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블로그와 SNS 2008.04.13 09:50
<빈 집>
            -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문득, 기형도의 시 <빈 집>이 떠올랐다. 요즘 내 블로그가 꼭 빈 집같은 느낌이 들었던 탓이다. 이것 저것 날 귀찮고 힘들게 하는 것들이 많아, 도무지 블로그 관리가 안된다.

그 중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역시 논문. 없는 시간 쪼개서 쓰려니 도무지 진도가 안 나간다. 게다가 번역. ㅠㅠ. <하이퍼텍스트 3.0>의 깊이에 압도당했다. 요즘. 1200매 가량 번역했는데, 아직 온 길의 두 배는 더 가야할 듯 하다.

그러다 보니 회사일과 대학 강의 등은 우선 순위에서 한참 밀려버린 느낌. (물론 실제로 밀어놨단 얘긴 아님. 당사자들, 오해 마시길. ㅎㅎ)

결국 블로그에 글 올리는 일은 6순위 쯤에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언제쯤 '빈집 증후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그건 나도 모르겠다. 주인장이 외면하는 통에 손님들마저 뚝 끊어져 버리니, 진짜 빈집 같아 으스스한 느낌마저.

책 선전 겸해서 보너스 샷 하나 더 추가한다. 블로그파워의 3대 원천 중 하나라고 강조했던 '링크'를 설명하면서, 엄청나게 오버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1980년대말 스물아홉이라는 젋은 나이에 요절했던 시인 기형도는 '빈 집'이라는 아름다운 시를 남겼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로 시작해 "그리운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란 멋진 문구로 끝나는 이 시는, 누구나 가슴 한 쪽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짜릿한 옛 사랑의 추억을 건드리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역시도 어디선가 빌어왔을법한 '빈집'이란 모티브는 그와 동시대를 살아갔던 많은 이들에게 짜릿한 문학적 감동을 선사했다.

시인 기형도가 죽은 지 몇해 뒤, 비슷한 또래의 소설가 신경숙은 '빈집'이란 단편소설을 한 편 썼다. 기형도 추모 작업의 일환으로 쓰여진 그 소설은 기형도의 시 '빈집'의 산문적 패러디였다. 신경숙이 '빈집'이란 소설을 썼을 때, 빈집을 모티브로 한 문학적 지형도에서 기형도와 신경숙은 서로 링크된 셈이다. 
                                                                  <블로그파워> 66쪽.


기자들이 블로그에 올린 글은 '개인 의견'일 뿐일까? 저널리즘 활동과는 관계가 없는 사적인 행동일 뿐일까?

언뜻 생각하면 간단한 듯한 질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말처럼 간단하지만은 않다. 어떤 형식의 블로그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기자 블로그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최근 불거진 나훈아 괴담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나훈아 씨의 기자회견이 있고 난 뒤 있었던 각종 일들 때문이다.

좀 더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자. 이번 소문의 진원지는 한 기자의 블로그 였다고 한다. 그 기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모모 씨가 어쩌고 저쩌고"라면서 올린 글이 확대되면서 괴담으로 확산됐다고 한다.

그리고 나훈아 괴담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던 그 기자는 PD수첩과의 인터뷰를 통해 "(소문이) 너무 터무니 없으니까 신문에는 다루지 못하지만, 블로그에는 그런 개인의 의견들은 쓸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기자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글을 올린 것이란 얘기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기자 블로그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개인이라 할 지라도 자신의 블로그에 남의 명예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는 글을 올릴 땐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점은 논외로 하기로 하자.)

이 대목에서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기자가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은 '개인 의견'에 불과한 것일까? 적어도 신문 기사를 쓸 때와 같은 자기 검열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난 이 질문에 대해 절반은 예, 절반은 아니오라고 대답하고 싶다.

우선 자기 검열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부분. 일단 형식적인 면에서는 당연히 그렇다. 기사 문법을 굳이 따를 필요가 없다. 아니 따르지 않는 것이 좋다고 본다. 신문에 글을 쓰듯 일방적으로 사실을 전달하기 보다는, 양방향적인 소통을 염두에 둔 글쓰기를 하는 게 좋다는 얘기다.

