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뜬금 없긴 합니다만, 지난 해 연말 'Extra 2%'란 책을 한 권 번역했습니다. 미국 프로야구 탬파베이 레이스 팀의 성공 비결을 다룬 책입니다. 때 마침 2011 시즌 마지막 날 탬파베이 팀이 극적인 승부를 펼치면서 낑낑대며 번역하는 저를 더 기쁘게 해주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출판사에 원고를 넘긴 상태입니다. 출판사 쪽 얘기로는 메이저리그 개막에 맞춰서 낼 예정이라고 하네요. 야구나 영어나 대한민국 평균을 조금 웃도는(??) 실력으로 대형 사고를 친 셈입니다.

 

아래 글은 원고 넘기면서 마지막으로 썼던 역자 후기입니다. (한글판 제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구요, 역자 후기 역시 나중에 교정 과정에서 살짝 바꿀 가능성도 있습니다.) 

 

 

2011 시즌 개막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은 탬파베이의 몰락을 점쳤다. 주전 마무리 투수를 비롯한 구원 투수진 전부에다 주력 타자들이 대거 이탈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전 마무리였던 라파엘 소리아노는 양키스로, 칼 크로포드는 레드삭스로 이적했다. 핵심 선수가 같은 지구의 라이벌 팀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시즌 첫 출발은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개막하자 마자 6연패에 빠졌다. 첫 10경기에서 챙긴 승수는 고작 1승이었다. 하지만 탬파베이는 더 이상 쉽게 무너지곤 하던 팀이 아니었다. 9월초 한 때 9경기나 뒤져 있던 탬파베이는 막판 스퍼트를 한 끝에 한 경기를 남기고 와일드카드 경쟁에서 레드삭스와 동률을 이루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맞이한 시즌 마지막 경기. 뉴욕 양키스와 맞선 탬파베이 레이스는 경기 초반 7대0으로 뒤졌다. 하지만 경기 막판 맹추격을 한 레이스는 9회말 극적인 동점홈런을 날린 뒤 연장 12회말 간판스타 에반 롱고리아의 끝내기 홈런으로 8대7로 승리했다. 같은 시간 동률이던 보스턴이 9회 끝내기 패배를 당하면서 극적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이 이야기를 그대로 영화로 만들었다면 "너무 상투적인 승부"라고 비판을 들었을 정도였다. 

 

탬파베이는 2008년과 2010년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세 번째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신흥 명문 구단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탬파베이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문제덩어리 구단이었다.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 틈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였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전혀 딴 팀으로 변화한 셈이다. 

 

조나 케리의 '탬파베이, 2%의 기적'은 한 때 만년 꼴찌였던 탬파베이가 어떻게 최고 팀으로 탈바꿈했는지 다루고 있다. '탬파베이, 2%의 기적'을 읽어보면, 탬파베이가 약팀으로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무엇보다 팀 운영의 일관성이 없었다. 미래를 준비하면서 찬찬히 팀을 육성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당장 1승에 목마른 팀처럼 단기적인 자세를 버리지 못했다. 구단주와 단장은 우왕좌왕하기 일쑤였다. 몇 년 동안의 팀 운영 상황을 보면 한 팀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일관된 전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감독 역시 이런 외풍에 흔들리면서 중심을 잡지 못했다.

 

이 책은 이처럼 허점 투성이 팀이 어떻게 변신했는 지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변화는 월스트리트 출신인 스튜어트 스턴버그가 팀을 인수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스턴버그와 단장인 앤드류 프리드먼은 데이터와 통계를 기반으로 팀을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선수들을 영입할 때도 스카우트들의 감에 의존하기 보다는 각종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과학적인 투자 기법을 활용했다. 이런 부분은 마이클 루이스가 '머니볼'을 통해 소개했던 오클랜드 팀의 변신과 통하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탬파베이의 힘은 '머니볼'에서 볼 수 있는 지점에서 좀 더 멀리 나아간다. 특히 월가에서 잔뼈가 굵은 스턴버그와 프리드먼은 선수들을 영입할 때 미래 가치란 관점에서 접근한다. 에반 롱고리아나 제임스 쉴즈 같은 프랜차이즈 스타들과 계약하는 장면을 보면 철저하게 월스트리트적인 가치 개념이 개입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스턴버그 구단주가 저자와 인터뷰에서 강조한 것처럼 '여분의 2%'를 찾기 위한 이들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메이저리그 야구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독자들이라면 탬파베이의 변신 이야기에서 큰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단순히 야구 이야기에 머무르는 건 아니다. 일반적인 경제 경영 서적으로 읽어도 손색이 없다.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라는 거대 구단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모색하고 있는 탬파베이의 모습은 대다수 기업들이 처한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를테면 조그만 기업이 삼성과 SK 같은 대기업들과 대등하게 경쟁을 해 나가는 이야기라고 비유할 수도 있다. 탬파베이는 거대 기업들과 달리 단 한번의 전략 실패 만으로도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탬파베이는 '여분의 2%'를 더 많이 필요로 한다.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도 한 치 오차 없는 전략을 보여주는 탬파베이의 모습에선 짜릿한 전율까지 느껴질 정도다.

