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애플 간의 특허 소송이 시작된 지 2주가 지났다. 양쪽 모두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면서 한 치 양보 없는 설전을 벌이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번 재판의 승패는 뻔하다고 보는 편이다. 애플이 이기게 돼 있는 재판이란 얘기다. 이게 꼭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어서가 아니다. 배심원 재판의 특성상 애플의 주장들이 훨씬 더 대중적으로 잘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또 있다. 삼성이 중요한 증거 자료 하나를 놓치고 싸움을 시작한 때문이다. 바로 '아이폰이 소니를 복제했다'는 증거 자료다. 


물론 나는 아이폰이 소니 제품을 베꼈다는 주장 역시 약간은 억지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삼성이 제시한 그 증거 자료를 받아들일 경우, 며칠 전 공개된 삼성 내부 자료는 "그대로 베껴 그리라"고 노골적으로 지시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뉘앙스가 그렇단 얘기다.


하지만 '아이폰이 소니 제품을 베꼈다'는 삼성의 주장은 이번 재판의 논점을 흐리게 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수도 있었다. 삼성 입장에선 그 부분만 잘 물고 늘어졌어도, "하늘 아래 새로운 것 뭐 있어?"란 쪽으로 몰아갈 수 있었다. 이건 전문가들이 아니라 일반인인 배심원들이 판결을 하는 미국 사법제도 하에서는 상당히 잘 먹혀들 수 있는 카드였다. 그런데 삼성은 애석하게도 그 카드를 못 쓰게 됐다. 


생각보다 잘 하고 있는 삼성 측 변호사들 


자, 이런 배경을 깔고 이번 재판을 한번 들여다보자.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삼성 쪽 변호사들이 상당히 선전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적어도 애플 쪽 변호사보다는 삼성 쪽 변호사들이 '수임료' 값은 더 잘 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일방적으로 몰릴 수도 있었던 싸움을 혼전 양상으로 몰고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내 일부 언론들이 마구 써대듯이 "삼성 변호사들이 애플 증인들을 바보로 만들었다"고 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포브스를 인용해서 그렇게 쓰던데, 아무리 찾아봐도 포브스 기사에서 그런 뉘앙스는 발견할 수 없었다. 그날 재판 상황이 궁금한 사람은 포브스가 쓴 현장 중계 기사 Apple-Samsung Trail: Mac Iconographer To Testify (Live Notes) 를 한번 읽어보시길. 미안한 얘기지만, 웬만한 증인들은 변호사들이 반대 심문하면 다 바보처럼 보이게 돼 있다. 그게 변호사들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생각을 하게 된 첫 번째 계기는 삼성이 '법정 기각된 증거자료'를 언론에 공개하던 때부터였다. 삼성 측 대표 변호사인 존 퀸이 저지른 과감한 승부수다. 솔직히 말하면 '페어플레이'는 아니다. 그런데 존 퀸 변호사는 '심증은 가지만 물증은 없는' 반칙을 해 놓고선 "어차피 배심원들은 언론 보도 못 보도록 돼 있는게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퉁쳤다. 결국 별 다른 제재를 받지 않고 넘어가는 데 성공했다. (삼성과 애플 변호인단의 면면이 궁금하신 분은 삼성 vs 애플 특허 스타군단, 누가 이끄나? 를 참고할 것.)


자, 그럼 이게 왜 절묘한 수일까?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에선 항소심부터 법률심이다. 무슨 얘기냐 하면, 그 때부터는 새로운 증거 자료를 제출해서 다시 싸우는 게 아니라, 1심 재판부의 법률 적용이 제대로 됐는지 여부만 다룬다. 따라서 원래대로라면 삼성은 '소니 관련 자료'를 항소심 가서도 써먹지 못하도록 돼 있다.


그럼 그 자료를 써먹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 1심 재판이 '불공정하게' 진행됐다는 점을 자꾸 부각시켜야 한다. 법정 기각 자료를 언론에 전격 공개해버린 건 항소심을 염두에 둔 작전 같다는 얘기다. 


그래서 내가 든 생각이 삼성 변호사들은 1심에선 질 수도 있다는, 아니 진다는 가정 하에 재판에 임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이 재판은 어느 쪽이 이기든 항소심까지 가게 돼 있다. 게다가 대상이 된 제품들도 삼성 입장에선 전부 구형 모델들이다. 최악의 경우 판매금지 명령을 받아봐야 별 영향도 없다.


재판 시작 전부터 소니 전 디자이너 증언 문제를 놓고 한바탕 공방을 벌인 것이나, 이메일 삭제 건으로 경고를 먹고 난 뒤 곧바로 애플 쪽도 자료 삭제했다고 주장한 것 역시 이런 부분을 부각시키려는 전략인 것 같다. 1심 재판부가 삼성에 불이익을 줬다는 걸 자꾸만 부각시키려는 전략인 것 같다는 얘기다. 


신종균 사장이 내부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놓고 공방을 벌일 땐, 솔직히 삼성 변호사들이 애플 쪽보다 훨씬 더 논리 싸움을 잘 한 느낌이 든다. 


