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어떤 것이 옳은 방식일까?


뉴욕타임스가 플립보드와 콘텐츠 제휴를 하기로 한 바로 다음 날 뉴요커와 와이어드는 플리보드와의 제휴 관계를 끊기로 했다. 


한 쪽은 플립보드 같은 서드파티 앱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보인 반면, 또 다른 쪽은 자기만의 'walled garden'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당연히 상반된 양쪽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외신들도 이 부분에 대해선 조심스런 접근 방식을 보이고 있다. 기가옴이 뉴욕타임스의 행보에 힘을 싣는 기사를 게재한 반면, 매셔블은 플립보드의 전략에 적잖은 차질이 빚어질 것 같다는 쪽에 초점을 맞췄다.


옛 후배 둘이 열심히 운영하고 있는 테크잇은 매셔블 쪽에 가까운 글을 올렸다. 마지막 부분을 조금 인용하면 이렇다. 


매셔블 기사를 보면 플립보드가 뉴스에 있어서는 포털을 꿈꾸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미디어들과는 어느정도 헤게모니 싸움을 벌일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미디어 입장에서 수익적으로 얻는게 많지 않다면 앞으로도 유사한 사례들이 나올 것 같다. 개인적으로 써본 입장에서 플립보드는 미디어들이 최적화된 콘텐츠를 주지 않아도 다양한 뉴스를 편하게 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플립보드나 포털 사이트 뉴스 서비스 모바일판의 힘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


뉴욕타임스와 뉴요커는 왜 다른 길을 택했을까 


그런데 내가 보기엔 뉴욕타임스와 뉴요커(편의상 뉴요커만 쓰자. 그래자 운율이 잘 맞으니. ^^)의 행보는 그리 달라보이지는 않는다. 결국은 플립보드 같은 서드파티 플랫폼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는 부분이 초점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런 측면에서 한 쪽은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일 뿐이고, 다른 쪽은 그렇지 않았을 따름이다.


우선 뉴요커가 플립보드와 결별한 까닭을 살펴보자. 크게 두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자사 사이트에 있는 배너 광고를 통해 수익을 올리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플립보드에 최적화된 형태로 콘텐츠를 보여주는 현재와 같은 제휴 방식으론 그게 불가능하다. 배너 광고 대신 그냥 중간 중간에 전면 광고 형태를 끼워넣는 방식을 이용해야만 한다. 이건 국내에서도 포털과 공방을 벌인 적 있는 이슈다. 포털에 콘텐츠를 제공할 때 언론사 페이지에 있는 광고도 함께 보여주는 문제를 놓고 양측이 논란을 벌인 적 있다. 물론 포털 쪽이 허용할 리 만무하다. 


두번째는 좀 더 근본적인 이유다. 플립보드가 콘텐츠 유통의 중심지로 떠오르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자칫하면 주도권을 잃을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생긴 것이다. 이 부분 역시 국내 언론사들이 절감하고 있는 이슈다. 단, 국내 언론사들은 포털에 주도권이 넘어가고 난 뒤 다시 판을 바꾸려 했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그럼 뉴욕타임스는 이런 부분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던 걸까? 당연히 생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플립보드와 손을 잡았을까?


우선 첫번째 부분은 뉴욕타임스 쪽의 입장이 조금 다를 수도 있다. 잘 아는 것처럼 뉴욕타임스 디지털 전략의 주 수익 모델은 더 이상 '배너 광고' 중심 구도가 아니다. 지난 해부터 공을 들이고 있는 유료 전략을 좀 더 확대하는 쪽에 더 많은 관심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굳이 자기 사이트로 모든 독자들을 끌어모으지 않아도 된다. 


이 대목에서 뉴욕타임스는 한 가지 얻어낸 부분이 있다. 바로 유료화 전략의 원형을 그대로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이 부분은 플립보드가 상당히 양보했다고 봐도 된다. 그러니 뉴욕타임스 입장에선 배너 광고 수익 문제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닌 셈이다.


자, 그럼 두 번째 이유는 어떨까? 이건 사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뉴욕타임스 쪽의 공식 입장은 "독자들의 뉴스 수용 방식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현실을 인정하고, 플립보드 같은 서드파티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는게 더 낫다는 쪽이다. 


여기서 잠시 지난 해 퓨리서치센터 조사 결과를 떠올려보자.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미국 25대 뉴스 사이트를 매달 10번 이상 고정적으로 방문한다고 응답한 독자 비중이 7%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 달에 한 번 정도 방문한다고 응답한 독자 비중은 65%에 달했다. 이쯤 되면 개별 뉴스 브랜드에 대한 인식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결국 뉴욕타임스는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는 쪽을 택한 셈이다. 반면 뉴요커나 와이어드는 여전히 자신들의 고품격 콘텐츠는 자기네 사이트에 와서 봐야한다는 쪽인 셈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뉴요커가 플립보드와 제휴를 끊는다고 해서 플립보드에서 콘텐츠를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플립보드에 최적화된 형태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 뿐이다. 쉽게 비유하자면, 그냥 네이버에 기사 공급하던 것을 뉴스캐스트 방식으로 바꿨다고 보면 된다.)


뉴스 배포 경로 둘러싼 철학적 논쟁 본격화되나 


기가옴이 뉴욕타임스와 뉴요커 사례를 비교하면서 신문들이 뉴스 콘텐츠 배포 문제와 관련해 문화적, 철학적인 변화를 겪을 것이라고 한 것은 정확한 진단인 것 같다. 당연한 얘기지만, 현재로선 어느 쪽 전략이 옳은 지를 판단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그런 측면에선 플립보드도 고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매셔블에 따르면 플립보드가 지향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네이버와 비슷한 모델인 것 같다. 뉴스를 보는 관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플립보드의 전략은 '규모의 경제'가 제대로 작동해야만 가능한 모델이다. 뉴요커나 와이어드처럼 (주도권 문제든, 수익 배분 문제든 간에) 불만을 품고 이탈하기 시작할 경우엔 영향력이 급격하게 감퇴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플립보드 역시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워나가기 위해선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매셔블의 지적처럼, 차별화된 광고 모델을 선보이든, 아니면 뉴욕타임스의 유료 모델을 그대로 수용한 것처럼 언론사들의 전략을 훼손하지 않을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이 나와야 한다는 얘기다.


이래 저래 미디어 시장은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뉴욕타임스가 기술 쪽에 밝은 CEO를 찾고 있는 것도 이런 상황에 좀 더 잘 대처하자는 의도일 것이다. 이런 소식을 접하면서, 어쩔 수 없이 내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한국의 인터넷 저널리즘 환경. ^^


확실히 큐레이션이 대세는 대세인 모양이다. 뉴욕타임스가 대표적인 아이패드 앱인 플립보드와 콘텐츠 제휴 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뉴욕타임스가 25일 공식 발표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번 콘텐츠 제휴는 오는 28일부터 본격 시작된다.