하지만 내용 면에서는 '아니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정말로 "블로그에는 그런 개인의 의견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면, 그건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본다. 더구나 문제가 됐던 그 기자가 운영하는 블로그는 해당 매체의 기자 블로그 중 하나인 것으로 알고 있다.

적어도 이 정도 블로그라면 '준 저널리즘 행위'란 생각을 갖고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대학교 교수가 해당 대학 사이트에 자신의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개인적인 공간이라 내 생각을 올렸을 뿐"이라면서 "대학 교수인 나의 지위와는 관계없는 얘기"라고 하면 인정할 수 있겠는가?

적어도 기자 블로그임을 명확히 할 경우에는 사적인 공간이란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는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본인이 아무리 사적인 공간이라고 우겨도, 독자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언론사들이 운영하는 기자 블로그가 활성화되지 않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시스템적인 부분, 기자들의 업무 부담, 등등 그 이유는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중 하나로 나는 "블로그는 사적인 공간일 뿐"이라는 생각도 크게 작용한다고 본다. 공적인 기자 생활을 보완해줄 수 있는 매체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블로그를 운영하는 시간 자체가 아깝고 귀찮게 여겨지게 마련이란 얘기다.

이 부분은 길게 얘기할 것 없을 것이다. 모범적인 기자 블로그 운영자 몇 명만 벤치마킹 해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의 블로그가 왜 활성화되고, 또 똑 같이 바쁜 그들이 어떻게 기자 블로그를 잘 운영할 수 있는지 말이다.

나훈아 사건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연예 저널리즘에 대해 한 마디씩 하고 있다. 그러니 나까지 나서서 한 마디 거들 필요는 없을 듯하다.

하지만 블로그에 대한 부분은 꼭 짚고 넘어갔으면 한다. 특히 기자 블로그에 대한 부분. 난 장기적으로는 인터넷 언론은 기자 개인 블로그들의 집합체로 진화 발전해 나갈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사회가 전문화 파편화 되면서 언론사 브랜드 못지 않게 개인 브랜드가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자들도 블로그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본다. (이 얘기는 앞으로 다시 할 기회가 있을 듯하여, 이 정도로 끝낸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바로 그 대목이 아쉬웠다. 기자 블로그에 대한 인식 부족. 아니 더 정확하게는 '블로그'란 미디어에 대한 천박한 인식. 이런 인식을 빨리 벗어던지지 않으면, 요즘 언론들이 갖다 붙이기 좋아하는 '웹 2.0 시대'의 인터넷 저널리즘은 아직도 저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블로그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공론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대화와 토론을 통해 새로운 공론을 도출하는 숙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를 구현하는데 중심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선스타인(C. Sunstein)의 'Republic.com 2.0'은 이런 질문에 대해 다소 비관적인 대답을 내놓고 있다. 이른바 여론 쏠림 현상으로 인해 오히려 기존 인식이 더 극단적으로 치닫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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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시 공론장(public sphere)에 눈을 돌려보자. 잘 아다시피 하버마스는 17, 18세기 프랑스와 영국 등에서 유행한 카페와 살롱에서 '신분에 구애 받지 않는 토론문화'의 진수를 발견한다. 그는 카페와 살롱을 중심으로 한 토론문화 연구를 통해 저 유명한 '공론장 이론'을 도출하게 된다.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토론에 참석할 수 있으며, 그 동안 금기의 영역에 있던 주제까지 토론하는 공간'이란 공론장 개념과 함께 '이상적 담론 상황'이란 하버마스의 주장들은 이후 민주적인 토론 문화를 연구하는 많은 이들에게 교과서 역할을 해 왔다.

물론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재봉건화'로 이상적 담론 상황이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특히 자본주의의 발달, 그로 인한 광고의 영향력 확대 등으로 성역 없는 토론이란 사실상 무의미해져 버렸다는 것이 하버마스의 주장이다.

