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블로그와 SNS 2008.04.13 09:50
<빈 집>
            -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문득, 기형도의 시 <빈 집>이 떠올랐다. 요즘 내 블로그가 꼭 빈 집같은 느낌이 들었던 탓이다. 이것 저것 날 귀찮고 힘들게 하는 것들이 많아, 도무지 블로그 관리가 안된다.

그 중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역시 논문. 없는 시간 쪼개서 쓰려니 도무지 진도가 안 나간다. 게다가 번역. ㅠㅠ. <하이퍼텍스트 3.0>의 깊이에 압도당했다. 요즘. 1200매 가량 번역했는데, 아직 온 길의 두 배는 더 가야할 듯 하다.

그러다 보니 회사일과 대학 강의 등은 우선 순위에서 한참 밀려버린 느낌. (물론 실제로 밀어놨단 얘긴 아님. 당사자들, 오해 마시길. ㅎㅎ)

결국 블로그에 글 올리는 일은 6순위 쯤에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언제쯤 '빈집 증후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그건 나도 모르겠다. 주인장이 외면하는 통에 손님들마저 뚝 끊어져 버리니, 진짜 빈집 같아 으스스한 느낌마저.

책 선전 겸해서 보너스 샷 하나 더 추가한다. 블로그파워의 3대 원천 중 하나라고 강조했던 '링크'를 설명하면서, 엄청나게 오버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1980년대말 스물아홉이라는 젋은 나이에 요절했던 시인 기형도는 '빈 집'이라는 아름다운 시를 남겼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로 시작해 "그리운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란 멋진 문구로 끝나는 이 시는, 누구나 가슴 한 쪽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짜릿한 옛 사랑의 추억을 건드리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역시도 어디선가 빌어왔을법한 '빈집'이란 모티브는 그와 동시대를 살아갔던 많은 이들에게 짜릿한 문학적 감동을 선사했다.

시인 기형도가 죽은 지 몇해 뒤, 비슷한 또래의 소설가 신경숙은 '빈집'이란 단편소설을 한 편 썼다. 기형도 추모 작업의 일환으로 쓰여진 그 소설은 기형도의 시 '빈집'의 산문적 패러디였다. 신경숙이 '빈집'이란 소설을 썼을 때, 빈집을 모티브로 한 문학적 지형도에서 기형도와 신경숙은 서로 링크된 셈이다. 
                                                                  <블로그파워> 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