따라서 그 때부터 뉴욕타임스 구독자들은 플립보드에서 뉴욕타임스가 제공하는 모든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 물론 뉴욕타임스 구독자가 아닐 경우엔 지금처럼 일부 콘텐츠만 볼 수 있다. 참고로 뉴욕타임스는 지난 해 3월부터 사이트 전면 유료화를 단행했다. 초기엔 매달 20개씩 공짜로 볼 수 있게 했지만, 올 들어선 공짜 콘텐츠 갯수를 절반으로 줄였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부분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다. 천하의 뉴욕타임스가 서드파티 앱을 통해 자신들의 모든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왜?"라는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뉴욕타임스는 독자들에 대한 의무라고 강조하고 있다. 자체 조사 결과 구독자 중 20% 가량이 플립보드 같은 서드파티를 통해 자사 기사를 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러니 기사 제공 채널을 확대하는 것은 독자에 대한 당연한 의무란 것이 뉴욕타임스의 설명이다.


물론 언론사가 땅 파 먹고 장사하는 집단은 아니다. 당연히 콘텐츠 제휴 모델엔 수익 모델이 포함되게 마련이다. 뉴욕타임스는 플립보드 기사 사이에 전면 광고를 끼워넣을 계획이다. 이렇게 생긴 광고 수익은 플립보드와 나누게 된다.


자, 여기까지가 공개된 팩트이다. 그럼 이번 제휴가 두 회사엔 어떤 이득을 가져다줄까? 플립보드와 뉴욕타임스 측면에서 이번 제휴의 득실을 한번 살펴보자.  


1. 실속 챙긴 플립보드 


플립보드 입장에선 뉴욕타임스 가세가 큰 힘이 될 전망이다. 잘 아는 것처럼 플립보드는 2010년 아이패드용 앱으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넷스케이프에서 활약했던 마이크 맥큐와 애플에서 아이폰 작업을 했던 엔지니어 출신 에반 돌이 공동 설립한 회사다. 나오자마자 그 해 애플 측으로부터 최고 앱 중 하나로 선정될 정도로 큰 관심을 모았다. (개인적으론 플립보드보다는 CNN에 인수된 자이트를 더 좋아하는 편이다.)





언론사 파트너도 적지 않다. ABC뉴스, USA투데이, 와이어드, 배너티 페어 같은 유력 매체들이 콘텐츠를 공급하고 있다. 여기에 뉴욕타임스까지 모든 콘텐츠를 제공해주기로 함에 따라 플립보드의 위세가 상당히 강해지게 생겼다. 뉴욕타임스 독자들을 플립보드 이용자로 끌어들이는 효과도 있다. 


마이크 맥큐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이번 제휴는 우리에겐 엄청난 일"이라고 한 건 충분히 공감할만한 부분이 있다. 하긴, 뉴욕타임스의 프리미엄 콘텐츠까지 보여줄 수 있게 됐으니, 그것만 해도 엄청난 상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다. 


독자들이 기사를 보는 방식도 달라질 전망이다. 그 동안은 뉴욕타임스의 각종 사진이나 양방향 그래픽 같은 것들을 가져오지 못했다. 링크를 누르면 별도 창을 띄워서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앞으론 플립보드에서 뉴욕타임스 기사를 사이트에 있는 것과 똑 같은 모양으로 볼 수도 있게 됐다. 말 그대로 'NYT 에브리훼어'의 수혜를 받을 수 있게 됐다. 


2. 채널 확장한 뉴욕타임스, 효과는?


앞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이번 콘텐츠 제휴는 'NYT Everywhere' 전략의 일환이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자사 기사를 유통시키겠다는 뉴욕타임스의 야심이 그대로 녹아 있는 셈이다. 여기에다 플립보드식 광고 모델을 통해 추가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는 점 역시 매력적이다. 


그 동안 뉴욕타임스 디지털 버전 기사를 읽으려면 웹 사이트를 방문하거나, 아이폰 및 안드로이드 앱을 이용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제 플립보드까지 채널이 확장하게 됐다. 최근 이용자들이 급증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뉴욕타임스 입장에선 상당한 성과를 기대함직하다. 


하지만 이번 제휴가 과연 'NYT Everywhere' 측면에서 부가적인 효과를 얼마나 가져다 줄 지는 미지수다. 올싱스디지털 지적처럼 그 동안 뉴욕타임스 독자들은 이미 아이폰을 비롯한 다양한 기기들을 통해 뉴욕타임스 기사를 접해왔기 때문이다. 플립보드가 뉴욕타임스의 기존 앱들과 크게 다르진 않기 때문이다. 구독자 입장에선 플립보드 한 곳에서 모든 콘텐츠를 볼 수 있다는 정도의 편리함을 빼면 사실 큰 차이는 없을 듯 하다. (물론 이게 크다면 큰 차이이긴 할테지만)


그럼 뉴욕타임스를 구독하지 않는 독자들은 어떨까? 일단 이들은 뉴욕타임스가 공짜로 제공하는 콘텐츠만을 볼 수 있다. 뉴욕타임스의 paywall이 플립보드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욕타임스의 유료화 전략이 '트래픽'과 '구독료 수입'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것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플립보드를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사 콘텐츠를 맛뵈기로 보여주면서 구독을 유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뉴욕타임스는 'Everywhere' 전략보다는 '마케팅 채널 확충'이란 부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플립보드를 활용한 광고 영업 역시 뉴욕타임스에는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다. 


3. 혹시 플립보드 인수를 염두에 둔 건 아닐까?


이번 콘텐츠 제휴 소식을 들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전통 언론들 중에서 가장 소셜 미디어를 잘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페이스북 페이지 팬 수가 220만 명에 달할 정도다. 발행부수의 150%는 족히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미국의 다른 매체들은 페이스북 페이지 팬 수가 발행 부수의 20%를 밑돌고 있다.)


누군가는 이번 제휴를 "허핑턴포스트에 추월당한 뉴욕타임스가 소셜 미디어에 눈을 돌렸다"는 쪽으로 해석하는 것 같던데,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씀이다. 


솔직히 지난 해 허핑턴포스트가 뉴욕타임스 트래픽을 앞질렀다는 기사를 보면서 고소를 금치 못했다. 심지어 보고서에도 그런 인용이 포함되는 걸 보면서 참 웃긴다는 생각을 했다. 





한번 생각을 해보시라. 뉴욕타임스가 지난 해 3월 사이트 전면 유료화를 단행했으니, 2분기 들어 허핑턴포스트에 추월당하는 건 당연하다. 추월 안 당하는 게 오히려 뉴스 아닌가? 


솔직히 나도 뉴욕타임스의 소셜 전략에 대해선 잘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 대형 언론사처럼 소셜 미디어 활용이 서툴 것이란 생각은 아예 접어두는 게 좋다. 벌써 몇 년 전에 소셜 데스크 제도를 두면서 소셜 전략을 수행해 올 정도로 상당한 내공을 쌓아왔다.


그래서 문득 든 생각이 바로 인수다.  CNN이 자이트를 인수한 것처럼 뉴욕타임스도 혹시 플립보드 인수를 염두에 둔 건 아닐까? (플립보드-자이트가 미디어의 미래 모습일까? 참고.)


물론 플립보드와 자이트는 규모나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크다.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에서 프로젝트로 시작한 자이트와 달리 플립보드 창업자들은 실리콘밸리에서 내공을 쌓은 비즈니스 맨들이다. 가격이나 여러 가지 측면을 생각하면 녹록한 상대는 아니다. 


