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평론가 '디워' 혹평 "최근 10년간 판타지 중 최악" 이란 기사 때문에 블로고스피어가 떠들썩하다. 이 기사 중 한 구절을 잠시 읽어보자.

외국의 영화평론가 클린트 모리스는 호주의 영화전문사이트 무비홀에 “‘디 워’는 10년 동안의 판타지 중 가장 최악”이라는 쓴소리를 쏟아냈다. 또 클린트 모리스는 “‘디 워’의 전투신은 ‘반지의 제왕’-‘스타워즈 에피소드’와 비슷하고 전체적인 구성은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생각하게 한다”고 비꼬았다.

여기서 '호주의 영화전문 사이트인 무비홀'이란 부분은 원래는 미국의 영화 전문 사이트로 돼 있었나 보다. 그걸 호주 미디어 속의 한국 이란 블로그를 운영하는 분이 "제대로 확인 좀 하고 기사를 내보내라"고 지적하면서 논쟁이 시작된 듯하다. (일단 해당 기사에서 그 부분은 수정됐다.)

뭐, 미국이든 호주든, 그런 실수는 애교로 넘어가 줄 수 있다. 하지만 '해외평론가 디워 혹평'이란 기사가 던진 문제는 그런 '사소한(?) 팩트' 문제가 아니다. 사실 이 기사는 그런 부분보다는, 국내 언론이 외신 기사를 처리할 때 자주 빠지는 함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더 문제다.

바로 맹목적인 외국언론 맹신과 인용하는 언론에 대한 정확한 이해 부족 문제다.

외신 기사는 어차피 2차 자료에 의존해서 쓰는 기사다. 그러다보니 엄청나게 많은 외신 자료들 중 적당한 것을 선택하는 기자의 안목이 정말 중요하다. 예를 들어, 평소 극우적인 성향을 지닌 외국 언론이 노무현 정부를 비판했다면, 그건 새삼스러울 것 없는 뉴스다. 늘상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 르몽드 같은 곳에서 한국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면, 이건 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외신 기사의 생명은 기자의 selection 능력과 함께 기사 가치 판단에 좌우된다는 말이다.

해외평론가 '디워' 혹평 "최근 10년간 판타지 중 최악"  기사는 그런 점에서 문제가 좀 있지 않았나 싶다. '디워'를 비판하기 위해 뒤지다가 찾은 기사가 아니라면, 적어도 그 사이트가 어떤 곳인지, 또 '10년간 판타지 중 최악'이란 헤드라인을 뽑으면서 기사로 써도 될 정도로 권위 있는 비평가인지에 대해선 한번쯤 조사를 해 봤어야 한다는 말이다. (혹시 오해를 할까봐 한마디. 권위 있는 비평가의 말을 무조건 맹신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해당 기사에 댓글이 5천 여 건이나 달려 있는 걸보니, 엄청나게 논란이 되긴 했나 보다. 이 기사를 쓴 기자도, 별 생각 없이 썼다가 네티즌들의 집단 공격에 호되게 고생했을 듯 싶다.

어쨌든 이번 사건은 한국 언론의 외신 처리 방식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 운 나쁘게 구설수에 오른 해당 기자뿐 아니라, 외신 기사를 쓰고 있는 다른 기자들도 한번쯤 반성해봐야 할 듯 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또 한가지. 이번 사건을 통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시티즌 파워'의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호주에 살고 있는 분이 해당 매체에 대해 자세히 소개를 해 주는 데야, 기자들이 당해낼 재간이 없다. 역시 외신 기사를 쓰는 기자 입장에서 그게 두렵긴 하지만, 그래도 한편으론 "이런게 바로 집단지성이 아닐까?"란 생각도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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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는 유명한 말로 시작되는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이 겨냥한 것은 19세기의 타락한 산업자본주의였다. 마르크스는 이 책을 통해 산업자본주의의 모순을 예리하게 꼬집으면서 새로운 사회의 희망을 노래했다.

