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기자클럽과 블로터닷넷이 공동 주최한 '2007 블로그 미디어 포럼' 행사에 발표자로 참여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분들이 준비한 행사인지라, 발표 자료를 준비하면서도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꼭 친구 결혼식 축가 순서를 배정받은 느낌이었다.(참고로 나는 한번도 결혼식 축가를 불러본 적이 없다. 적어도 내 노래 솜씨를 아는 사람은, 축가는 고사하고, 중창단에 참여하는 것도 꺼릴 것이다.)

"잔치 분위기에 누가 되면 안될텐데, 뭔가 의미 있는 얘기를 해야 할텐데."란 생각이 계속 나를 괴롭혔다. 발표 시작하기 직전까지 긴장을 했던 것도 이런 부담감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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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블로터닷넷]



어쨌든 행사는 '잘' 끝났다. 나는 '대화의 복원'이란 관점에서 블로그 미디어의 의미에 대해 얘기했다. 이건 내가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하버마스의 공론장과 블로그를 한번 연결해보자는.

'뉴스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지금 우리가 접하는 방식. 즉 기자들이 기사를 쓰고 독자들이 일방적으로 읽는 방식이 절대 진리는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하버마스가 '공론장(public sphere)'이라면서 그리도 감탄했던 18세기의 살롱, 카페 문화를 지탱한 것은 바로 대화였다.

하버마스가 정리한 공론장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위계질서가 없었다. 한 인간으로서 대등한 자격을 갖고 서로 토론에 임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발화자의 신분이 아니라, 내용에 따라 토론의 향방이 결정됐다. 지금이야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귀족 주도 사회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건 거의 혁명이다. (그 당시 평민이었던 소설가 스탕달이 살롱 문화를 통해 스타로 떠올랐다는 것은 굉장히 유명한 이야기다.)

둘째, 사실상 토론의 성역이 없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그 동안 교회와 국가의 권위로 보호받던 많은 주제들에 대한 토론과 공방의 여지가 생기게 됐으며, 그 역할을 담당한 것이 바로 커피하우스와 살롱이었다.

셋째, 토론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개방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공중들은 토론하면서 자신의 폐쇄성을 벗어던지고 대중 속으로 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이날 발표한 내용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바로 이런 것이다. 신문이란 대중매체가 등장하면서 뉴스에서 실종됐던 대화가 블로그를 통해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게 됐다는 것. 그런 점에서 언론이란 관점으로 접근할 경우엔 블로그가 바로 21세기의 공론장이라는 것. 그런 점을 주목하자는 게 내 발표의 요지였다.

발표를 끝내면서 "블로그는 그만 잊자. 사실 블로그가 별거냐?"고 얘기했는데. ㅎㅎㅎ. 내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했는 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난 웹 2.0이니, 롱테일이니, 하는 '용어들의 홍수'를 굉장히 싫어하는 편이다. 블로그 역시 용어들의 홍수 속에 빠져버리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서명덕 님께서 '블로그는 기성 뉴스에 없던 대화 복원한 것' 이란 제목으로 발표 요지를 잘 정리해준 것 같다. '까칠한' 블로거들이 던질 예리한 비판이 두렵기도 하지만, 그 또한 '생산적 대화'라고 생각하기에 '묘한 기대감'이 생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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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블로그 이사를 했다. 꼬박 2년 6개월 가량 거주했던 네이버 블로그를 버린 것이다. 물론 아쉬운 마음이 적지 않았다. 400개가 넘는 포스트를 그냥 버리고 나오면서, 빚쟁이들에 쫓겨 몸만 빠져나오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난 그 모든 걸 버리고 이사를 했다. 뒤돌아보지도, 미련을 갖지도 않기로 했다. 200명에 육박하는 이웃들에게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공지문 하나 달랑 남기고 떠나 버렸다.

왜 그래야 했을까? 내게 참 많은 선물을 주었던 네이버 블로그를 왜 버려야만 했을까?

