 뿐이었다. 


이번엔 눈을 동양으로 돌려보자. 뻥이 심하게 들어가 있는 나관중의 ‘삼국지’를 한번 보라. 조자룡은 헌 창 한 자루로 조조 백만대군 속을 휘젓고 다닌다. 장비는 장판교 위에서 홀로 조조 군을 막아낸다. 역시 역사는 도원결의 삼형제와 조조, 손권 같은 영웅들만 기억한다. 


이런 시기를 우리는 ‘영웅시대’라고 부른다. 신들의 시대에서 인간의 시대로 넘어가던 과도기. 소설가 이문열은 자신의 얘기를 담은 소설에 <영웅시대>란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여기 또 다른 영웅이 두 명 있다. 월터 모스버그와 데이빗 포그란 영웅. 둘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 무렵부터 고정 코너를 맡아온 칼럼니스트들이다. IT시장이란 거대한 전장터에서 이들은 내로라하는 영웅이었다.



[월터 모스버그의 Personal Technology 칼럼]. 


1990년대 후반. 윈도95를 비롯한 수 많은 제품들을 다룬 모스버그의 칼럼은 그 시대의 성전(聖典)이었다. 덕분에 모스버그의 칼럼을 게재한 월스트리트저널도 큰 수혜를 봤다. 데이빗 포그가 쏟아낸 하드웨어 칼럼도 많은 IT 마니아들을 흥분시켰다. 


(그런데 난 왜 ‘성전’이란 단어에서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이 떠오르는걸까? 그 만화 초반부. 떠돌이 까치에게 초등학교 친구 엄지가 보내준 편지는 삶의 유일한 희망이자 목표였다. 나중에 엄지를 만난 그는 “네가 곧 나에게 신이었고, 그 편지는 내게 성전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이 둘이 자리를 옮긴다. (자세한 얘기는 지난 번에 올린 글을 참고하시길.) 월스트리트저널이 월터 모스버그와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한 것.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올싱스디지털과 제휴 계약을 끊었다. 그래서 모스버그는 더 이상 월스트리트저널과 관계를 갖지 못하게 됐다. 게다가 올싱스디지털이란 명칭 역시 남겨두고 떠나게 될 것 같다.


포그는 잘 아는 것처럼 뉴욕타임스의 품을 떠나 야후로 옮겼다. 이런 비유가 가능할 진 모르겠다. 동부 영웅이 서부로 건너가버린 셈이다.


뉴요커와 기가옴의 '같은 진단, 다른 해법' 


영웅의 부재. 그건 곧 권력 공백을 의미한다. 누가 그들을 대신할 것인가?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 궁금증을 참다 못한 뉴요커가 칼럼을 하나 실었다. WAITING FOR THE NEXT GREAT TECHNOLOGY CRITIC이란 칼럼. 제목에서부터 어떤 내용일지 확 들어온다. 


뉴요커의 논조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이제 테크 칼럼은 기술이 아니라 문화로 접근해야 한다. 이를테면, 성능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으론 독자들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한다. 생태계라든가, 생활이란 관점에서 좀 더 폭넓게 접근할 줄 알아야 한다. 


그 부분을 직접 인용해 보자. 


What people are choosing is less an iPhone 5s over a Moto X than an entire digital ecosystem that surrounds and permeates their life, and which will affect every other piece of technology that they buy. Not only are these decisions becoming more divorced from the traditional product cycle—it’s increasingly difficult for reviewers to fully evaluate these ecosystems as they grow deeper, more personalized, and more dependent on the technologies used by someone’s social circle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어떤 제품을 살 것(what to buy)이냐, 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how to live)를 고민하게 됐다는 것이다.


둘째. 그렇기 때문에 모스버그나 포그 같은 ‘영웅’들이 여전히 필요하다. 단순히 제품의 기술이나 성능을 설명하는 칼럼이 아니라 삶과 문화까지 포괄할 수 있는 내공을 가진 영웅. 과연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은 그 부분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란 걱정을 하고 있다.


이 칼럼이 나오자 기가옴의 매튜 잉그램 기자가 곧바로 반박하는 글을 실었다. 이제 영웅들의 시대가 가고 민중들의 시대가 열릴 것이란 관점을 견지한 글이다. 


이젠 모스버그나 포그 같은 장수들이 전투를 좌우하는 시기가 아니란 것. ‘차세대 모스버그’를 찾겠다는 건 ‘차세대 크롱카이트’를 찾아 헤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게 매튜 잉그램 기자의 주장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젠 그런 시대는 지났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뉴요커와 기가옴은 같은 관점에서 다른 해법을 내놓고 있다. 무슨 얘기인가? 둘은 IT가 이젠 기술이 아니라, 생활이고 문화라는 덴 인식을 같이 한다. 


그렇기 때문에 뉴요커는 모스버그나 포그 같은 영웅들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기가옴은 영웅들의 시대는 갔고, 이젠 무수히 많은 민중들이 그 자리를 충실히 메워줄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난 개인적으로 기가옴의 의견에 살짝 동의하는 편이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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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집을 산 뒤 깔끔하게 개조하는 것과 아예 헐고 새로 짓는 것. 어느 것이 더 나을까요? 정답은…. 그 때 그 때 다르다, 인가요?


