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뉴스는 '완성된 상품'이란 개념이 강했다. 그 얘긴, 뉴스 생산자와 소비자가 철저하게 분리된다는 의미였다. 당연히 뉴스 소비자들은 생산 과정에 참여할 여지가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독자 의견'을 통해 약간의 불만을 토로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과정으로서의 뉴스(news as a process)'란 개념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런 개념을 제기하는 대표적인 이론가는 제프 자비스다. (자세한 내용은 Product v. process journalism: The myth of perfection v. beta culture 참고.)


과정으로서의 뉴스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기자가 완성된 상품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과 함께 뉴스란 상품을 만들어나간다는 의미다. 


제프 자비스가 그린 'The new news process'란 그림을 한번 살펴보자.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이야기가 기사로 게재되기까지 적지 않은 과정을 거친다. 문제는, 출판으로 모든 과정이 끝나는 게 아니란 점이다. 그 뒤에도 독자들의 반응이나 지적 등을 반영해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일련의 과정으로 구성돼 있다. 




이를테면 이런 과정이다. 기자들이 취재를 해서 기사를 쓴다고 가정해보자. 좀 더 선진적인 기자들은 취재 과정에서 독자들과 적극 소통한다. 일종의 크라우드소싱 방식으로 다양한 뉴스 원을 수집한 뒤 기사를 쓴다. 하지만 딱 그 지점까지다. 전통적인 저널리즘의 기사 생산 과정은 이 단계에서 끝이 난다. 독자들을 참여시킨다고 해 봐야,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에 머문다.


그런데 '과정으로서의 뉴스'란 개념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뉴스란 완성된 상품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꾸준히 새로운 정보를 덧붙이며, 독자들이 잘못을 지적할 경우 그것도 바로 반영한다. 독자들과 함께 뉴스란 상품을 계속 만들어나간다는 개념인 셈이다.


이 지점에서 트위터는 어떤 역할을 할까? 여기서 일종의 '통신사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해 아랍 혁명 과정에서 트위터가 한 역할을 꼽을 수 있다. 당시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앤디 카빈(Andy Carvin)이란 NPR 편집자는 트위터를 잘 활용해 혁명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이런 역할에 대해 트위터가 통신사(newswire)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시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통신사' 역할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트위터 자체가 일종의 뉴스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기자는? 바로 뉴스 DJ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앤디 카빈 역시 자신의 역할을 뉴스DJ로 규정하고 있다. 


기가옴에서 이런 내용을 전해주는 기사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머리로는 100% 공감한다. 하지만 막상 실천이란 명제로 관심을 돌리면서 벽에 부닥쳤다. 내 한계는 딱 그 지점까지란 생각이 든 때문이다. 전통 언론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근본적인 혁신이란 명제 앞에선 늘 오그라드는 내 모습 때문이다. 


내가 석사과정에 막 입학하던 2000년 무렵. 당시 미국의 저널리즘 연구자들은 벌써 기자의 (전통적인)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지금 같은 모습을 고수할 경우엔 경쟁력 한계에 부닥칠 것이란 경고도 서슴지 않았다. 


물론 학자들의 주장은 관념적인 측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단순히 글쓰는 사람에 머무르지 않고, PD나 게시판 관리자와 비슷한 역할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주장엔, 나름 새겨들을 부분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젠 한 발 더 나간 주장들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저널리스트나 언론사가 절대적인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뉴스의 전통적인 개념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제프 자비스나 앤디 카빈이 주장하는 '과정으로서의 뉴스'란 개념을 과연 주류 언론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만약 적용하려고 한다면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일까? 당연히 가장 큰 걸림돌은 '독자 앞에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편집국 문화'일 것이다. 독자들을 과연 그 정도까지 믿을 수 있느냐는, 또는 과연 독자들과 평등한 관계를 맺는 게 가당키나 하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과연 우리는 '과정으로서의 뉴스'란 개념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소셜 미디어와도 맞붙어 경쟁해야 하는 언론사 입장에선 '완성품을 내놓는다'는 자존심까지 벗어던져야 하는 걸까? 질문은 거창한데, 막상 대답을 하려니 궁색하기 그지 없다. 언론이 위기 상황, 내지는 변혁기로 내몰리고 있는 건 확실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