 

역자는 이 책을 번역하는 내내 흥미진진한 한 편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를 만끽했다. 그만큼 탬파베이의 변신 이야기는 극적이면서도 흥미롭다. 마치 2011 시즌 막바지 극적인 승부를 보는 듯한 짜릿한 쾌감까지 느껴질 정도다. 메이저리그 야구 팬이라면 야구를 보는 재미도 함께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야구팬이 아니더라도 막장으로 치달았던 한 기업의 화려한 변신 이야기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몇 년전 많은 야구팬들에게 큰 인기를 누렸던 '머니볼'보다 좀 더 많은 재미와 교훈을 선사해준다. 야구 뿐 아니라 경영 서적으로도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탬파베이의 혁신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모처럼 흥미로운 책을 소개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건 역자 입장에선 큰 행운이다. 번역 과정 내내 이 책의 재미를 그대로 전달해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빈약한 영어 실력과 야구 지식 때문에 한계를 느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 때마다 이름 모를 야구 전문가들의 글들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 땅의 야구 붐을 든든하게 지탱하고 있는 그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비인기 구단을 다룬 책 출판을 기꺼이 수용해준 김훈태 대표에게도 감사한다. 이 책이 잘 팔려서 출판사에 손해를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척박한 한국의 중소기업 환경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탬파베이의 경영 혁신에서 또 다른 생존 방법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그들에게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된다면, 역자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이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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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출간될 <Glut> 역자 후기입니다. 교정지 작업을 끝내고 오늘 역자 후기와 약력을 넘겼습니다. 아마도 8월말이나 9월초 쯤 출간될 듯 합니다. 이로써 올해 들어서만 4권째 책을 내게 되나 봅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무렵엔 대학 도서관들이 폐가식으로 운영됐다. 도서 목록카드에서 도서 신청 번호를 찾은 뒤 사서에게 대출 신청을 해야만 책을 빌릴 수 있었다. 가뜩이나 억지로 책을 읽던 대학 신입생에게 그 과정은 너무나 성가셨다. 왜 이렇게 책들을 복잡하게 분류해야 하느냐며 짜증을 부렸던 기억도 있다. 모든 과정이 전산화되어 있는 요즘과는 많이 달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도서관의 기본 분류체계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멜빌 듀이란 미국 사람이 만든 듀이 십진분류법에 따라 책들을 분류해 놓은 것은 여전하다. 멜빌 듀이가 1876년에 확립한 십진분류법은 총류는 00번, 철학은 100번, 신학은 200번 등으로 분류한 뒤 세부 분류 항목들을 계속 덧붙여 놓은 방식이다.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중요성이 크게 줄어들긴 했지만, 듀이십진분류법은 여전히 도서관을 지탱하는 중요한 지식 분류 체계로 자리 잡고 있다.


학창 시절 생물 시간에 식물과 동물들의 학명과 분류 체계를 외우느라 진땀 흘렸던 기억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은 포유류이기 때문에 파충류인 뱀보다는 같은 포유류인 고래와 훨씬 더 가깝다. 개구리와 두꺼비, 도룡뇽 같은 것들이 비교적 유사한 생물로 꼽히는 것도 같은 양서류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린네가 확립한 동물의 분류 체계는 단순히 그 동물이 어떤 종에 속해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이 분류법을 잘 활용하면 어떤 동물들이 다른 동물들과 얼마나 가까운 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하지만 정보 분류는 듀이나 린네 같은 한 두 명의 천재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과거 10만년 역사의 절대 다수 기간 동안 생물학적 분류작업은 인류의 가장 본질적인 문화 활동의 하나였다. 어쩌면 사물들을 분류할 수 있는 능력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진화론적 특징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현대의 분류시스템 역시 어떤 천재적인 개인의 번뜩이는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유전적 과거로 깊숙이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활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정보 분류법은 도서관이나 동식물 분류처럼 학문적인 영역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한 국가의 행정구역부터 시작해 모든 것들이 체계적인 분류 시스템에 따라 나눠진다. 우리들이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정보들도 모두 어떤 원칙에 따라 분류되어 있다. 하다못해 백화점에 물건을 사러 가도 분류 기준에 따라 각 층별로 배치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알렉스 라이트(Alex Wright)의 <Glut>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인류의 정보 분류 역사를 꼼꼼하게 살피고 있는 책이다. 정보 분류법은 인류의 본성에서 나온 것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최초의 민속 분류법은 문자 문화보다도 수 천 년가량 앞선다. 인류의 삶 자체가 분류법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아예 분류법에 익숙한 종족들이 훨씬 더 자손 번식에 유리했을 것이란 주장을 하고 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왜 그런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먹지 못하는 독초들과 식용 식물을 잘 분류해 놓은 종족들은 그렇지 못한 종족들보다 독초를 먹고 죽을 확률이 훨씬 적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정보 분류에 대해 다루면서 저 멀리 선사시대까지 시선을 넓혀가는 것은 바로 이런 관점에 따른 것이다. 인류가 사용해 온 모든 분류법은 고대인들이 가족들을 분류하던 방식에 그 젖줄을 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관점에서 재봉실을 이용한 잉카의 분류법에서부터 요즘 많은 네티즌들이 사용하는 위키피디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류 방식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런 분류법들을 파고 들어가다 보면 고대의 민속 분류학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현대 분류학의 아버지로 꼽히는 린네도 예외는 아니다. 동식물 분류법의 토대를 닦은 린네의 분류법은 민속 분류학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점이 많다. 린네 역시 분류법을 만들 때 초기의 민속 전통을 이용한 때문이다. 저자는 아예 린네 분류법이 눈에 띄는 것은 자신만의 색다른 비전을 주장하기 보다는 민속 전통을 수용하려는 의지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Glut>은 인류의 역사를 아우르는 정보 분류의 뿌리를 캐고 있는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꼭 도서관학이나 생물학 같은 것들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만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저자는 정보 분류법을 매개로 인류의 지성사를 담아내고 있다. 유럽이 암흑기에 접어들었던 7세기에 아일랜드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어떻게 문명의 불씨를 이어간 이야기부터, 린네와 뷔퐁 간의 분류법 주도권 경쟁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인간 역사 자체가 정보 분류를 둘러싼 헤게모니 다툼이란 생각까지 들 정도다. 


