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교실에서 도난사고가 발생했다. B가 A의 물건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여러 정황 증거를 감안해 볼 때 B가 범인일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범범 행위를 한 B가 퇴학 당할 수도 있을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그런데 학생 징계조정위원회 열리기 일주일 전 학교로 탄원서가 날아왔다. 학부형들이 나서서 "학생의 앞 길을 막을 수 있는 퇴학 처분만은 내리지 말아달라"고 청원했다. B를 좀 봐달라는 얘기인 셈이다.  


이럴 경우 공개적인 탄원서를 제출하는 행위를 부당한 압력으로 불 수 있을까?


뜬금 없이 웬 학교 얘기? 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최근 미국 상하원 의원들이 국제무역위원회(ITC)에 공개 편지를 보낸 사실을 보도하는 여러 기사를 보면서 문득 엉뚱한 생각을 해 봤다. 국내 언론들은 의원들이 ITC에 공개 편지를 보낸 자체가 애플에 유리한 판결을 내리도록 압력을 행사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단 기사 몇 개만 한번 살펴보자. (그냥 눈에 띄는 것 링크했음. 아무런 의도 없음. 동업자 비판이니 이런 얘기는 하지 말란 말씀.)


미 의원들 애플에 유리한 판결 압력 

美의회, ITC에 ‘애플 편들기’서신 논란

美의원들 '애플 편들기'…ITC에 공개 서한보내


기사들은 대부분 미국 의회가 노골적인 애플 편들기에 나섰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예상된다는 제목을 단 매체도 있었다. (개인적으론 무슨 논란이 예상된다는 건지 의문이다. 논란이라고 하면 입법부가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었다는 부분일텐데, 글쎄, 아무리 눈 닦고 외신 살펴봐도 논란이라고 문제 제기한 미국 외신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미국 기자들이 단체로 애국심에 눈이 멀었단 말인가?)



1. 핵심은 표준특허 처리 


편지 내용은 간단하다. 상원의원들은 “표준특허가 문제된 사안에선 수입금지 조치를 내릴 때는 공익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표준특허가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는 근간이 된다는 점을 들어 이 같이 주장했다.


물론 상원의원들이 ITC 판결을 일주일 앞두고 공개 편지를 보낸 건 우리 입장에선 애매해보일 수도 있다. 보기에 따라선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건을 애플에 유리한 압력을 받아내려는 국수주의적인 행태로 일방적으로 매도할 수 있을까? 보기에 따라서 다를 순 있겠지만,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허 소송을 둘러싼 최근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쉽게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그 얘기부터 해 보자. 


미국 정가에선 최근 몇 년 사이에 '특허 소송 남발'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다.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소송을 거는 '특허 괴물'들의 폐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삼성, 애플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이 한치 양보 없는 소송전을 계속하면서 비판 여론이 확대되고 있다. '독창적인 지식을 공유하는 대가로 독점적 권한을 줌으로써 혁신을 극대화한다'는 특허제도 자체의 취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문제로 떠오른 것은 바로 표준특허다. 표준특허란 간단하게 말해, 어떤 제품을 만들 때 도저히 우회할 수 없는 특허권을 말한다. 이를 테면 스마트폰을 만들 때 핵심적인 3G 통신 기술은 꼭 필요하다. 표준특허권에 대해선 진작부터 '공정하고 비차별적으로 라이선스를 제공한다'는 FRAND 규정을 적용해 왔다. 


올들어 미국 정가에서 여기서 한 발 더 나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표준특허 소송에선 판매금지 판결을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계속 내놓고 있다. 가능하면 당사자들이 협상을 통해 해결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겠단 것이다. 


이번에 미국 상하원 의원들이 ITC에 편지를 보낸 것도 이런 움직임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으로 보면 된다. 앞에서 비유로 얘기한 것처럼, 웬만하면 퇴학만은 시키지 말아달라, 정도의 청원이라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이게 유리한 판결을 하라는 압력인지는, 입법부가 사법기관에 월권을 한 것인지는 개인적으로 판단해보기 바란다. 


2. 판매금지는 마지막으로 내리는 조치  


좀 더 자세히 한번 따져보자. 31일로 예정된 ITC 판결에선 크게 두 가지가 핵심 이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이슈는 살짝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애플 제품이 삼성 특허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일 것이냐는 부분이다. 우리 입장에선 원고(삼성) 승소 판결이 나올 것이냔 부분이 가장 큰 관심사다. 현재 분위기로 봐선 애플이 삼성 특허권을 침해했다는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두 번째 이슈는 첫 번째 전제가 성립될 때 제기될 수 있다. 바로 삼성 특허권을 침해한 애플 제품을 판매금지 시킬 것이냐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곰곰 따져보자. 첫 번째 이슈는 전적으로 법적인 영역에 속한다. 특허권을 침해했느냐는 여부를 법적으로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회 아니라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이 부분에 대해선 절대 영향력을 행사해선 안 된다. 그건 월권이다. 


하지만 두 번째 이슈는 조금 다르다. 이건 법적인 영역이면서 동시에 다른 여러 영역에 함께 걸쳐 있기 때문이다. 


절대 다수 소비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제품을 어느날 갑자기 시장에서 퇴출시킨다고 한번 가정해보라. 대혼란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제품이 특허권을 침해했다고 해서 곧바로 판매금지 명령을 내리는 건 아니다. 판매금지 명령은 해당 기업 뿐 아니라 소비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시 삼성의 패배로 끝난 갤럭시S 초기 모델 관련 소송을 떠올려보라. 당시 법원은 삼성 제품이 애플 특허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판매금지를 해 달라는 애플 요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삼성에게 배상금을 물라고 판결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소송도 잘 살펴보면, 가급적 판매금지에 대해선 신중하게 접근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미국 ITC는 지난 3월 판결을 5월말로 연기하면서 "삼성 특허권을 침해한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 수입 금지 조치를 내릴 경우 어느 정도 피해가 예상되는 지에 대한 의견을 달라"고 요청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 의원들이 ITC에 보낸 공개 편지 역시 비슷한 차원에서 볼 수도 있다. 설사 애플 제품이 삼성 특허권을 침해한 것으로 드러나더라도 영구 퇴출 시키지는 말았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권고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3. 아이폰 구모델 판금, 삼성에도 별 도움 안돼 


미국 의원들의 이번 편지에 대해 지나치게 흥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또 있다. 실익을 따져봐도 애플 제품을 판매금지 시키는 게 삼성 쪽에 그다지 유리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쟁점이 된 제품들은 아이폰 최신 모델이 아니다. 아이폰4S 이후 제품들은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삼성 입장에선 판금 조치 받아봐야 크게 덕 될 것 없다. 


두 번째는 더 현실적인 이유다. 같은 기준 적용하게 되면 삼성이 훨씬 더 걸릴 게 많다. 지난 해 8월 배심원 평결이 난 1차 특허 소송에 이어 내년초엔 갤럭시 S3를 비롯한 제품을 대상으로 한 2차 소송이 기다리고 있다. 


쓰다보니 길어졌다. 삼성과 관련된 기사를 쓸 때마다 늘 흥분들을 하는 것 같다. 물론 개인적으로 삼성이 글로벌 시장에서 잘 하고 있는 건 보기 좋다. 애플과 시장 경쟁 뿐 아니라 소송에서도 이겼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바램과 사실을 제대로 전해주는 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건 보도에선 국내 언론들이 좀 많이 흥분한 것 같다. 그럴 사안이 아닌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