벤 맥토넬과 재키 후바가 공동 저술한 '시티즌 마케터'는 "떠들썩한 그들이 온다"고 선언하고 있다. 여기서 '떠들썩한 그들'은 인터넷으로 무장한 소비자들이다. 이들은 일찍이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처음 제기했던 '프로슈머(prosumer)'이기도 하다.

마르크스가 유령이라고 했던 공산주의가 19세기 사회의 기본 법칙을 뒤흔들었듯이, 이 책 저자들이 "떠들썩한 그들"이라고 명명한 시티즌 마케터(citizen marketer)들은 고전적인 마케팅 법칙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시티즌 마케터들은 스스로 메시지 역할을 하면서 마케팅 현장에서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때론 거대한 기업들을 굴복시키면서 '시티즌 파워'를 과시하기도 한다.

이 책 저자들이 소개하는 델의 사례는 '시티즌 마케터'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잠시 책 속으로 들어가보자.

제프 자비스(Jeff Javis)란 유명 블로거는 자신이 구입한 델의 컴퓨터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바로 애프터서비스(AS)를 의뢰했다. 하지만 델 사의 반응은 너무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이에 격분한 자비스는 자신의 블로그에 '델의 악몽'이란 글을 올렸다. 하지만 델은 여전히 자비스의 외침을 외면했다. 그러자 자비스는 '델의 악몽 2편, 3편'을 연이어 올렸고 같은 경험을 한 블로거들이 공감을 표하면서 델의 오만한 AS 정책에 관한 얘기가 무서운 속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처럼 블로고스피어를 중심으로 시티즌 마케터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 등 주류언론들도 델 사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델은 고객 서비스 체제를 개선하는 데 1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하면서 간신히 AS 파동을 봉합할 수 있었다.

'시티즌 마케터'는 이처럼 메가폰을 손에 쥐게 된 평범한 그들을 주목하라고 강조한다. 아니, 시티즌 마케터들을 외면하면 큰 화를 당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매스미디어 시대에는 빅 메가폰인 전문 언론인 같은 여론 주도층과 관계를 잘 구축하면 됐지만 소셜 미디어 시대에는 그것만으론 안된다는 것이다. 입소문의 진원지인 시티즌 마케터들과 관계를 잘 구축해야만 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일관된 관점이다.

그런 관점에서 '시티즌 마케터'는 소셜 미디어(social media)로 불리는 웹 기반 출판 플랫폼에 주목한다. 예전에는 무력하기만 했던 개인들이 기존 미디어의 거대 메가폰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마케팅 현장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소셜 미디어가 일상화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터넷이 모든 입소문의 플랫폼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이제 메기폰은 일반 대중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 동안 수동적으로 광고를 받아들이기만 했던 그들이 이젠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드라마, 음악 등을 직접 홍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이 쏟아내는 입소문은 전문가들의 정제된 평가 못지 않은, 아니 때론 그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최근 극장가를 뒤흔들고 있는 영화 '디워'의 돌풍 역시 '시티즌 마케터'의 힘이 유감 없이 발휘된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겠다. 언론에서 악평이 빗발칠 때도 네티즌들은 '입소문'을 쏟아내면서 '디워' 광풍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이처럼 시티즌 마케터의 힘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참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유독 최근에 와서야 시티즌 마케터에 대해 주목하게 된 것 역시 바로 블로그로 대표되는 참여 구조가 마련된 데 힘입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람들이 메시지다'는 슬로건은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잘 요약해 주는 말인 것 같다.

이 책은 커뮤니케이션과 마케팅의 전통적인 개념이 평범한 시민들인 시티즌 마케터들에 의해 민주화되고 있는 현장을 소개한다.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이런 사례들은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 감미료 구실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내고 있는 것 같다.

(벤 맥코넬-재키 후바 지음/ 우병현 옮김, 미래의 창 1만2천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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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송희일 감독'이란 분이 성난 네티즌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는 모양이다. 영화에 그닥 관심이 없는 나로선, 이송희일이란 이름부터 낯설기 그지 없었던 터라, "그냥 난리들인가보다" 생각하며 넘어가려 했다. 게다가 (작품성의 높고 낮음을 떠나) '디워' 역시 내 취향의 영화는 아닌지라, 처음엔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네티즌의 공세는 예사롭지 않은 모양이어서, 지금 이송희일 감독은 '사이버 테러'에 가까운 공격을 무차별적으로 당하고 있다. 이송희일 감독의 블로그는 이미 접속자 폭주로 난장판이 된 지 오래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논쟁과 비평 정신이 사라진 사이버공간'이란 말을 다시금 되뇌이게 된다. (아,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 사실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비평과 논쟁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사이버공간은 현실 공간의 확장이라고 해도 크게 그르지 않다.)

