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의 <코드 훔치기> 출간 직후 썼던 서평입니다. 이런 묵은 글들을 하나 둘 옮겨올 계획입니다.

1980년대의 화두는 민주화였다. 당시엔 군부독재를 물리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유보할 수 있다는 게 지배적인 분위기였다. 아니, 이렇게 말하는 건 온 몸으로 그 시대를 견뎌낸 사람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처사일 수도 있겠다.

조금 현학적인 표현을 쓰자. 그 시절을 지배한 것은 이른바 거대담론이었다. 개인보다는 민족이나 국가같은 거창한 것들이 우선하던 시대였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때도 여전히 개인은 소중했다. 단지 쉽게 표현하지 못했을 뿐, 결국 중요한 것은 '나'이니까.

고종석이 '개인들의 시대'란 글을 통해 "개인들이 돌아오고 있다"고 진단했을 때 느끼는 진한 가슴떨림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고종석(이런 표현이 가능할 진 모르겠다. 난 그를 한번도 만난 적 없고, 하다 못해 전화 통화 한 번 한 적 없다. 단지 내가 그를 접한 건 10여권에 이르는 그의 책을 통해서일 뿐이다)은 조직의 시대에도 "여전히 개인은 소중하다"고 외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진정한(?) 자유주의자다. 지향점은 다르지만 '자유주의'란 화두로 그와 동류에 놓을 수 있는 인물로는 언뜻 김훈과 복거일 정도가 떠오를 뿐이다. (언젠가 고종석은 "복거일과 김병익을 사사하고 있다"고 밝힌 적 있다.)

'코드 훔치기'는 자유주의자 고종석의 21세기 산책이다. 모 일간지에 '모색21'이란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모은 이 책은 21세기를 정확하고 세세하게-물론 저자는 산만하고 성글었다고 겸양을 떨고 있지만- 톺아 보겠다는 고종석의 야심이 엮어낸 한편의 걸작이다.

저자는 머리말을 통해 "모색도 부분적으로 전망이다. 모색이 일반적 전망과 다른 것은 그 속에 의지나 욕망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고 고백한다. '코드훔치기'는 바로 그 욕망의 결정체다.

이 책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는 개인주의와 개인의 부활이란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고종석의 개인주의는, 흔히 연상하듯 고립주의와는 멀찍한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휴대폰과 노트북을 든 현대의 노마드(nomad)들은 인터넷이나 통신망이란 형태를 통해 쉼없이 타인과 교신한다. 지구 문명의 망 속에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주의나 이기주의는, 말 그대로 다르다.

이러한 개인주의에 바탕을 둔 고종석의 세상 읽기는 파격적이다. 물론 그 파격이 자리하고 있는 바탕엔 개인이란 가치가 놓여 있다.

이를 테면 그가 '왜 마리화나를 피워선 안되는가' 라고 되물을 때 그의 목청엔 '자유의 한계'에 대한 불만이 가득 녹아 있다.

"마리화나를 가두는 것은 우리 사회에 별 도움이 안되면서 개인들의 자유를 억압함으로써 사회의 활기와 행복의 총량을 줄일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나름의 타당성을 충분히 지닌다. 동의하고 안 하고는 그 다음의 문제다.

이런 시각에서 그는 동성애나 소수 민족에 대한 차별 문제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않는다.

고종석의 '코드 훔치기'는 인문사회학적인 프리즘으로 그려낸 21세기 정보화사회론이다.인터넷과 컴퓨터란 획일적(?) 프리즘에 싫증이 난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색다른 시각으로 접근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현학적인 글에 알레르기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아예 접하지 않는 게 좋다. 그 만큼 이 책엔 서양의 온갖 논리와 학설들이 난무한다. '현학'이란 것이 고종석의 장점이자, 때론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연세대 김철 교수는 고종석에게서 '인간과 세상에 대한 안쓰런 애정'을 읽은 적 있다. 그 애정의 바탕에 깔린 것이 바로 개인주의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관심이다.