하지만 웬지 뉴욕타임스가 플립보드 인수에 상당한 관심을 보일 것 같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아, 물론 이건 그냥 내가 감으로 얘기한 거니,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마시길. ^^ (너무 허무하게 끝을 맺었나?)

IT 기자 노릇을 하다보면 한계에 부닥칠 적이 적지 않다. 주로 전문성 때문이다. 이 분야 전문가도 아니면서, 이런 저런 지적을 하는 게 과연 타당한 것일까, 라는 고민이 들 적도 있다. 


사실 기자 초년 시절부터 이런 고민을 좀 했다. 과연 기자는 전문직인가? 아니면 상식 수준의 정보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인가? 우리나라엔 기자들의 전문성이 왜 떨어지는 걸까? 


(여기서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 마디. 글을 쓰다보면, 본의 아니게 나를 포장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평소에 나와 얘기를 못해 본 사람들은 내가 굉장한 문제 의식을 갖고 있을 거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분명히 한 마디 하자면, 그냥 그 때 계기가 되어서 몇몇 선배들과 그런 문제를 놓고 잠시 토론을 한 적 있었단 얘기다.)


오늘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 프레시안에 실린 김성근 감독 인터뷰 기사 때문이다. 김성근 "SK 이미지를 망친 것은 내가 아니었다" 란 도발적인 제목의 기사였다. 전체적인 톤은 주로 SK 팀에 대한 강한 비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김성근 감독의 다음과 같은 발언이 내 눈에 확 들어왔다. 


평론가들이 하는 말도 흘러가는 말이 많아요. 그렇지? 매스컴들도. 정확히 지적을 하지 못하고. 그리고 지금 보면 기자들이 평론을 하는데, 그 자체가 틀려먹은 거라고. 기자가 과연 전문가인가? 야구의 깊은 내용을 아는가? 그 기자들의 평을 독자들이 보고 야구를 판단하는데, 기자들이 캐치볼은 해봤는가? 캐처(포수)가 어떻게 판단하고 배합하고 사인하는지를 아는가?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평을 하고, 그런 사람이 텔레비전 나와서 뭐라고 그러는데, 그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야. 우리나라 자체가 자꾸 그렇게 흘러가는 거야. 그렇지?

이 피처(투수)하고 타자의 승부를 기자들이 아나? 그런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냐고. 그런데 수비야구를 한다, 공격야구를 한다, 어쩌고 하는데, 공격야구의 에버리지(평균)를 뽑아보면 어떻게 돼있는지, 그것을 가지고 얼마나 손해보고 있는지 따지고 들어가야지. 스트라이크와 볼에 각각 얼마나 손대고 있는지 따지고 들어가야지. 깊은 곳에 들어가서 공격야구라는 것의 플러스-마이너스를 따지고 들어가야지. 무조건 초구를 치면 공격야구인줄 알아. 


현장에서 뛰는 기자들은 김성근 감독의 저 말을 듣고 상당히 분개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자들의 아픈 곳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가끔 기자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모 감독은 인터뷰할 때 굉장히 퉁명스럽다고 한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왜 하세요?"란 투로 대꾸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난,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감독이 이해가 될 적이 많다. 생각해보라. 심각하게 경기 준비하는데, 뻔한 질문 해대면 얼마나 짜증이 나겠는가? 저런 대꾸 속엔 "기자가 공부 좀 하면 안 되나?"란 불만이 담겨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남의 영역이라고 쉽게 얘기하는 지도 모르겠다. 나도 솔직히 우리나라 스포츠 저널리즘에 대해선 불만이 많다. 네이버에서 일본 키무라 기자의 칼럼을 읽을 때마다 탁월한 분석 능력과 식견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지난 해 LG와 넥센이 2대 2 트레이드를 한 적 있다. 넥센이 송신영+김성현을 LG에 내주고, 박병호+심수창을 받는 트레이드였다. 


당시 기자들은 예외 없이 넥센이 또 다시 선수 팔아먹기를 하고 있다는 식으로 썼다. "넥센이 시즌을 포기하는가?"란 기사도 적지 않았다. 단 한 명도, "이 시점에서 왜 저런 트레이드를 했을까?"란 물음을 제기하는 기자가 없었다. 당시 난 이런 기사에 대한 불만을 담아 IT 기자가 본 LG-넥센 트레이드 손익 계산서란 글을 쓴 적 있다.


(물론 지금 시점에서 보면 넥센이 훨씬 득을 봤다. 잘 아는 것처럼 김성현은 승부 조작으로 사실상 선수 생활이 끝났고, 송신영은 FA로 한화로 갔다. 반면 박병호는 넥센의 4번 타자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당시엔 LG 쪽으로 기운다고 볼 수 있는 트레이드였다.) 


이런 원초적인 전문성 부족이야 기자들의 자질 문제이니 논외로 하자. 김성근 감독이 제기한 문제는 조금 다르다. 


캐치볼 한 번 못해 본 기자가, 평론하듯 기사를 써서야 되겠느냐는 얘기였다. 아마도 뭣도 모르는 기자가 감 놔라 배놔라 하는 식으로 기사를 쓰는 것이 불편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도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도 김성근 감독이 지적한 기자의 범주에 포함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난, IT에 대해 잘 모른다. 스마트폰 시장 얘기를 하면서도, 간단한 스마트폰 작동 원리에 대해서도 모른다. 물론 통신시장을 지탱하는 각종 이론적 기반이라든가, 다양한 담론들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이런 전문성은 굉장히 떨어지는 편이다. 그건 솔직히 인정해야만 한다. 


여기서 질문을 한번 던져보자. 과연 기자는 어디까지 전문성을 쌓아야 하는 걸까? 


김성근 감독 지적대로라면, 야구 기자들은 평론성 글은 쓰지도 말아야 한다. 물론 야구 해설을 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포수의 미세한 근육 움직임을 보고, 사인을 간파해내는 프로들의 세계의 속사정을 모르는 기자들이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 걸까? 그런 전문성만이 필요한 걸까?


초창기 기자의 전문성 부족에 대한 고민에 빠졌을 때 내가 내린 결론이 있다. "기자들만큼 일반인의 언어로,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해주는 사람도 드물다." 


김성근 감독 역시 기자들이 좀 더 전문성을 가지라는 의미로 그런 얘기를 했을 것으로 믿는다. 그게 아니라, 저 말 그대로 "야구 한 번 못 해 본 기자들이 감히..."란 의미라면, 그건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결론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도대체 기자들은 어디까지 전문성을 가져야 하는 걸까? 그 분야 최고 전문가 수준? 예를 들면 일본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꼽히는 다치바나 다카시 정도? 하지만 일본에서도 다치바나 다카시는 한 명 밖에 없다.


에이 골치 아프다. 그리고 졸린다. 여기서 횡설수설 끝. 쩝. 질문은 거창하게 시작했는데, 뻔한 얘기로 마무리하고 말았구나. 

