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IT 언론을 매일 접하면서 부러운 게 딱 두 가지가 있다. 엄청나게 넓은 시장이 그 첫번째요, 작지만 강한 미디어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그 두 번째다. 물론 두 번째는 첫 번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부럽다. 


대충 꼽아봐도 만만찮은 IT매체들이 상당히 많다. 테크크런치, 매셔블, 리드라이트웹에다 올싱스디지털까지. 엄청나게 쏟아져나오는 다양한 IT 소식들을 개성 있게 전해주는 사이트들이 적지 않다.


요 몇 년 미국 IT 저널리즘 지형도를 보고 있노라면 춘추전국시대나 스타워즈 생각이 난다. 그만큼 흥미진진하다. 어떤 사이트가 무섭게 떠오른다 싶으면, 이내 다른 사이트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절대 강자가 없는 구도. 그러면서도 늘 새로운 강자들이 등장하는 구도. 그래서 그 시장을 바라보는게 참 재미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차에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발견했다. 세이란 잡지에 실린 'Rise of Tech Bandits'란 기사다. 스타워즈를 연상케하는 화려한 인포그래픽까지 곁들인 기사다. 그 바닥 얘기 잘 모르면 쉽게 쓰기 힘든 명품 기사다. 



개인 브랜드 영향력 확대, 그리고 기술인력 중요성 증가 


자, 그럼 이 기사를 중심으로 해서 내가 생각하는 IT언론 얘기를 한 번 해보자. 아니, 더 정확하게는 소셜 미디어 시대 저널리즘이 어디를 향해 가야하는 지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내가 처음 IT 외신 기사를 쓸 때 대세는 씨넷이었다. 그런데, 요즘 씨넷은 최신 트렌드에서 한 발 비켜 선 느낌이 든다. 최근 몇 년 사이엔 테크크런치와 엔가젯, 기즈모도 같은 사이트들이 대세였다. 매셔블 역시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테크크런치와 매셔블은 모두 2005년에 첫 선을 보였다. (매셔블의 성공 비결은 CNN과 합병 앞둔 매셔블 창업자 피터 캐시모어를 참고할 것.)


한 해 뒤인 2006년에는 내가 좋아하는 기가옴을 비롯해 새너제이 머큐리 뉴스 출신인 맷 마샬이 만든 벤처비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2003년 등장한 리드라이트웹은 세이미디어에 넘어간 뒤 지금도 만만찮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IT붐이 한창일 때 잘 나가는 애널리스트였던(그래서 IT 붐 조장의 주범이란 비판을 들었던) 헨리 블로짓이 운영하는 비즈니스인사이더 역시 차별화된 보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엔 또 다시 무서운 신예가 등장하고 있다. 지난 해 11월 첫 선을 보인 더버지다. 더버지는 지난 3월 월 순방문자 수가 650만 명에 이르면서 IT 은하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페이지 뷰도 3천만 수준. 불과 6개월 남짓한 사이트 치곤 엄청난 성장세를 보여준 셈이다. 


도대체 이런 지형 변화를 몰고 온 요인은 뭘까? 세이미디어가 'Rise of Tech Bandits'에서 크게 두 가지를 들고 있다.


하나는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힘의 균형추가 개인 브랜드 쪽으로 치우치게 됐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내가 몇 년 전부터 줄기차게 주장해 온 얘기다. (물론, 아무도 내 말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니, 억울하면 출세해야 한다. ^^ 후훗, 아시죠? 농담인 것.) 이젠 미디어보다는 뭔가 할 이야기를 가진 똑똑한 사람들이 훨씬 더 영향력을 행사하기 수월한 구조가 됐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뭔가를 출판하려는 회사들에겐 소프트웨어가 갈수록 더 중요해지게 됐다는 점을 꼽고 있다. 이게 뭔 말? 이라고 할 지 모르겠다. 이 것 역시 내가 계속 주장해 온 것이기도 한 데, 한 마디로 기사를 얼마나 잘 쓰고 특종을 얼마나 하느냐 못지 않게, 그렇게 쓴 기사를 어떻게 표출하며, 사이트나 기사 페이지 디자인을 어떻게 해서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느냐는 것이 더 중요해지게 됐다는 것이다.