또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이란 논문을 통해 하이퍼텍스트의 기초를 닦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바네바 부시가 도서관을 배제한 컴퓨터 혁명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는 사실 역시 흥미를 끈다. 부시는 이익이 나지 않는 곳에는 투자를 하지 않는 기업들이 주도권을 잡으면서부터 컴퓨터 혁명이 도서관을 완전히 배제했다는 것에 대해 애석해하곤 했다. 제도권 밖에서 유럽 문명을 키웠던 아일랜드 수도사들에게서 요즘 블로거들의 흔적을 발견하는 저자의 안목에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진시황을 비롯해 새로운 제국을 건설했던 많은 정복자들이 가장 먼저 이전의 도서 분류 방법을 없애고 자신만의 독특한 분류법을 만들었다는 대목 역시 흥미로웠다.


물론 <Glut>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내용 자체는 굉장히 무거운 편이다. 게다가 동서고금의 문화사에 대한 해박한 저자의 지식을 따라가는 것이 힘겹게 여겨질 수도 있다. 몇몇 대목에선 지나치게 장황하게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론 현란한 지적 유희를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내용들을 다루는 저자의 솜씨는 예사롭지 않다. 흥미로운 사례를 통해 이론과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어 독자들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실제로 역자도 이 책을 번역하는 내내 흥미로운 새로운 사실들을 접하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다. 독자들 역시 비슷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번역 작업이 수월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천하의 명작도 독서 숙제가 되는 순간 악몽으로 바뀌는 것처럼, 아무리 흥미로운 책도 역자에겐 애물덩어리이기 때문이다. 번역 작업을 하는 내내, 단순히 독서의 대상으로 접근했으면 참 즐거웠을 것이란 아쉬움을 곱씹었다. 생소한 용어에 적당한 단어를 붙여주는 작업부터 영어를 좀 더 읽기 쉬운 한글 문장으로 옮기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수월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힘겨운 작업들을 수행하면서 '집단지성'을 많이 활용했다. 서로 상이한 지적 배경을 가진 두 역자들은 번역한 부분을 크로스 체크하면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웠다. 또 구글이나 위키피디아도 번역작업을 하는 데 큰 힘이 됐다. 특히 생소한 용어를 적합한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구글 검색엔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집단지성을 나눠준 이름 모를 분들께 감사드린다. 난삽한 원고를 깔끔한 책으로 탈바꿈시켜준 디지털미디어리서치 조광현 대표께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2009년 8월 역자를 대표해서 김익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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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기형도를 신문 사회면에서 처음 만났다. 그의 돌연한 죽음을 알리는 짤막한 기사는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내게도 묘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몇 개월 뒤에 출간된 '입 속의 검은 잎'이란 시집을 서둘러 구입했던 것 역시 문학적 호기심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그보다는 요절한 젊은 시인이란 아우라에 강하게 끌렸던 것 같다.

그 때 이후로 시인 기형도는 내 필독서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1주기에 맞춰 나왔던 '짧은 여행의 기록'을 비롯해 5주기 추모문집인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그리고 10주기에 출간된 '기형도 전집'은 모두 내 서재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정거장에서의 충고'는 기형도 20주기 기념 문집이다. 고인의 문우들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아담하게 엮어낸 이 책에는, 스물 아홉 청춘에 삶의 시계를 멈춰버린 한 시인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그 사랑은 때론 '감정 과잉'의 혐의가 짙게 배어있다. 하지만 그만큼 그의 부재가 문학적 동료들에게 남긴 상처가 크다는 의미도 된다.