요즘 소수정예형 미디어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러다보니, 지금 몸 담고 있는 회사가 처음 출범할 때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우리도 소수정예였다. 당시 IT 담당 기자들 중 나름 실력 있다는 기자들이 모여서 출범했다. (이 대목에서 인상 쓰는 분께 한 마디. "그래, 나는 뺀다, 빼.")


출범하자마자 우린 꽤 많은 특종 기사를 쏟아낸 기억이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2000년 4월엔가 썼던 남북 IT 협력 관련 기사였다. 그 기사가 인상적이었던 건, 바로 그날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 사실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는 정부 발표를 보면서 짜릿한 경험을 맛봤다. "휴, 기사 하루만 묵혔어도…"라며 안도하기도 했다. (잘 아는 것처럼, 그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그 해 6월15일 평양 순안공항을 통해 북한을 방문하는 장면이 생중계됐다.)


생각해보라. 정부가 해방 이후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 사실을 공식 발표하는데, 그 전날 저녁 '남북 IT 협력' 관련 기사를 톱으로 썼을 때의 기분을. 그 기분 때문에 기자 생활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지금 돌이켜봐도, 당시 우린 열정과 꿈, 그리고 희망으로 똘똘 뭉쳤던 것 같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초기의 열정은 사라지고, 하나 둘 조직을 떠났다. 하지만 그 때 우리가 갖고 있던 열정과 맨파워라면, 적어도 IT 언론에선 전혀 뒤질 게 없었던 것 같다. 


이 대목에서 이런 질문을 한번 던져 본다. "과연 그 때 우리는 진정한 소수정예였던 걸까?"


예전 같으면 이 질문에 대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 우리가 소수정예 미디어였다"는 대답을 하진 못하겠다. 대신 "적어도 편집국 기자들은 소수정예였던 것 같다"고 좀 더 분명하게 대답할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우린 '반쪽만' 소수정예였다. 편집국 이외 다른 조직에 대해선 큰 신경을 쓰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다보니, 다른 쪽의 혁신에 대해선 잘 몰랐다. IT를 전문으로 다루면서도, 조직 전반적으로 IT 활용도가 떨어졌던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한계로 작용했던 것 같다. 


비단 이런 상황은 우리만 그런 건 아니었을 게다. 당시 출범한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기자'만 있으면 모든 게 다 되는 걸로 생각했다. 회사의 분위기도 편집국 문화가 강하게 지배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회사에서 기자 정신이 대접받지 못하는데 환멸을 느꼈던 기자들 입장에선 이런 분위기가 상당히 좋았다. 정말 아무 걱정없이 기사만 쓰는 되는 문화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당분간은. ^^)


혁신적인 조직이 되려면 여러 가지가 잘 맞아 떨어져야 한다. 물론 스티브 잡스처럼 강력한 카리스마와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조직에 혁신 DNA를 심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넓다는 미국에서도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니 절대 지존 같은 지도자가 조직의 문제를 단 번에 해결해줄 것이란 기대는 아예 접는 게 좋다.


다시 처음의 고민으로 돌아가보자. 이런 상황에서 중소 인터넷언론사들이 혁신적인 시스템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기자들도 그렇지만, 기자 이외 직종 사람들에게 중소 인터넷언론사는 선호 대상에서 한참 뒤진다. 능력 있는 기획자, 능력 있는 개발자는 언론사를 싫어한다. 특히 중소 인터넷 언론사는 더 싫어한다. 이런 저런 일은 많은데, 정작 자신의 능력을 십분발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단순하고 반복적인 유지보수 업무만 실컷 처리하다가 나가 떨어지기 십상이다. 게다가 중소 언론사들은 높은 연봉을 주고 쓸만한 인물을 데려올 재력도 없다.


어쨌든 가면 갈수록 21세기형 언론사는 기자만으론 안 되는 조직이란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된다. 개발과 기획 분야의 맨파워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경쟁력을 발휘하기 힘든게 21세기 언론 지형도이다. 


10여 년 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가장 먼저 이런 문제를 고민할 것 같다. 일단 한 번 그려놓은 그림을 고치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제대로 그리는게 훨씬 손이 덜 가기 때문이다.


점심 식사 후에 이런 저런 우울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곰곰 따져보니, 난 다음 주에 휴가구나. 갑자기 기분이 업~ 되는 느낌. 그러고보면 인생 참 단순한 듯. 아니면 내가 단순한 건가?

허핑턴포스트가 단기간에 성공을 거둔 비결은 뭘까? 물론 아리아나 허핑턴의 탄탄한 인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실제로 허핑턴은 영국에 사이트를 개설할 땐 토니 블레어 전 총리를 필진으로 영입할 정도로 막강한 인맥을 자랑한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전직 총리를 시민 기자로 영입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기에다 편집국을 지탱한 뛰어난 인력들 역시 성공의 밑거름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난 번에 미국 IT 사이트들의 경쟁 구도를 설명하면서 예를 들었던 더버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차별화된 콘텐츠를 잘 구현할 수 있는 CMS를 비롯한 각종 기술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허핑턴포스트에서 그 역할을 맡았던 인물이 폴 베리 전 최고기술책임자(CTO)였다. 




폴 베리는 허핑턴포스트 초기 검색엔진 최적화를 비롯해 각종 소셜 미디어를 잘 구현, 허핑턴포스트가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실제로 허핑턴포스트는 페이스북을 비롯한 각종 SNS와 뉴스 사이트를 유기적으로 결합한 대표적인 언론사로 꼽히고 있다.


이처럼 허핑턴포스트가 성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폴 베리가 이번엔 소셜 플랫폼 서비스를 선보여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바로 레벨마우스(RebelMouse) 란 소셜 플랫폼이다.(참고로 레벨마우스란 명칭은 미키마우스와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레벨마우스의 마스코트는 미키마우스와 상당히 닮았다.)


레벨마우스는 아직은 베타서비스 단계다. 따라서 전모를 파악하기는 다소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해도 상당히 관심을 끄는 서비스다. 한 마디로 각종 소셜 미디어에 있는 콘텐츠를 갖고 개인 홈페이지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서비스라고 보면 된다. 


요즘 사람들은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잘 쓰지 않는다. 대부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를 사용하고 있다. 페이스북 같은 것들은 굳이 긴 글을 쓸 필요도 없을 분 아니라, 그 때 그 때 이슈가 된 것들을 바로 연결할 수 있어서 굉장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SNS는 '휘발성'이 너무 강하다. 흐르는 강물같은 존재다. 한번 지나가고 나면 다시 보기가 힘들다. 게다가 시간 역순으로 쭉 나열되는 구조로 돼 있어 어떤 것이 중요한 지 강조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레벨마우스는 바로 이 부분을 파고 들었다. 다양한 콘텐츠를 가져와서 자기 나름대로 홈페이지 비슷한 것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좀 더 강조할 수도 있다. 소셜 미디어와의 연결에도 신경을 썼다. 특정 포스트가 소셜미디어에서 많은 반응을 얻거나, 팔로워가 많은 사람이 그 포스트를 링크하는 등의 활동을 했을 경우엔 바로 필자에게 알려준다.




