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저마다 사이버 보안관을 자처하고 있다. '최진실법'을 만들자는 요상한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 마디. 사이버 모욕죄에 최진실이란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녀를 두번 죽이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요상하다'는 거다.)

또 한 쪽에선 '선플달기 운동'을 하잔다. 아예 11월7일을 '선플의 날'로 하자는 구체적인 방침까지 나와 있다. 그 또한 얼마나 효과가 있을 지 의심스럽다.

이런 저런 대안들을 접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봤다. 댓글방을 하나씩 준 뒤 그곳에 댓글을 달도록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 말이다. 블로그 이용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트랙백 기능을 단순화한 뒤 댓글방으로 활용해 보자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방식이 될 것이다. 네이버나 다음같은 포털에 회원등록을 하면 댓글방이 하나씩 생성된다. 그리고 그 포털 내에서 자신이 다는 댓글은 전부 자신의 댓글방에 쌓이도록 한다.

그럼 독자들은 어떻게 댓글을 보냐고? 지금과 다를 바 없다. 그냥 기사 뒤에 표출해 주게 된다. 하지만 독자들이 댓글을 누르면 해당 글을 올린 사람의 개인 댓글방으로 연결해주면 되지 않을까? 트랙백이란 나름 복잡한 기능을 단순화한 뒤 댓글 정책에 응용해 보자는 것이다.

자신의 댓글방에 댓글을 쌓아놓음으로써 좀 더 책임의식을 갖도록 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 때 굳이 실명으로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냥 닉네임이든 뭐든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도록 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할 경우 자기 방에다 글을 올리는 것이니 근거 없는 비방이나 욕설은 좀 자제하지 않겠느냐는, 소박한 바람을 갖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최근 나오는 악플퇴치 대책들이 영 미덥지 않아서다. 공권력을 동원하거나, 아니면 '선플 운동'의 기치를 앞세워 독자들을 계도하려는 것 모두 악플 퇴치에 큰 역할을 하지는 못할 듯 해서다. 법에 강제하거나, 네티즌의 자발적 선의를 기대하기엔 '악플의 폐해'가 너무나 깊기 때문이다.

흔히들 미국의 기부 문화를 부러워한다. 빌 게이츠를 비롯한 미국 부자들이 부시 행정부의 상속세 인하 방침에 앞장서 반대하는 것을 보면서 '참 훌륭한 부자들이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물론 그들이 나름 훌륭한 부자들인 것은 맞다. 어쩌면 그들의 피 속에 프로테스탄티즘 정신이 흐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제대로 된 자본주의 정신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단지 그 때문일까? 우리네 부자들보다 더 양심적이기 때문에?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은연 중에 강제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사회의 자연스러운 비판과 감시망이 그들로 하여금 '양심적인 부자'의 삶을 살도록 격려해주는 측면도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보자. 미국 선거에선 소득에 비해 기부를 적게 하는 사람들은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힘들다고 한다. 기업들 역시 사회공헌 활동을 게을리 하면 불매운동 타깃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기부 정신이 배어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댓글방'을 만들어 모두가 서로를 '감시, 격려'하도록 하면 어떨까 하는 데까지 미치게 됐다. 그렇게 하면 좋은 댓글을 쓴 사람들을 격려할 수도 있고, 또 악플만 잔뜩 쌓아놓은 사람들은 비판할 수도 있으니 좋지 않겠냐는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문득 '댓글방'이란 것이 현실적인 생각일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기술적으로 가능한지도 모르겠고, 또 거대 포털들 입장에서 도입해봄직한 방법인지도, 솔직히 자신이 없다.

하지만 현재의 악플 폐해는 '법'으로 규제하거나 '양심'에 호소하기엔 너무도 큰 문제인 것 같아서,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한번 제안해 봤다. 이렇게라도 한번 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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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주저되는 고백이긴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뉴스를 네이버에서 본다. 내가 쓴 기사조차 네이버에서 다시 찾아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기사에 어떤 반응들이 올라와 있는 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요즘 한창 열기를 더하고 있는 메이저리그 야구 뉴스를 볼 때는 일삼아 댓글을 읽는다. 그 속에서 가끔 발견하는 멋진 정보들이 내겐 기사 못지 않은 상큼한 선물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뉴스 읽는 재미가 부쩍 줄어버렸다. 네이버가 댓글 정책을 바꾼 때문이다. 일부러 눌러야 보이는 댓글, 일삼아 눌러보면 예전만 못한 썰렁한 분위기. 이 모든 것들이 '디지털 시대의 뉴스 읽기'에 익숙해진 내게는 견디기 힘들 정도다.