1. 소통을 막는 폐쇄된 구조가 갑갑했다

처음 블로고스피어에 발을 디딜 땐 온 몸에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하루 하루 재산을 축적해 나가는 기분이었다. 제대로 된 홈페이지 하나 만들어 본 경험이 없는 내게, 블로그는 신천지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조그마한 집을 지을 때나 느낄 수 있는 기쁨이었다. 집이 커지고, 덩달아 나의 의식도 성장하면서, 네이버 블로그가 새로운 만남을 갖는 덴 참 불편한 구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게 갈수록 견디기 힘들었다.

비유하자면 네이버는 '수도권 지역' 쯤 될 것이다. 대한민국 네티즌 중 상당수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만큼 넓게 광대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엔 수도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에서 올라오는 사람들 역시 정겨운 이웃이다.

네이버 블로그에선 바로 그 기쁨을 누리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힘들여 장마한 아파트를 내버려두고, 그냥 맨 몸으로 뛰쳐 나오기로 했다.

나는 블로그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가 바로 '자유로운 소통 구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네이버에선 '소통'을 만끽하기 힘들었다. 그들은 '네이버 안에서 평화를' 누리라고 강요했다. 난, 그게, 견딜수가 없었다.

2. 링크보다는 펌질을 방조하는 정책이 싫었다

네이버 블로그는 초보자들에겐 참 좋은 공간이다. 특별히 쓸 거리가 없어도 블로그 하나 쉽게 운영할 수 있다. 각종 기사 뒤에는 '블로그에 퍼담기' 단추가 있고, 블로그 포스트에도 역시 '스크랩' 기능이 있다.

나도 처음엔 '스크랩'이 좋았다. 내 블로그의 글들이 팔려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꽤 흐뭇한 기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쉽게 '펌질'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원 텍스트에 대한 논의가 실종되어 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공들여 쓴 글이 무차별적으로 도둑맞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누가 내 글을 스크랩해 가는 것이 기분 나빠서가 아니다.

'아무런 언급 없이' 그냥 퍼담기만 하는 분위기가 짜증이 났기 때문이다. 최소한 왜 퍼담았는 지,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 마디라도 할 수 있는 구조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부터 나의 불만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결국은 "네이버 블로그에서 담론이 실종된 것은 스크랩 기능 때문이다. 따라서 네이버는 토론과 담론을 말살하고 있다"는, 비논리적인 결론까지 도달하고 말았다. 물론 나도 안다. 이게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하지만 내 지적이 전혀 근거없는 것만은 아니라는 믿음 또한 갖고 있다.

3. 블로거를 배려하지 않는 '그들'이 싫었다

네이버는 좀 이기적이다. 그들은 고객들의 UCC에 힘입어 엄청나게 성장했으면서도, 정작 UCC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에는 지나치게 인색하다. 무엇보다 블로그의 구조 자체가 사용자보다는 네이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게다가 최소한의 수익 배분에 대한 고민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아예 하지도 않고 있다. 이건 내가 블로그를 해서 떼돈을 벌겠다는 미련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난 나를 잘 안다. 내가 블로그에 광고를 해서 돈을 벌 재능도, 시간도 없다는 것을. 하지만 '안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내가 이번에 블로그를 옮기면서 '구글 애드센스'를 단 것은 그런 반발심도 작용했다.

웹 2.0이란 거창한 게 아니다. 서로 함께 하고, 고객들을 최우선에 두려는 마음이 바로 웹 2.0이다.

4. 네이버 블로그가 나쁘기만 할까?

그건 아니다. 처음 시작할 땐 정말 좋고, 편하다. 나도 그랬으니까. 나처럼 '심각한 기계치'인 사람들에겐 블로그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데 더 없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블로그에 익숙해지고, 조금씩 눈이 뜨일수록, 네이버 블로그는 사람을 갑갑하게 하는 구조다. 그건 네이버 블로그가 양적으로는 엄청나게 성장했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전혀 변신하지 못했다는 말과도 통한다.

물론 나같은 보통 블로거 하나 떠나는 게 이슈가 될 리는 없다. 하지만 네이버 블로그 운영자들은 혹시 나처럼 갑갑증을 느끼는 사람이 없는지 한번쯤 돌아봐야 할 것이다.

또 지금보다는 좀 더 소통되고 열려야 한다. 그들을 거대한 제국으로 만들어준 고객들에게 조금 더 애정을 보여주길 간절히 소망한다.