폴 베리의 레벨 마우스는 저널리즘 활동에도 잘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포인터연구소는 레벨마우스를 콘텐츠 큐레이션용으로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언론사 입장에서도 뉴스 수집용 플랫폼으로 쓸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선 크라우드소싱 프로젝트용 플랫폼으로 쓸 수도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활용해 멋진 시민 저널리즘 실험을 했던 기자들이라면 레벨마우스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도 있다. 현재는 페이스북, 트위터만 연결할 수 있지만 조만간 텀블러, 핀터레스트 같은 SNS를 추가할 계획이라고 한다. 잘만 하면 SNS를 망라하는 플랫폼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있다. 


내가 레벨마우스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폴 베리란 인물 때문이다. 허핑턴포스트에서 탁월한 CMS를 선보이면서 멋진 뉴스 사이트를 만들어냈던 인물인 만큼, 지금까지 나온 각종 큐레이션 서비스 중 뉴스 사이트에 가장 가까운 방식의 CMS를 구현할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실제로 몇몇 기자들이 시험삼아 구현해 본 것들을 보면 상당히 유용해 보인다. 과연 폴 베리가 허핑턴포스트에 이어 또 한번 소셜 혁명을 주도할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뭐라고 판단하긴 힘든 상황이긴 하지만, 성공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쪽에 100원을 걸어본다. ^^ 

지난 총선 때 소셜 분석을 활용해보려고 몇 가지 시도를 했다. 트위터 키워드 분석과 함께 스토리파이를 비롯한 각종 큐레이션 서비스를 시도해 봤다. 그렇게 한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같은 편집국 시스템이나 기사 작성 시스템으론 장기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 차원에서 한 건 아니었다. 그냥 개인적으로, 약간의 호기심을 섞어서 한번 해 봤다. 


실제로 트위터 키워드 분석은 꽤 재미 있었다. 시간이 없어서 대충 기사를 쓰긴 했지만, 꼼꼼하게 파고 들면 꽤 흥미로운 결과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스토리파이를 활용한 보도는, 외신들에서 많이 본 걸 그냥 따라해봤다. 파이낸셜타임스, 가디언 같은 외국 언론들은 큰 사안이 있을 때마다 스토리파이를 활용해 깔금하게 보도해 준다. 소셜 여론을 전해주는 덴 상당히 유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셜 분석과 스토리파이 같은 큐레이션 서비스를 잘 활용할 경우 걸핏하면 "트위터 아이디 A씨는~" 식으로 소셜 여론을 입맛대로 갖다 붙이는 일부 언론들과는 차별화된 보도를 할 수도 있다.


(스토리파이가 언론 보도에 어떻게 활용되는지 살펴보려면 How to Build An Interactive Map for~ 란 글을 한번 참고해봐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이내 그런 야심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기사집배신'으로 불리는 CMS 때문이었다. 


우리 뿐 아니라 대다수 언론사의 CMS는 지금 급박하게 흐르고 있는 소셜 여론을 쉽게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 10여 년 전에 개발한 것들을 그대로 쓰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CMS 혁신을 우선 순위에서 한참 뒤로 미뤄놓고 있다. 지금 당장 기사를 쓰는 데 별 불편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한번 생각해보자. 테크잇이 지적한 것처럼 현재 대부분의 인터넷 언론들은 홈페이지를 통한 유입 비율이 극히 낮은 편이다. 절반은 커녕 30%에도 미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여전히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홈페이지를 곱게 꾸미는 데 많은 정성을 쏟는다. 심지어 색깔 하나 바꾸는 것 가지고 열띤 토론을 하기도 한다. 그런 것들이 소용 없는 짓은 아니지만, 우선 순위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짓이다. (테크잇이 저 글 후속편으로 CMS를 다룬다고 한다. 그 글을 한번 기다려보려다가 그냥 내가 평소 생각하던 것들을 먼저 써봤다.)


반면 기사 최종 페이지에 대해선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다 못해 표 하나, 그래프 하나 깔끔하게 만들어붙이는 곳도 찾아보기 힘들다. 일관된 규격 없이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갖다 붙이는 곳도 적지 않다. 이래서야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가 쉽지 않다.


티스토리 블로그를 쓸 때마다 느끼는 게 있다. 최소한 언론사 CMS가 티스토리 블로그 입력창 정도만 돼도 부담이 절반쯤은 줄어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셜 분석 같은 차별화된 시도는 차치하고, 사진이나 그래프, 인용문구 같은 것들을 좀 더 깔끔하게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 트위터로 대화를 했던 이성규 님은 국내 신문과 집배신-BBC CPS와 어떻게 다른가란 글을 통해 한국 저널리즘의 적나라한 현주소를 잘 보여줬다. 


얼마 전 스타워즈 방불케하는 IT저널리즘 현장이란 포스팅을 한 적 있다. 세이란 잡지에 실린 글을 토대로 내 나름대로 의미부여를 해 본 글이었다. 당시 그 기사를 쓴 기자는 더버지의 놀라운 성공 비결로 뛰어난 편집국 인력 못지 않게 탄탄한 개발자들을 꼽고 있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편집국 기자들의 각종 욕구를 쉽게 해결해 줄 수 있는 제작 시스템을 그 때 그 때 잘 만들어낸 것이 더버지가 단기간에 엄청난 성공을 거두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었다.


반면 우리 상황은 어떤가? 대다수 언론사들은 개발자들과 편집국 기자들이 제대로 된 소통조차 하지 않는다. 언론사 내에서 개발팀은 '시스템 관리' 정도 위치를 부여받는다. 아니, 그 정도는 약과다. 그저 PC를 고쳐주거나, 기본 네트워크 설정을 해주는 인력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래 가지고서는 '작지만 강한' 언론사로 탈바꿈하는 게 불가능하다. 당장 모바일이나 태블릿 뉴스 전략까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인데, 제대로 된 CMS 하나 없이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군대의 전력을 극대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훈련을 열심히 시켜서 군인들의 전투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편집국에선 이 역할을 하는 것이 기자 교육일 것이다. 물론 데스크들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요소는 바로 무기 선진화다. 제 아무리 잘 훈련된 병사라도 M1 소총을 들고 M16 소총으로 무장한 적들을 이길 순 없다. 그런데 활 한 자루 쥐어주고선, 총들고 덤벼드는 적들과 싸우라고 하는 건 무모함을 넘어 무식한 짓이다.


이런 설명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왜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기자들의 무기를 혁신하려는 노력을 하는 언론사는 많지 않은 걸까? 최소한 머릿 속에 떠오른 각종 아이디어들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CMS가 있어야만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지 않겠는가? 


국내에 더버지나 매셔블 같은 작지만 강한 인터넷 언론을 찾아보기 힘든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몇몇 대형 광고주 외에는 대안이 없는 시장 상황, 열악한 독자 기반 등 여러 가질 꼽을 수 있다. 이런 것들에 비해 우선 순위에선 저 만치 밀릴 지도 모르지만, 개발 인력에 대한 홀대 역시 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편집국 간부와 개발 책임자 간의 원활한 소통과 업그레이드를 위한 노력, 그리고 투자. 이것 없이는 경쟁력 있는 인터넷 언론을 만드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 

지난 달 말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최지성 삼성 CEO가 전격 회동했다. 법원이 1년 이상 법정 공방을 계속하고 있는 두 회사 CEO 회동 자리를 주선한 때문이었다. 내외신 기자들은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 알아내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아무런 얘기도 알아낼 수 없었다. 법원이 함구령을 내린 때문이다. 회동 내용이 새어나갈 경우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함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언론 플레이를 할 경우 파장이 만만치 않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고, 갑자기 국내 언론에 팀 쿡이 "삼성전자가 미친 짓을 하고 있다"고 발언했다는 내용이 기사화됐다. 월스트리트저널 계열사인 올싱스디지털 주최로 열린 D10 컨퍼런스에서 삼성을 맹비난했다는 기사였다. 