이런 가운데 인터넷, 특히 블로그의 등장으로 '새로운 공론장'의 부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누구나 매체를 소유하는 1인 미디어 시대가 도래하면서 성역 없는 토론이 가능하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스타인은 'Republic.com 2.0'을 통해 '여론 쏠림 현상'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그 동안의 연구 결과들을 원용한다. 블로고스피어의 '링크'는 주로 '끼리 끼리(like-minded)' 이뤄지고 있다는 것. 따라서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의 토론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숙의 민주주의가 현실화되기 보다는, 자신이 이전에 갖고 있던 생각을 더 극단적으로 몰고 가는 현상이 더 자주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런 실험을 한 적 있다고 한다. 공화당 지지자들끼리 모아놓고, 또 민주당 지지자들끼리 모아놓은 결과 보수적이었던 사람은 더 보수적으로, 진보적 성향의 사람은 더 진보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최근 블로고스피어를 보면서 선스타인의 주장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학적으로 분석해 본 것은 아니지만, 언뜻 보기에도 여론 쏠림 현상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운영자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1인 미디어의 특성상 반대되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올라올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반대되는 다양한 의견들을 접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그런데 블로고스피어에서는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은 아예 접하지 않으려고 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 선스타인의 주장이다. 이른바 파편화(fragmentation)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게 꼭 메타블로그 사이트 운영자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니지만) 올블로그나 미디어다음 블로거 기자 운영진들은 혹시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해결책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본 적 있을까? 다양한 담론을 담아낸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듯하여, 괜히 한번 걱정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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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하버마스의 공론장과 숙의 민주주의, 그리고 블로그의 관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화의 복원'이란 관점에서 블로그를 살펴보려고 한다. 구어 뉴스 시대 이후 실종됐던 대화가 블로그를 통해 400년만에 복원됐다는 가설. 이 가설을 어떻게 증명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Republic.com 2.0'이란 책을 주문했다. 저자인 선스타인(C. Sunstein)은 다소 생소한 이름이긴 하다. 이 책을 사게 된 건 '블로그의 복수(Revenge of blogs)'란 부제가 눈길을 끈 때문이다.

또 하나. 선스타인이란 저자가 이 책의 1판인 'Republic.com'에서 가상공간의 여론 쏠림현상에 대해 지적했다는 얘기에 관심이 가기도 했다. 인터넷이 거대한 공론장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란 기대감을 정면 반박한 주장. 하버마스가 이야기했던 공론장의 재봉건화, 내지는 공론장의 파편화 현상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는 주장은 아닐까, 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 동안 블로그 미디어에 대한 연구들은 전통 매체나 포털들과의 차이점을 규명하는 데 주력했다. 물론 그 자체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 접근할 수 없을까'란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가장 만만한 것이 역시 하버마스였다. 그래서 난 지금 공론장과 숙의 민주주의. 그리고 블로그 미디어의 가능성 같은 키워드들을 부여잡고 있다.

이 책 외에 최근 구입한 책들:

1. 프랭크 웹스터(2007). <정보사회 이론>(개정판). 나남.
2. 위르겐 하버마스(2000). <사실성과 타당성>. 나남.
3. 윤영민(2000). <사이버공간의 정치>. 한양대학교 출판부.
4. Y. Benkler(2006). <The Wealth of Networks>. Yale University Press.
5. S. Allan(2006). <Online News>. Open University Press.
6. 최민재(2007). <동영상 UCC와 저널리즘>. 한국언론재단.
7. 조한혜정 외(2007). <인터넷과 아시아의 문화연구>. 연세대학교 출판부.
IT기자클럽과 블로터닷넷이 공동 주최한 '2007 블로그 미디어 포럼' 행사에 발표자로 참여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분들이 준비한 행사인지라, 발표 자료를 준비하면서도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꼭 친구 결혼식 축가 순서를 배정받은 느낌이었다.(참고로 나는 한번도 결혼식 축가를 불러본 적이 없다. 적어도 내 노래 솜씨를 아는 사람은, 축가는 고사하고, 중창단에 참여하는 것도 꺼릴 것이다.)

