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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혁신과 관련한 강의에 단골로 등장하는 언론사가 있다. 뉴욕타임스와 가디언이다. 디지털 스토리텔링부터 데이터 저널리즘까지, 혁신 얘기를 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다. 남들 강의를 들어봐도 그렇고, 나 역시 가끔 강의를 할 때면 어느 새 뉴욕타임스 아니면 가디언 얘기를 읊조리곤 한다.
(그래서 난 저널리즘 혁신 관련 강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당장 병원비 없어 고민하고 있는 환자한테, "암을 이기려면 잘 먹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경치 좋은 별장에 가서 좀 쉬어라"고 권고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그럼 뉴욕타임스와 가디언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가디언은 고사하고, 영국조차 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개략적인 느낌은 있다. 디지털 스토리텔링 같은 콘텐츠 혁신은 뉴욕타임스가 한 발 앞선 반면, '오픈 플랫폼' 실험 면에선 가디언이 좀 더 선진적이라고나 할까? 물론 이런 차이 역시 나의 피상적인 관찰의 산물이기 때문에 얼마나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다.
가디언은 왜 느닷 없이 커피 숍을 오픈했을까?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는 지 벌써 짐작하는 분도 있을 것 같다. 가디언이 최근 또 다른 오픈 플랫폼 실험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디언 본사 근처 런던 쇼어디치 거리에 커피숍을 열었단 소식이다. 커피 숍 이름도 재미있다. 트위터 해시태그를 이용한 #GUARDIANCOFFEE가 커피숍 상호다.
이 커피숍에선 일반 커피숍들처럼 커피와 간단한 빵 종류가 구비돼 있다. 여기에다 아이패드를 공짜로 쓸 수 있도록 했다.
가디언은 왜 느닷없이 커피숍을 열었을까? 당연한 얘기지만 기자들이 인터뷰를 비롯한 각종 취재 활동을 좀 더 편리하게 할 수 있는 장소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뿐이라면 가디언 답지 못하다.
가디언은 #GUARDIANCOFFEE를 일종의 '오픈 편집국'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자신들이 어떤 혁신을 하고 있는지 독자들에게 직접 보여줄 뿐 아니라, 아예 독자와 직접 만나는 공간으로 활용할 생각까지 갖고 있다는 것이다. 페이드콘텐트 보도에 따르면 가디언의 소셜 미디어 편집 책임자인 Joanna Geary는 수시로 이 곳에 들를 생각이라고 한다. 인터뷰를 하기도 하지만, 아예 독자들과 직접 만나서 소통하기 위해서다.
가디언의 커피숍이 어떻게 운영되는 지는 송혜원 씨의 글을 보면 잘 나와 있다. 저 글 읽으면서 가디언이 오픈한 커피숍이 생각보다 훨씬 상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단순한 커피숍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독자들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잘 설계됐다는 느낌도 든다.
18세기 카페와 살롱, 그리고 가디언의 혁신
처음 가디언이 커피숍을 오픈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솔직히 좀 황당했다. 하지만 곰곰 따져보니, 어쩌면 저널리즘의 근본에 대한 성찰이 잘 담긴 조치란 생각도 들었다. 왜나고?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변동'이나 미첼 스티븐스의 '뉴스의 역사' 같은 책을 한번 뒤적여보라. 18세기 프랑스와 영국에서 유행했던 카페와 살롱은 요즘 우리가 소셜 미디어라고 부름직한 모습을 그대로 구현하고 있다.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관심 있는 뉴스에 대해 토론하고 논쟁하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적과 흑'으로 유명한 평민 스탕달은 살롱에서 스타로 떠올랐다. 신분의 차이를 극복한 토론 문화 덕분이었다고 한다.)
더 재미 있는 건, 당시 카페나 살롱도 전문 분야가 있었다는 점이다. 스포츠 뉴스를 주로 토론하는 카페, 경제뉴스 전문가들이 주로 모이는 살롱, 같은 식으로.
따라서 요즘 소셜 미디어를 통한 소통은 18세기 뉴스 문화를 기술적으로 좀 더 확대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게 내가 줄기차게 주장하는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의 연속론이다.
가디언은 수 년 전부터 독자들과 직접 소통하려는 오픈 플랫폼 전략을 꾸준히 실험해 왔다. 2011년 가을부터는 편집회의가 끝난 뒤 곧바로 기사 아이템을 사이트에 공개하는 실험도 해오고 있다. (그 뒤 어떻게 됐는지, 잘 모르겠다.) 이번 실험 역시 '오픈 편집국 실험'의 연장선상에서 큰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솔직히, 부럽다. 저 정도 되는 회사에 몸담고 있는 기자들은 정말 일할 맛 날 것 같다. 하지만 한 편 생각해보면 책임감도 훨씬 더 무거울 것 같다. 어쩌면 혁신이 제일 힘든 건, 언론사 경영진이나 간부가 아니라 평기자들을 터이기 때문이다.
한동안 이런저런 고민거리로 뜸했는데, '하이퍼텍스트' 블로그에는 역시나 강한 영감을 주는 귀한 사례들이 엑스리브리스 님의 중후하면서도 담백한 논평과 함께 넘쳐나네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 )
자주 애용해주시어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