(아래 그림은 네이버에서 한번 검색해 본 화면이다. 보면 알겠지만, 신기하게도 모든 매체의 논조가 똑 같다.) 





솔직히 그 기사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내 첫 반응은 "팀 쿡이 미쳤나?"였다. 무슨 조그마한 중소기업 사장도 아니고, 세계적인 회사 CEO가 '평화협상'을 하고 돌아서서 협상 상대방을 무차별 공격한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건 상도의가 아닐 뿐 아니라, 자칫하면 진행 중인 재판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그런 말을 할 리가 없다. 


궁금증이 발동해서 기사를 찾아봤다. 외신을 인용 보도한 국내 매체들이 분명하게 어떤 매체에 보도됐는 지 밝히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D10 컨퍼런스를 주최한 올싱스디지털 기사를 찾아봤다. 일단 제목은 Patent Wars Are "Pain in the Ass," Says Tim Cook이라고 돼 있었다. 'Pain in the Ass'란 우리 말로 하면 '성가신 일'쯤 된다. (엉덩이에 고통이 있다고 한번 생각해보라. 활동하는 것부터 모든 게 불편해질 테니.)


내용도 제목과 크게 차이가 없다. 당연히 최근의 특허 공방에 대한 질문이 나왔을 테고, 그 질문에 대해 팀 쿡은 "그것 참 골치 아픈 일이다"는 취지로 답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골치 아픈 일이 생기는 원인은 바로 "미국의 특허 시스템이 붕괴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표준특허로도 소송이 가능하게끔 돼 있는 건 문제라는 것이다.


그 대목을 아예 직접 한번 옮겨보자.


“The vast majority of people suing us are suing on standards-essential patents,” Cook said. “And that’s where the patent system is broken. … No one should be able to get an injunction off a standards patent, because the owner is obligated to license it in a fair and reasonable manner.


“Apple has not sued anyone over standards-essential patents that we own, because we feel it’s fundamentally wrong to do that,” Cook continued. “The problem in this industry is that if you add up what everyone says their standards-essential patents are worth, no one would be in the phone business. It’s maddening. It’s a waste. It’s a time suck. Does it stop innovation? Well, it’s not going to stop us, but it’s overhead. I wish we could settle this stuff.”


내 영어 실력이 모자란 때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저 말에서 애플이 삼성을 "미쳤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는 근거를 찾지 못하겠다. 


찬찬히 한번 읽어보자. 대충 이런 얘기가 담겨 있다. 현재 대다수 사람들은 표준 필수 특허로 소송하고 있다. 바로 그 부분이 특허 시스템이 붕괴된 걸 보여주는 사례다. 그래선 안 된다. 적어도 표준 특허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공정하고 납득할만한 방식으로 라이선싱할 의무가 있다. 또 애플은 적어도 표준 특허로는 소송을 걸지 않는다는 얘기. 그렇게 하는 건 시간 낭비로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뭐 대충 이런 얘기가 담겨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한국의 주요 매체들은 이 기사를 "삼성이 미친 짓을 하고 있다"고 보도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일부 매체는 아예 협상을 끝내고 돌아가자 마자 바로 등에다 칼을 꽃는 발언은 했다는 식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어떻게 저 외신을 보고 똑 같이 팀 쿡이 삼성을 원색적으로 비난할 수 있다는 기사를 쓸 수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과연 원래 기사를 제대로 보고 쓴 걸까? 아니면, 내가 외신 이해를 잘못한 걸까?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심?

언론학을 공부하다보면 숙의(deliberation)란 말을 자주 접하게 된다. 숙의 민주주의란 서로 상반되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시스템이다. 


당연히 숙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빛을 발하기 위해선 '경청'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울러 대화와 토론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수정할 수 있는 열린 마음'도 필요하다. 이 정도 얘기는 요즘 신방과 교수들 논문 한 두 편만 읽어보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전제가 있다. 바로 다양한 견해를 접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래서 숙의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기 위해선 언론 자유가 중요하다.)


정보 민주화가 숙의 민주주의로 이어질까?


한 때 인터넷이 숙의 민주주의를 꽃 피울 것이란 기대감이 높았던 적이 있다. 몇몇 국가의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금지된' 정보 유통 창구로 활용되면서 이런 기대감은 더 높았다. 멀리는 10년 전쯤 '참여군중(Smart Mobs)'이란 책을 펴낸 하워드 라인골드부터, 가까이는 '자스민 혁명'을 전해주는 수 많은 신문기사들까지 그 층위도 다양하다. 


라인골드는 필리핀 '피플 파워' 당시 휴대폰이 정보 전달 창구 역할을 담당한 부분을 상당히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당시 라인골드는 '참여군중'에서 P2P가 저널리즘과 연결되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것이란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라인골드가 10년 쯤 전에 던졌던 전망이 지금 실현되고 있다. 이제 P2P 저널리즘이라고 지칭할 만한 현상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 민주화가 우리 손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이런 기술 혁명이 우리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만 끼치는 걸까? 역효과는 없는 걸까? 당연히 역효과도 적지 않다.


'리퍼블릭닷컴 2.0(Republic.com 2.0)' 같은 저술로 유명한 선스타인(C. Sunstein)은 일찍부터 인터넷 공간의 여론 쏠림현상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블로그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링크'는 주로 끼리 끼리 이뤄지고 있다는 것. 자신과 상반된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의 토론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기는 커녕, 불편한 의견은 아예 접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들이 최근 들어 더 광범위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검색 최적화를 통해 '보고싶어 할' 결과물을 먼저 노출해 주는 구글이나, 관심 있어 할만한 사람을 알아서 찾아주는 페이스북의 뛰어난 알고리즘 덕분에 우리는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이용자들의 취향을 민감하게 반영하는 포털 뉴스 편집방식은 새삼스럽게 거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서두가 길었다. 요즘 우리가 정보를 소비하는 행태를 한번 되돌아보자. 상당수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소비한다. 평소 눈여겨봤던 사람들이 큐레이션 해주는 정보를 집중적으로 소비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당연히 정보 편식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트위터는 '필터 버블'을 조장하는 것 아닐까?


기가옴의 매튜 잉그램 기자가 쓴 'Is Twitter popping the filter bubble or inflating'란 기사는 이런 점을 잘 지적해 주고 있다. 그는 이 기사에서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란 저술로 유명한 엘리 파리서(Eli Pariser)를 인용하고 있다. 파리서 역시 이런 부분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파리서는 '필터 버블'에서 "개인들이 균형 잡힌 정보 소비를 할 책임이 있긴 하지만 구글 같은 대형 플랫폼들 역시 다양한 견해를 노출하는 쪽으로 플랫폼 설계를 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잉그램 기자는 또 타레톤 질레스피(Tarleton Gillespie)가 쓴 'Can an Algorithm be Wrong?'이란 논문도 함께 인용하고 있다. 