좀 뜬금 없는 질문이었을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지금 언론계에선 뜬금 없어 보이는 질문을 던질 일이 생겼습니다. 아마존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인 제프 베조스와 이베이 창업자 피에르 오미다르 때문입니다.


둘은 최근 몇 달 사이에 언론계에 '갑부 바람'을 불러 왔습니다. 죽어 가던 저널리즘을 살릴 방법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갑부들의 통큰 투자밖에 없는 것 아닌가, 란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습니다.


제프 베조스와 피에르 오미다르. 공교롭게도 둘 다 전자상거래사업으로 큰 돈을 번 갑부들이네요. 그런데 저널리즘에 뛰어든 둘의 방법은 달라도 한참 달랐습니다. 


1. 고쳐서 쓰려는 제프 베조스


일단 제프 베조스는 '고쳐서 쓰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가 고쳐 쓸 집으로 선택한 게 바로 워싱턴포스트입니다. 잘 아다시피 워싱턴포스트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일간지입니다. 워터게이트 특종으로 유명한 칼 번스타인과 밥 우드워드가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이었죠. 


(둘의 워터게이트 특종 얘기는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이란 책에 잘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은 나중에 영화로도 만들어졌지요.)


제프 베조스는 워싱턴포스트 인수 이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일단 편집국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겠다고 선언했구요. 당연한 얘기지만, 경영에는 직접 관여하진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 놓기만 하고 팽개쳐 놓을 리는 만무하죠. 제프 베조스가 누굽니까? 스티브 잡스 사망 이후 실리콘밸리의 차세대 주자로 떠오르고 있는 인물이지요. 당연한 얘기지만, 워싱턴포스트에 '디지털 마인드'를 심는 데 많은 노력을 할 겁니다. 워싱턴포스트 기자들 역시 베조스에 대해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고 하네요. 


2. 아예 새 집을 지으려는 오미다르


오미다르는 조금 다른 행보를 보였습니다. 역시 그레이엄 일가로부터 워싱턴포스트 인수 제의를 받고 고민하기도 했던 오미다르는, 중간에 마음을 바꿔 먹었습니다. 


가디언의 간판 기자인 글렌 그린왈드를 비롯한 탐사 보도 전문 기자들과 함께 아예 새로운 집을 짓기로 한 겁니다.


오미다르는 이 문제를 놓고 뉴욕대학교의 제이 로젠 교수와 상의를 했다고 하네요. 제이 로젠 교수는 시민 저널리즘 분야의 대표적인 이론가입니다. 저도 학위 논문 쓸 때 이 분의 책을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분의 저술인 What are Journalists For?는 시민 저널리즘의 교과서 같은 책입니다.) 


어쨌든 로젠 교수에 따르면 오미다르는 새로운 저널리즘 프로젝트에 2억5천만 달러 가량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2억5천만 달러. 어딘지 익숙한 수치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제프 베조스가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가격이지요. 


니먼저널리즘랩은 오미다르가 버즈피드와 반대 방향으로 접근하려고 한다고 평가했네요. 버즈피드는 가벼운 내용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엔 진지하고 굵직한 영역까지 확대를 했습니다. 하지만 오미다르와 손을 잡은 그린왈드를 비롯한 기자들은 탐사 보도로 잔뼈가 굵은 사람들입니다. 오미다르가 어떤 쪽을 바라보고 있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3. 둘은 왜 다른 행보를 보일까?


궁금하죠? 돈이라면 전혀 아쉬울 것 없는 두 사람이 전혀 다른 방법으로 저널리즘 문제에 접근하려는 것이요. 이와 관련해서는 페이드콘텐트의 매튜 잉그램 기자가 잘 설명해주고 있네요. 간단하게 말해 제프 베조스는 언론 쪽에 전혀 배경이 없는 반면, 피에르 오미다르는 언론 친화적인 인물이라고 하네요. 


베조스는 그 동안 언론들이 찬찬히 인터뷰하기도 쉽지 않았다고 하네요. 한 때는 "종이신문은 다 망할 것"이란 악담도 서슴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게다가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이긴 했지만, 아마존 서버에서 위키리크스 문서를 전부 내려 버렸던 전력도 있습니다. 


반면 오미다르는 이미 언론 사업을 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하와이에서 호놀루루 시티 빗이란 걸 운영했다고 하네요. 게다가 제이 로젠 교수에 따르면 오미다르는 저널리즘 감각도 상당하다고 하네요.


혹시 둘의 접근 방법 차이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일까요? 언론을 잘 아는 오미다르는 '헌집 고치는 수준'으론 새로운 미디어를 만들기 힘들다고 판단한 반면, 상대적으로 언론과는 거리가 있었던 베조스는 '헌 집 고쳐서도 충분히 새 집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일까요?


현재로선 누가 더 성공할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차피 둘 모두 당장 언론사업해서 돈을 왕창 벌려는 생각은 없었을 테니, 결국 제3자인 우리들의 관전 포인트는 '혁신'과 새로운 미디어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으로 둘을 비교해야 하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 전 둘 중 오미다르 쪽이 더 가능성이 많다고 보는 편입니다. 제 아무리 베조스라도 오랜 기간 이어져 온 관행을 단번에 혁신하기는 쉽지 않을 터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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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을 대표하는 일간지 가디언의 간판 기자로 활동했던 글렌 그린왈드가 사표를 제출했다. 그린왈드 본인은 "평생 한번 올까 말까 한 기회를 잡은 때문"이라고만 밝혔다. 정황상 일생일대 기회란 건, 새로운 미디어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 소식을 처음 전한 버즈피드에 따르면 그린왈드는 "조만간 모든 걸 공개할 예정"이라고만 밝혔다. 


