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본능적으로 '경쟁'을 좋아한다. 유사 이래 스포츠가 인기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국가간 메달 경쟁이 올림픽의 기본 정신과는 한참 벗어난 것임에도 불구하고, 언론들이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메달 숫자로 순위를 매기는 것도 다 이런 본능에 충실한 때문이다. "올림픽은 원래 개인 경기다"는 건전한 문제 제기는, 늘 올림픽 때면 한번씩 나오는 소수 의견으로 치부된다.


언론이 선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보면 된다.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상품을 만들어야 잘 팔리기 때문이다. 장사만 생각하면 정말 훌륭한 접근 방식이다. 문제는 언론의 역할이 단순히 물건 잘 팔아먹는 데만 머물러선 안 되니 때문에 욕을 먹는 것이다.


서두가 좀 길었다. 지난 해부터 특허 전쟁이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삼성과 애플 간의 치열한 특허 전쟁이 연일 지면을 장식했다. 졸지에 우리 나라 사람들의 특허 지식이 확 업그레이드됐다. 박세리 덕에 골프 박사가 되고, 김연아 덕에 피켜 스케이팅 도사가 됐던 우리 국민들이 이젠 삼성과 애플 덕에 변리사 버금가는 특허 상식을 갖게 됐다(는 착각을 하게 됐다. ^^) 그 분야 전문 지식이었던 표준 특허, 프랜드(FRAND: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규정 같은 것들도 이젠 상식 수준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늘 그렇듯, 언론들은 '다툼'과 '승패' 수준에서 이 분쟁에 접근한다. 여기에다 국내 언론 특유의 삼성 편들기까지 곁들여지면서 독자들은 혼란스럽게 그지 없다. 생각했던 것과 딴 판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많은 특허로 무장한 삼성이 금방이라도 '탐욕으로 가득찬' 애플에 반격을 가해 엄청난 상처를 입힐 것 같은데, 상황은 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이 또한 당연한 결과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기자들은 특허 제도 자체에 대해 굉장히 무식하다. (내 특허 상식은 20년쯤 전에 특허법 개론을 읽어본 게 전부다.) 그러다보니 외신을 통해 쏟아져들어오는 단편적인 정보들을 재가공하는 선에서 머물 수밖에 없다. 


반면 특허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변리사들은 '대중적인 언어'에 약점을 갖고 있다. 그들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아먹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분명한 싸움의 구도를 설명해줘야 하는 데, 영 두루뭉수리하다. 물론 그들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현실은 언론들이 재단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도대체 현재 돌아가고 있는 특허전쟁을 어떤 관점으로 봐야 하는 걸까?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 정우성 변리사가 쓴 '세상을 뒤흔든 특허전쟁 승자는 누구인가?'란 제목의 책이다. 제목은 언론 보도 못지 않게, 굉장히 선정적이다. 그 때문에, 이 책 역시 그저 그렇고 그런, 시류에 편승한 책 아냐? 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특허 전쟁에 맞춰 나왔으니, 시류에 편승한 건 맞다. 하지만 내용은 굉장히 깊이가 있다. 지금 왜 특허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도대체 삼성과 애플은 왜 싸우며, 애플보다 훨씬 많은 특허를 갖고 있는 삼성이 왜 판판이 깨지고 있는 지를 조목 조목 짚어주고 있다. 또 삼성과 애플 간의 특허 분쟁이 왜 쉽게 타협을 통해 해결되지 못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주고 있다. 


저자는 특허전쟁을 '시대의 움직임'이란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모바일 시장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불확실성이 증대했고, 그래서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 곧 특허전쟁이란 것이다. "평화로운 시절에는 시장 경쟁으로 충분하지만, 대전환 시대에는 시장의 경쟁만으론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저자가 전작인 '특허전쟁'에서 줄기차게 주장했던 얘기다.


이 책은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간다. 현재의 특허 전쟁이 결국은 애플과 구글 간의 헤게모니 다툼이란 것이다. 아니 구글이 특허 전쟁의 중심이라고 주장한다. 저자의 목소리를 직접 옮겨와보자. 


사람들은 글로벌 특허전쟁의 중심에 애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눈을 씻고 다시 보라. 이 격전지의 중심 그리고 배후에 있는 기업은 다름 아닌 구글이다." (26쪽)



저자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3사가 자연스럽게 반구글 동맹을 형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애플은 구글을 직접 겨냥하는 대신 제조사를 공격하고, 마이크로소프트는 협상전략으로 제조사를 공략하며, 오라클은 구글을 직접 공격한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 자체는 굉장히 흥미롭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직접 읽어보길 바란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좀 더 관심을 갖는 건 다른 영역이다. 바로 삼성과 애플의 특허 전쟁이다. 그 부분에 대해 저자는 애플과 삼성의 전략이 서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일단 애플 입장에선 삼성이 직접 상대가 아니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삼성은 구글을 공격하기 위한 타깃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죽기 살기로 싸워서 삼성을 시장에서 쫓아낼 생각이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애플의 특허 전쟁 전략은 진지전이다.


그런데 삼성이 상황을 오판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애플보다 훨씬 많은 표준특허를 앞세워, 이 참에 특허강자로 인정받고 애플을 굴복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전략 자체가 상황을 오판한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부분 역시 자세한 내용은 직접 읽어보길 권한다. 


단지 내가 굉장히 공감했던 저자의 현실 진단 한 부분을 인용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이 부분만 곰곰히 새겨봐도 현재까지 진행된, 그리고 앞으로 진행될 특허 전쟁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애플의 특허 공세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제품의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기능에 관련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제조사가 회피할 수 있는 여지가 많고, 회피할 수도 있으므로 재판부가 애플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 애플에 대한 제조사들의 특허 공세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의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기능에 관한 것과 밀접해진다면 애플로서는 관련 산업을 접으라는 공세로 비춰지고 이는 재판부가 특허제도를 이용한 선행주자들의 부당한 경쟁행위로 인식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140쪽)


그렇다고 해서 삼성이 이번 특허전쟁의 패배자란 얘기는 아니다. 또 현재의 특허전쟁이 반드시 부정적인 부분만 있는 것도 아니다. 변혁기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안정된 시장 구도를 만들어나가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작금의 특허 소송은 규칙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어서 오히려 혼돈 속에 빠진 혁신을 구원할 수 있다. 누가 누구를 판결로서 함부로 추방하기 어렵다면, 이 특허전쟁은 산업 구조적인 면에서도 긍정적인 셈이다." (143쪽)


자, 이제 글을 맺자. 현재의 특허전쟁은 삼성과 애플이란 두 기업 간의 전투가 아니다. 거대한 글로벌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려는 거대 기업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전쟁이다. 그러니 지나치게 개별 전투의 승패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특히 기자들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특허전쟁을 바라보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그런 접근 방식으론 특허전쟁이 왜 저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 특허전쟁 승자는 누구인가? 호사가들에게는 유감스럽겠지만 정복자는 없다. ~ 세계는 구시대와 신시대를 잇는 극심한 전환기에 있다. 하지만 시장은 늘 안정되기를 원한다. 글로벌 특허전쟁은 오히려 안정을 부를 것이다. 불확실성은 잦아들고 경계선이 만들어질 것이다." (1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