덕분에 나도 링크를 타고 들어가 이 논문을 읽어봤다. 당연히 머리가 많이 아프다. (늘 그렇지만, 짧은 영어 실력을 한탄하면서 읽었다. God damn English. 진작 영어 공부 좀 열심히 할 걸. 껄껄.)


질레스피는 이 논문에서 트위터의 '트렌트(Trend)' 알고리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트렌드가 뭔지는 알 것으로 믿는다. 간단하게 말해, 트위터 알고리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슈들을 주요하게 노출시켜주는 것을 말한다. 


질레스피 논문의 출발점은 지난 해 월가 점령 시위 당시 #occupywallstreet이란 해시태그가 '트렌드'에 노출되지 않으면서, 트위터 측이 검열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던 부분에서 출발하고 있다. 물론 검열 문제를 제기하는 건 아니다. 그 선에서 그쳤다면, 그건 논문이 아니라 기사다. 질레스피는 "설사 검열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과연 트위터의 알고리즘은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물론 트위터는 정확하게 어떤 알고리즘 원칙을 적용하는 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건 당연하다. 영업 비밀이기도 하거니와, 공개하는 순간, 트위터의 알고리즘을 악용해서 메인 화면에 노출시키려는 세력들이 적지 않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레스피는 트위터가 제기하는 몇 가지 원칙은 있다고 요약해주고 있다. 그 부분을 잠깐 옮겨보자. 


Is the use of the term spiking, i.e. accelerating rapidly, or is its growth more gradual? Are the users densely interconnected into a single cluster, or does the term span multiple clusters? Are the tweets unique content, or mostly retweets of the same post? Is this the first time the term has Trended? (If not, the threshold to Trend again is higher.) So this list, though automatically calculated in real time, is also the result of the careful implementation of Twitter’s judgments as to what should count as a “trend.”


대충 요약하자면 이렇다. 갑작스럽게 상승하는가? 아니면 점진적으로 상승하는 용어인가? 단일 클러스터 내의 이용자들이 촘촘하게 읽혀 있는가? 아니면 다양한 클러스터의 이용자들에게 좀 더 넓게 퍼져 있는가? 독창적인 트윗들이 많이 유통되고 있는가? 아니면, 대부분 같은 글이 반복적으로 리트윗 되고 있는가? 처음으로 제기된 용어인가? 아니면 반복적으로 등장한 것인가?  두 가지 질문 중 앞 부분에 해당될 경우에 '트렌트'로 선정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물론 전자동 시스템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 트위터 편집진이 적당한 손질을 가할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이런 기준이 적용되는 과정에서 트위터 측은 두 가지 이해 관계에 직면하게 된다는 점이다. 즉, 공중들이 가장 알아야만 하는 이슈를 집중 부각하려는 욕구와, 새로운 사람들을 대거 대화로 유인하려는 욕구 사이에서 갈등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질레스피는 트위터가 후자 쪽에 기울 가능성이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 


Perhaps we could again make the case that this choice fosters a public more attuned to the “new” than to the discussion of persistent problems, to viral memes more than to slow-building political movements.


위의 논의들을 요약하면 이렇다. 현재 우리가 접하는 정보 플랫폼들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노출하도록 설계돼 있다. 그러니 당연히 정보 편식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가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는 방식 역시 정보편식을 조장할 가능성이 많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친구'들 역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끼리 끼리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이러니 소셜 미디어를 통한 정보 민주화가 진전될수록 숙의민주주의는 더 멀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보를 접할 자유 못지 않게, 귀를 닫을 자유까지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잉그램 기자는 사용자 주권을 강조하는 걸로 기사를 맺고 있다. 소비자들이 좀 더 현명하게 소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뭐, 원론적인 면에선 당연히 공감한다. 그런데, 과연 일반 소비자가 그렇게까지 골머리를 썩일 것인가? 굳이 그래야 할 필요를 느낄까? 나만 해도 조선일보 정치면 기사 읽었다간 정신 건강에 안 좋을 것 같은데. 이래 저래 참 쉽지 않은 주제인 것 같다. 


그 동안 뉴스는 '완성된 상품'이란 개념이 강했다. 그 얘긴, 뉴스 생산자와 소비자가 철저하게 분리된다는 의미였다. 당연히 뉴스 소비자들은 생산 과정에 참여할 여지가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독자 의견'을 통해 약간의 불만을 토로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과정으로서의 뉴스(news as a process)'란 개념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런 개념을 제기하는 대표적인 이론가는 제프 자비스다. (자세한 내용은 Product v. process journalism: The myth of perfection v. beta culture 참고.)


과정으로서의 뉴스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기자가 완성된 상품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과 함께 뉴스란 상품을 만들어나간다는 의미다. 


제프 자비스가 그린 'The new news process'란 그림을 한번 살펴보자.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이야기가 기사로 게재되기까지 적지 않은 과정을 거친다. 문제는, 출판으로 모든 과정이 끝나는 게 아니란 점이다. 그 뒤에도 독자들의 반응이나 지적 등을 반영해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일련의 과정으로 구성돼 있다. 




이를테면 이런 과정이다. 기자들이 취재를 해서 기사를 쓴다고 가정해보자. 좀 더 선진적인 기자들은 취재 과정에서 독자들과 적극 소통한다. 일종의 크라우드소싱 방식으로 다양한 뉴스 원을 수집한 뒤 기사를 쓴다. 하지만 딱 그 지점까지다. 전통적인 저널리즘의 기사 생산 과정은 이 단계에서 끝이 난다. 독자들을 참여시킨다고 해 봐야,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에 머문다.


그런데 '과정으로서의 뉴스'란 개념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뉴스란 완성된 상품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꾸준히 새로운 정보를 덧붙이며, 독자들이 잘못을 지적할 경우 그것도 바로 반영한다. 독자들과 함께 뉴스란 상품을 계속 만들어나간다는 개념인 셈이다.


이 지점에서 트위터는 어떤 역할을 할까? 여기서 일종의 '통신사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해 아랍 혁명 과정에서 트위터가 한 역할을 꼽을 수 있다. 당시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앤디 카빈(Andy Carvin)이란 NPR 편집자는 트위터를 잘 활용해 혁명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이런 역할에 대해 트위터가 통신사(newswire)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시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통신사' 역할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트위터 자체가 일종의 뉴스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기자는? 바로 뉴스 DJ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앤디 카빈 역시 자신의 역할을 뉴스DJ로 규정하고 있다. 


기가옴에서 이런 내용을 전해주는 기사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머리로는 100% 공감한다. 하지만 막상 실천이란 명제로 관심을 돌리면서 벽에 부닥쳤다. 내 한계는 딱 그 지점까지란 생각이 든 때문이다. 전통 언론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근본적인 혁신이란 명제 앞에선 늘 오그라드는 내 모습 때문이다. 