'많은 좌파를 부끄럽게 만들 줄 아는 충실한 우파'인 고종석의 세상 읽기를 통해 21세기를 느껴 보자. 아니 21세기를 애무해 보자. 코드가 통하기만 한다면, 고종석이 느낀 오르가즘에 동참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고인의 <말들의 풍경>을 펼쳐보았다. 이 평론집에 묶인 글들을 쓸 때, 고인은 내 나이였다. 그런데도 그 언어는, 절망스러워라. 내가 한 생애를 더 산 뒤에도 다다를 수 없을 셈세함과 아름다움으로 무르익어 간다. 김현이 살아 있었을 때, 그의 글을 읽는 것은 내 오롯한 즐거움이었다. 그가 산 생애만큼을 거의 살고 보니, 이젠 그 즐거움 저 밑바닥에서 질투의 쓴 맛이 배어 나온다. 그가 지금 60대의 선배 글쟁이라면, 내게 이따위 질투심 같은 것은 생기지 않았으리라. 내겐 이것만 해도 그가 더 오래 살았어야 할 이유로 충분하다.  고종석 <말들의 풍경> 중에서.

고종석의 글은 참 웅숭깊다. 그 글의 맵시가 그렇고, 또 그 안에 담긴 내용이 그렇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늘, 촘촘하고 빼곡하게 채워넣은 상자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일면식도 없는 저자에게서 남모를 친근함을 느끼는 것은, 내가, 그의 글을, 빼놓지 않고 읽어왔기 때문일 터이다. 고종석이 김현에게 느낀 그 질투를, 나는 고종석의 글들을 읽으면서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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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고종석에게 느끼는 또 다른 부러움은 바로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법'이다. 잘 나가던 문화부 기자 생활을 접고 프랑스로 홀연히 유학을 떠난 이래, 그는, 더 이상, 한 직장에 얽매인 삶을 살지 않고 있다. 이른바 프리랜서인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한국에서 프리랜서란 '자유직'이란 허울 좋은 단어보다는, '비정규직'이란 또 다른 단어와 훨씬 더 닮아 있다는 것을. 그리고, 프리랜서들 중에서도, 특히, 글로 밥벌이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고종석의 만만찮은 다산성은, 프리랜서라는 그의 신분과도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실제로 그는 어떤 책의 서문에서 IMF 이후 프랑스에서 '비자발적으로' 귀국하면서, 어쩔 수 없이 청탁을 거절하지 못해 '많은 글들'을 썼다고 고백한 적 있다.

하지만 고종석의 다산성은, 그가, 적어도, 출판업자들에게서 '신뢰'를 얻고 있다는 점을 반증해 준다. 내가 부러운 것은 바로 그 부분이다. 프리랜서로서 상품성이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상품성에 걸맞은 글들을 쏟아내고 있다는 점. (물론 그만큼 경제적인 반대급부가 따라오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 역시도 '프리랜서'를 꿈꾸었던 적 있다. 아니, 지금도 자주, 프리랜서를 꿈꾼다. 현재의 내 직업을 썩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걸 필생의 업으로 삼을 생각은 별로 없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가끔, 아니 자주, 과감하게 프리랜서로 돌아서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 나도, 언젠가는, 지금과는 다른 일을 하면서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이, 내가 막연하게 꿈꾸듯, 연구자의 삶이 될 지, 아니면 고단한 프리랜서의 삶이 될 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둘 중 어떤 것이 되든, 적어도, 그에 걸맞은 '내실'을 다져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내가 내실이라고 했을 때는, '체제의 법칙' 내지는 '격식'에 충실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적어도 고종석에게서 맡을 수 있는,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야 겠다는 다짐이다.  

또 다시 서두가 무지하게 길었다. 얼마전 고종석의 <말들의 풍경>이란 책을 구입했다. 책 표지에 보니, 이 책이 저자의 열 여덟번째 저서 쯤 되는 것 같다. 그 중 내 서재에 없는 책은 네 권 쯤 되는 듯하다. 그 중 두 권은 읽은 뒤 누군가에게 선물로 줬으니, 실제로 그의 저서 중 내가 손을 대지 않은 것은 두 권뿐이다. 이쯤되면 대단한 애독자 아닌가?

"그녀는 바하, 모차르트, 비틀스, 그리고 나를 좋아했다."