여기서 그린왈드가 누구인지 소개하는 게 순서일 것 같다. 대체 기자 한 명 퇴사했다고 온 언론들이 난리치는 지 궁금할테니. 그린왈드는 현직 변호사이면서 가디언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하루 종일 가디언에 붙어 앉아서 일하는 유형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진 출처는 위키피디아) 


좀 더 직접적으로 얘기하자. 올 들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 사찰 사실을 특종 보도한 기자다. '딥 스롯' 역할을 한 에드워드 스노든이 비밀 서류 뭉치를 폭로할 언론사로 가디언을 낙점한 것은 그린왈드 기자 때문이라고 알려져 왔다. 그린왈드는 평소 정부 비리와 부정부패 등을 집중 보도하면서 명성을 쌓아왔다. 


특종을 밥 먹듯 하는 기자. 어떤 언론사가 놓치고 싶겠는가? 게다가 전세계를 뒤흔든 대특종 여진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 기사를 쓴 기자가 그만두겠다면? 당연히 각종 억측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그린왈드와 가디언 측 모두 이런 부분이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둘 사이 관계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힌 것. 심지어 가디언은 "우린 아주 우호적인 관계로 잘 정리했다"고 까지 밝혔다. (이 정도 파워 있는 기자. 정말 부럽다. ^^)


그린왈드가 합류한 매체는 이베이 창업주 작품 


어쨌든, 그린왈드의 가디언 퇴사 소식은 버즈피드가 최초 보도했다.당연히 충격적인 소식이다. 그런데 오늘 로이터통신에 또 다른 뉴스가 실렸다. 그린왈드가 만들려고 하는 새로운 매체의 물주가 바로 이베이 창업자 중 한 명인 피에르 오미다르란 소식이다. 


오미다르는 이베이 하나 잘 만든 덕분에 85억 달러 가량의 자산을 갖고 있는 갑부다. 오미다르는 돈 많은 갑부들이 흔히 그렇듯, 적당한 자선 사업을 하면서 여러 비즈니스 쪽에 투자를 하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빌 게이츠와 함께 MS를 창업했던 폴 앨런은 프로농구와 프로풋볼 구단주로 활동하고 있다. 역시 부러운 인생들이다. ^^)


어쨌든, 가디언의 스타 기자 글렌 그린왈드는 오미다르가 만드는 미디어 책임자로 스카우트됐다는 게 로이터통신 보도다. 그린왈드는 새로운 매체를 처음부터 설계하는 역할을 담당할 예정이라고 한다.


내가 그린왈드 퇴사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는 딱 하나다. 최근 미디어 시장에도 '갑부'들이 자꾸 뛰어들고 있다는 것. 정상적인 비즈니스 모델로는 ROI가 제대로 안 나오는 언론사업 특성상, 원도 한도 없이 돈을 번 갑부들이 '이윤' 생각하지 않고 장기 투자하는 모델이 현재로선 유일한 장기 생존 모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때문이다.


제프 베조스의 워싱턴포스트 인수 때부터 이런 생각을 강하게 했는데, 오미다르가 글렌 그린왈드까지 빼갔다는 얘길 듣고 보니 더 확신이 생긴다. 게다가 최근엔 스티브 잡스 미망인(갑자기 이름이 떠오르질 않네.)까지 신생 미디어에 투자를 할 계획이란 보도까지 나오는 걸 보면…. 한국엔 건강한 미디어 육성을 위해 대가를 바라지 않는 투자를 할 갑부는 없는 걸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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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패드가 처음 나왔을 때 가장 많은 기대를 나타낸 건 잡지들이었다. '와이어드'를 비롯한 전위적인 잡지들은 경쟁적으로 혁신적인 콘텐츠를 쏟아내면서 독자들을 현혹시켰다. 일부에선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예언자일보' 같은 현란한 유저 인터페이스(UI)를 거론하면서 잡지 혁명을 기대했다.


그로부터 3년 여가 지난 지금. 태블릿은 잡지들의 구세주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한 때 반짝 화제를 모았던 와이어드는, 대표 태블릿 매거진으로 자리잡는 데 실패했다. 루퍼트 머독이 야심적으로 시작했던 더데일리 역시 투자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결국 폐간됐다. 


태블릿 잡지가 왜 생각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는 걸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건, 당연히 수익 모델이다. 동영상을 비롯한 현란한 편집으로 시선을 끄는 덴 성공했지만, 투자에 걸맞은 수익 모델을 발굴해내지 못했다.

현란한 편집 역시 강점만은 아니었다. 지나치게 현란한 잡지를 만들 경우 용량이 커져버리기 때문이다. 32GB 저장용량 제품이 주류를 이루는 태블릿 시장에서 한 호당 1GB에 육박할 정도로 무겁게 만드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앱의 폐쇄적 생태계?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앱의 폐쇄성이다. 이는 이미 2년 전 퓨리서치센터가 한 차례 지적한 부분이기도 하다. (난 당시 그 내용을 갖고 '태블릿은 과연 디지털 뉴스의 구세주일까?'란 글을 썼다.) 


