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의 <코드 훔치기> 출간 직후 썼던 서평입니다. 이런 묵은 글들을 하나 둘 옮겨올 계획입니다.

1980년대의 화두는 민주화였다. 당시엔 군부독재를 물리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유보할 수 있다는 게 지배적인 분위기였다. 아니, 이렇게 말하는 건 온 몸으로 그 시대를 견뎌낸 사람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처사일 수도 있겠다.

조금 현학적인 표현을 쓰자. 그 시절을 지배한 것은 이른바 거대담론이었다. 개인보다는 민족이나 국가같은 거창한 것들이 우선하던 시대였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때도 여전히 개인은 소중했다. 단지 쉽게 표현하지 못했을 뿐, 결국 중요한 것은 '나'이니까.

고종석이 '개인들의 시대'란 글을 통해 "개인들이 돌아오고 있다"고 진단했을 때 느끼는 진한 가슴떨림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고종석(이런 표현이 가능할 진 모르겠다. 난 그를 한번도 만난 적 없고, 하다 못해 전화 통화 한 번 한 적 없다. 단지 내가 그를 접한 건 10여권에 이르는 그의 책을 통해서일 뿐이다)은 조직의 시대에도 "여전히 개인은 소중하다"고 외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진정한(?) 자유주의자다. 지향점은 다르지만 '자유주의'란 화두로 그와 동류에 놓을 수 있는 인물로는 언뜻 김훈과 복거일 정도가 떠오를 뿐이다. (언젠가 고종석은 "복거일과 김병익을 사사하고 있다"고 밝힌 적 있다.)

'코드 훔치기'는 자유주의자 고종석의 21세기 산책이다. 모 일간지에 '모색21'이란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모은 이 책은 21세기를 정확하고 세세하게-물론 저자는 산만하고 성글었다고 겸양을 떨고 있지만- 톺아 보겠다는 고종석의 야심이 엮어낸 한편의 걸작이다.

저자는 머리말을 통해 "모색도 부분적으로 전망이다. 모색이 일반적 전망과 다른 것은 그 속에 의지나 욕망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고 고백한다. '코드훔치기'는 바로 그 욕망의 결정체다.

이 책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는 개인주의와 개인의 부활이란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고종석의 개인주의는, 흔히 연상하듯 고립주의와는 멀찍한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휴대폰과 노트북을 든 현대의 노마드(nomad)들은 인터넷이나 통신망이란 형태를 통해 쉼없이 타인과 교신한다. 지구 문명의 망 속에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주의나 이기주의는, 말 그대로 다르다.

이러한 개인주의에 바탕을 둔 고종석의 세상 읽기는 파격적이다. 물론 그 파격이 자리하고 있는 바탕엔 개인이란 가치가 놓여 있다.

이를 테면 그가 '왜 마리화나를 피워선 안되는가' 라고 되물을 때 그의 목청엔 '자유의 한계'에 대한 불만이 가득 녹아 있다.

"마리화나를 가두는 것은 우리 사회에 별 도움이 안되면서 개인들의 자유를 억압함으로써 사회의 활기와 행복의 총량을 줄일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나름의 타당성을 충분히 지닌다. 동의하고 안 하고는 그 다음의 문제다.

이런 시각에서 그는 동성애나 소수 민족에 대한 차별 문제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않는다.

고종석의 '코드 훔치기'는 인문사회학적인 프리즘으로 그려낸 21세기 정보화사회론이다.인터넷과 컴퓨터란 획일적(?) 프리즘에 싫증이 난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색다른 시각으로 접근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현학적인 글에 알레르기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아예 접하지 않는 게 좋다. 그 만큼 이 책엔 서양의 온갖 논리와 학설들이 난무한다. '현학'이란 것이 고종석의 장점이자, 때론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연세대 김철 교수는 고종석에게서 '인간과 세상에 대한 안쓰런 애정'을 읽은 적 있다. 그 애정의 바탕에 깔린 것이 바로 개인주의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관심이다.

'많은 좌파를 부끄럽게 만들 줄 아는 충실한 우파'인 고종석의 세상 읽기를 통해 21세기를 느껴 보자. 아니 21세기를 애무해 보자. 코드가 통하기만 한다면, 고종석이 느낀 오르가즘에 동참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