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트 디즈니는 1966년말에 세상을 떠났다. 저작권 보호 기간은 저자 사후 70년까지다. 그럼 각종 디즈니 캐럭터의 저작권은 언제 만료될까? (참고로 올해 헤밍웨이의 저작권 보호 기간이 끝났다. 이제 헤밍웨이 작품은 누구나 아무런 제약 없이 번약 출간해도 된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나중에 하기로 하자. 대신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법정 공방 얘기부터 먼저 해 보자. 지난 주부터 미국에선 텔레비전 방송사와 위성사업자가 열띤 공방을 벌이고 있다. '광고를 뛰어넘을 수 있는 디지털영상저장장치(DVR) 때문이다.


논쟁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위성방송사업자인 디시 네트워크. 이 회사는 2주 전 광고를 빼고 방송 콘텐츠만 저장할 수 있는 '오토 홉(Auto Hop)'이란 DVR를 선보였다. 어떤 방송을 녹화해서 나중에 볼 경우 중간 광고를 비롯한 각종 광고를 보지 않도록 해 준 것이다. 


그러자 폭스, NBC, CBS 같은 미국 지상파 방송사들이 바로 법적 조치에 나섰다. 이들은 지난 24일(현지시간) 저작권 침해 혐의로 디시를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에 제소한 것. 특히 폭스는 디시가 광고 없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을 라이선스 계약 위반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디시도 그냥 있지는 않았다. 다음 날인 25일 뉴욕 지역법원에 자사 DVR이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는 확인 판결을 요청했다.


미국 주요 방송사와 디시 간의 공방은 표면적으로는 신기술을 둘러싼 다툼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파고 들어가면 기득권을 지키려는 방송사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려는 위성방송사업자 간의 헤게모니 싸움이다. CBS 같은 미국 방송사는 스카이프 같은 모바일 인터넷 전화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 통신사들과 비슷한 상황에 내몰린 셈이다. 


저작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 명제에 대해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만은 않다. 그 이면을 파고 들어가보면,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이해 관계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서두에 던진 질문으로 한번 돌아가보자. 올 들어 헤밍웨이 소설이 여기 저기서 출간됐다. 헤밍웨이가 1961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지난 해 말로 저작권 보호 기간이 끝난 탓이다. 


이 계산대로라면 디즈니 캐릭터의 각종 저작권도 2016년말로 끝나게 된다. 그 때 이후엔 누구나 자유롭게 디즈니의 캐릭터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귀 밝은 사람들은 벌써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저작권 보호 기간을 늘리려는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저작권 보호 기간은 저자 사후 30년이었던 것이 50년, 70년으로 계속 연장돼 왔다. 저작권법이 디즈니 저작권 보호 기간이 만료되기 직전에 계속 개정된 때문이다. 따라서 앞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디즈니 저작권 보호 기간은 영원히 계속된다"가 맞다.


로렌스 레식 교수의 '코드'란 책에서 처음 이런 얘기를 읽고, 굉장히 분노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한다. 그 사이에 나이도 더 먹고, 또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좀 더 알아버린 때문이다. 비판 의식이 줄어든 대신, 현실 순응적인 자세가 좀 더 커져 버린 탓이다.


(제국주의적 이해관계가 저작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고 싶은 분은 레식 교수의 '코드 2.0'이나 '자유문화' 같은 책을 읽어보시길. 강추.)


미국 지상파 방송사와 위성사업자인 디시 간의 공방 역시 이런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이건 기술 발전이나 소비자 편의 향상 관련 이슈가 아니란 얘기다.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새로운 기술을 결사적으로 막으려는 집단 이기주의가 발현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디시의 오토 홉은 방송 당일엔 광고를 뛰어넘지 못하도록 코딩 돼 있다. 방송 다음 날 오전 1시부터 광고를 뺀 채 녹화, 재생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닐슨 자료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의 82%, 케이블 방송의 90%가 방송 당일 시청되고 있다고 한다. 그 동안의 시청 관행을 감안하면 방송사들이 그렇게 긴장할 부분은 아니란 얘기다. 


이번 공방을 지켜보면서 10여 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냅스터 사태'가 생각났다. P2P로 불렸던 이 기술은 불법복제의 온상으로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음반회사들은 불법 복제 때문에 자신들의 수입이 줄어들었다고 아우성을 쳤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음반회사들의 수입이 줄어든 것은 불법 복제 보다 기술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게 더 크다. '곡당 구매'란 소비자들의 욕구를 외면하면서 수요 창출에 실패했다는 얘기다. (참고로, 앞에서 소개한 로렌스 레식은 냅스터 사태 때 냅스터 쪽 변호인으로 활동했다.)


어쨌든 이번 재판이 어떻게 진행될 지 관심이 쏠린다.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추세만 지켜보면 지상파 방송사들이 이길 것 같다는 쪽에 100원 건다. 그 동안 논리보다는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이해 관계가 더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슬프다. 


(디시와 미국 지상파 방송사 간의 공방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알고 싶은 분은 내가 쓴 "TV의 미래일까, 제2의 냅스터 될까"란 기사를 눌러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