이건 첫 번째 요인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플랫폼이 평평해지면서, 개별 미디어 브랜드 대신 개별 기사나 기자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록 이런 부분이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언론사라면 '편집국이 최고, 기자가 왕'이란 똥고집 부릴 시기는 지났다는 말씀이다. 이번 기사를 쓴 기자는 편집 파트 못지 않게 제품 엔지니어링 파트(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개발이나 기획 파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는고 강조하고 있다. 


더버지의 놀라운 성공 비결 


더버지가 단기간에 뜬 이유도 이런 상황 변화에서 찾고 있다. 이 기사를 쓴 기자는 더버지의 장점을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미디어 환경 변화를 잘 짚어주고 있다. 


일단 더버지는 콘텐츠 품질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동영상 리뷰는 경쟁자들을 압도한다. 물론 여기엔 뛰어난 맨파워가 한 몫했을 것이다. 실제로 더버지를 지탱하는 핵심 인력의 맨파워는 만만치 않다. AOL에 인수된 엔가젯의 핵심 인력들이었다. 이들이 그대로 더버지로 옮겨왔으니, IT 시장에 대한 이해와 미디어 감각은 남다르다고 봐야 된다. 


선택과 집중 역시 대단하다. 올 초 CES땐 아예 트럭 한 대를 빌려 편집국 전원이 라스베이거스로 날아갔다. 기사가 있는 곳에 역량을 집중하는 능력이 대단한 것이다. 하긴 괜히 한 줄 걸치는 기사는 굳이 더버지가 쓰지 않아도 된다. 그건 다른 곳에 가서 보라고 하면 되니까. 그리고 오프라인 공간에서 하는 토크쇼 역시 만만찮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좀 더 꼼곰하게 더버지를 관찰한 기자는, 앞에서 얘기했던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란 덕목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언론사 CMS를 잘 개발하는 문제부터 갖가지 차별화된 보도를 쉽게 처리할 수 있는 탬플릿을 신속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 아닐까?


더버지 보도의 차별점은 큰 이슈는 한꺼번에 쭉 보여주는 방식(오마이뉴스가 10년 전에 선보인 현장중계 기사 같은 컨셉)과 뛰어난 그래픽 솜씨라고 한다. 여기에다 제품 을 비교할 수 있는 엔진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해 각종 제품 기사도 깊이 있게 써낸다고 한다. 한 마디로 개발자와 콘텐츠 생산자 간의 시너지가 잘 발휘되고 있는 언론사라고 한다.


확실히 패러다임이 달라지고 있다. 이젠 전통적인 편집국 구조와 시스템, 그리고 고리타분한 현실 인식으로는 발 빠르게 변화하는 IT 뉴스 트렌드를 쫓아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매셔블, 더버지 같은 '강소 뉴스 사이트'들의 성공 사례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뉴욕타임스가 씨넷으로부터 기사를 공급받는다고 했을 때 대대적인 화제가 됐다. 그 때만 해도 그랬다. 전통 언론이 IT 전문 온라인 뉴스 사이트로부터 뉴스를 공급받는 게 엄청난 뉴스였다. 하지만 이젠 적어도 IT 뉴스에 관한 한 전통 언론의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다. 작지만 강한 온라인 사이트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도가 더 없이 부럽다. 


* 잡지 세이에 실린 기사는 멋진 편집과 뛰어난 인포그래픽이 돋보인다. 잡지 기사를 직접 감상하고 싶은 분은 세이미디어 매거진 사이트로 직접 방문하면 된다. 스타워즈 컨셉으로 접근한 인포그래픽도 감상할 만 하다. 참고로, 매셔블을 만든 피터 캐시모어는 사이보그에 비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