네이버의 이번 댓글 정책 개편은 모든 이용자에게 기본 클린 지수를 부여하고 블라인드 설정을 통해 클린지수가 낮은 이용자의 댓글은 보이지 않도록 한 것이 골자다. 의견펼치기 버튼을 눌러야만 댓글이 보이도록 기본 설정을 수정한 것도 눈에 띈다.

홍은택 NHN 이사는 최근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웹2.0시대의 의제 설정'이란 칼럼을 통해 네이버가 왜 댓글 정책을 바꿀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잠시 그 대목을 읽어보자.

"내가 운영을 맡고 있는 네이버뉴스의 경우 이용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은 댓글이다. 얼마 전까지 하루에 댓글을 쓰는 사람은 5만명이고 하루 댓글 15만 가지가 올라왔다. 그리고 150만명이 댓글을 읽었다. 겉으로 보면 많은 수인 것 같지만 하루 네이버뉴스 이용자가 500만명인 점을 고려할 때 그 중 1%가 쓰는 댓글을 150만명이 보는 구조였다. 사회적 참여의지가 강한 1%가 사회적 의제설정을 주도하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일 수 있다. 만약 150만명이 1%가 던지는 메시지를 가려줄 수 있다면." 홍은택 '웹 2.0 시대의 의제 설정' 중


그는 이런 설명을 토대로 "정보의 선택과정이라도 최소한 참여하도록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댓글 공간에서 침묵하는 다수들이, 최소한 댓글을 보지 않을 권리라도 갖도록 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런 설명에 대해 공감하지 않는 바는 아니다. 홍 이사도 예로 들었듯이, 지난 여름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 때의 댓글 공간은 혼탁하기 그지 없었다. 도대체 저런 쓰레기 공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저질스러웠다. 게다가 엄청난 댓글들을 저장하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스토리지 비용' 역시 무시못할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선 네이버의 이번 정책 변화가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신명나는 댓글 공간'을 잃어버린 나는, 이성적으로는 네이버에 동조하면서도, 심정적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 없다.

여기서 잠시 2002년 월드컵을 떠올려보자.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지배한 코드는 '더불어 함께하기'였다. 시청 광장에 모여 목이 터지도록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우린 하나가 됐다. 2002년 6월의 함성을 통해 우리는 축구가 단순한 스포츠 이상이라는 것을, 모두를 하나로 만들어주는 거대한 문화적 매개물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2002년 여름의 기억을 통해 우리가 자연스럽게 '감동'을 떠올리는 것은 광장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밀실'에서 외치던 함성을 광장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내가 댓글 공간을 통해 기대했는 것은 바로 이런 문화였다. 함께 얘기하고 더불어 토론하는 공간. 하여, 많은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 이를 통해 또다른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공간.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뉴스 역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나누던 문화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함께 하는 감동'이 낯선 것만도 아니다.

많이 혼탁해진 댓글 공간과 민감한 시기적 상황 때문에 '결심'을 했음직한 네이버의 정책 변화가 아쉬운 것은 바로 이런 '소박한 감동'이 사라진 때문이다. 자꾸만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란 아쉬움이 밀려드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얼마전 어떤 동료와 "댓글 공간에 나이를 표시해 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나눈 적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댓글 폭력'을 당하는 쪽이 걸러서 들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게 그 동료의 주장이었다.

물론 그 동료의 주장이 100% 옳은 건 아니다. 개인 정보 침해 우려도 있고, 또 나이를 표현하는 게 과연 제어장치 노릇을 해 줄 수 있을 지도 의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댓글 공간에 거대한 자물쇠가 채워진 이후부터는 웬지 뉴스 읽는 신명이 사라진 느낌이다. 이맘 때쯤이면 메이저리그 관련 기사 뒤에 붙은 댓글을 일삼아 읽었을 내가, 요즘은 그냥 간단한 소식만 접하곤 얼른 나와 버리고 만다.

그래서 '신명나는 광장'을 만들기보다는 '썰렁하지만 질서 있는 공간'을 택한 네이버의 정책 변화가 조금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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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인터넷신문과 온라인 스토리텔링> 출간 이래 댓글에 많은 관심을 가져 왔다. 인터넷 저널리즘에서 중요한 것은 독자 반응이고, 그 독자 반응 중에서 정수는 기사에 붙은 댓글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댄 길모어 등의 용어를 빌린 것이긴 하지만, 나는 이 같은 상황을 '대화 저널리즘(journalism as a dialogue)'이란 말로 표현했다. 악플 공세 때문에 다소 약해지긴 했지만, 이런 믿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난 요즘 댓글만 보면 기겁을 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댓글이 많이 붙은 기사들을 볼 때면 한숨이 나온다.

사연은 이렇다. 요즘 '박사 논문 초치기' 작업을 하고 있다. 당장 한 달 뒤까지 논문을 완성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아직 이렇다 할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그 동안 회사 일로 바빠서 논문 작업에 손을 제대로 대지 못한 때문이다.