오늘 기가옴에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태블릿 잡지는 왜 실패했는가(Why tablet magazines are a failure) 란 의미 심장한 제목을 단 기사다. 


기가옴의 지적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가옴은 우선 닐슨과 플러리 자료를 인용해서 앱 기반 생태계의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준다. 우선 닐슨 자료에 따르면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하루 평균 41개의 앱을 깐다. 하지만 이 중 실제로 열어보는 건 5분의 1이 채 안 된다. 모바일 전문 조사업체인 플러리에 따르면 하루에 열어보는 앱은 평균 8개 내외다.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여러분들도 한번 꼼꼼히 따져보시라. 열어보는 앱은 대부분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SNS이거나, 게임 관련 앱들이다. 잡지 앱을 열어서 꼼꼼하게 읽는 비중은 굉장히 낮다고 봐야 한다. 일단 선택되기도 힘들지만 선택되더라도 제대로 읽히는 경우가 극히 드물단 추론이 가능하다.


두 번째 이유 역시 앱 생태계의 폐쇄성과 관계가 있다. 검색이나 SNS에서 곧바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플립보드나 자이트 같은 큐레이션 앱들도 태블릿 잡지 안에 들어가 있는 콘텐츠를 연결해줄 방법은 없다. 그러다 보니 태블릿 매거진들은 콘텐츠를 널리 알리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가옴은 디자인도 태블릿 매거진의 약점으로 꼽았다. 종이 잡지에서 그토록 현란해 보였던 디자인이 막상 아이패드에서 볼 땐 그다지 단조로운 느낌마저 들었단 것이다. 


기가옴이 미국 미디어감사연합(AAM) 자료를 인용해서 소개하는 태블릿 잡지의 실상은 초라하기 그지 없다. 가장 잘 팔리는 25대 태블릿 잡지를 살펴본 결과 전체 잡지 구독에서 태블릿 구독이 차지하는 비중이 12% 수준에 머물렀다. 태블릿의 장점을 잘 살릴 것으로 기대했던 와이어드가 평균인 12%에 머물렀고, 또 다른 명품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4%에 불과했다. 


씨넷코리아 황치규 기자는 기가옴의 견해에 공감을 나타냈다. 결국 앱의 폐쇄된 환경이 문제란 얘기다. "아무리 콘텐츠가 좋더라도 웹과의 고립은 사용자들이 원하는 방향은 아닌 것 같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나 역시 대체로 동의한다.


과연 그게 앱 만의 문제일까? 


하지만 난 이 문제를 좀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고 싶다. 이건 태블릿 잡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웹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매체가 만들어내는 콘텐츠만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오픈 플랫폼이란게, 단순히 구두선으로 그칠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참고로, 1990년대 말만 해도 중앙일보나 조선일보 사이트의 독자 유인력은 엄청났다. 당시 조선 쪽에 근무했던 난, 아침에 출근하면 엄청난 댓글 공세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 태블릿 매거진 중에서도 플립보드나 자이트 같은 것들은 엄청난 각광을 받고 있다. 내가 감탄을 금치 못한 서카(Circa) 역시 위키피디아 식 뉴스 표출 방식에 힘입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역시 예전에 썼던 플립보드-자이트가 미디어의 미래 모습일까? 그리고 Circa와 모바일 뉴스의 새로운 지평을 참고하시라.)


결국 태블릿 매거진이 생각만큼 인기를 끌지 못하는 건, 표면적으론 앱 생태계의 폐쇄성 때문이지만, 곰곰 따져보면 미디어 소비 행태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도달한다. 굳이 구분하자면, 기가옴 기자가 진단한 것과 병명은 같지만, 병의 원인(혹은 감염 경로)는 다르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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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밈이란 뉴스 큐레이션 전문 사이트가 있다. IT 쪽에선 제법 유명한 사이트다. 나도 외신 이슈를 살필 때 가장 먼저 들르는 사이트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독자 유인 효과가 더버지나 매셔블 같은 IT 전문 사이트 못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테크밈에 거론되는 건수는 그대로 IT언론의 영향력 지표로 삼아도 될 정도다. 최근 자료를 보면 테크크런치, 더버지, 올싱스디지털, 기가옴, 엔가젯 등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이쯤되면 우리나라의 네이버나 미디어다음 뉴스 섹션이 하는 것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 자체 편집진들이 뉴스를 선택하고 편집하는 국내 포털과 달리 테크밈은 정교한 알고리즘에 따라 자동 편집한다. 그 알고리즘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 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 동안 테크밈은 뉴스 편집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했다. 뉴스 생산자들이 달아놓은 제목을 그대로 표출했다. 


그런데 테크밈이 6일(현지 시간) '비개입 원칙'을 고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앞으로는 뉴스 생산자들이 달아놓은 제목을 그대로 내보내지 않고 자기들이 수정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물론 원본에 손을 대겠다는 얘기가 아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자기네 사이트에 표출되는 제목만 손을 대겠다는 것이다.