개인적으로 심형래 감독의 영화를 본 적은 없기에 뭐라고 덧붙일 말은 크게 많지 않다. 하지만 여기 저기 올라온 관련 글들을 종합해 보면 '스토리텔링'이란 측면에서 '디워'가 이뤄낸 성과는 그다지 놀라운 수준은 아닌 듯 하다. 이 부분은 예인 님의 '이송희일 감독의 디워 비평에 덧붙여'란 글 이 잘 지적해 주고 있다.

<디 워>를 옹호하는 사람들조차 이 영화의 예술로서의 가치보다 상품으로서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700억의 투자(investment)와 미국에서의 1500개 개봉관 확보, 이조차 거짓말로 점철된 마케팅의 일환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만, 여하튼 이런 것들은 영화의 내적 가치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상품화된 영화가 얼마나 잘 팔려나갔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고, 이런 면에서 현재 <디 워>를 상징하는 외피는 문화적이라기보다 자본주의적입니다. CG의 발전과 '우리 기술'을 논하는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기술은 문화의 일부라기보다 산업(industry)의 일부로 보아야 타당합니다.

'디워' 얘기는 지난 해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개봉될 무렵부터 들어왔다. 한국적 CG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영화로 기대를 모아왔던 작품이다. 실제로 많은 언론들도 심 감독이 LA에서 탱크를 동원해 영화를 찍을 때부터 '디워' 소식을 심심찮게 전해 왔다.

물론 이런 심형래 감독의 열정은 충분히 인정한다. 그리고 그 '열정'에 대해 "그 놈의 열정 얘기 좀 그만해라. <디워>의 제작비 70억이면 맘만 먹으면, 난 적어도 350개, 혹은 퀄리티를 높여 100개의 영화로 매번 그 열정을 말하겠다"는 이송희일 감독의 비판 역시 다소 서툰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다소 서툴긴 했지만, 뭐 공식적으로 언론에 발표한 것도 아니고, 자기 블로그에 올린 글인데, 그 정도야 허용되는 것 아닌가? 이송희일 감독이 좀 더 냉정하게, '격식을 갖춘 비평'을 했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뭐 그 정도 비판은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것에 대해 갖은 욕설로 화답하는 게 과연 '네티즌들의 자유'란 말로 허용되는 것일까?

이 사건과 함께 최근의 '디워' 공방을 보면서 아쉬운 것이 바로 '진지한 비평'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디워'의 외적 풍요로움과 화려함에 대한 이야기보다, 영화 작품 '디워'의 완성도에 대한 진지한 비평 말이다. 또 개봉 ** 일만에 몇 백만 관객 돌파했다는 '뻔한' 영화 기사보다, 이 영화의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아쉬운 지에 대한 좀 더 진지한 비평 말이다.

'디워'와 '화려한 휴가' 등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모처럼 한국 영화가 힘을 좀 쓰고 있다. ('디워'가 국적 논란에도 휘말려 있는 모양이니, 이 부분 역시 '한국 감독이 만든 영화'로 바꿔놔야 할 듯하다.) 좋은 일이고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한국 영화를 살려야 한다는 '애국심'이 지나쳐, 국산 화제작들에 대한 진지한 비평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외적 권위를 뛰어넘을 수 있는 혜안. 그리고 사랑하기에 더 꼼꼼한 비평의 칼날을 들이댈 수 있는 과감함. 이런 것들이 생산성 있는 비평과 논쟁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 아닐까? 그런 점에서 '디워'와 '이송희일 감독'을 둘러싼 소모적인 공방은, 다시금 생산적인 토론문화 실종에 대한 아쉬움을 진하게 곱씹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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