"블로그가 블로그다워야 블로그지." 그렇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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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님과 떡이떡이님이 기자 블로그에 대해 좋은 글들을 올려주셨다. 그들의 주장에 대체적으로 공감한다는 전제 하에 몇 마디 덧붙인다.

몇 년 전 주요 일간지들이 기자 블로그 제도를 도입한다고 했을 때, 난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란 얘기를 한 적 있다. 왜 그런 얘길 했을까? 내가 특별한 통찰력이 있어서? 절대 아니다. 기자 블로그 제도를 운영해본 경험이 있어서? 그것도 아니다.  

당시 기자 블로그 제도를 도입하려고 했던 대다수 신문사들은 기자들에게 '블로그'라는 또 하나의 '지면'을 메울 것을 강요했을 뿐, 본지와의 연결고리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었다. 종이신문에서 블로그로 가는 통로는 열려 있었지만, 블로그에서 종이신문으로 향하는 정보 통로는 완전히 막혀 있었다.  

여기서 잠시 시간을 몇 년 전으로 되돌려 보자. 내가 전에 몸담고 있던 신문사에서 기자들에게 인터넷신문에 올릴 기사를 작성할 것을 적극 독려한 적 있다. 당시 연합 기사 쓰는 문제 때문에, '골치 아플 바에야 아예 자체 조달하자'는 생각에서 출발한 발상이었다.

제법 파격적인 '당근'도 내걸었다. 이를테면, 주요 기사를 연합보다 30분 정도 먼저 출고할 경우엔 '온라인 특종'으로 인정해 주기로 했다. 기자들에겐 '건당 얼마'식의 당근보다는 매력적인 인센티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전략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결국 한 달인가, 두 달만에 백기를 든 기억이 있다.

2년 전 쯤 반짝했던 기자 블로그는 몇 년 전 내가 경험했던 것보다 '인센티브'가 더 적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블로그의 글이 신문 지면에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경로가 (내가 알기론) 거의 없었다. 기자들에겐 '(어느 정도의) 돈'보다는 자신의 기사가 널리 인정받는 것이 더 매력적인 유인 요인이란 점을 감안하면, 당시 신문사들이 경쟁적으로 도입했던 기자 블로그 제도는 애당초 경쟁력을 가질 수 없는 구조다. (하루 기사 막기로 버거운데, 블로그까지 메우라니. 그것도 전혀 기사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그렇다면 기자 블로거는 의미가 없나?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기자 블로거가 의미 없다고, 혹은 가능성 없다고 볼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인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답답하긴 하지만, 충분히 해볼만한 시도라고 본다. 기자 개인 차원에서 드넓은 대지를 한번 개척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힘들다. 하루 하루 기사 막는 것도 버거운데, 무슨 열정이 남아 있어서 블로그를 운영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건 단순히 취미의 문제가 아니다. 좀 심하게 얘기하면, 장기적으로 신문 기자로 계속 경쟁력을 유지하느냐 못하느냐는 생존의 문제다. 게다가 블로그 공간에서 독자들과 소통하면서 부가적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 내지는 아이디어도 무시못할 매력 덩어리다. (조선일보 유용원 기자가 대표적이고, 또 서명덕 기자 역시 소통이란 측면에서 상당히 앞서 나가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기자 개인 차원에서는 블로그를 활용할 방안에 대해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조직이 해결해주면 좋겠지만, 조직이 가만 있다고 해서 그냥 넋 놓고 있을 문제는 아니다. (나중에 조직이 평생 직장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앞으로 기자들도 개인 브랜드가 상당히 중요한 시대가 될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사실 우리는 그 동안 기자 개인보다는 조직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가 어떤 기자이냐는 점 보다는, 어느 매체의 명함을 갖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미국도 다르진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처럼 심하진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론 개인 브랜드가 더 중요하게 될 것이다. 왜 그럴까? 독자들의 뉴스 소비 행태가 '건별 소비' '맞춤형 소비' '주제별 소비'로 바뀌어갈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뉴스 시장 역시 음반 시장 쇠퇴 혹은 변화 과정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이런 추세에 불을 지핀 것이 포털이었고, 앞으로 더 강화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 RSS와 태그 같은 소품들이다. '웹 2.0'이란 식상한 얘기를 들먹이지 않더라고, 이건 그스를 수 없는 추세다.

