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IT 기자 노릇하면서 가장 쓰기 어려운 기사 중 하나가 바로 특허분쟁이다. 특히 삼성과 애플 간의 특허 분쟁. 어려운 데다, 워낙 소송 건수가 많기 때문이다. 잠시만 넋놓고 있으면 이슈가 뭔지, 어떻게 되고 있는지, 헷갈려 버린다.


오늘 미국 항소법원이 중요한 판결을 하나 했다. 갤럭시 넥서스 판매금지 가처분 항소심에서 삼성 쪽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지난 8월 특허 소송에서 참패했던 삼성 입장에선 다소 숨통 트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항소심과 관련 얘기는 삼성, 갤럭시 넥서스 항소심 이긴 비결은? 이란 기사를 통해 정리했다.)


그런데 역시나. 국내 언론들의 오버성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갤탭이어 갤럭시넥서스까지, 애플의 판매금지 전략 줄줄이 실패 그나마 젊잖은 편이다. 수세 몰리는 애플특허전쟁 끝나나는 기사에 이르면 할 말이 없다. 마법 풀린 애플 판금 ''...삼성 판세 뒤집나 역시 과장 왜곡 보도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왜 그럴까?


특허소송에서 주의해야 할 두 가지 


특허 소송에서 주의해서 봐야 할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과 특허침해 본안 소송을 잘 구분해야 한다. 


수학 용어를 잠시 빌려서 설명해보자. 판매금지 조치는 특허 침해의 부분 집합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특허 침해했다고 해서 다 판매금지 되는 건 아니다. 판매금지까지 이어지려면 특허 침해 사실 외에도 아래 두 가지 요건을 더 충족시켜야 한다. 


1. 특허 침해한 제품을 판금 조치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안겨줄 우려가 있다.


2. 피해가 특허 침해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어야 한다. 즉, 특허 침해 때문에 피해를 봤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이번에 항소법원은애플의 판금 요청을 기각하면서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문제 삼았다. 삼성이 애플 특허권을 갤럭시 넥서스에 무단 사용했다고 할 지라도, 애플이 판금 조치를 받아내려면 그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애플은 그걸 입증하지 못했다는 게 항소법원의 판단이다. 


이런 기준 적용하면, 앞으로 판매금지 판결이 나오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쓴 Apple-Samsung Ruling Shows High Bar for Injunctions란 기사가 이런 부분을 잘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 사이트는 유료 독자만 볼 수 있다. 하지만 저 기사 제목을 구글에서 검색하면 전문을 볼 수 있다. 하루에 다섯 건까지는 검색을 통해 볼 수 있다. 그게 월스트리트저널의 전략이다.)


왜 이렇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까? 당연한 얘기지만, 인위적으로 시장 판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판매금지는 강력한 조치다. 따라서 판금 조치가 기각됐다고 해서 곧바로 특허 침해 본안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얘기다. 


두 번째는 소송마다 핵심 이슈가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특히 지난 8월 배심원 평결이 나온 소송과 갤럭시 넥서스 등을 둘러싼 소송은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갤럭시S와 S2 등을 놓고 공방을 벌인 8월 소송의 핵심 이슈는 디자인이었다. 한 마디로 삼성이 애플 제품을 대놓고 베꼈느냐 여부가 핵심 쟁점이었다.


반면 갤럭시 넥서스 소송은 기술 특허 쪽이 쟁점이다. 시리 통합 검색을 비롯한 기능이 주 이슈다. 따라서 좀 더 복잡하다. 게다가 이 소송은 엄밀히 말하면 삼성이 아니라 구글이 책임질 사안이다. 


이런 기본 지식을 바탕에 깔고 이번 소송을 들여다보자. 


1. 애플 한계 드러내면서 삼성에 유리한 분위기?


일단 아시아경제 기사를 한번 살펴보자. 


1심 법원의 판결이 연이어 뒤집어지면서 미국 현지에서 삼성전자에 유리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항소법원이 1심 법원의 판결을 연이어 번복하면서 미국에서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며 "삼성전자가 반격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일단 업계 관계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미국에서 무슨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앞에서 지적했다시피, 이건 어디까지나 판금 조치에 대한 것이다. 갤럭시 넥서스 등을 둘러싼 본안 소송은 여전히 시작되지도 않았다. 


외신 어디를 봐도 삼성전자에게 유리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기류는 찾을 수가 없다. 단지 항소법원이 지역법원에 비해 판매금지 요건을 좀 더 강력하게 적용했을 따름이다. 삼성 입장에선 당연히 판금이 해제된 것이 기쁜 일이다. 하지만 이걸 본안 소송과 그대로 연결시키긴 힘들다. 


2. 최근 10억달러 배상 판결 받은 재판에도 유리한 영향?


국내 언론들이 제기하는 또 다른 논점은 '특허 소송에서 삼성이 승기를 잡았다'는 기조다. 최근 연이어 뒤집어지고 있기 때문에 12월 최종 판결을 앞둔 갤럭시S 소송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다.


과연 그럴까?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갤럭시 넥서스 소송과 지난 8월 배심원 평결이 나온 소송은 성격이 많이 다르다. 


지난 8월 갤럭시S 소송은 디자인 특허 침해가 핵심 이슈였다. 한 마디로 삼성이 스마트폰 만들면서 애플 제품을 베꼈다, 는 게 주된 논점이었다. 실제로 법정에서 삼성의 '벤치마킹 자료'가 공개되면서 배심원들이 애플 쪽에 완승을 선언했다. 한 마디로 삼성의 악의적으로 애플 제품을 베꼈다는 판단인 것이다.


그런데 갤럭시 넥서스를 둘러싼 소송은 디자인 문제가 이슈가 아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기본 작동 방식이 핵심 이슈다. 이번에 문제가 됐던 시리 특허권 역시 엄밀히 말하면 삼성이 아니라 구글이 책임질 문제다. 그러니까 이번 소송 결과가 12월에 있을 루시 고 판사의 최종 판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물론 팔이 안으로 굽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팩트까지 왜곡하면 안 된다. 삼성과 애플 간 특허 소송 때문에 IT 기자들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