우리 시대의 글쟁이인 김훈은 "그가 선택한 죽음의 장소는 늘 나를 진저리치게 한다"고 썼다. 마침 그 무렵 부친상 중이었다는 시인 이문재는 "2009년 3월 초순은 혼자서 건너가기가 만만치 않다"고 소리친다.

2000년대의 젊은 평론가 한 명과 젊은 시인 4명은 자신들의 문학적 자양분 속에서 기형도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지를 털어놓고 있다. "1980년대의 열정에 들떠 낮에 박노해와 백무산을 읽었던 젊은이들이 밤에는 기형도를 읽었다"는 고백 속엔, 첫 사랑의 연인에게나 털어놓음직한 뜨거운 사랑이 배어 있는 듯하다.

이 외에도 성석제, 이영준, 원재길 등 그와 학창시절을 함께 했던 많은 동료들이 이번 문집에 참여했다.

루카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작가는 시대와 불화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그들의 삶에는 늘 새로움을 찾아나서려는 강한 욕망이 감추어져 있다.

기형도 역시 '빈집'으로 대표되는 공허함과 늘 싸웠다. 그가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질투는 나의 힘' 중에서)고 노래하거나, "그리운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빈집')라고 할 때, 그 목소리에는 시대와 어울리지 못하는 불편함이 담겨져 있다.

동년배, 혹은 후배 문학인들이 기형도에게서 받아들인 자양분 중 많은 부분들은 바로 이 지점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거장에서의 충고'는 기형도의 세례를 받았던, 혹은 그의 문학적 자질을 사랑했던 산자들이 '시인' 기형도에게 바치는 최고의 헌사라고 해도 크게 그르지는 않다.

(이 책 제목인 '정거장에서의 충고'는 기형도가 첫 시집의 제목으로 염두에 뒀던 것이라고 한다. 첫 시집 제목인 '입 속의 검은 잎'은 문학평론가인 김현이 붙인 것이다.)

기형도는, 살아 있었다면, 지금쯤 마흔 아홉의 중년에 다다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20년 전에 삶을 마감하면서 영원히 문학적 청춘에 머무를 수 있었다.

당시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와,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에겐 큰 슬픔을 안겨줬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그의 시엔 엄청난 '프리미엄'을 얹어주었다.

난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서 자신이 남겼던 시적 성과물 위에 몇몇 성과물들을 더했을 경우에, 지금보다 더 나은 평가를 받았을지를.

하지만 '정거장에서의 충고'를 읽으면서 시인 기형도가 남긴 유산이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우라'가 없는 시인에게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헌사를 남기진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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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처음 번역 작업을 시작했던 <하이퍼텍스트 3.0>이 다음 주 출간될 예정이다. 방대한 분량과 깊이 있는 내용 때문에 번역하느라 엄청나게 고생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 때문에 머리카락도 꽤 빠진 듯.)

나로선 처음으로 내는 번역서인 셈인데, 감회가 새롭다. 참 좋은 책을 번역할 수 있어서 좋으면서도 부담스러웠다.

어릴 적 머리카락 쥐어 뜯으면서, "역시 고전은 어려워"란 탄식을 하며 읽었던 만큼 책들이, 사실은 허술한 번역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좋은 책 잘못 번역해서 내놓으면, 인류 지성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ㅠㅠ 

번역과 관련해서는 최근 읽은 다음 구절이 가슴을 계속 찌른다. 나는 과연 어떤 쪽일까 생각해보게 만드는 글이기 때문이다. 

유려하고 가독적인 번역으로 이름을 날리던 페로 다블랑쿠르라는 번역가가 있었는데 메나쥐는 1654년경 페로의 번역을 이렇게 비판했다. “그의 번역은 내가 투르에서 깊이 사랑한 여자를 연상시킨다. 아름답지만 부정한 여인이었다.” 물론 여기서 겉모습이 아름답다 함은 가독성이 뛰어나고 매끄러워서 번역한 티가 나지 않는 번역을 말하며, 부정하다 함은 원문에 대해 충실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번역사 입장에서 볼 때는 참으로 신랄하고 가혹한 비판이 아닐 수 없다. ‘당신의 번역은 유려하고 아름답지만 원문에 전혀 충실하지 않으므로 좋은 번역이 아니다’라는 말을 수사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이후 ‘아름다우나 부정한 여인’이라는 표현은 가독적이고 매끄러우나 원문에 충실하지 못한 번역을 일컫는 말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여기서도 역시 충실성과 가독성이라는 두 가치는 공존하기 어려운 것으로 암시된다. 이향 <번역이란 무엇인가>, 3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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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에 낑낑거리면서 썼던 <빌 게이츠>가 마침내 출간됐다. 이번엔 살림출판사. 원고지 300매 짜리 아담한 문고판이다.