내가 석사과정에 막 입학하던 2000년 무렵. 당시 미국의 저널리즘 연구자들은 벌써 기자의 (전통적인)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지금 같은 모습을 고수할 경우엔 경쟁력 한계에 부닥칠 것이란 경고도 서슴지 않았다. 


물론 학자들의 주장은 관념적인 측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단순히 글쓰는 사람에 머무르지 않고, PD나 게시판 관리자와 비슷한 역할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주장엔, 나름 새겨들을 부분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젠 한 발 더 나간 주장들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저널리스트나 언론사가 절대적인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뉴스의 전통적인 개념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제프 자비스나 앤디 카빈이 주장하는 '과정으로서의 뉴스'란 개념을 과연 주류 언론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만약 적용하려고 한다면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일까? 당연히 가장 큰 걸림돌은 '독자 앞에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편집국 문화'일 것이다. 독자들을 과연 그 정도까지 믿을 수 있느냐는, 또는 과연 독자들과 평등한 관계를 맺는 게 가당키나 하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과연 우리는 '과정으로서의 뉴스'란 개념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소셜 미디어와도 맞붙어 경쟁해야 하는 언론사 입장에선 '완성품을 내놓는다'는 자존심까지 벗어던져야 하는 걸까? 질문은 거창한데, 막상 대답을 하려니 궁색하기 그지 없다. 언론이 위기 상황, 내지는 변혁기로 내몰리고 있는 건 확실한 것 같다. 

지난 2005년. 사상 최악의 허리케인이 뉴올리언스 지방을 강타했다. 도시 전체가 쑥대밭이 됐던 그 참사는 많은 얘깃거리를 남겼다. 


탐사보도 전문 매체인 프로퍼블리카는 뉴올리언스 참사 당시 병원의 안락사 문제를 다룬 Deadly Choices란 기사로 2010년 퓰리처 상을 받았다. 하지만 프로퍼블리카의 보도는 사건이 있는 지 무려 4년 여 만에 나온 것이다. 사건 당시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낸 것은 타임스 피케윤이란 지역 신문이었다. 도시 전체가 물바다가 된 상황에서도, 기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상황 보도를 한 때문이다. 


물론 당시 타임스 피케윤은 신문을 제대로 발행하진 못했다. 윤전 시설이나 배달망을 가동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대신 온라인 상에 계속 뉴스를 올렸다. 사상 최악의 허리케인 파동 속에서도 사명을 다한 타임스 티케윤에겐 수 많은 찬사가 쏟아졌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도 묵묵히 버텼던 타임스 피케윤이지만, 미디어 시장을 강타한 태풍은 피하기 힘들었나 보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타임스 피케윤 모회사인 어드밴스 퍼블리케이션즈(Advance Publications)는 결국 타임스 피케윤을 격일간지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한다. 줄어드는 독자와 광고 수입 압박을 견뎌내지 못하고 발행 일자를 절반으로 줄여버리기로 한 것이다.


타임스 피케윤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당시 하루 발행 부수가 26만 부 수준이었다. 하지만 올들어선 13만2천부까지 줄어들었다. 7년 사이에 발행 부수가 반토막이 난 것이다. 


타임스 피케윤이 둥지를 틀고 있던 뉴올리언스는 이제 일간지가 존재하지 않는 도시가 됐다. 문제는 뉴올리언스는 인터넷 보급 비율도 그다지 높은 편이 못 된다는 점이다. 2010년 자료에 따르면 뉴올리언스 주민 중 36%는 아직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추락하는 신문은 날개도 없다?


미국 신문 시장은 '날개 없는 추락'을 계속하고 있다. ABC 자료에 따르면 발행 부수 2,5000부 이상 신문들은 지난 2007년부터 2012년 사이에 구독자 수가 21% 가량 줄었다고 한다. 퓨리서치센터 조사 역시 암울하다. 지난 해 미국 신문들의 매출은 2010년에 비해 7% 이상 줄어든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간지에서 격일간지로 덩치를 줄이는 신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역시 어드밴스 계열인 앤 아버 뉴스는 이미 지난 2009년 주 2회 발행 체제로 전환했다. 디트로이트 뉴스 역시 주 2회로 발행 횟수를 줄였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타임스 피케윤이 격일간지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지 불과 몇 시간 뒤에 앨러배마 주의 3대 신문사가 같은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당연히 인력 감축 조치도 함게 병행한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위의 수치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신문 시장은 더 이상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내몰리고 있는 것 같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익숙해진 젊은 독자들은 앞으로 종이신문을 더 멀리할 가능성이 많다. 





타임스 피케윤 사태를 전해주는 미국 언론들의 논조는 암울하다. 기가옴은 '종말의 시작'이라는 헤드라인을 붙였다. 니먼 저널리즘 랩을 비롯한 미디어 비평 전문 사이트들 역시 우울한 미국 신문 시장의 현 주소를 가감 없이 전해주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몰락해가는 종이매체에 자꾸 미련을 가져봐야 '죽은 자식 XX 만지기'에 지나지 않는다. 안 될 땐 과감하게 버리는 것도 필요하다.


왜 종이신문이 인기를 잃을까? 물론 사람들의 독서 행태가 바뀐 게 가장 클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9년 쯤 전, 처음 대학에 강의를 나갔던 나는 대학생들이 신문을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란 경험이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뉴스를 보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 때 벌써 그들은 종이신문 대신 포털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다.


또 하나는, 종이신문을 매일 발행하는 것이 갖는 한계다. 우선 속보 경쟁은 불가능하다. 외신 같은 경우는, 자칫하면 하루 지난 뒤에 게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깊이 있는 분석이 가능하지도 않다. 매일 매일 기사를 마감하는 기자들에게 깊이 있는 분석 기사를 써내라는 건, 대중 소설 작가에게 갑자기 문학성 뒤어난 본격 문학 써내라는 것보다 더 가혹한 처사다.


그런 점에선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사례도 눈여겨 볼 만하다. 역시 비슷한 위기를 겪었던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3년 전에 종이신문 발행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종이매체는 주간지로 전환한 뒤 온라인 쪽에 올인했다. 그 결과 3년 만에 매출이 증가하는 성과를 이뤄냈다고 한다. 


매체 변화는 피할 수 없다. 타임스 피케윤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허리케인 카트리나보다 더 무섭다. 이런 무서운 현실에 직면한 언론들이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말은 쉽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사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처럼 잘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노키아 기사를 쓰면서 늘 "불타는 플랫폼 위에 서 있는 회사"라고 살짝 비꼬았는 데, 지금 언론이 처한 환경이 그렇다. 매체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늘 변형이 일어나고 난 뒤 대책 마련에 골몰하는 순발력 없는 태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남의 나라에서 들려온 소식에 괜히 우울해지는 주말 오전이다. 


고커의 다음과 같은 분석에서 그나마 위안을 삼아야 할까?


The good news is that while the newspaper industry itself is shrinking, the public's appetite for journalism is not. We're in a transitional phase, in which everything is fucked up while everyone figures out the proper economic and journalistic models necessary to shift from old technologies to new technologies. Eventually journalism will be properly monetized online, and the media industry will stabili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