(아래 그림은 오늘 테크밈에 올라온 워싱턴포스트 기사다. 위 사진이 워싱턴포스트 원 제목이고, 아래 사진은 테크밈에 표출된 제목이다. 제목만 보면 다른 기사같다. 하지만 이 경우엔 테크밈이 보도 주체가 워싱턴포스트란 사실을 좀 더 명확하게 나타내기 위해 제목을 살짝 수정한 수준이다. 앞으로 저보다 더 한 제목 수정 사례가 속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2005년 무렵 국내 언론사들과 포털 간의 공방이다. 당시 국내 언론사들은 포털이 제목을 건드리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제목에 손을 대는 것은 편집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게 언론사들의 주장이었다. 


사실 당시 포털의 제목 수정이 편집권 침해였냐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자기네 사이트 특성에 맞게 제목을 축약하는 게, 그것도 원본 기사에 있는 게 아니라 포털 사이트에 떠 있는 제목을 살짝 손대는 게 과연 편집권 침해인지는 한번 따져봐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테크밈은 여기서 한단계 더 나간다. 창업자인 가베 리베라(Gabe Rivera)는 테크밈에 올린 공지문에 따르면 테크밈은 제목을 수정할 때 단순히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선에 머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때론 언론사들이 달아놓은 제목에 도전하거나 바로 잡기도 하며, 때론 반박하거나 비판하기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While most of the headlines we write will elevate details present in the story, we may on occasion even use a headline we write to challenge, correct, refute, or even undermine what we're linking to, if we feel that gets our readers closer to the truth as we see it.


이쯤되면 얘기가 좀 복잡해진다. 한번 생각해보라. 언론사들이 특정 제목을 달았는데, 테크밈 편집진들이 판단하기에 더 중요한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을 부각시키겠다는 애기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편집권을 행사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이 소식을 전해주는 페이드콘텐트의 기사는 "(언론사와 큐레이션 사이트 간의) 권력 이동"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 동안 뉴스 생산자들이 주도하던 저널리즘의 패러다임이 이젠 큐레이션 사이트를 비롯한 중개업자들 손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 기사를 쓴 매튜 잉그램 기자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퓨리서치센터 연구 결과를 인용하고 있다. 사람들이 갈수록 뉴스 생산자들의 사이트보다는 페이스북 같은 SNS나 다른 큐레이션 사이트를 통해 뉴스를 접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조사 결과다. 언론재단도 올 초 비슷한 보고서를 내놓은 적 있다. 당시엔 독자의 절반 가량이 어떤 언론사 기사인지 인지하지 못한 채 뉴스를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 유통 시장의 권력관계 변화 보여주는 사건 


페이드콘텐트 기사가 아니더라도 테크밈의 이번 정책 변화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뉴스 시장의 무게 중심이 생산자에서 유통업자 쪽으로 급속하게 넘어가고 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언론사들은 테크밈의 정책 변화가 당연히 불쾌할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 포털들과 달리 테크밈은 노골적으로 '편집권 행사 의지'를 피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론사들도 테크밈의 이런 정책 변화에 대해 대놓고 비판을 하거나 보이코트하기도 쉽지 않다. 계약에 따라 뉴스를 공급하는 국내 언론사와 포털의 관계와 달리 테크밈은 그냥 알고리즘으로 뉴스를 선택한 뒤 딥링크를 걸어준다. 불만을 표할 경우 테크밈이 알고리즘에서 그 언론사를 빼버릴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당장 클릭 수가 큰 폭으로 감소할 수도 있다. 네이버 뉴스캐스트가 국내 인터넷 언론에 몰아다 준 정도는 아니겠지만, 테크밈이 IT 언론들에게 몰아다주는 트래픽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테크밈의 이번 정책 변화에 '권력 관계 변화'란 평가가 나오는 건 이런 상황 때문일 것이다. 이래 저래 뉴스 생산자들만 힘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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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 모회사인 데일리 비스트에서 인기 블로거로 활동하던 앤드루 설리번이 올해 초 '홀로 서기'를 선언했다. 그 곳에서 운영하는 디시(Dish)란 블로거를 혼자서 운영하면서 유료 후원 독자를 모집했다. 1인 미디어 실험에 본격 착수한 것이다.


설리번은 독립 선언과 함께 연 20달러를 내는 구독자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1월 27일 2만5천명 가량의 독자들로부터 약 50만달러를 모금했다고 공개했다. 50만 달러면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6억원 정도다. 이 정도면 1인 미디어로 몇 년 동안은 무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자금이다. (미국 어느 1인 미디어의 성공이 던지는 메시지 참고.)


그로부터 6개월 정도 지난 지금. 설리번은 유료화를 해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을까? 이드콘텐트에 후속 얘기가 실렸다. 구독자 2만8천 명으로부터 71만5천달러를 모금했다고 한다. 





설리번은 첫 두 달 동안 60만 달러 가량을 모금했다. 따라서 그 이후 4개월 동안 유료 구독자가 겨우 17% 증가하는 데 머물렀다는 계산이 나온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입자 증가율이 크게 둔화되고 있는 셈이다. 이대로라면 설리번이 독립하면서 목표로 내걸었던 90만 달러엔 이르지 못할 것 같다. 