"잔치 분위기에 누가 되면 안될텐데, 뭔가 의미 있는 얘기를 해야 할텐데."란 생각이 계속 나를 괴롭혔다. 발표 시작하기 직전까지 긴장을 했던 것도 이런 부담감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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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블로터닷넷]



어쨌든 행사는 '잘' 끝났다. 나는 '대화의 복원'이란 관점에서 블로그 미디어의 의미에 대해 얘기했다. 이건 내가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하버마스의 공론장과 블로그를 한번 연결해보자는.

'뉴스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지금 우리가 접하는 방식. 즉 기자들이 기사를 쓰고 독자들이 일방적으로 읽는 방식이 절대 진리는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하버마스가 '공론장(public sphere)'이라면서 그리도 감탄했던 18세기의 살롱, 카페 문화를 지탱한 것은 바로 대화였다.

하버마스가 정리한 공론장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위계질서가 없었다. 한 인간으로서 대등한 자격을 갖고 서로 토론에 임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발화자의 신분이 아니라, 내용에 따라 토론의 향방이 결정됐다. 지금이야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귀족 주도 사회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건 거의 혁명이다. (그 당시 평민이었던 소설가 스탕달이 살롱 문화를 통해 스타로 떠올랐다는 것은 굉장히 유명한 이야기다.)

둘째, 사실상 토론의 성역이 없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그 동안 교회와 국가의 권위로 보호받던 많은 주제들에 대한 토론과 공방의 여지가 생기게 됐으며, 그 역할을 담당한 것이 바로 커피하우스와 살롱이었다.

셋째, 토론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개방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공중들은 토론하면서 자신의 폐쇄성을 벗어던지고 대중 속으로 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이날 발표한 내용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바로 이런 것이다. 신문이란 대중매체가 등장하면서 뉴스에서 실종됐던 대화가 블로그를 통해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게 됐다는 것. 그런 점에서 언론이란 관점으로 접근할 경우엔 블로그가 바로 21세기의 공론장이라는 것. 그런 점을 주목하자는 게 내 발표의 요지였다.

발표를 끝내면서 "블로그는 그만 잊자. 사실 블로그가 별거냐?"고 얘기했는데. ㅎㅎㅎ. 내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했는 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난 웹 2.0이니, 롱테일이니, 하는 '용어들의 홍수'를 굉장히 싫어하는 편이다. 블로그 역시 용어들의 홍수 속에 빠져버리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서명덕 님께서 '블로그는 기성 뉴스에 없던 대화 복원한 것' 이란 제목으로 발표 요지를 잘 정리해준 것 같다. '까칠한' 블로거들이 던질 예리한 비판이 두렵기도 하지만, 그 또한 '생산적 대화'라고 생각하기에 '묘한 기대감'이 생기기도 한다.

지난 2003년 <인터넷신문과 온라인 스토리텔링> 출간 이래 댓글에 많은 관심을 가져 왔다. 인터넷 저널리즘에서 중요한 것은 독자 반응이고, 그 독자 반응 중에서 정수는 기사에 붙은 댓글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댄 길모어 등의 용어를 빌린 것이긴 하지만, 나는 이 같은 상황을 '대화 저널리즘(journalism as a dialogue)'이란 말로 표현했다. 악플 공세 때문에 다소 약해지긴 했지만, 이런 믿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난 요즘 댓글만 보면 기겁을 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댓글이 많이 붙은 기사들을 볼 때면 한숨이 나온다.

사연은 이렇다. 요즘 '박사 논문 초치기' 작업을 하고 있다. 당장 한 달 뒤까지 논문을 완성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아직 이렇다 할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그 동안 회사 일로 바빠서 논문 작업에 손을 제대로 대지 못한 때문이다.

최근 블로거들의 기사를 분석하고 있는 데, 분석 항목 중 댓글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다 보니 댓글이 100개를 넘는 기사를 만날 땐 한숨부터 나오는 것이다. 당연히 표본이 많으니 좋아해야 마땅하련만 사정은 말처럼 간단하지만은 않다.

