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 기사를 쓰는 건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렵다. 영어를 잘한다고 외신 기사를 잘 쓰는 것도 아니다. 전체적인 맥락을 잘 알고 있어야 우리 나라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뛰어난 영어 실력은 단지 필요 조건에 불과하다.


또 한 가지. 외신 기사를 쓸 때는 원문을 그대로 해석하지 않는다. 전체적인 맥락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역시 우리 상황에 맞게 잘 정리해야 한다. 때론 원문 기사에서 작게 취급된 부분을 크게 다루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하더라도 한 가지 전제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적어도 인용 보도를 하는 한, 원 기사를 왜곡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원문과 맥락이 완전히 다른 기사를 쓰려면, 아예 인용을 하지 말고 다른 자료를 이용해서 써야 한다. 그게 애써서 기사를 작성한 이름 모를 외국 기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뻔한 얘기를 쓴 건, 오늘 좀 심하다 싶은 기사를 발견한 때문이다. "애플, 특허로 경쟁사 죽이기 10년 전부터 준비" 란 제목의 문화일보 기사였다. 


한 마디로 애플이 잡스 지시로 10년 전부터 무차별적으로 특허를 신청해 경쟁사 죽이기 준비를 해 왔다는 게 문화일보 기사의 골자다. 



이 기사는 미국 현지 시간으로 지난 7일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The Patent, Used as a Sword 란 기사를 인용 보도한 것이다. 원 기사는 뉴욕타임스 인터넷 사이트에 총 7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분량이다. 제목에서 보다시피 이 기사의 논점은 애플의 특허 공격이 아니다. 요즘 IT 시장에선 특허가 칼 같은 무기로 사용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뭐, 이런 맥락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국내 독자들에게 방대한 기사를 다 요약해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자, 문화일보가 집중 보도한 애플 관련 부분을 한번 살펴보자. 뉴욕타임스 기사는 애플이 2006년 아이폰을 준비하던 무렵의 분위기를 전해주고 있다. 당시 애플 본사에선 엔지니어와 경영진, 그리고 변호사들이 수시로 미팅을 했다. 이때부터 애플이 특허권에 대해 집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 애플이 10년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

그런데 애플이 왜 이렇게 집착했을까? 뉴욕타임스 기사는 그 몇 개월 전 애플이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로지란 싱가포르 회사와 특허 협상을 막 끝낸 사실을 소개하고 있다. 당시 크리에이티브는 아이팟이 자신들의 특허를 침해했다면서 소송을 했다. 결국 애플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크리에이티브에 1억 달러를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잡스는 아이폰을 내놓기 전에 "특허를 수집하라"는 지시를 했다. 다시 뉴욕터임스 기사에서 그 부분을 인용해보자. 


Former Apple employees say senior executives made a deliberate decision over the last decade, after Apple was a victim of patent attacks, to use patents as leverage against competitors to the iPhone, the company’s biggest source of profits.

Privately, Mr. Jobs gathered his senior managers. While Apple had long been adept at filing patents, when it came to the new iPhone, “we’re going to patent it all,” he declared, according to a former executive who, like other former employees, requested anonymity because of confidentiality agreements.


위에 인용한 내용은 애플이 last decade부터 아이폰 경쟁자들을 특허권으로 견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부분이다. 이런 발언을 한 건 (무명의) 애플 전직 직원들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지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냥 그런 얘기가 있다, 정도다. 


그럼 잡스가 지시를 내린 건 언제였을까? 뉴욕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2006년이다. 아이팟 출시 직후 특허 때문에 호되게 당한 뒤 특허 수집을 지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이폰을 만들면서는 더 이상 특허 때문에 당하는 일이 있어선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 뒤 애플은 제품 개발 과정에 변호사들이 적극 개입한다. 설명을 들은 뒤 특허권이 필요한 부분은 바로 특허 청원을 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특허 전쟁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시작은 방어 수단 마련 성격이 강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따라서 잡스 지시로 10년 전부터 특허 전쟁을 준비해 왔다는 건 엄밀히 말하면 오보다. 


2. 낸시 하이넨 인용 문제 


문화일보 기사는 또  애플에서 최고법률책임자로 일했던 낸시 하이넨이 말한 부분을 집중 부각시킨다. 마치 낸시 하이넨이 애플이 10년 전부터 무분별한 특허 전쟁을 준비했다고 말하는 모양새다. 


그럼 원문을 한번 읽어보자. 낸시 하이넨은 잡스가 특허에 어떻게 집착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His attitude was that if someone at Apple can dream it up, then we should apply for a patent, because even if we never build it, it’s a defensive tool,” said Nancy R. Heinen, Apple’s general counsel until 2006.


보다시피 낸시 하이넨은 2006년 잡스가 특허 비축을 지시하던 부분에 대해서만 설명하고 있다. 잡스 지시 이후 직원들이 변호사들과 회의를 하면서 필요한 특허를 모두 취합했다는 것이다. 


물론 뉴욕타임스 역시 특허권 남용을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애플만 그렇다는 게 아니라,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다는 얘기다. 


3. 애플은 특허 소송할 때 협상 따윈 염두에 두지 않는다?


문화일보 기사는 또 애플이 특허 소송을 할 때 아예 협상을 할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 마디로 무자비하게 상대방을 짓누르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시 그 부분을 인용해보자. 


더욱 중요한 것은 애플이 특허 소송을 하면서 협상을 할 의사가 처음부터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전직 애플 임원은 뉴욕타임스에 “애플의 전략에 협상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와의 소송에서 루시 고 판사의 권유로 삼성전자와 애플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여러 차례 만났지만, 애플은 처음부터 협상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난 셈이다.


이 부분은 뉴욕타임스 기사 어떤 부분을 인용한 걸까? 워낙 긴 분량이라 기자아 어디를 집중적으로 참고했는지 명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짐작컨대 이 부분인 것 같다. 


In March 2010, Apple sued HTC, a Taiwanese smartphone manufacturer that had partnered with Google. Apple did not talk to HTC before suing. Negotiations were not part of the strategy, according to a former executive. “Google was the enemy, the real target,” the executive said.


애플이 2010년 HTC를 제소할 때 얘기다. 당시 애플은 경고도 없이 곧바로 HTC를 제소했다. 협상할 생각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 부분이 중요하다. "애플의 진짜 타깃은 바로 구글이다." 는 부분. 당연히 애플은 HTC와 협상을 해서 유리한 고지를 이끌어낼 의지가 없었다. 동맹군 중 하나인 HTC를 구글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애플이 삼성과 소송 당시 협상을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난 셈이다"는 부분은 기자의 작문이다. 그건 뉴욕타임스 원 기사에 거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과 애플 CEO 간 협상이 결렬된 건 어느 쪽 탓인지 알려진 바가 없다. 


어쨌든 문화일보는 뉴욕타임스 기사를 토대로 두 건의 기사를 썼다. 그리고 이 기사는 지금 네이버 IT 섹션 톱으로 올라가 있다.


뉴욕타임스 기자는 미국의 특허 시스템 자체를 비판하고 있다. 애플은 사례 중 하나로 든 것일 따름이다. 그런데 이 기사가 한국에 와서는 "애플이 10년 전부터 치밀하게 특허전쟁을 준비해 왔다"는 기사로 탈바꿈했다. 과연 기사를 이렇게 써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나는 양심상, 도저히 저런 기사는 못 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