영화 <러브스토리> 첫 장면은 주인공인 올리브 배럿의 이런 회상으로 시작한다. 물론 위의 대사는 그의 연인이었던 제니퍼가 그에게 해 준 말이다. 그 얘기를 듣던 당시, 배럿은 이렇게 물었다.

"네 명 중 누구를 가장 좋아하냐?"

이 때 그녀의 대답. "알파벳 순이야."

그럼 어떻게 되나? Bach, Barret, Beatles, 그리고 Mozart. 배럿은 바하를 제치는 덴 실패했지만, 그래고 네 명 중 이등은 했다며, 나름 기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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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가 길었다. 농구, 야구, 축구를 소위 3대 스포츠라고 하는 데, 나는 이들을 가나다 순으로 좋아한다. 농구를 매우 좋아하며, 야구를 꽤 좋아하는 반면, 축구는 그저 그렇다. 이를테면, 이승엽이 4타수 무안타에 병살타를 하나 치면 굉장히 우울하지만, 한국 축구가 바레인에 역전패하던 날은 그냥 조금 기분 나빴다.

마이클 조던 전성기에 난 NBA 파이널을 보기 위해 새벽 네 시에 일어났지만, 월드컵 당시 새벽에 중계됐던 한국과 프랑스 전은 아침 뉴스에서 결과를 확인했다. (물론 예외는 있다. 앙리와 지단을 무지 좋아하고, 이탈리아의 '카데나치오(빗장수비)'를 경멸하는 난, 2006 독일 월드컵 결승전을 보기 위해 밤을 꼬박새기도 했다.)

서두가 길었다. <맨유에게 배워라>는 책을 한 권 주문했다. 내게 영국 축구는 보비 무어와 보비 찰튼이 이끌던 팀이 1966년 런던월드컵에서 서독을 4대2로 물리치고 우승컵을 도둑질해 간(왜냐하면 당시 심판의 오심으로 서독 팀이 승리를 놓쳤기 때문이다.) 팀으로 기억되고 있다.

따라서 당연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관심을 갖지 않았다. 박지성이 뛰는 팀, 한 때 데이비드 베컴이 뛰던 시절 '트래블'을 달성한 팀 정도의 지식은 갖고 있지만, 그 외에는 잘 모른다.

하지만 맨유와 알렉스 퍼거슨 그리고 스포츠마케팅 이란 delight 님의 포스팅을 읽다가, 갑자기 <맨유에게 배워라>란 책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부랴부랴 한 권 주문했다.

굳이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지난 번 우연히 KBS에서 본 맨유의 성공 비결(제목은 정확치 않음)이란 다큐멘터리가 상당히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 저자들이 그 다큐멘터리와 관계가 있다는 얘길 언뜻 들었기 때문이다.

책이 도착하고, 또 끝까지 읽어낸다면 독후감을 올릴 예정이다. (하지만 최근 난 끝까지 책을 읽어본 적이 별로 없다. 논문 작업 때문이다. 빨리 이 '고난의 짐'을 벗어버려야 독서의 재미에도 푹 빠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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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노믹스>란 책이 조만간 번역되어 나오는 것 같다. 21세기북스에서 번역 출간하나 본데, 내용이 기대된다. '웹 2.0 경제학'이란 부제는 출판사에서 붙인 건지, 아니면 원저자가 붙인 건지 잘 모르겠다. 지나치게 기술적이지 않고, 내가 기대하듯 인문사회학적인 접근이 곁들여져 있으면 좋으련만.

아래 사진은 이 책의 원서. 시간이 있으면 원서를 보면 좋을 텐데, 지금 내겐 그 정도 여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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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만화책 '신의 물방울'을 읽었다. 현란한 묘사와 와인에 대한 풍부한 지식. 게다가 일본 만화 특유의 극적인 대결 구도까지. 만화팬의 한 사람으로서 푹 빠질만한 스토리 구도를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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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출장갈 때 비행기에서 주는 캘리포니아산 와인을 인상 찡그리면서 마신 경험이 있는 나조차, '앞으론 와인 좀 마셔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다.