최소한 500개 기사는 분석해야 하는 데, 만약 한 기사당 댓글이 100개씩 붙어 있다면 5만개의 댓글을 일일이 읽고 분석해야 한다는 얘기다. 5만개. 이걸 혼자서, 그것도 퇴근 이후 틈틈이 읽어서 한 달만에 분석하는 게 가능할까?

그러다 보니 댓글이 없는 기사를 만나면, 웬지 공짜로 먹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

그래서 일과 유희는 다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두껑 보고도 놀란다'고,  올 가을엔 댓글만 보면 가슴이 벌렁거릴 듯 하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블로거들과 간담회를 가진 모양이다. 당연히 '바람직한 움직임'이라고 생각한다. (권후보와의 만남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무브온21 님이 쓴 권영길후보, 나는 웹2.0 후보다 는 글을 참고하시라.)

무브온21 님도 권 후보와의 대담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일단 그 부분을 살펴보자.

이번 대선에서 권영길후보는 블로거에게 기대를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도 웹2.0후보라고 불러달라고 말했습니다. 실질적인 방안들도 제시했습니다. 18일 참석한 블로거들에게는 언론사와 동일하게 정보를 제공하고 취재도 허용하겠다고 했습니다. 블로거 대변인도 두고 오프와 온라인에서 답변하겠다고 했습니다.

앞서 말햇듯이 권영길후보는 지금 블로거들의 기대를 뛰어넘는 것까지 제시하며 블로거저널리즘의 새역사를 쓰고있습니다. 이러한 권영길후보의 시도에 블로거들이 적극 호응(지지가 아닙니다. 오해 마시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다른 후보들도 권후보처럼 블로거들 앞에 나서게 되고 1인 미디어 세상은 활짝 열리게 될 것입니다.

권후보가 그렇게 말한 것 같습니다. 1인 미디어세상이 펼쳐지면 한국의 심각한 언론문제도 많이 해결될 것이라고.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일단 블로거들을 기자들과 동등 대우하고 블로거 대변인을 두겠다는 발상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미국에서야 전당대회장에까지 블로거들을 초청하고 있긴 하지만, 국내 정당들은 아직은 '기성 매체' 기자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브온21님 역시 이런 발상들을 토대로 "권영길후보는 지금 블로거들의 기대를 뛰어넘는 것까지 제시하며 블로거저널리즘의 새역사를 쓰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이 좀 다른 편이다. 특히 "블로거 저널리즘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는 평가는 지나친 오버라고 생각한다.  

우선 18일 참석한 블로거들에게(내가 직접 참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에 한 해'인지, 아니면 그냥 이날 참석한 블로거들에게 일반적으로 한 말인지는 모르겠다) 기자들과 똑 같은 대우를 하겠다는 권 후보의 선언 자체가 별로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민노당이 기자들을 여전히 특별 대우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블로거 대변인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 역시 내가 직접 들은 얘기가 아니기 때문에 조심스럽긴 하지만, 블로거 대변인을 두겠다는 것 정도로 "나는 웹 2.0 후보다"고 선언하는 것은 전략 부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권영길 후보가 '웹 2.0 후보'를 자처하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온라인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민노당은 지난 2004년 미국 대선 당시 돌풍을 불러왔다가 사그라들었던 하워드 딘의 사례를 좀 더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블로거 간담회 정도는 새로울 것 없는 이벤트라는 얘기다. (하워드 딘 역시 블로그 때문에 떠올랐지만, 반대로 블로그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민노당이, 또 권영길 후보가 명실상부한 '웹 2.0 후보(오해 마시라. 웹 2.0이 특별하다는 게 아니라, 민노당이 생각하는 새로운 후보란 의미로 쓰는 것이니까)'로 자리매김하려면 블로거들과의 간담회 정도가 아니라, 전국에 흩어져 있는 블로거들과 적극 대화할 수 있는 온라인 선거 운동 전략을 본격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조직력과 자금의 한계가 있는 민노당으로선 사실 그 방법이 훌륭한 대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민노당 특유의 엘리트 의식(이것 역시 조심스럽다. '민중을 선도하겠다는 생각' 정도로 이해해주시길.)을 버리고 좀 더 겸허한 마음으로 블로고스피어로 뛰어들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난 7월 중순에 민노당 블로거학교에서 강의를 한 적 있다. 당시 민노당의 열정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블로그를 대자보와 비슷한 관점으로 접근하는 듯한 그들의 움직임이 다소 우려스럽기도 했다.