삼성 입장에선 지난 2주 동안 불거져 나온 이슈 중 최대 악재는 이메일 삭제 건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당혹스러운 것은 다소 적나라해 보이는 아이폰 벤치 마킹 문건이다. 총 126개 항목에 걸쳐 세세하게 비교분석한 뒤 개선 방향을 지시한 그 문건을 보면 삼성이 아이폰에 대한 공포감이 엄청났다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다. 


(자, 여기서 잠시 앞에서 거론했던 얘기로 되돌아가보자. 삼성이 회심의 카드로 써먹으려다 증거 제출 시한을 놓쳐서 못 써먹은 '아이폰의 소니 복제' 주장 문건은 삼성 내부 문건과 비교해보면 양반이다. 정말 원론적으로 벤치마킹한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삼성의 증거 자료는 '벤치마킹'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개선 방향을 지시해 놓고 있다. 물론 삼성 입장에선 이런 걸 놓고 공방을 벌이는 것도 나쁠 건 없다. 진흙탕 싸움이 될수록 삼성에겐 유리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저께 애플이 공개한 삼성 내부 문건은 크게 문제가 되진 않을 것 같다. 배심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진 모르겠지만, 통상적인 벤치마킹을 한 것이라고 우길만하기 때문이다. 결국 남은 건 이메일 삭제건인데, 이 부분은 삼성이 '물귀신 작전'으로 버티고 있다. 1심 재판부가 받아들여주면 좋겠지만, 안 받아들이더라도 항소심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했다'고 우기기엔 충분할 정도로 소동을 벌여놨다.


영 마음에 안 드는 국내 언론 보도 


그런데 내가 이번 재판을 보면서 씁쓸한 기분을 느낀 건 국내 언론들의 편향된 보도 때문이다. 어차피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삼성에 우호적인 기사를 쓰는 건 어쩔 수 없다. 적진에 가서 불리한 여건에서 싸우고 있는데, 뒤에서 총질하는 건 상도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팩트는 제대로 챙겨줘야 한다. 오늘 자 조선일보 기사를 읽고 난 뒤 이런 생각을 더 굳혔다. 우선 그 부분을 한번 인용해보자. 


지금까지 상황을 종합해 보면 분위기상으로는 애플이 수세에 몰려 있다. 애플이 법정에서 자사에 유리한 증언을 한 증인에게 돈을 준 사실이 밝혀지고, '애플도 일본 소니 디자인을 참조했다'는 전직 디자이너의 발언이 공개된 것.


일단 '돈 준 사실이 밝혀졌다'는 표현을 한번 생각해보자. 법정 증언을 하려면 당연히 돈을 줘야 한다. 내가 알기론 그렇다. 자사 직원이 아닌 다음에야 그냥 와서 증언해달라고 할 수는 없다. 그건 기본 예의다. 따라서 돈 준 사실만으로 일방적으로 매도를 할 수는 없다. 


다만 대가가 적정했느냐는 부분이 문제가 될 수는 있다. 삼성 측 찰스 버호벤 변호사는 이 부분을 짚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소송에서 버호벤 변호사가 맹활약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더버지의 현장 중계 기사에서 그 부분을 옮기면 이렇다. (Classic Mac icon designer Susan Kare takes the stand: live from  Apple v. Samsung 기사 참고.) 


1:25 PM: How much is Kare being paid for her services in this trial? $550 an hour. How much has she collected to date? Around $80,000.


버호벤 변호사가 묻자 수잔 케어는 시간당 550달러, 총 8만 달러를 받았다고 대답했다. 애플이 증인을 매수한 게 아니라, 당연히 줄 수고비를 줬다는 것이다. 물론 수고비가 과했느냐는 부분은 논란의 여지는 있을 것 같다. 8만 달러면 우리 돈으로 9천만원에 육박하는 돈인데, 글쎄. 이건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 다음에 '애플도 소니 디자인을 참조했다'는 디자이너의 발언이 공개됐다는 부분. 이 부분은 이번 재판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법정에서 이 사실은 '절대 언급 금지' 사항이기 때문이다. 일본인 애플 디자이너 증언을 일부 활용할 수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두 회사 제품 비교할 때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배경을 무시한 채 삼성이 굉장히 유리하게 재판을 이끌고 있다고 기사를 쓰는 건, 엄밀히 말해 오보다. 이렇게 써 놓고선 나중에 판결 나오면 "미국인들의 편파적인 판결" 운운하는 건 좀 많이 편파적인 자세가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론 이번 재판을 통해 삼성이 굉장히 잘 싸우고 있다는 생각한다. 또 재판 승패와 상관 없이 삼성에겐 결코 나쁠 것 없는 재판이라고 생각한다. 쟁점이 되고 있는 제품들은 주력 제품도 아닐 뿐더러, 어차피 항소심까지 가게 돼 있는 재판이기 때문이다. 내밀한 자료들이 공개되면 될수록 선두업체인 애플이 손해볼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을 감안하고 이번 재판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유가 좀 그렇긴 하지만, 월드컵 대표팀 평가전 관련 기사를 쓰면서 승패 위주로 쓰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평가전의 승패는 전술이 제대로 작동했느냐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재판 역시 그런 관점에서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승패도 중요하지만, 이번 재판의 승패 못지 않게 긴 맥락에서 전략과 전술을 짜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