사실 이 책을 쓰면서도 내가 과연 빌 게이츠에 관한 책을 쓸 자격이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계속했다. 책을 쓰면서 공부를 하게 됐다는 표현이 정확할 듯. '독점 자본가에서 창조적 자본주의로'란 부제를 달았는데, 어떨 지 모르겠다.

나도 아직 책은 받아보지 못했다. 아마 다음 주 쯤 도착할 듯. 기대와 설렘은 처음에 책을 낼 때보다는 덜하다. 이젠 부끄러움을 알게된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하이퍼텍스트 3.0> 마지막 편집 검토작업과 <Glut> 번역 마무리 때문에 분주하다. 모쪼록 모든 게 잘되었으면 좋겠다.

PS/ 당분간 '쓰기' 보다는 '읽기'에 주력하겠다는 지난 해 연말의 '절필선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앞으로 쏟아져나올 몇 권의 책들은 다 지난 해 작업한 것들이다. ㅠㅠ.



<목차>

새로운 선택, 새로운 인생
하버드대학생의 당돌한 선택
IBM의 등에 올라타다
정보시대의 비전가 빌 게이츠
잔혹한 자본가 빌 게이츠
창조적 자본주의자
창조적 자본주의의 새 장을 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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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프로야구 팀들 사이에 '오대산 극기 훈련'이 유행한 적 있었다. 한 겨울에 얼음을 깨고 들어가는가 하면, 절벽 외줄타기를 통해 담력을 키우기도 했다. 특히 하위팀 중에는 이런 산악훈련을 통해 효과를 본 팀들도 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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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인 훈련시스템으로 무장한 요즘 기준으로 보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따금씩 과학의 영역을 뛰어넘는 게 바로 정신력이다. 프로야구팀들이 '오대산 극기 훈련'을 통해 나름대로 성과를 거둔 것 역시 이같은 대목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오대산 극기 훈련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만화가 있다. 바로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다. (확인해 본 건 아니지만, 프로야구팀들이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오대산 극기 훈련의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얘기가 한 때 꽤 유행했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웅숭 깊은 작품이다. 만화라고 만만하게 봤다가는 큰 코 다치는 작품이다. 자신의 꿈을 향해 끝없이 정진하는 모습은, '성배(Holy Grail)'를 테마로 한 중세의 작품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 작품의 기본 스토리는 다소 통속적이다. 엄지란 한 여자를 둘러싸고 오혜성과 마동탁이 벌이는 줄다리기란, 어찌보면 지극히 평범한 구도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뻔한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예사롭지 않다.

우선 오혜성(일명 까치). 그는 인간의 한계를 곧잘 뛰어넘는다. 외인구단의 손병호 감독은 '사람이 성격이 모나든, 능력이 뛰어나든 한계가 있는 법인데, 이 놈은 곧잘 그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말로 까치를 평가한다.

오혜성은 끝은 '사랑'이다. 사랑 외에는 끝이 없다. 그는 사랑하는 엄지를 위해 최고의 야구선수가 되었지만, 엄지가 인정하지 않는 승리란 아무런 의미가 없기에, 대단한 기록마저 쉽게 포기해 버린다. 한국시리즈 승리라는 팀의 목표마저, 스스로 포기해 버린다.

오혜성은 '너무 순수하고 어리숙해서, 오히려 무서운 인물'이다. 그에겐 애시당초 얄팍한 계산이라는 것은 스며들 틈이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자신이 원하는 꿈을 향해 매진하는 생활만 있을 따름이다.

이런 오혜성의 모습에서 초기 벤처인들의 열정을 읽었다면, 내가 너무 '통속적'인 것일까? 스톡옵션이니, 대박이니 하는 것들을 모르던 시절, 허름한 사무실 뒤켠에서 야전침대에 의지해 생활하던, 눈매 초롱초롱한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이런 순수한 열정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오혜성의 라이벌 마동탁. 프로야구 최고의 강타자이자, 우승팀 유성의 간판. 그는 무엇보다 타고난 승부사이다.

그런가 하면 100게임 연속 안타 기록을 세우던 날, 다소 낭만적인 프로포즈를 통해 엄지와의 결혼에 성공하는 남자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타고난 재능에다, 끝모르는 성취욕이 결합된 인물이다.

오혜성이 어리숙한 면이 있는 인물이라면, 마동탁은 철저한 승부사다. 그는 오혜성에 비해 다소 모자란 재능을, 특유의 승부 근성으로 보충한다. 만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필살 타법'은, 그가 승리를 위해선 어떤 수단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승리를 위해선, 사랑마저 이용할 수 있는 인물이다. 사랑을 희생한 대가로 승리를 쟁취한 마동탁은, 모든 걸 버리고 사랑을 구한 까치에게 결국 패배한다. 하지만 그는 결코 지지 않았다.

