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고인의 <말들의 풍경>을 펼쳐보았다. 이 평론집에 묶인 글들을 쓸 때, 고인은 내 나이였다. 그런데도 그 언어는, 절망스러워라. 내가 한 생애를 더 산 뒤에도 다다를 수 없을 셈세함과 아름다움으로 무르익어 간다. 김현이 살아 있었을 때, 그의 글을 읽는 것은 내 오롯한 즐거움이었다. 그가 산 생애만큼을 거의 살고 보니, 이젠 그 즐거움 저 밑바닥에서 질투의 쓴 맛이 배어 나온다. 그가 지금 60대의 선배 글쟁이라면, 내게 이따위 질투심 같은 것은 생기지 않았으리라. 내겐 이것만 해도 그가 더 오래 살았어야 할 이유로 충분하다.  고종석 <말들의 풍경> 중에서.

고종석의 글은 참 웅숭깊다. 그 글의 맵시가 그렇고, 또 그 안에 담긴 내용이 그렇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늘, 촘촘하고 빼곡하게 채워넣은 상자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일면식도 없는 저자에게서 남모를 친근함을 느끼는 것은, 내가, 그의 글을, 빼놓지 않고 읽어왔기 때문일 터이다. 고종석이 김현에게 느낀 그 질투를, 나는 고종석의 글들을 읽으면서 절감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내가 고종석에게 느끼는 또 다른 부러움은 바로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법'이다. 잘 나가던 문화부 기자 생활을 접고 프랑스로 홀연히 유학을 떠난 이래, 그는, 더 이상, 한 직장에 얽매인 삶을 살지 않고 있다. 이른바 프리랜서인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한국에서 프리랜서란 '자유직'이란 허울 좋은 단어보다는, '비정규직'이란 또 다른 단어와 훨씬 더 닮아 있다는 것을. 그리고, 프리랜서들 중에서도, 특히, 글로 밥벌이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고종석의 만만찮은 다산성은, 프리랜서라는 그의 신분과도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실제로 그는 어떤 책의 서문에서 IMF 이후 프랑스에서 '비자발적으로' 귀국하면서, 어쩔 수 없이 청탁을 거절하지 못해 '많은 글들'을 썼다고 고백한 적 있다.

하지만 고종석의 다산성은, 그가, 적어도, 출판업자들에게서 '신뢰'를 얻고 있다는 점을 반증해 준다. 내가 부러운 것은 바로 그 부분이다. 프리랜서로서 상품성이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상품성에 걸맞은 글들을 쏟아내고 있다는 점. (물론 그만큼 경제적인 반대급부가 따라오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 역시도 '프리랜서'를 꿈꾸었던 적 있다. 아니, 지금도 자주, 프리랜서를 꿈꾼다. 현재의 내 직업을 썩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걸 필생의 업으로 삼을 생각은 별로 없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가끔, 아니 자주, 과감하게 프리랜서로 돌아서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 나도, 언젠가는, 지금과는 다른 일을 하면서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이, 내가 막연하게 꿈꾸듯, 연구자의 삶이 될 지, 아니면 고단한 프리랜서의 삶이 될 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둘 중 어떤 것이 되든, 적어도, 그에 걸맞은 '내실'을 다져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내가 내실이라고 했을 때는, '체제의 법칙' 내지는 '격식'에 충실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적어도 고종석에게서 맡을 수 있는,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야 겠다는 다짐이다.  

또 다시 서두가 무지하게 길었다. 얼마전 고종석의 <말들의 풍경>이란 책을 구입했다. 책 표지에 보니, 이 책이 저자의 열 여덟번째 저서 쯤 되는 것 같다. 그 중 내 서재에 없는 책은 네 권 쯤 되는 듯하다. 그 중 두 권은 읽은 뒤 누군가에게 선물로 줬으니, 실제로 그의 저서 중 내가 손을 대지 않은 것은 두 권뿐이다. 이쯤되면 대단한 애독자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