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 아이들이 한 데 모여서 공부하는 제도(즉 학교)가 인류 역사 이래 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잘 아다시피 우리나라에서 대중 교육이 일반화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눈을 세계 역사로 돌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C. 브론테의 <제인 에어>나 스탕달의 <적과 흑> 같은 곳에 보면 가정 교사라는 게 당시 귀족층의 일반적인 교육 방식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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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대부분 직장이 없다는 것에 대해 상당히 조바심을 내고, 또 불안해한다. 또 실제로 불안해 하는 게 당연하다. 사업을 하는 어떤 선배는 "그래도 새경 받을 때가 속 편했다"고 하소연하기도 하는 걸 보면, 직장생활이라는 게 경제적인 안정감을 주는 역할을 하는 건 분명한 듯 하다.

하지만 직장에 매여서 돈벌이를 하는 생활 역시 그리 오래된 풍속은 아니다. 한국이야 1970년대 중순까지도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세계적으로도 똑 같은 장소에 모여 똑 같은 일을 하면서 월급 받아먹는 생활을 한 게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지 싶다.

홀름 프리베 등이 지은 <디지털 보헤미안>은 "직장을 떠나라, 그 너머에 더 나은 삶이 있다"고 부르짓는 책이다. 더 이상 정규직에 얽매이지 말고 좀 더 자유롭게 일하며 풍요롭게 살고 싶다면 디지털 보헤미안의 삶을 주목하라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이 책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전일제 근무는 예나 지금이나 이 특수한 형태의 충성심을 이끌어내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왜냐하면 매일같이 여덟시간 또는 그 이상을 한 회사 내에서 일하는 사람은 회사에 동화되지 않을 수 없을테니까 말이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사장이 하는 농담을 더 이상 비웃지 않게 되며, 오히려 그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회사의 규칙과 업무 스타일이 완전히 피와 살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마치 제2의 천성처럼 되어버리는 것이다. (66쪽)

기본적으로 저자들의 관점은 이런 주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시장으로 직접 들어가라"는 게 이 책 저자들의 주장인 것이다. 이런 주장이 보기에 따라선 다소 과격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나처럼 '직장'이란 우산 속에 들어가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들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아날로그 보헤미안들이 한정된 유통망 때문에 힘든 예술적 삶을 영위해야만 했던 것과는 달리, 디지털 보헤미안들은 인터넷이란 무한 유통망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만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꼭 이 책 때문만은 아니지만 요즘 나도 디지털 보헤미안을 꿈꾼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직장생활이 지겹고 무미 건조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게 보헤미안적인 기질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여건만 되면 과감하게 버리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정규직을 버리고 디지털 보헤미안의 생활을 감행하라는 저자들의 꼬임에는 다소간 방어막을 치고 대처했다. 하지만 시대가 디지털 보헤미안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원론에는 전폭적으로 지지를 보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저자들은 블로그에 대해서도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 중 한 구절을 소개한다.


블로그라는 세상에 발을 들여놓으면 마치 술집, 광고탑 그리고 소도시 신문들이 뒤섞여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때로는 어느 공공 포스터에 게시된 공격적인 선언문 아래서 기분 좋은 술집에서 몽롱하게 취한듯한 느낌으로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 속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 술집 안에 있으면 바깥의 넓은 세상 속에 펼쳐진 잡다한 것들이 모두 걸려들어 안으로 들어오며 밖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주변에 대해 더욱 폭넓은 정보를 얻는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2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