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말까지 특목고 생각도 하지 않던 딸 아이가 10월들어 갑자기 외고 입학시험을 치겠다고 선언했다. 8월엔 오케스트라 캠프, 9월말엔 2주에 걸쳐 미국 연주 여행까지 다녀왔으니, 도무지 입시 준비와는 거리가 멀었던 터였다. 게다가 외고 준비생들은 필수적으로 간다던 학원 한번 가지 않던 아이 아니던가?

그 얘기를 듣자마자, 난 말렸다. 그건 시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속으론 떨어지고 난 뒤 겪게 될 마음의 상처를 걱정했다. 

조금은 황당한 우리 딸의 입시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옆에서 지켜보는 내 눈에도, "저런 식으로 시험쳐서 될까?" 싶었다. 떨어지고 난 뒤 절망할 아이를 생각하며, 그저 조마조마.

지난 화요일 시험 치고 나오면서 "영어 만점 같아요"라며 연신 싱글벙글할 때도, 불안하기만 했다. 저런 식으로 희망을 가지면 안 될텐데, 실망이 더 클텐데, 란 마음. 그게 부모 마음이었다.

어쨌든 3주 동안 벼락치기로 준비했던 신이가 오늘 외고에 합격했다. 수학이 무지 어려웠던 반면, 영어 독해와 리스닝 시험은 완벽하게 쳤다는 데. ^_^ 학교에서 성적을 공개하지 않으니, 사실 여부는 알 수 없고. 단기 속성으로 합격하는 딸 아이의 잠재력 하나는 높이 평가해줘야 할 듯. 물론지난 3주 동안 옆에 붙어 앉아 아이의 공부를 도와줬던 아내의 노고도 빼놓을 수 없다. 

합격 소식 듣고 도대체 외고 입시가 어떤가 싶어서 검색해 봤더니, 여름부터 온통 난리들이다. 외고 시험 대비한 맞춤형 학원들이 꽤 있는 모양이다. 

학원 근처에도 안 가보고, 덜컥 붙었으니 이 녀석이 기고만장해 할 것 같아 걱정이긴 하다. 평소에 해리포터, 나니아연대기를 비롯해 좋아하는 영어 소설들을 읽은 게(공부 삼아 읽었다기 보다는, 이야기가 재미 있어서) 도움이 된 것 같고, 아빠 졸라서 노트북 산 덕에 '의무감'으로 들었던 ABC 방송의 뉴스가 듣기 평가에 일조를 하지 않았을까?

녀석은 또 MP4 플레이어를 살 때도 영어 공부 핑계를 댔다. 영화를 다운받아 들어야 영어 듣기가 잘 된다나? (영어를 잘 하려면 문법책을 붙들고 있는 것보다는, 영어를 즐기는 게 훨씬 좋다는 건 나도 인정한다. 문법 책 속에 갇혀 있으면, 영어를 즐길 수 있는 경지에까지는 절대 도달할 수 없다.)

새 출발하는 녀석의 앞날에 축복을 가득 담아 보낸다.

PS.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 아니란 말에 힘입어 조금 '오버'했습니다. 양해하시길.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