그럼 기자들은 어떻게?
 
그래서 난 지금부터 변화될 환경에서 살아남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아니, 미래의 일도 아니다. 지금 포털 뉴스 코너에 가보라. 스포츠 섹션 같은 곳에서는 벌써 개인 브랜드가 구축되어 가고 있다. 특정 기자들의 기사에는 열혈팬들이 따라다닌다.

15년 쯤 전에 나는 고종석 기자의 팬이었다. 그로부터 5년쯤 전에는 김훈 기자('칼의 노래'를 쓴 그 김훈이다.)의 글을 읽기 위해 한국일보를 구독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난 한국일보에서 김훈 기자의 기사(더 정확하게는 '문학의 고향'(?)이란 시리즈물) 말고는 읽은 기억이 별로 없다.

블로그 공간에서는 이런 상황들이 더 잘 일어나지 않을까?

그만님이 지적한 것처럼 언론사 관계자들은 기자 블로그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여러 가지 고민을 폭넓게 해야 한다. 하지만 기자 개인 차원에서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변신을 꾀해야 한다. 그리고 그 첫 출발점은 '블로그 공간을 통한 독자와의 직접 소통'과 '개인 브랜드 구축하기'가 될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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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ging helps you better understand your audience. The hallmark of any blog is the ability for readers to post comments to what you write. By having this regular conversation with readers, you learn what hits and what misses.

For newspapers that are rapidly becoming irrelevant to a growing number of people, this is a huge issue. If you write post after post that garners no response, then it ought to be telling you something. In print, we’ve been able to kid ourselves for decades that every reader is savoring every word of our prose. Online, it’s painfully clear what readers do and don’t care about.



요즘 블로그와 저널리즘의 결합 문제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위의 글은 Chris Cobbler 란 사람이 쓴 'Why journalists should blog' 중 일부다. (원문은 www.greeleytrib.com/article/20070220/BLOG001/70220004로 가면 된다.)

독자들을 알고, 그들과 대화를 한다는 것. 이것이 정말로 중요한 것 같다. 이를 위해선 독자들과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커튼을 걷어내야만 한다. 그러다 보면 때론 '알몸'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두려워해선 안된다. 중요한 것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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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 매달 발간하는 <원자력문화> 2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소통'이란 테마 기획에서 블로그를 활용한 소통에 대해 쓴 글입니다.

마가렛 미첼(Margaret Mitchell)은 작가가 되기 전부터 ‘뭔가’를 쓰는 것을 좋아했다. 한 때 기자 생활을 하다가 다리 부상으로 집에서만 뒹굴어야 했던 마가렛 미첼에게는 ‘글쓰기’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는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쓰고 또 썼다.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존재였던 마가렛 미첼이 원고지에 써 내려간 글들은 훗날 눈 밝은 뉴욕의 한 출판사 편집자를 만나면서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다.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진정한 주인공, 나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세상에 알려지는 과정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의한 것이다. 비록 뛰어난 작품이었지만 출판사 관계자가 관심을 기울이기 전까지는 세상에 그 존재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철저하게 무명인 미첼이 세상을 행해 발언하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범위는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던 것이다. 좀 더 넓은 세상을 품기 위해선 거대한 네트워크를 가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인터넷, 특히 미니홈피와 블로그가 일상 생활 속으로 파고 들면서 소통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젠 누구나 세상을 향해 힘껏 소리칠 수 있게 됐다. 대형 미디어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불특정 다수에게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평범한 개인들이 초대형 메가폰을 하나씩 선물로 받은 격이라고 해도 크게 그르지 않을 정도다.