그런데 '신의 물방울'이 부작용도 많은가보다. "[Trend]디캔팅해야 향-맛 좋다?… 프랑스産이 최고?" 란 기사가 전하는 내용은 가히 놀랍기 그지 없다. 관련 와인들의 값이 치솟는 등의 부작용은 들은 적 있지만, 막무가내로 디캔팅을 요구한다는 얘기는 또 처음이다.

환상 속에 빠져들게 하는 게 만화의 매력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중증이다.

오래 전 '사랑과 영혼(Ghost)'이란 영화가 인기를 끌 때 도자기 학원이 문전성시를 이룬 적이 있다. 당시 패트릭 스웨이지와 데미 무어의 화려한 영상만 생각했던 많은 수강생들이 흙반죽만 시키자 바로 떠나버렸다는 뒷 얘기도 있다.

작품에 몰입하는 건 좋지만, 비판적 읽기도 필요하다. '신의 물방울' 처럼 작가의 주관이 뚜렷한 작품은 특히 그렇다.
The secret to sucess in big business and politics in the twenty-first century, I think, will involve figuring out a way to capitalize on the phenomenon of lots of people doing what they want to do, rather than-as in previous centuries- figuring out ways to make lots of people do what you want to them to.
                         Glen Reynolds <An Army of Davids> p. 21

테네시대학 법학 교수이면서 인스타펀딧(Instapundit.com)이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글렌 레이놀즈의 <An Army of Davids>를 읽고 있다. <An Army of Davids>란 책의 존재는 아거님의 '기생 매체 공생 매체' 포스트를 통해 알게 됐다.

아직은 도입 부분인지라 책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을 말하긴 이른 상황이고. 전철에서 쪼그리고 읽다가 눈에 띄는 구절을 발견했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서둘러 밑줄을 긋다 보니,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고- 즉 비뚫어진 밑줄이 글씨를 덮어버리는 사고-가 생겼다. ^.^

레이놀즈는 'Small is the new big'이란 장에서 "21세기의 비즈니스와 정치에서 성공하는 비결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럼 그 전에는? "우리가 그들에게 원하는 것을 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언뜻 보기엔 너무나 당연해서, 더 이상 토를 달 가치도 없어 보인다. 당연한 얘기 아니냐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선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보려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인 경향이 강하다. 어쩌면 자기 세계에 푹 빠져서 더 이상 외부와의 소통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곤 자의적으로 판단해버리는 것이다. "그들은 이걸 원할 것이다"라고. 사실은 내가 그들에게 바라는 것인데, 말이다.

최근 저는 어떤 책에서 윤** 씨가 쓴 글을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구절을 발견했기 때문이지요. 왜 그랬을까?

일단 저를 괴롭게 만들었던 구절을 먼저 보시지요.

지난 2000년 4월, 분단 이후 처음으로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을 최초로 기사화하여 게재한 inews24를 시발점으로 하여 지금까지 인터넷 저널리즘 현장을 굳게 지키고 있는 대다수 인터넷신문들은 초기부터 '특종 행진곡'을 힘차게 불렀다. 오마이뉴스의 소위 386 의원들 광주 술판 사건 보도도 초창기 인터넷신문의 대표적인 특종 중 하나였다. 당시 이 기사는 동아일보 등 주요 일간지들이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오마이뉴스를 인용 보도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데일리 역시 사이트 출범한 지 불과 사흘 만에 ‘제일제당, 삼구쇼핑 인수’ 특종 기사를 터뜨렸다. 당시 이데일리에 이 기사가 나가면서 바로 증시에 반영되어 '인터넷신문의 위력'을 다시 한번 과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무렵 '인터넷신문=특종 제조기'란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굵직한 특종들이 잇따라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다.