당시 강의를 하면서 '농반 진반'으로 그런 얘기를 한 적 있다. "절대로 블로고스피어에서 대자보를 쓸 생각하지 마라"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물론 심상정, 노회찬 의원 등 주요 의원들이 블로그 활동을 상당히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부분은 높이 평가한다. 지난 번에 블로고스피어에서 벌어졌던 청와대와 심상정 의원간의 소위 '심청전'은 새로운 언론 환경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웹 2.0 후보'를 자처하는 권영길 후보가 이번 대선에선 인터넷에 기반한 새로운 선거 전략을 선보이길 기대해 본다. 그래서 군소 정당의 모범적인 선거운동을 펼쳐 보이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게 진정한 의미의 '웹 2.0 후보'다.  

내가 블로깅을 하면서 느끼는 재미 중 가장 큰 것을 꼽으라면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이다. 특히 댓글과 트랙백을 통해 다른 이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게 참 재미있다. 올블로그에 마련돼 있는 '블로고스피어에서는 지금'이란 코너도 그런 점에서 자주 찾는 곳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차에  재미없는 zlinx.net 님이 쓴 왜 블로거들은 댓글을 잘 달지 않을까? 란 재미 있는 글을 읽었다. 사실 나도 늘 생각하던 것 중 하나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왜 블로거들은 내 글에 댓글을 잘 달지 않을까?'란 문제에 관심을 가진 적이 적지 않다. (사실 내 블로그 뿐 아니라, 내가 쓴 기사들에도 댓글이 거의 없는 편이다. 누가 그랬던가? 악플보다 더 서글픈게 무플이라고. ^^)

일단 내 블로그에 댓글이 적은 것은 재미없는 zlinx.net 님이 제시한 대로라면, 5)방문자 수가 적다,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그다지 재미 있는 이야기를 쓰는 것도 아니니, 뭐, 댓글을 달고 자시고, 할 것도 별로 없긴 하다.

이런 넋두리를 하기 위해 댓글 얘기를 꺼낸 건 아니다.

사실 내가 더 관심을 갖는 건 댓글의 수가 아니라 질이다. 정작 더 문제는 댓글이 많고 적음에 있는 게 아니라, '어떤 댓글이냐'는 데 있다는 얘길 하고픈 것이다. 곰곰히 살펴보면 상당수 댓글들은 '맞다' 내지는 '말도 안되는 소리 마라' 정도로 구성돼 있는 것 같다.

물론 댓글 공간을 통해 공감을 표하는 게 중요한 소통 수단이긴 하다. (그 가치를 폄훼하자는 게 아니니, 오해들 마시길. 나같은 중소형 블로그들은 '공감한다' 그 한 마디에 큰 힘을 얻으니까. ^^) 하지만 블로고스피어가 '이슈 중심적인 공간'이라고 가정하자면, 정작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이슈에 대해 토론을 하고 논쟁을 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런데 블로고스피어에는 단편적인 '배설'은 많지만, 그것들이 함께 연결되는 토론이 드물다는 것이다. (특정 키워드를 둘러싼 공방은 물론 많다. 하지만 그건 꼭 블로고스피어가 아니더라도 활발하다. 또 상당수 공방들은 특정 키워드를 사용한 '방문자 유입'을 노린 측면이 강한 느낌도 든다.)

댓글이란 게, 오프라인 공간으로 치자면 일종의 토론 수단이 될 것이다. 따라서 나는 댓글이 드물거나, 특히 토론 내지 논쟁이라고 할만한 댓글이 드문 것은 바로 우리가 제대로 된 토론문화를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건 재미없는 zlinx.net 님이 1)번과 4번)으로 제시한 것과 비슷한 듯하다.)