최근 블로거들의 기사를 분석하고 있는 데, 분석 항목 중 댓글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다 보니 댓글이 100개를 넘는 기사를 만날 땐 한숨부터 나오는 것이다. 당연히 표본이 많으니 좋아해야 마땅하련만 사정은 말처럼 간단하지만은 않다.

최소한 500개 기사는 분석해야 하는 데, 만약 한 기사당 댓글이 100개씩 붙어 있다면 5만개의 댓글을 일일이 읽고 분석해야 한다는 얘기다. 5만개. 이걸 혼자서, 그것도 퇴근 이후 틈틈이 읽어서 한 달만에 분석하는 게 가능할까?

그러다 보니 댓글이 없는 기사를 만나면, 웬지 공짜로 먹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

그래서 일과 유희는 다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두껑 보고도 놀란다'고,  올 가을엔 댓글만 보면 가슴이 벌렁거릴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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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블로깅을 하면서 느끼는 재미 중 가장 큰 것을 꼽으라면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이다. 특히 댓글과 트랙백을 통해 다른 이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게 참 재미있다. 올블로그에 마련돼 있는 '블로고스피어에서는 지금'이란 코너도 그런 점에서 자주 찾는 곳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차에  재미없는 zlinx.net 님이 쓴 왜 블로거들은 댓글을 잘 달지 않을까? 란 재미 있는 글을 읽었다. 사실 나도 늘 생각하던 것 중 하나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왜 블로거들은 내 글에 댓글을 잘 달지 않을까?'란 문제에 관심을 가진 적이 적지 않다. (사실 내 블로그 뿐 아니라, 내가 쓴 기사들에도 댓글이 거의 없는 편이다. 누가 그랬던가? 악플보다 더 서글픈게 무플이라고. ^^)

일단 내 블로그에 댓글이 적은 것은 재미없는 zlinx.net 님이 제시한 대로라면, 5)방문자 수가 적다,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그다지 재미 있는 이야기를 쓰는 것도 아니니, 뭐, 댓글을 달고 자시고, 할 것도 별로 없긴 하다.

이런 넋두리를 하기 위해 댓글 얘기를 꺼낸 건 아니다.

사실 내가 더 관심을 갖는 건 댓글의 수가 아니라 질이다. 정작 더 문제는 댓글이 많고 적음에 있는 게 아니라, '어떤 댓글이냐'는 데 있다는 얘길 하고픈 것이다. 곰곰히 살펴보면 상당수 댓글들은 '맞다' 내지는 '말도 안되는 소리 마라' 정도로 구성돼 있는 것 같다.

물론 댓글 공간을 통해 공감을 표하는 게 중요한 소통 수단이긴 하다. (그 가치를 폄훼하자는 게 아니니, 오해들 마시길. 나같은 중소형 블로그들은 '공감한다' 그 한 마디에 큰 힘을 얻으니까. ^^) 하지만 블로고스피어가 '이슈 중심적인 공간'이라고 가정하자면, 정작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이슈에 대해 토론을 하고 논쟁을 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런데 블로고스피어에는 단편적인 '배설'은 많지만, 그것들이 함께 연결되는 토론이 드물다는 것이다. (특정 키워드를 둘러싼 공방은 물론 많다. 하지만 그건 꼭 블로고스피어가 아니더라도 활발하다. 또 상당수 공방들은 특정 키워드를 사용한 '방문자 유입'을 노린 측면이 강한 느낌도 든다.)

댓글이란 게, 오프라인 공간으로 치자면 일종의 토론 수단이 될 것이다. 따라서 나는 댓글이 드물거나, 특히 토론 내지 논쟁이라고 할만한 댓글이 드문 것은 바로 우리가 제대로 된 토론문화를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건 재미없는 zlinx.net 님이 1)번과 4번)으로 제시한 것과 비슷한 듯하다.)

블로고스피어를 보면 자극적인 비난은 많은 데, 잔잔한 토론을 드문 듯하다. 이를테면 '디워'를 둘러싼 공방 역시 감정은 앞서고, 이성은 뒷전으로 밀린 듯한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그건 블로고스피어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디워 공방>을 벌이고 있는 평론가들 역시 토론보다는 직설적인 비난을 앞세우는 쪽이 많은 듯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댓글의 빈약(수, 량 측면 모두)은 그 근원을 블로고스피어에서 찾을 문제는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보다는 '토론문화가 실종된' 우리 사회의 근원적인 문제와도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얘길하고보니, 꼭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뻔한 얘기를 되풀이한 것 같아서 좀 그렇다. 하지만 블로고스피어에서나, 현실에서나, 이를테면 애정을 밑바탕에 깐 진지한 비판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그건 비판을 하는 쪽이나, 비판을 당하는 쪽이나, 다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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