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처음 번역 작업을 시작했던 <하이퍼텍스트 3.0>이 다음 주 출간될 예정이다. 방대한 분량과 깊이 있는 내용 때문에 번역하느라 엄청나게 고생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 때문에 머리카락도 꽤 빠진 듯.)

나로선 처음으로 내는 번역서인 셈인데, 감회가 새롭다. 참 좋은 책을 번역할 수 있어서 좋으면서도 부담스러웠다.

어릴 적 머리카락 쥐어 뜯으면서, "역시 고전은 어려워"란 탄식을 하며 읽었던 만큼 책들이, 사실은 허술한 번역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좋은 책 잘못 번역해서 내놓으면, 인류 지성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ㅠㅠ 

번역과 관련해서는 최근 읽은 다음 구절이 가슴을 계속 찌른다. 나는 과연 어떤 쪽일까 생각해보게 만드는 글이기 때문이다. 

유려하고 가독적인 번역으로 이름을 날리던 페로 다블랑쿠르라는 번역가가 있었는데 메나쥐는 1654년경 페로의 번역을 이렇게 비판했다. “그의 번역은 내가 투르에서 깊이 사랑한 여자를 연상시킨다. 아름답지만 부정한 여인이었다.” 물론 여기서 겉모습이 아름답다 함은 가독성이 뛰어나고 매끄러워서 번역한 티가 나지 않는 번역을 말하며, 부정하다 함은 원문에 대해 충실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번역사 입장에서 볼 때는 참으로 신랄하고 가혹한 비판이 아닐 수 없다. ‘당신의 번역은 유려하고 아름답지만 원문에 전혀 충실하지 않으므로 좋은 번역이 아니다’라는 말을 수사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이후 ‘아름다우나 부정한 여인’이라는 표현은 가독적이고 매끄러우나 원문에 충실하지 못한 번역을 일컫는 말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여기서도 역시 충실성과 가독성이라는 두 가치는 공존하기 어려운 것으로 암시된다. 이향 <번역이란 무엇인가>, 32-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