블로고스피어를 보면 자극적인 비난은 많은 데, 잔잔한 토론을 드문 듯하다. 이를테면 '디워'를 둘러싼 공방 역시 감정은 앞서고, 이성은 뒷전으로 밀린 듯한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그건 블로고스피어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디워 공방>을 벌이고 있는 평론가들 역시 토론보다는 직설적인 비난을 앞세우는 쪽이 많은 듯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댓글의 빈약(수, 량 측면 모두)은 그 근원을 블로고스피어에서 찾을 문제는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보다는 '토론문화가 실종된' 우리 사회의 근원적인 문제와도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얘길하고보니, 꼭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뻔한 얘기를 되풀이한 것 같아서 좀 그렇다. 하지만 블로고스피어에서나, 현실에서나, 이를테면 애정을 밑바탕에 깐 진지한 비판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그건 비판을 하는 쪽이나, 비판을 당하는 쪽이나, 다 마찬가지다.

올블로그가 반기에 한번씩 발표하는 'Top 100 블로거'가 발표됐다. 별다른 상금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마크 하나 달아줄 뿐인데(다른 선물도 있나? Top 100 블로거가 돼 본 적 없어서.) 선정된 사람들이 다들 즐거운 메시지들을 날리는 걸 보니, 구경하는 입장에서도 그저 흐뭇할 따름이다.

이런 게 정말 멋진 상 아닌가, 란 생각도 해 봤다. 어쩌면 'Top 100 블로거'란 것이 네티즌들이 주는 상일수도 있기 때문에, 더더욱 의미 있게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

그러면서 톱 100 블로거들을 한번 훑어봤다. 1위에 랭크된 무브온21부터 떡이떡이, 다크맨, Hoogle 등 다들 쟁쟁한 블로거들이었다. 또 평소 오며가며 참 블로깅들 열심히 한다, 고 생각했던 분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청와대 블로그, 심상정, 민언련, 국회의원 한명숙의 블로그 등도 보였다.

이들을 보면서 크게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

첫째, 역시 주제 의식이 뚜렷한 블로거들이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키워드 글쓰기'를 통해 일회성으로 독자들을 모은 블로거들이 적은 대신, 한 두 가지 주제를 꾸준히 다뤄온 블로거들이 상당수 눈에 띈다는 점이다. 올블로그의 톱 100 블로거에 얼마나 많은 신뢰를 보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네티즌의 평판시스템(혹은 올블로그의?)은 나름대로 굴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참여 저널리즘 활동이 갈수록 확산될 조짐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사실은 이 얘기를 하고 싶었다.) 내가 청와대 블로그, 심상정, 민언련, 한명숙 의원의 블로그를 주목한 것은 그들이 유명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그 동안 언론을 통해 대신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야만 했던 부류라는 점이다. 이들이 블로고스피어에 직접 뛰어들어, 소위 '당사자 보도(native reporting)'를 하면서 나름대로 영향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는 점이 내겐 특히 눈에 띄었다.

물론 청와대 블로그나 심상정 의원의 블로그를 꼼꼼히 살펴보지 못한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다소 성급할 수도 있다. 또 한 때 청와대 블로그는 "인터넷 공간에다 담화문을 붙여대고 있다"고 비판한 적도 있다. 그 비판은 지금도 그냥 거둬들일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들이 네티즌들과 함께 소통하려는 노력을 한다는 점만은 높이 평가해도 될 듯하다.

어쨌든 이런 의미를 떠나서, 톱 100 블로거에 이름을 올린 모든 블로거들께 축하 인사를 전한다. 하루 방문객이라고 해야 기껏 300, 400명 남짓한 중소형 블로거인 나로선,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블로그들이 대단할 따름이다.