"결국은 네가 이겼다. 하지만 결코 내가 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넌, 네가 원하는 바를, 난 내가 원하는 바를 서로 차지했을 뿐이다. 똑같이 귀중한 존재 하나씩을 잃어가면서…"란 그의 마지막 독백은, 그가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웅변적으로 대변해준다.

그리고 엄지. 그는 끊임없이 흔들리는 캐릭터다. 순수하기 때문에, 더 나약한 인물이다. 까치를 사랑하면서도, '100게임 연속 안타'를 때리며 구애한 마동탁을 뿌리치지 못한다.

'난 네가 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한다'는 까치의 고백에도 불구하고, 마동탁의 극적인 구애를 이겨내지 못한다. 나약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지나 마동탁은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다. 어쩌면 우리들의 내면에 감춰진 모습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때 마침 시작된 프로야구 붐을 타고 1980년대 내내 뜨거운 인기를 누렸다.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한다' '강한 것은 아름답다' 등 이 작품이 던졌던 화두는, 암울했던 1980년대를 살아야 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탈출구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도 많다.)

수원대 이주향 교수는 이 책에 대한 서평에서 '천둥처럼 사납고 송곳처럼 날카롭고 눈덩이 처럼 자가발전하는 무서운 열정. 무엇보다도 자신이 다치는 열정'을 읽었다고 고백했다. 그 열정을 뒷받침하는 목적의식이 다소 약한 것이 아쉽긴 하지만, 만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탓할 대목만은 아니다.

뜨거운 열정을 찾기 힘든 요즘, '공포의 외인구단'이 형상화해낸 열정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린다.

MBC TV가 올해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을 드라마로 만든다고 한다. 1980년대 이장호 감독이 만든 영화에 다소 실망했던 기억이 있는 나로선, 좀, 사실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만화의 감도을 얼마나 잘 옮길 수 있을지. 어쨌든 '공포의 외인구단'이 선을 보이게되면 분명 올해 최대의 화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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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0년 만에 허영만의 '오 한강'을 다시 봤다. 그리고 20년 세월만큼이나 다른 느낌을 받았다.

내가 처음 이 만화를 본 것은 1987년. 당시 작가 허영만은 이 만화를 '만화광장'이란 잡지에 연재하고 있었다. 말년 병장이었던 나는 군대에서 이 만화를 봤고, 이내 그 엄청난 내용에 푹 빠져들어갔다.('오 한강'은 그 무렵 읽었던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과 함께 내게 만화의 힘을 일깨워준 소중한 작품이다.)

'오 한강'은 엄청난 내용만큼이나 각종 '설'이 난무했던 만화였다. 그 중 가장 유력했던 설은 바로 이 만화가 안기부의 도움을 받은 반공만화라는 내용이었다. 작가는 '세세한 내용은 간섭하지 않고 전체 메시지로 이야기한다'는 약속을 받고 이 만화를 그렸다는, 그럴듯한 소문까지 떠돌았다. (물론 이 소문은 확인 불능이다.)

그 때문에 '오 한강'의 결말이 실망스러웠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였다. 어정쩡한 반성으로 마무리되면서, 반공 만화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끝 부분이 다소 진부한 반공(反共) 내용으로 낙착되지만, ‘오! 한강’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다"는 것이 이 만화를 읽은 대다수 독자들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이 만화를 다시 보면서 난 다른 느낌을 받았다. 주인공인 이강토가 혁명적 열정에 불타 오르던 전반부보다는, 회의하고 번민하는 후반부에서 훨씬 더 진한 감동을 느꼈다. 나이 탓인지, 아니면 세월 탓인지, 그도 아니면 그 둘이 다 영향을 미친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난 3권 중반이후 고민하고 번뇌하는 주인공 이강토의 모습이 훨씬 더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작가가 어정쩡하게 현실과 타협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허영만이 하고 싶었던 얘기는 바로 그 부분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내가 보기에 '오 한강'은 예술만화였다. 주인공 이강토와 그의 아들 이석주가 예술의 참 의미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린 만화. 또 민족, 통일운동이라는 것이 직선과 같은 강렬함과 과격함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삶과 예술이라는 메시지.

아버지인 이강토와 아들 이석주가 예술을 통해 화해하는 대목에서,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여전히 통일이란 거대한 과제가 남아 있다(정확한 인용은 아님)"는 이석주의 독백은 작가 허영만의 역사의식이 녹록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내가 이데올로기적 열정에 덜뜰 나이가 지난 때문일까? 허영만의 '오 한강'은 (결말 부분까지 포함해서) 시대를 앞선 한 편의 거대한 역사 서사시로 읽어도 크게 모자람이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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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KT문화재단에서 펴냈던 <웹 2.0 시대의 온라인 미디어>를 판매용으로 새롭게 출간하게 됐다. 제목은 <웹2 .0과 저널리즘 혁명>. 출판사는 역시 커뮤니케이션북스. 이렇게 되면 컴북스에서 벌써 세 번째 책을 내게 되는 셈이다.