이처럼 인터넷신문이 연착륙할 수 있었던 데는 각 사들이 출범 초기부터 굵직한 특종을 터뜨린 것이 크게 작용했다. 반신반의하던 독자나 투자자, 업계 관계자들은 오프라인 신문에 비해 결코 기사의 질이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쉴 새 없이 기사를 생산해 내는 인터넷 신문 기자들을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별도 마감 시간 없이 수시로 기사를 쏟아내는 인터넷신문은 ‘정보의 바다’라는 21세기의 콘셉트와도 잘 맞아 떨어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때를 기점으로 생소하기만 했던 사이버 저널리즘의 거론과 함께 언론학계에선 '온라인 저널리즘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논의하기 시작했으며, 언론환경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학계에서도 인정하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뒤져 봤습니다. 제가 2005년 3월 20일에 출고한 '인터넷신문 5년 아이뉴스24 5년' 이란 제목의 기사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창간 5주년 기념으로 쓴 기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위의 글을 읽으면서 '친근한 느낌'을 갖게 해 준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아이뉴스24 뿐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인터넷 저널리즘 현장을 굳게 지키고 있는 대다수 인터넷신문들은 초기부터 '특종 행진곡'을 힘차게 불렀다.

오마이뉴스의 소위 386 의원들 광주 술판 사건 보도도 초창기 인터넷신문의 대표적인 특종 중 하나였다. 당시 이 기사는 동아일보 등 주요 일간지들이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오마이뉴스를 인용 보도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데일리 역시 사이트 출범한 지 불과 사흘 만에 ‘제일제당, 삼구쇼핑 인수’ 특종 기사를 터뜨렸다. 당시 이데일리에 이 기사가 나가면서 바로 증시에 반영돼 ‘인터넷 신문의 위력’을 새삼 과시했다는 후문이다.

이 무렵 '인터넷신문=특종 제조기'란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굵직한 특종들이 잇따라 쏟아져나왔다. 인터넷신문이 연착륙할 수 있었던 데는 각 사들이 출범 초기부터 굵직한 특종을 터뜨린 것이 크게 작용했다.

반신반의하던 독자나 투자자, 업계 관계자들은 오프라인 신문에 비해 결코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쉴 새 없이 기사를 생산해 내는 인터넷 신문 기자들을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

특히 별도 마감 시간 없이 수시로 기사를 쏟아내는 인터넷신문은 ‘정보의 바다’라는 21세기의 컨셉과도 잘 맞아 떨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임영호 교수는 지난 1997년 '신문과방송'을 통해 ‘마감 개념 무의미, 심층취재 활성화: 사이버 저널리즘 시대가 열렸다’고 규정했다.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이 같은 진단은 인터넷신문이 본격 등장한 2000년 초중반부터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이 때를 기점으로 언론학계에선 ‘온라인 저널리즘과 새로운 패러다임’(연세대 윤영철 교수,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회 학술대회, 2000) 같은 제목들이 심심찮게 등장했다. 언론 환경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학계에서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터넷신문 5년, 아이뉴스24 5년'

참고로 윤** 씨가 쓴 위의 글은 2006년 말에 출판된 유명한 연구서에 게재된 겁니다. 제 기사는 2005년 3월 출고된 것이구요.

물론 위의 글 중에서 오마이뉴스가 언제 특종했고, 이데일리가 무슨 특종을 했다는 식의 내용은 제가 크래딧을 주장할 순 없을 겁니다. 그거야 주지의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이 정도로 문장이 똑같다면, 이건 표절 아닌가요?

제가 이런 문제 제기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조만간 박사 논문을 써야하는 저는, 자칫하면 제가 쓴 기사를 인용하지도 못할 상황이 돼 버렸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저 비슷한 내용의 글을 쓰게 되면, 그리고 그가 충실하게 인용 표시를 달아주는 양심적인 학자라면, 저 내용 밑에 (윤**, 2006)이라는 표시를 해주지 않을까요?

제 기사야 일반인들, 혹은 학자들이 전혀 접하지 않을 글인 반면, 상당한 권위를 인정받을 위의 책은 꽤 많은 사람들(적어도 학자들)이 두고 두고 참고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위의 부분을 잘못 사용했다가는 도리어 표절했다는 손가락질(왜냐하면 제가 유명인사가 아니기 때문에 표절 의혹까지 제기하지는 않을 겁니다.)을 받기 딱 좋게 돼 버렸습니다.