페이드콘텐츠 보도에 따르면 설리번 독자들의 유료 전환 비율은 2.5% 수준이라고 한다. 유료 전환? 설리번은 1인 미디어 실험을 시작하면서 '무료 맛보기 전략'을 병행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매 30일 당 7건씩 공짜로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설리번은 지난 5월 '맛보기 기사'를 대폭 줄였다. 매 60일에 5건까지만 볼 수 있도록 한 것. 당연한 얘기지만, 좀 더 감질맛 나게 만들어서 유료 전환 속도를 높이려는 '속셈'이었다. 공짜 맛보기 기사를 대폭 줄인 이후에도 유료 전환율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물론 2.5%가 만만한 숫자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미디어들이 페이월(paywall)을 칠 경우 유료 전환율이 1% 수준이라고 한다.)





설리번의 최근 행보를 보면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추신수 선수를 떠올리게 만든다. 시작하자마자 폭발적인 파괴력을 보여준 뒤 급속하게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둘 모두 실패 아니냐는 진단이 나올 수도 있다.


추신수 선수는 아직 시즌 중이니 정확한 평가를 내리긴 힘들다. 하지만 설리번은 1인 미디어 실험이 실패라고 폄하할 수준은 아닌 것 같다. 유료 구독 수입만 70만 달러를 웃도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페이드콘텐트 역시 비슷한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현재 추세라면 설리번의 유료 구독 수입은 81만5천달러 정도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 정도 수준만으로도 데일리 비스트/뉴스위크 산하에서 '디시'를 운영할 때 수입과 같은 수준이라고 한다. 이 정도면 대성공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성공했다고 평가해줄만한 수준이다. 


페이드콘텐트는 "1인 블로거가 별다른 광고 없이 팬들로부터 75만 달러 정도를 모금한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여기에다 타깃 광고 같은 것들을 좀 더 붙이게 되면 수입은 더 큰 폭으로 증가할 수도 있다.


물론 누구나 설리번처럼 개인 유료화를 해서 성공할 순 없다. 콘텐츠 유료화에 대해 극히 부정적인 한국 뿐 아니라, 나름 시장도 크고 콘텐츠 구매하기 위해 지갑도 잘 여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책 여러 권 내 본 내 경험에 의하면, 글을 써서 독자 1만 명의 가슴을 울리는 건 정말 엄청난 일이다. 난 아직 한번도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요즘 여기 저기서 콘텐츠 유료화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막상 콘텐츠 유료화를 단행하는 건 수월하진 않은 것 같다. 대체제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루에 커피 한 두 잔은 기꺼이 구매하는 사람들도 한 달에 커피 서 너 잔 값에 콘텐츠를 정기 구매하는 덴 굉장히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결론은, 앤드루 설리번이 참 부럽다. 저렇게 1인 미디어를 운영해서 저 정도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 나는 언제쯤 저 경지에 가보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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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주 동안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가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미국 정부가 구글, 페이스북 등 주요 IT 기업들의 서버에 접속해 개인 정보를 수집해 왔다는 사실이 공개된 때문이다. '프리즘' 프로젝트로 알려진 미국 정부 활동이 폭로된 이후 조지 오웰의 '1984'가 갑자기 인기를 끌 정도로 큰 충격을 안겨줬다. 


그 뒤 스노든은 영국 정부가 2011년 G20 정상회의 참가국 대표단을 조직적으로 감시했다는 사실을 추가로 폭로해 또 한번 충격을 안겨줬다. 


스노든은 전 세계를 뒤흔들 대특종 거리를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폭로했다. 하지만 이후 보도에선 가디언이 주 폭로 창구 역할을 했다. 스노든은 자기 얼굴을 공개할 때도 가디언 지면을 빌었다.





 뉴욕타임스가 느낀 상실감 


연이어 엄청난 폭로가 이어지는 와중에 누가 가장 큰 상실감을 느꼈을까? 미국이나 영국의 웬만한 매체들은 다 '낙점 받은' 가디언에 부러움을 느꼈음직하지만, 특히 뉴욕타임스의 상실감은 엄청났을 것으로 짐작된다. 세계 최고 권위지라는 자부심에 적잖은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지난 주말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마가렛 설리번 퍼블릭 에디터(Public Editor)의 칼럼이 이런 분위기를 잘 전해주고 있다. 설리번은 Sources With Secrets Find New Outlets for Sharing란 칼럼을 통해 스노든의 폭로 이후 뉴욕타임스가 왜 그 사건을 보도하지 않았(혹은 못했)느냐고 질문해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스노든이 폭로 전에 뉴욕타임스와 접촉한 적 있느냐는 질문도 많았다.


설리번은 편집국장 등에서 확인해 본 결과 스노든이 자신들에게 접촉해 온 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아예 고려하지도 않고 곧바로 가디언 쪽으로 들고 갔다는 얘기다.




그는 2005년 뉴욕타임스가 NSA의 사찰 사실을 포착하고서도 1년 이상 보도를 미룬 사건을 거론했다. 그런 전례가 스노든이 뉴욕타임스 대신 가디언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연이어 조세회피처 관련 보도를 하고 있는 뉴스타파 사례도 비슷하다. 국내 다른 유수 언론사들도 국제탐사보도기자회에 접촉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사건을 공익이란 기준에 입각해서 보도할 것이란 믿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가디언의 미국 정부 사찰 보도나 뉴스타파의 조세회피처 보도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측면도 적지 않다.


가디언이 세계적 특종을 독점한 또 다른 비결은 없을까? 페이드콘텐트의 매튜 잉그램 기자의 News is like water now-it take the path of least resistence란 글이 이 질문에 상당한 인사이트를 던져준다. 