지금 번역하고 있는(박사 논문 준비 땜에 중단하고 있긴 하지만) <하이퍼텍스트 3.0>까지 내놓게 되면 컴북스에서 (저술  수 면에선) 파워 저자가 되는 것인가?

이번에 <웹 2.0과 저널리즘 혁명>을 출간하면서 출판사에서 저자 소개를 좀 재미있게 써 달라고 요구해 왔다. 그래서 쓴 저자 소개가 아래 글이다.

그에게 미디어는 소통이자 대화이다. 그래서 그는 미디어에 게재되는 기사뿐 아니라 그 기사를 매개로 한 대화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그가 많은 매체 중에서 유독 블로그를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런 생각 때문이다.

전자신문과 디지틀조선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한 그는 2000년 아이뉴스24 창업 멤버로 참여하면서 명실상부한 인터넷매체 기자로 탈바꿈했다. 한국 인터넷신문 1세대를 자부하는 그는 아직도 한국의 인터넷 저널리즘이 걸음마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디지털 스토리텔링, 블로그, 웹 2.0 등으로 관심을 확대해 온 것은 그런 고민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인터넷신문과 온라인 스토리텔링> <블로그파워> <웹 2.0 시대의 온라인 미디어> 같은 책들을 썼다. '대중적 학술서'라고 부름직한 그의 책들은 썩 많이 팔리진 않았다. 하지만 그는 판매 부진의 이유가 지나치게 앞서 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자기 확신을 갖고 있다.

그는 요즘 "현장 경험을 학술적으로 정리해보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다. 바쁜 기자 생활을 하면서 석사 박사 과정을 끝마친 것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최근 성균관대 신방과 박사 과정을 수료한 그는 요즘 블로그를 기반으로 한 1인 미디어 공동체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출판사에 이 글을 넘기기 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별로 재미가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넘겼다. 내 삶이 그리 재미 있는 스타일이 아닌데, 저자 소개가 재미 있을 리 있겠는가? 책은 10월 중이면 나올 듯하다.(관심 있는 분들, 사서 보세요.)

그리고 또 하나. <인터넷신문과 온라인 스토리텔링>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3쇄를 찍었나 보다. 명절 직전 3쇄에 대한 인세를 받았다. 얼마냐구요? '비밀입니다.' 얼마인지 알면 깜짝 놀랄 듯. (많아서 놀랄 지, 적어서 놀랄 지는 노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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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는 유명한 말로 시작되는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이 겨냥한 것은 19세기의 타락한 산업자본주의였다. 마르크스는 이 책을 통해 산업자본주의의 모순을 예리하게 꼬집으면서 새로운 사회의 희망을 노래했다.

벤 맥토넬과 재키 후바가 공동 저술한 '시티즌 마케터'는 "떠들썩한 그들이 온다"고 선언하고 있다. 여기서 '떠들썩한 그들'은 인터넷으로 무장한 소비자들이다. 이들은 일찍이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처음 제기했던 '프로슈머(prosumer)'이기도 하다.

마르크스가 유령이라고 했던 공산주의가 19세기 사회의 기본 법칙을 뒤흔들었듯이, 이 책 저자들이 "떠들썩한 그들"이라고 명명한 시티즌 마케터(citizen marketer)들은 고전적인 마케팅 법칙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시티즌 마케터들은 스스로 메시지 역할을 하면서 마케팅 현장에서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때론 거대한 기업들을 굴복시키면서 '시티즌 파워'를 과시하기도 한다.

이 책 저자들이 소개하는 델의 사례는 '시티즌 마케터'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잠시 책 속으로 들어가보자.

제프 자비스(Jeff Javis)란 유명 블로거는 자신이 구입한 델의 컴퓨터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바로 애프터서비스(AS)를 의뢰했다. 하지만 델 사의 반응은 너무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이에 격분한 자비스는 자신의 블로그에 '델의 악몽'이란 글을 올렸다. 하지만 델은 여전히 자비스의 외침을 외면했다. 그러자 자비스는 '델의 악몽 2편, 3편'을 연이어 올렸고 같은 경험을 한 블로거들이 공감을 표하면서 델의 오만한 AS 정책에 관한 얘기가 무서운 속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처럼 블로고스피어를 중심으로 시티즌 마케터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 등 주류언론들도 델 사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델은 고객 서비스 체제를 개선하는 데 1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하면서 간신히 AS 파동을 봉합할 수 있었다.

'시티즌 마케터'는 이처럼 메가폰을 손에 쥐게 된 평범한 그들을 주목하라고 강조한다. 아니, 시티즌 마케터들을 외면하면 큰 화를 당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매스미디어 시대에는 빅 메가폰인 전문 언론인 같은 여론 주도층과 관계를 잘 구축하면 됐지만 소셜 미디어 시대에는 그것만으론 안된다는 것이다. 입소문의 진원지인 시티즌 마케터들과 관계를 잘 구축해야만 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일관된 관점이다.