이거 참 황당하지 않나요? 분석 내용 자체는 정말 읽을 만했는 데, 별 것 아닌 내용 가지고 사람 기분 완전히 망쳐 버렸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란 이름 앞에는 꼭 '악의 제국'이란 접두어가 따라다녔다. 그동안 MS가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는 것이 일반인들의 뇌리에 깊숙하게 박혀 있는 것이다. 수 년동안 반독점 공방이 끊이지 않았던 것 역시 MS에 '악의 제국'이란 가면을 덧씌워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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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들어 'MS=악의 화신' 이란 등식이 상당히 흐려졌다는 지적이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다. 어떻게 그런 변화가 가능했을까?

로버트 스코블과 셸 이스라엘이 공동 저술한 '블로그 세상을 바꾸다'는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블로그'에서 찾는다.

물론 이들이 자신있게 MS와 블로그를 연결시킬 수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 책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로버트 스코블은 ‘악의 제국’이라 불리던 MS에 인간의 모습을 부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채널9' 블로그 운영자로 활동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채널9' 뿐 아니라 MS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던 '스코블라이저'란 블로그를 운영하기도 했다.

MS의 대외 이미지가 지나치게 부정적이라는 점에 충격을 받은 몇몇이 처음 블로그를 도입할 때만 해도 회사 내에선 걱정도 적지 않았다. 행여 문제를 만들 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티브 발머 CEO를 비롯한 경영진들은 결국 블로그를 허용하기로 했다.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스티브 발머 CEO는 이렇게 설명한다.

"직원들이 블로그에서 자신을 표현하게 한다는 것이 밖에 나가서 스스로 고객을 만나게 하는 것보다 더 리스크가 있는 일이 아닌 겁니다. 블로그는 그저 더 많은 사람들을 접촉할 뿐이죠. 사람들이 훈련받을 필요가 있다면 우리는 훈련을 시킬 겁니다. 하지만 난 블로깅이 고객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데 아주 훌륭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29쪽)

이처럼 MS를 변화시킨 것은 바로 블로깅과 대화 마케팅이었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블로그 세상을 바꾸다'의 저자들은 블로그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블로그가 대화 채널이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블로그를 통한 대화는 신뢰를 구축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그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 책을 준비하던 1년여의 집필 기간 동안 북미뿐만 아니라 유럽, 아시아 등 전세계의 유명 블로거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또 그들이 관찰한 내용과 대화를 블로그에 올렸다.

그리곤 책을 집필해 나가는 과정에서 댓글 형태로 참여한 방문객들의 의견들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참여과 공유라는 정신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영국의 한 무명 재단사가 블로그를 시작함으로써 일약 세계적인 재단사로 유명세를 떨치게 된 마혼의 블로그, 제품을 제조한 회사보다 소비자에게 더 신뢰를 받는 트레오너츠 블로그, 소비자 가격이 4.95달러짜리의 아이디어 상품을 블로그에 소개한 후 아마존과 미국에서 두 번째 규모의 할인점 체인인 타깃과 공급이 체결된 일화 등 개인이 블로그를 이용해 성공을 거둔 사례 등 이 책에서는 블로그를 비즈니스에 성공적으로 활용한 사례들을 자세하게 소개해 주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이런 외적인 사례들이 아니다. 이 책 원제인 'naked conversation'이 잘 나타내주듯이, 블로그는 바로 '하나의 거대한 입소문'이라는 점을 깨닫는 데 있다.

실제로 이 책 저자들은 소비자들이 미사어구로 현혹시키는 기업의 대변인과 잘 짜여진 각본같은 보도자료에 대해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고 진단한다. 또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는 매스미디어의 광고에 대해서는 싫증을 넘어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저자들은 진단하고 있다. 한 마디로 일방향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는 더 이상 고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블로그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참여 정신이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적 흐름이라고 해도 크게 그르진 않을 듯하다.

