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12년 전으로 시계를 되돌려보자. 때는 2000년 10월 어느 날. 장소는 고려대학교 정문 앞. 주인공은 김영삼 전 대통령.


당시 김 전대통령은 고려대 함성득 교수가 진행하는 대통령학 수업에 특강을 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나라를 망친 전직 대통령을 '민족 고대' (고려대 출신들에겐 미안하지만, 이 표현은 좀 웃긴다고 생각한다.) 정문에 들어오는 걸 허락할 수 없다고 맞섰다. 18시간 가량 학생들과 대치하던 김 전 대통령은 결국 다음 날 새벽 돌아섰다.


이 정도 사건이면 기사 가치가 어느 정도나 될까? 내 판단으론 사회면 가십 기사, 잘 봐주면 사회면 준톱 정도 될 것 같다. (1980년대 방송사나, 요즘의 M본부 같으면 톱 기사로 나올 지도 모른다.)


그런데 당시 신생 인터넷 언론사였던 오마이뉴스는 좀 색다르게 접근했다. 18시간 동안 진행된 대치 상황을 실시간 중계해준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당시 20건 가까운 기사를 올렸다. 마치 개인 블로그에 올리듯, 최신 기사가 위에 붙는 방식이었다. 


기껏해야 사회면 가십 정도 될 사건이었던 김 전 대통령의 '고대 정문앞 오기 발동' 사건은 졸지에 인터넷 언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사건으로 탈바꿈했다. (당시 인터넷 언론에 대한 고민을 조금씩 하고 있던 나 역시 오마이뉴스의 뛰어난 감각에 감탄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있다.)



과정으로서의 뉴스 


오마이뉴스의 'YS 고대 정문 앞 대치' 사건 보도를 어떻게 봐야 할까? 제프 자비스나 제이 로젠 같은 미국의 뉴미디어 전문가들은 '과정으로서의 뉴스'(news as a process)라고 평가하지 않을까? 


여기서 또 다시 언론학 교과서를 펼쳐 보자. 우리는 지난 100여 년 동안 '역피라미드형 기사'에 익숙했다. 중요한 내용이 앞 부분에 나오는 것이 역피라미드형의 골자. 당연하지만 이런 기사 유형은 전신 시대의 산물이다. 전신으로 기사를 전송하던 시절,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가능하면 압축해야만 했던 시절의 산물이다. 종이신문 시대에도 지면 제약이 있기 때문에 역피라미드 기사는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됐다.


전통 저널리즘, 특히 신문의 또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바로 '완성품' 개념이다. 판갈이를 하긴 하지만 독자들에게 뉴스가 도달할 때는 완성품 형태로 전달된다. 말하자면 독자들은 완성된 건물을 구경하는 것이다. 조선일보 빌딩, 동아일보 빌딩, 한겨레신문 빌딩.


그런데 인터넷 저널리즘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아나가면서 이런 개념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진전된 내용을 수시로 업데이트하는 보도 형태가 주류로 떠오르기 시작한 때문이다. 


최근 들어선 변수가 하나 더 생겼다. 바로 스마트폰 바람이다. 갈수록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소비하는 독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들어 SNS나 모바일 기기를 통해 뉴스를 접하는 비율이 갈수록 늘고 있다.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지난 해 7%, 9%였던 SNS와 모바일 뉴스 습득 비율은 올 들어선 20%와 15%로 증가했다. 패러다임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언론사들도 모바일 뉴스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다. (뉴스는 완성품이 아니라 완성되어 가는 과정 참고)


하지만 고민 뿐이다. 현재 언론사 중 모바일에 특화된 뉴스를 선보이는 곳은 없다. 그냥 인터넷용으로 쓴 기사를 모바일 화면에 맞게 코딩해서 내보내고 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언론들 역시 마찬가지다. 뭐, 당연하다. 새롭게 모바일 뉴스 팀을 꾸려서 기사를 만드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플립보드나 자이트 같은 모바일 뉴스 앱도 완성품들을 여럿 보여주는 방식이다. 문제는 플립보드 같은 것들이 태블릿용으론 적합하지만, 스마트폰에는 다소 걸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Circa의 의미 있는 실험 


최근 등장한 Circa는 바로 모바일 시대에 새로운 뉴스 경험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한다. 기가옴의 매튜 잉그램 기자는 Circa가 "제프 자비스와 제이 로젠의 '과정으로서 뉴스' 개념을 잘 구현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Circa의 기본 개념을 잠깐 살펴보자. Circa는 뉴스 텍스트를 전부 보여주지는 않는다. 대신 그 뉴스를 원자 단위(atomic unit)으로 나눈다. 이 원자 단위들은 뉴스 팩트 뿐 아니라 배경 정보, 사진, 인용 같은 요소들이다. 독자들은 주어진 시간 내에 이 정보들을 얼마나 읽을 지를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예를 들면 미국 허리케인 관련 뉴스를 본다고 하자. 그 동안은 여러 언론사에서 배포한 뉴스를 골라서 읽는 방식으로 정보를 습득했다. 그러다 보면 상당 부분은 겹치는 내용들을 다시 읽어야 한다. 제목만 살짝 바꿔 놓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Circa는 뉴스를 조각낸 뒤 계속 덧붙여준다. 건축에 비유해보자. 그 동안은 완성되어 있는 집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이젠 각종 건축 기자재들 중 자신에게 적합한 것들을 골라서 자기 만의 집을 지을 수도 있다. 


Circa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팔로우(follow) 기능이다. '팔로우'는 이를테면 관심 있는 뉴스를 북마크하는 것과 비슷하다. 특정 이슈에 관심이 있을 경우 팔로우하게 되면 관련 뉴스들이 계속 덧붙게 된다. 위키피디아와 비슷한 뉴스 소비 방식인 셈이다. (구글 뉴스 책임자 "뉴스 사이트, 위피피디아 구조로 가야" 참고)


아직 Circa를 제대로 써 보지 못한 터라 딱 부러지게 뭐라고 하긴 조금 애매하다. 기가옴 기사에 붙은 댓글을 잠깐 읽어보니, 여기서도 찬반이 뚜렷하게 엇갈리는 것 같다. 모바일 시대 새로운 뉴스의 전형을 만들었다는 평가부터, 도대체 저게 뭐냐는 반응까지 다양하다. 와이어드 기사 역시 한번 읽어볼만하다. 


어쨌든 Circa에 대한 진지한 비판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듯 하다. 하지만 모바일 시대 새로운 뉴스 소비에 대한 고민을 짙게 담고 있는 앱이란 점만은 인정해 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