그런 관점에서 '시티즌 마케터'는 소셜 미디어(social media)로 불리는 웹 기반 출판 플랫폼에 주목한다. 예전에는 무력하기만 했던 개인들이 기존 미디어의 거대 메가폰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마케팅 현장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소셜 미디어가 일상화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터넷이 모든 입소문의 플랫폼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이제 메기폰은 일반 대중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 동안 수동적으로 광고를 받아들이기만 했던 그들이 이젠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드라마, 음악 등을 직접 홍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이 쏟아내는 입소문은 전문가들의 정제된 평가 못지 않은, 아니 때론 그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최근 극장가를 뒤흔들고 있는 영화 '디워'의 돌풍 역시 '시티즌 마케터'의 힘이 유감 없이 발휘된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겠다. 언론에서 악평이 빗발칠 때도 네티즌들은 '입소문'을 쏟아내면서 '디워' 광풍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이처럼 시티즌 마케터의 힘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참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유독 최근에 와서야 시티즌 마케터에 대해 주목하게 된 것 역시 바로 블로그로 대표되는 참여 구조가 마련된 데 힘입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람들이 메시지다'는 슬로건은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잘 요약해 주는 말인 것 같다.

이 책은 커뮤니케이션과 마케팅의 전통적인 개념이 평범한 시민들인 시티즌 마케터들에 의해 민주화되고 있는 현장을 소개한다.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이런 사례들은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 감미료 구실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내고 있는 것 같다.

(벤 맥코넬-재키 후바 지음/ 우병현 옮김, 미래의 창 1만2천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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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 아이들이 한 데 모여서 공부하는 제도(즉 학교)가 인류 역사 이래 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잘 아다시피 우리나라에서 대중 교육이 일반화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눈을 세계 역사로 돌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C. 브론테의 <제인 에어>나 스탕달의 <적과 흑> 같은 곳에 보면 가정 교사라는 게 당시 귀족층의 일반적인 교육 방식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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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대부분 직장이 없다는 것에 대해 상당히 조바심을 내고, 또 불안해한다. 또 실제로 불안해 하는 게 당연하다. 사업을 하는 어떤 선배는 "그래도 새경 받을 때가 속 편했다"고 하소연하기도 하는 걸 보면, 직장생활이라는 게 경제적인 안정감을 주는 역할을 하는 건 분명한 듯 하다.

하지만 직장에 매여서 돈벌이를 하는 생활 역시 그리 오래된 풍속은 아니다. 한국이야 1970년대 중순까지도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세계적으로도 똑 같은 장소에 모여 똑 같은 일을 하면서 월급 받아먹는 생활을 한 게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지 싶다.

홀름 프리베 등이 지은 <디지털 보헤미안>은 "직장을 떠나라, 그 너머에 더 나은 삶이 있다"고 부르짓는 책이다. 더 이상 정규직에 얽매이지 말고 좀 더 자유롭게 일하며 풍요롭게 살고 싶다면 디지털 보헤미안의 삶을 주목하라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이 책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전일제 근무는 예나 지금이나 이 특수한 형태의 충성심을 이끌어내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왜냐하면 매일같이 여덟시간 또는 그 이상을 한 회사 내에서 일하는 사람은 회사에 동화되지 않을 수 없을테니까 말이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사장이 하는 농담을 더 이상 비웃지 않게 되며, 오히려 그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회사의 규칙과 업무 스타일이 완전히 피와 살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마치 제2의 천성처럼 되어버리는 것이다. (66쪽)

기본적으로 저자들의 관점은 이런 주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시장으로 직접 들어가라"는 게 이 책 저자들의 주장인 것이다. 이런 주장이 보기에 따라선 다소 과격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나처럼 '직장'이란 우산 속에 들어가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들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아날로그 보헤미안들이 한정된 유통망 때문에 힘든 예술적 삶을 영위해야만 했던 것과는 달리, 디지털 보헤미안들은 인터넷이란 무한 유통망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만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꼭 이 책 때문만은 아니지만 요즘 나도 디지털 보헤미안을 꿈꾼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직장생활이 지겹고 무미 건조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게 보헤미안적인 기질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여건만 되면 과감하게 버리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정규직을 버리고 디지털 보헤미안의 생활을 감행하라는 저자들의 꼬임에는 다소간 방어막을 치고 대처했다. 하지만 시대가 디지털 보헤미안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원론에는 전폭적으로 지지를 보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저자들은 블로그에 대해서도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 중 한 구절을 소개한다.


블로그라는 세상에 발을 들여놓으면 마치 술집, 광고탑 그리고 소도시 신문들이 뒤섞여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때로는 어느 공공 포스터에 게시된 공격적인 선언문 아래서 기분 좋은 술집에서 몽롱하게 취한듯한 느낌으로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 속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 술집 안에 있으면 바깥의 넓은 세상 속에 펼쳐진 잡다한 것들이 모두 걸려들어 안으로 들어오며 밖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주변에 대해 더욱 폭넓은 정보를 얻는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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