잉그램 기자는 이 기사에서 크게 두 가지 논점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는 앞에서 인용한 설리번 칼럼을 소개하면서 '이젠 뉴스원이 뉴스 매체를 선택하는 상황이 됐다'고 진단한다. 이 글 제목 그대로 가장 저항이 적은 곳으로 정보가 흘러가게 돼 있다는 것이다. 


정보는 저항, 혹은 장애물이 적은 곳으로 흘러간다 


그럼 이번 사태에서 가디언이 '정보가 흘러가는 수로' 역할을 한 배경은 뭘까? 


우선 뉴욕타임스가 선택받지 못한 것은 설리번 칼럼에서 예로 든 2005년 사건과 무관치는 않을 것 같다고 주장한다. 꼭 그것 때문이라고 보긴 힘들겠지만,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든 것은 '집중(hyperfocus)'이다. 매튜 잉그램에 따르면 스노든이 접촉한 가디언의 글렌 그린왈드(Glenn Greenwald) 기자는 변호사 출신으로 특히 정부의 각종 부정과 비리 쪽 보도를 집중적으로 해 왔다고 한다. 당연히 정부 관련 대형 비리를 손에 쥔 제보자 입장에선 선호할 수 밖에 없는 기자였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스노든이) 믿을만한 기자였다는 것이다. 


잉그램 기자는 이런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하면서 "이젠 대형 뉴스는 스스로 길을 찾아간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 같은 매체들이 더 많은 '저항'을 보였기 때문에, 대형 정보가 다른 경로를 택해버렸다는 것이다. 


이런 진단에서 정보 전달의 갑을 관계도 많이 바뀌고 있다는 결론을 끌어내는 건 논리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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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어제 WWDC에서 iOS7과 최신 OS X '매버릭스'를 선보였다. 최신 OS X인 메버릭스는 iOS와의 통합 기능이 두드러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다 맥북 에어 배터리 수명을 최대 12시간까지 늘리면서 드디어 모바일과 컴퓨터의 수렴이란 목표를 향해 한 발 더 나간 것으로 평가됐다.


늘 그랬듯이, 애플의 이번 신제품 발표에 대해선 역시 찬반 양론이 분분하다. 특히 iOS7에 대해선 "여러 제품들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기능을 가져와 애플스런 모습을 만들어냈다"는 호평이 있는가 하면, "결국 안드로이드 베낀 것 아니냐"는 혹평도 적지 않았다. "혁신은 없었다"는 무책임한 비판을 쏟아낸 곳도 적지 않았다.


WWDC 얘긴 워낙 많은 고수들이 평가를 내놨으니, 나 같은 컴맹 계열이 굳이 더 보탤 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왜 이 글을 쓰게 됐을까? 니먼저널리즘랩에 실린 글 두 편 때문이다. 애플의 이번 신제품 발표는 저널리즘 측면에서도 중요한 기능들이 포함돼 있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 부분을 한번 요약 정리해보자. 


[참고 기사] 


1. Push notifications for news stories, better background downloads...

2Now websites can send push notifications — not just apps 





1. iOS7 백그라운드 업데이트 강화 


애플은 iOS7에서 백그라운드 업데이트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백그라운드 업데이트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실행하지 않고 있는 동안에도 새롭게 올라온 콘텐츠를 업데이트 해주는 기능을 말한다.


특히 아이패드에서 구동되는 태블릿 잡지 같은 경우 업데이트 한번 하려면 꽤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이게 밤사이에 자동 업데이트 돼 있다면? 상당히 편리한 기능이 아닐 수 없다.


니먼저널리즘랩에 따르면 애플은 키노트에서 CNN 앱으로 백그라운드 업데이트를 시연해줬다고 한다. 또 뉴스 가판대 앱에만 적용되는 지에 대해선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만약 모든 앱에 적용될 경우엔, 언론 매체 중 일부는 뉴스가판대 대신 다른 카테고리를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2. 맥에서도 콘텐츠 업데이트 푸시 서비스 


언론사들은 OS X '매버릭스'의 푸시 서비스를 잘 활용할 수 있다. 그 동안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선 이미 적용됐던 개념. 하지만 매버릭스가 보급되면서 맥에서도 푸시 기능을 잘 활용할 수 있다. 맥 이용자가 그다지 많지 않은 우리나라에선 큰 도움이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미국 같은 곳에선 상당히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니먼저널리즘랩은 매버릭스의 데스크톱 푸시 기능을 선택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 더 좋겠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뉴욕타임스의 국제뉴스, 워싱턴포스트 정치 뉴스 식으로. 


애플은 데스크톱에서 사파리를 작동시키지 않을 경우에도 콘텐츠 업데이트 푸시 기능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 서드 파티 사이트들이 푸시 기능을 적용할 경우에 한해, 란 단서를 달았다. 언론사 입장에선 당연히 이 기능을 활용하려고 하지 않을까? 


3. 음성 검색 시리의 진화 


시리는 오픈API를 지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최신 뉴스 콘텐츠가 어떤게 있는 지 따위의 질문을 적용할 순 없다. 하지만  팔로잉하고 있는 트위터리안들의 최신 소식을 물어보는 기능을 활용하면 이런 욕구를 어느 정도는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니먼저널리즘랩에 따르면 “What is The Guardian saying?”  같은 질문을 던지면 가디언 트위터에 올라온 최신 뉴스를 알 수 있다고. 