물론 올블로그의 '톱 100 블로거'가 과학적인 상은 아니다. 또 '펌' 블로그들이 상당수 눈에 띈다는 비판도 있는 줄로 안다. 하지만 난 '톱 100 블로거'들에서 나름대로의 '코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점이 반갑고 기쁘다는 것이다.



요즘 1인 미디어, 아니 더 정확하게는 블로거 공동체에 대한 관심들이 많은 듯하다. 포털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또 전문 블로그 서비스업체들도 수시로 눈길을 보내고 있다. 서로 지향하는 바는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블로거들의 양질의 콘텐츠를 하나로 모아보겠다는 생각들이 강한 듯하다.

내가 이런 실험들을 눈여겨 보는 것도 순전히 개인적인 필요 때문이다. 박사 논문 연구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이 바로 '온라인 시민 참여 미디어의 진화모델'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연구해보고자하는 것은 '온라인 시민 참여 미디어'에서 '1인 미디어'들을 어떻게 개념 정의하고, 그들과 운영진(다른 마땅한 표현이 없어서)이 어떤 관계를 갖는 게 바람직할까, 하는 문제다.

하지만 요즘 관심을 기울일수록, 자꾸만 미궁 속으로 빠지는 느낌이다. 생각할수록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내가 머릿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논문 형식으로 풀어내는 작업 역시 녹록하지가 않다는 점이다.

뻔한 얘기 같지만, 일본 고베대학의 미우라 아사코 교수는 "블로그 글쓰기는 포스트를 기반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해주는 사회적인 행위이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는 또 사람들이 블로그 글쓰기를 하게 되는 3대 요인으로 1) 자기 자신에 대한 혜택 2)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미치는 혜택 3) 정보 처리 기술 등을 꼽았다. (Journal of Computer-Mediated Communication 에 게재된 Psychological and Social Influences on Blog Writing 참고할 것.)

일단 1인 미디어 공동체를 구축하려는 측은 블로거들이 지속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그게 가능할까? 자아에 대한 이해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구축, 여기에다 효율적인 정보 관리 등이 결합되면 적어도 블로그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 미우라 아사코 교수 등의 논지다.

물론 이들의 연구 결과를 100% 받아들일 순 없을 것이다. 어차피 논문이라는 건 소수의 연구 대상을 토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일반화할 땐 극도로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초기 연구 결과를 가지고 '만병통치약'처럼 발표하는 연구자들을 볼 때면 그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들의 연구 자체는 상당히 신뢰할만한 부분이 있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요즘 애드센스를 비롯한 수익 창출 시스템이 인기를 끌면서 '1인 미디어'에 대해 자꾸만 '노다지의 꿈'을 심어주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수익을 창출하도록 해주고, 또 그 수익을 적절하게 배분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게 주가 되어버리는 순간, '1인 미디어 공동체'라는 것은 진정성에 기반한 온라인 공론장으로서의 기반 자체를 상실해버리게 된다. '온라인 매체 정책을 세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철학이다'는 하나마나한 얘기를 자꾸만 되뇌이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1인 미디어 공동체'를 만들 때는 좀 더 차분하게 접근했으면 좋겠다. 블로그 글쓰기를 지속하게 만드는 것은 경제적인 요인보다는 '1인 미디어의 영향력'과 '타자와의 교류' 등과 같은 사회적 요인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난, 우리나라가 온라인 미디어 강국이 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인문학적 기반이 취약하다는 점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블로고스피어에 불고 있는 애드센스 광풍도 우려스럽기 그지 없다. 광고들이 잔뜩 붙어 있는 파워블로그들은 어느 새 그렇게도 비판했던 주류 매체들의 온라인 사이트들을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벌 수 있는 돈이 과연 얼마나 될까?

좀 더 차분하게 접근했으면 좋겠다. '1인 미디어 공동체'는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소통하는 곳이라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시작했으면 좋겠다. '노다지의 꿈'이 현실로 연결된 적은 별로 없다. '정보를 소통하는 곳' '사람과 소통하는 곳' '나와 소통하는 곳.' 그것이 바로 블로고스피어요, 그것이 바로 1인 미디어 공동체의 지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