예를 들어보자. 2006년 여름 아마추어 기타 연주자인 임정현 씨는 자작 동영상 한 편으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을 수 있었다.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을 전자기타로 연주한 장면을 찍은 동영상을 UCC(이용자 제작 콘텐츠) 전문 사이트인 유튜브에 올린 것이 ‘대박 신호탄’이 됐던 것이다. 유튜브에서 임 씨의 동영상이 1000만 건이 넘는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화제가 되자 뉴욕타임스까지 ‘신기의 연주’라면서 극찬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지난 해 말 인터넷 세상에서 화제가 됐던 남아프리카 공화국 AIDS(후천성 면역 결핍증) 환자 돕기 모금 운동 역시 평범한 네티즌의 아이디어가 큰 파장을 불러온 경우다. 남아공에 거주하는 심샛별이란 블로거가 처음 AIDS로 부모를 잃은 남아공 고아들을 돕자고 올린 제안이 네티즌들의 반향을 얻으면서 결국 오프라인 공간의 자선 바자회로 이어지게 됐다.

예전 같으면 방송이나 신문사에서나 가능했던 모금 운동을 평범한 블로거가 주도했던 것이다. 남아공 AIDS 환자 돕기 바자회 소식을 전해줬던 국내 언론들은 특히 ‘블로거의 힘’에 큰 관심을 보였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이 지난 해 연말 ‘2006년 올해의 인물’로 ‘당신(You)’을 선정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던 것도 바로 이런 변화 때문이었다. 인터넷 공간에서 열심히 UCC를 만들어 낸 평범한 당신들이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진정한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타임은 또 UCC의 산실인 유튜브를 ‘올해의 발명품’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세상과의 소통을 한층 수월하게 해 준 변화

그럼 왜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됐을까? 사람들의 자기 표현 욕구가 갑자기 강해진 때문일까? 물론 기술이 발달하면서 아마추어들도 손쉽게 동영상을 비롯한 각종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더 근본을 따지고 들어가면 블로그와 미니 홈피 같은 개인 매체들이 ‘세상과의 소통’을 한층 수월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운영해 본 사람들은 알 알겠지만, 블로그나 미니홈피의 강점은 링크에서 나온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이들이 자연스럽게 인맥을 형성해 나가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블로깅의 재미다. 요즘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RSS나 트랙백, 태그 같은 것들도 세상과 나를 연결해 주는 소중한 기술들이다. 이런 기술을 바탕으로 자신과 비슷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블로그, 미니홈피가 주는 재미와 감동이다.

특히 학연과 지연 같은 지리적 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오프라인 공간의 소통과 달리 블로그 공간에서는 이슈를 중심으로 모일 수 있기 때문에 때론 더 강한 결속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시대의 열린 구조가 가져다 준 최고의 선물

미국의 디지털 문화 전문 잡지 ‘와이어드(WIRED)’의 편집장인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은 평범한 다수가 발휘하는 힘을 ‘롱테일(long tail)’이란 멋진 말로 표현해 냈다. 블로그 공간에서 긴 꼬리는 하루 방문자 수 100명에도 채 못 미치는 무명의 블로거를 의미한다. 하지만 그들이 모여서 내는 ‘롱테일 파워’는 때론 세상을 뒤흔드는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물론 롱테일 파워의 원천을 이루는 것은 바로 UCC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UCC는 인터넷과 블로그라는 네트워크를 타고 순식간에 세상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그 이전까지 일반 사람들이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남기기 위해서는 출판사나 신문, 방송 편집자들의 눈에 들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이 흘러가는 기본 틀에서 벗어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세상의 법칙에 자신을 맞추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블로그를 비롯한 각종 1인 매체들은 바로 그 기본 공식을 바꾸어버렸다. 이제는 평범한 당신이 직접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당신’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던 주류 매체들도 이젠 달라지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요즘 들어 각종 신문과 방송들이 앞다퉈 UCC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도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뒤지지 않기 위한 몸놀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인 김수영은 일찍이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고 노래했다. 그는 이 시 구절을 통해 세상을 향해 발언해야 할 시인들의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당시만 해도 세상을 향해 뭔가 발언하려면 시인이나 소설가처럼 특별한 재능이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 기침을 할 수 있게 됐다. 김수영의 시 구절을 빌자면 이젠 누구나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을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그게 블로그와 웹 2.0으로 대표되는 요즘 시대의 열린 구조가 가져다 준 최고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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