4. 지역 정보


앱스토어 최신 버전은 이용자 근처 지역에서 인기 있는 앱을 보여주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지방지들이 이 기능의 덕을 볼 수도 있다는 것. 이를테면 대구를 방문한 사람에겐 영남일보나 매일신문 앱이 추천 앱으로 뜰 수도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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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혁신과 관련한 강의에 단골로 등장하는 언론사가 있다. 뉴욕타임스와 가디언이다. 디지털 스토리텔링부터 데이터 저널리즘까지, 혁신 얘기를 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다. 남들 강의를 들어봐도 그렇고, 나 역시 가끔 강의를 할 때면 어느 새 뉴욕타임스 아니면 가디언 얘기를 읊조리곤 한다. 


(그래서 난 저널리즘 혁신 관련 강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당장 병원비 없어 고민하고 있는 환자한테, "암을 이기려면 잘 먹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경치 좋은 별장에 가서 좀 쉬어라"고 권고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그럼 뉴욕타임스와 가디언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가디언은 고사하고, 영국조차 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개략적인 느낌은 있다. 디지털 스토리텔링 같은 콘텐츠 혁신은 뉴욕타임스가 한 발 앞선 반면, '오픈 플랫폼' 실험 면에선 가디언이 좀 더 선진적이라고나 할까? 물론 이런 차이 역시 나의 피상적인 관찰의 산물이기 때문에 얼마나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다.




가디언은 왜 느닷 없이 커피 숍을 오픈했을까?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는 지 벌써 짐작하는 분도 있을 것 같다. 가디언이 최근 또 다른 오픈 플랫폼 실험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디언 본사 근처 런던 쇼어디치 거리에 커피숍을 열었단 소식이다. 커피 숍 이름도 재미있다. 트위터 해시태그를 이용한 #GUARDIANCOFFEE가 커피숍 상호다.


이 커피숍에선 일반 커피숍들처럼 커피와 간단한 빵 종류가 구비돼 있다. 여기에다 아이패드를 공짜로 쓸 수 있도록 했다. 


가디언은 왜 느닷없이 커피숍을 열었을까? 당연한 얘기지만 기자들이 인터뷰를 비롯한 각종 취재 활동을 좀 더 편리하게 할 수 있는 장소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뿐이라면 가디언 답지 못하다. 


가디언은 #GUARDIANCOFFEE를 일종의 '오픈 편집국'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자신들이 어떤 혁신을 하고 있는지 독자들에게 직접 보여줄 뿐 아니라, 아예 독자와 직접 만나는 공간으로 활용할 생각까지 갖고 있다는 것이다. 페이드콘텐트 보도에 따르면 가디언의 소셜 미디어 편집 책임자인 Joanna Geary는 수시로 이 곳에 들를 생각이라고 한다. 인터뷰를 하기도 하지만, 아예 독자들과 직접 만나서 소통하기 위해서다.


가디언의 커피숍이 어떻게 운영되는 지는 송혜원 씨의 글을 보면 잘 나와 있다. 저 글 읽으면서 가디언이 오픈한 커피숍이 생각보다 훨씬 상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단순한 커피숍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독자들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잘 설계됐다는 느낌도 든다.



18세기 카페와 살롱, 그리고 가디언의 혁신 


처음 가디언이 커피숍을 오픈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솔직히 좀 황당했다. 하지만 곰곰 따져보니, 어쩌면 저널리즘의 근본에 대한 성찰이 잘 담긴 조치란 생각도 들었다. 왜나고?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변동'이나 미첼 스티븐스의 '뉴스의 역사' 같은 책을 한번 뒤적여보라. 18세기 프랑스와 영국에서 유행했던 카페와 살롱은 요즘 우리가 소셜 미디어라고 부름직한 모습을 그대로 구현하고 있다.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관심 있는 뉴스에 대해 토론하고 논쟁하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적과 흑'으로 유명한 평민 스탕달은 살롱에서 스타로 떠올랐다. 신분의 차이를 극복한 토론 문화 덕분이었다고 한다.)


더 재미 있는 건, 당시 카페나 살롱도 전문 분야가 있었다는 점이다. 스포츠 뉴스를 주로 토론하는 카페, 경제뉴스 전문가들이 주로 모이는 살롱, 같은 식으로. 


따라서 요즘 소셜 미디어를 통한 소통은 18세기 뉴스 문화를 기술적으로 좀 더 확대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게 내가 줄기차게 주장하는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의 연속론이다. 


가디언은 수 년 전부터 독자들과 직접 소통하려는 오픈 플랫폼 전략을 꾸준히 실험해 왔다. 2011년 가을부터는 편집회의가 끝난 뒤 곧바로 기사 아이템을 사이트에 공개하는 실험도 해오고 있다. (그 뒤 어떻게 됐는지, 잘 모르겠다.) 이번 실험 역시 '오픈 편집국 실험'의 연장선상에서 큰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솔직히, 부럽다. 저 정도 되는 회사에 몸담고 있는 기자들은 정말 일할 맛 날 것 같다. 하지만 한 편 생각해보면 책임감도 훨씬 더 무거울 것 같다. 어쩌면 혁신이 제일 힘든 건, 언론사 경영진이나 간부가 아니라 평기자들을 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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