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인터넷신문이 막 각광을 받으면서 미국의 학자들 사이에 인터넷 언론인의 새로운 역할에 대한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오고갔다. 매체 융합 시대 언론인은 어떠해야 하는가, 란 제법 묵직한 담론들이 오갔던 기억이 난다.

당시 많은 학자들은 '멀티플레이어' 로 변신해야 한다는 지적을 했다. 이를테면 글을 쓰는 역할 뿐 아니라 정보검색사, 자료수집 분석가, 사이버 공동체 관리자, 평론가, 디지털 콘텐츠 프로듀서 등의 역할을 구비해야 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이야기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이런 글들을 읽으면서 그저 먼 나라 이야기로만 받아들였던 듯하다. 나 역시도 그 이후 한참 동안 여전히 글을 쓰는 것이 기자의 유일한 '일'인 것처럼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요즘 '기자의 위기'에 대한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확실히 위기인 것 같다. 새로운 패러다임과 구시대적 패러다임이 날카롭게 대립하면서, 새로운 시대 정신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다.

이런 위기의 시대, 과연 기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물론 여러 가지 처방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자가 죽어야 기자가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명제에서 앞의 기자는 '전통적인 관점에서의 기자'를 의미하고, 뒤의 기자는 '일반 명제로서의 기자'를 뜻한다.

이건 꼭 기자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매체 전체 차원에서도 뼈를 깎는 변신의 노력이 있어야 하리라고 본다.

물론 나는 '올드미디어 vs 뉴미디어'라는 이분법에는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특히 신문, 방송 등의 올드미디어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야기는 정말 싫어한다. 신문, 방송이 왜 올드미디어인가? 그리고 인터넷신문이 꼭 뉴미디어라고 할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미디어의 형태가 아니라, 그 미디어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시대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종이신문들도, 매체 융합 차원에서 새롭게 변신을 꾀하고, 또 그에 맞게 기자들을 변신시키고 있다면, 그들을 '올드미디어'로 폄하할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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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대학 프로젝트로 진행됐던 미래의 기자 모습. 모바일 저널리스트 웍스테이션으로 중무장한 기자의 모습이 이채롭다. 출처: http://graphics.cs.columbia.edu/projects/mars/ images/AR/ISWC99/LowWithHandheldAndUserBroad.jpg

다시 원래 얘기로 돌아가보자.

기자로서의 삶을 생각하면 참 암담할 적이 적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란 케케묵은 질문이 계속 엄습해 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런 고민에 직면해서, 지극히 비과학적인 대답이긴 하지만, 난 다시 한번 '기자가 죽어야 기자가 산다'는 말을 되풀이하고자 한다.

궁극적으로는 온, 오프라인을 융합한 종합 정보 미디어로 변신해야 하는 이 시기에, 여전히 펜(혹은 키보드)을 통해 나온 글만이 유일무이한 콘텐츠라는 생각을 빨리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거창하게 UCC 전략이니 뭐니 하고 떠들 필요도 없다. 그냥 독자들의 글도 중요한 콘텐츠란 생각을 하면 그만인 것이다. 괜히 UCC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어떻게 하면 독자들의 눈을 멀게 해, 그들에게 '우리가 함께 하고 있다'는 착시 현상을 줄 것인가를 고민하기 보다는, 정말 함께 한다는 마인드 변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다양한 방식으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빨리 가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초고성능 PC를 가지고 카드 놀이나 하고 있는 우를 범해서야 되겠는가?

그런 측면에서 신문 기자들은 PD들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들의 영상을 배우라는 게 아니다. 그들이 심층 진단 프로그램을 할 때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가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기자가 살고, 그 기자들이 몸담고 있는 매체들이 사는 길이다. 기자들이여, 우리 모두 죽자. 그렇게 함으로써 영원한 삶을 모색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