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팔자에 없는 잡지 디자인 고민을 했더니, 머리가 몹시 아프다. 그래서 잠깐 쉬는 틈을 타 오랜 만에 야구 얘기를 한번 써 볼까 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 프로야구에선 '마무리 고민'이 적지 않았다. 지난 해에도 마찬가지였다. 오승환이 든든하게 자리를 지킨 삼성과 손승락이 평년 성적을 낸 넥센을 제외한 나머지 팀은 확실한 마무리 부재로 고민했다.


올해 들어선 그 상황이 더 심해졌다. 무엇보다 오승환 마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나 기아 같은 팀들은 뒷문이 여간 부실한 게 아니다. 역전패를 밥먹듯 하고 있는 한화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러다 보니까 9회 한 이닝을 확실하게 막아줄 마무리가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리베라의 시즌 아웃으로 허전해진 양키스 뒷문 


자, 그럼 시선을 미국으로 한번 옮겨보자. 그것도 내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가장 큰 뉴스는 역시 1990년대 이래 뉴욕 양키스 제국의 뒷문을 든든하게 지켜줬던 마리아노 리베라의 시즌 아웃 소식이다. 9회는 자동으로 끝내줬던 리베라가 빠지면서 양키스의 뒷문이 조금 허전해진 느낌이 든다. 게다가 임시 마무리를 맡았던 로버트슨마저 이탈하면서 '양키스의 9회'는 앞으로 흥미진진한 롤러코스트를 기대해 볼 수도 있게 됐다. 


(탬파베이 있을 때 특급 마무리였던 라파엘 소리아노가 있긴 하지만, 대도시 뉴욕으로 간 뒤론 새가슴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사정은 보스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몇 년 9회를 책임졌던 조너선 파펠본이 필라델피아로 옮긴 때문이다. 최근 불안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올해 보스턴 경기를 보면 "구관이 명관"이었단 생각을 하게 된다. 그만큼 뒷문이 부실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탬파베이는 참 특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단 탬파베이는 '9회 한 이닝을 전담하는 공식 마무리'란 개념 자체를 별로 신통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단장부터 감독까지 같은 생각이다. "한 아닝을 막는 마무리에게 수 백만 달러를 쓰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공공연하게 떠벌릴 정도다. (얼마 전 내가 번역했던 '그들은 어떻게 뉴욕 양키스를 이겼을까'에도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일종의 집단 마무리 체제를 운영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렇게 하면서도 나름 시즌을 잘 이끌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0년엔 애틀랜타에서 라파엘 소리아노를 헐값에 데려와 리그 구원왕을 만들었다. 


한 해 뒤 탬파베이는 양키스에게 소리아노를 빼앗겼다. 돈 때문이다. 다들 탬파베이의 허전해진 뒷문 걱정을 했다. 그러자 지난 해엔 카일 판스워스란 듣도 보도 못한(?) 선수를 영입해 9회를 깔끔하게 책임지도록 했다.


올 시즌이 시작되면서 또 다시 탬파베이의 마무리 문제가 이슈가 됐다. 판스워스가 부상 때문에 시즌 중반 이후에나 복귀가 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호엘 페랄타를 비롯한 여러 선수들이 마무리 후보로 거론됐다.


탬파베이는 이번에도 싼 값에 마무리 투수를 영입해 왔다. 지난 해 LA 에인절스에서 마무리로 뛰다가 셋업맨으로 밀려난 페르난도 로드니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큰 돈 들이지 않고 마무리 감을 채워넣고 싶었던 탬파베이의 필요와, 마무리 자리 빼앗긴 뒤 기분 상해 있던 로드니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진 덕분이다.


"공식 마무리 투수는 없다"는 탬파베이의 논리  


물론 로드니는 특급 마무리는 아니다. 그 부분에 대해선 대부분의 야구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오죽하면 지난 해 신인에게 마무리 자리를 빼앗겼을까? 그리고 탬파베이가 그런 선수를 영입해 마무리를 맡기는 것에 대해 그다지 놀라워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탬파베이 단장이나 감독은 전문 마무리란 개념에 대해 그다지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탬파베이 팀의 조 매든 감독은 가장 구위가 좋은 선수를 9회만 전담하게 하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7회든, 8회든 가장 심각한 위기 상황이 될 때 그 선수를 쓰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리베라 같은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면 이런 태도를 보이진 않을 것이다. 문제는 리베라 급 선수를 영입하려면 돈이 엄청 든다는 점이다. 그리고 탬파베이 같은 가난한 팀에겐 한 이닝 막아줄 선수에게 거액을 투자할 여력이 없다. 그러고 나면 매일 출전할 선수를 제대로 꾸리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금까지 로드니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경이롭기 그지 없다. 오늘 토론토 전에서 9회 한 점차 리드를 깔끔하게 마무리하면서 11세이브 째를 올렸다. 평균자책점도 0.5점 수준에 불과하다. 이 정도면 전문 마무리 못지 않은 성적이다. 


탬파베이 지역 일간지들은 당연히 이런 성적에 대만족한 상태다. 탬파 트리뷴은 로드니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는 기사를 게재했을 정도다. 하지만 탬파베이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여전히 조 매든 탬파베이 감독은 '공식 마무리'란 직함을 그다지 탐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모양이다. 


프로야구에서 불가사의 중 하나는 9회 마무리다. 멀쩡하게 잘 하던 선수들도 9회 마무리를 맡겨놓으면 버벅대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표적인 게 몇년 째 마무리 고민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LG다. 미국 프로야구 뉴욕 양키스 역시 리베라가 시즌 아웃된 뒤 로버트슨이나 라파엘 소리아노 같은 선수에게 맡겨봤지만 신통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7, 8회는 잘 던지다가도 이상하게 9회를 맡기기만 하면 불질을 해댄 때문이다.


과연 야구에서 9회가 의미하는 건 뭘까? '한 이닝 마무리'는 호사스런 개념일까? 아니면 그 팀에서 가장 구위가 좋은 선수에게 9회를 맡겨야만 하는 걸까? 


뉴욕 양키스를 비롯한 많은 팀들은 '확실한 9회 마무리'를 잡기 위해 많은 돈을 쓴다. 반면 탬파베이는 현대 야구에서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9이닝 전담 마무리' 개념을 시큰둥하게 받아들이면서도 늘 괜찮은 마무리를 키워낸다. 과연 어떤 게 더 효율적인 전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