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기형도를 신문 사회면에서 처음 만났다. 그의 돌연한 죽음을 알리는 짤막한 기사는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내게도 묘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몇 개월 뒤에 출간된 '입 속의 검은 잎'이란 시집을 서둘러 구입했던 것 역시 문학적 호기심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그보다는 요절한 젊은 시인이란 아우라에 강하게 끌렸던 것 같다.

그 때 이후로 시인 기형도는 내 필독서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1주기에 맞춰 나왔던 '짧은 여행의 기록'을 비롯해 5주기 추모문집인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그리고 10주기에 출간된 '기형도 전집'은 모두 내 서재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정거장에서의 충고'는 기형도 20주기 기념 문집이다. 고인의 문우들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아담하게 엮어낸 이 책에는, 스물 아홉 청춘에 삶의 시계를 멈춰버린 한 시인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그 사랑은 때론 '감정 과잉'의 혐의가 짙게 배어있다. 하지만 그만큼 그의 부재가 문학적 동료들에게 남긴 상처가 크다는 의미도 된다.

우리 시대의 글쟁이인 김훈은 "그가 선택한 죽음의 장소는 늘 나를 진저리치게 한다"고 썼다. 마침 그 무렵 부친상 중이었다는 시인 이문재는 "2009년 3월 초순은 혼자서 건너가기가 만만치 않다"고 소리친다.

2000년대의 젊은 평론가 한 명과 젊은 시인 4명은 자신들의 문학적 자양분 속에서 기형도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지를 털어놓고 있다. "1980년대의 열정에 들떠 낮에 박노해와 백무산을 읽었던 젊은이들이 밤에는 기형도를 읽었다"는 고백 속엔, 첫 사랑의 연인에게나 털어놓음직한 뜨거운 사랑이 배어 있는 듯하다.

이 외에도 성석제, 이영준, 원재길 등 그와 학창시절을 함께 했던 많은 동료들이 이번 문집에 참여했다.

루카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작가는 시대와 불화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그들의 삶에는 늘 새로움을 찾아나서려는 강한 욕망이 감추어져 있다.

기형도 역시 '빈집'으로 대표되는 공허함과 늘 싸웠다. 그가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질투는 나의 힘' 중에서)고 노래하거나, "그리운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빈집')라고 할 때, 그 목소리에는 시대와 어울리지 못하는 불편함이 담겨져 있다.

동년배, 혹은 후배 문학인들이 기형도에게서 받아들인 자양분 중 많은 부분들은 바로 이 지점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거장에서의 충고'는 기형도의 세례를 받았던, 혹은 그의 문학적 자질을 사랑했던 산자들이 '시인' 기형도에게 바치는 최고의 헌사라고 해도 크게 그르지는 않다.

(이 책 제목인 '정거장에서의 충고'는 기형도가 첫 시집의 제목으로 염두에 뒀던 것이라고 한다. 첫 시집 제목인 '입 속의 검은 잎'은 문학평론가인 김현이 붙인 것이다.)

기형도는, 살아 있었다면, 지금쯤 마흔 아홉의 중년에 다다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20년 전에 삶을 마감하면서 영원히 문학적 청춘에 머무를 수 있었다.

당시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와,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에겐 큰 슬픔을 안겨줬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그의 시엔 엄청난 '프리미엄'을 얹어주었다.

난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서 자신이 남겼던 시적 성과물 위에 몇몇 성과물들을 더했을 경우에, 지금보다 더 나은 평가를 받았을지를.

하지만 '정거장에서의 충고'를 읽으면서 시인 기형도가 남긴 유산이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우라'가 없는 시인에게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헌사를 남기진 않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