물론 이 책을 읽으면서 다소 불편한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MS에 대한 과도한 애정과, 상대적으로 MS의 대척점에 서 있는 기업들에 대한 소홀한 대우가 심심찮게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주장하듯이 "MS의 이미지가 달라졌는지"에 대해서도 솔직히 자신있게 얘기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저자들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을 이런 종류의 편애가 이 책의 가치까지 훼손하지는 못할 듯하다. '변해야 산다'는 당위 명제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그가 기업의 체질을 바꾸려 한다면, 적어도 '진솔한 대화'를 하려는 마음가짐은 꼭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고객이든, 아니면 자기 회사 직원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솔직하게 대화하려는 열린 마음이다. 그리고 블로그는 그 마음을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최상의 도구이다. 그 마음을 깨달은 경영자라면, 그는 고객과 직원 모두에게 큰 복을 안겨줄 자질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르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열린 마음'과 '블로그'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다소 극단적인 질문을 받는다면, 난 주저없이 블로그 대신 열린 마음을 선택하겠다. 이 책 저자들 역시 나의 이 같은 선택에 공감하리라 믿는다.

그런 차원에서 블로그를 통해 진솔한 대화를 실천하는 방법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블로깅과 오픈소스 둘 다가 새로운 '참여의 시대'를 도래시킬 것이라는 이야기다. 우리는 그(조나단 슈워츠)에게 이 새로운 시대에 블로깅의 역할은 무엇인지 질문했다. 그는 "불 붙은 기름이지요, 참여의 시대는 이메일이 등장하면서부터 인터넷에 이미 존재했어요. 거기서 블로깅으로 이동하는 것은 통신용 비둘기에서 전화로 옮겨가는 것과 같죠. 블로그의 등장은 우리가 초기의 조잡한 도구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어떻게 모든 것이 관련되는 지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야기합니다."  (77쪽)


여자는 '희귀 고서적에 취미가 있는' 가난한 작가이고, 남자는 다소 고지식하면서도 친절한 서점 점원이다. 여자의 거주지는 미국 뉴욕이며, 남자는 영국 런던에 살고 있다. 여자는 미혼이고, 남자는 기혼이다.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 하지만 둘은 20년간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편지를 주고 받는다. 때론 고마운 심정을 담아 전하기도 하고, 또 때론 재바르게 움직여주지 않는 상대에게 불평불만을 마구 털어놓는다.  


헬렌 한프의 [채링크로스 84번지]는 이처럼 상큼한 이야기들을 빼곡하게 담고 있는 알찬 책이다. 까탈스러우면서도 정이 많은 가난한 여작가 헬렌 한프. 때론 까탈스럽게 또 때론 풋풋하게 사연을 보내오는 헬렌의 변덕스러운 편지에 항상 여유있게 대처하는 서점 직원 프랭크 도엘. 이 두 사람의 편지는 1949년부터 1969년까지 꼬박 20년간 계속 이어진다. 물론 그 둘을 이어주는 끈은 책이다.

하지만 [채링크로스 84번지]가 전하는 것이 책 얘기 뿐이라면, 흔하디흔한 독서 평론같은 책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는 그 이상의 것이 담겨 있다. 한 권의 책을 얻기 위해 온 정성을 다하는 작가와, 그 작가의 '책을 향한 욕망'을 채워주려는 서점 점원의 사랑이 가득 들어차있다. (사실 이 책은 영화로 먼저 만났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84번가의 연인'이란 영화에는 앤서니 홉킨스가 출연해 멋진 연기를 선사해줬다.)

헬렌 한프는 좋은 책을 만났을 때는 "책이 너무 훌륭하여 제 누런 골동품 책장이 부끄러울 정도랍니다"(12쪽)며 맘껏 찬사를 보낸다. 뉴먼의 [대학의 이상]이란 책의 초판을 구했을 땐 "이 책을 하루 종일 탁자 위에 두고 타자를 치다가 한번씩 만져보곤 해요. 이게 초판이라서가 아니라 이렇게 아름다운 책은 난생 처음보기 때문이에요. 이걸 제가 소유한다는 사실에 살짝 죄책감마저 들어요."(34쪽)라는 말을 전한다.

자신이 주문한 책이 제 때 오지않으면 "프랭크 도엘씨, 거기서 뭐하고 있는 거에요? 우두커니 앉아 빈둥거리고 있나요? ~ 제가 부활절 토끼에게 당신한테 달걀을 갖다주라고 명령을 내렸어요. 토끼 군이 거기 도착하면 무기력증으로 죽어있는 당신을 발견하게 되는건가요?"(22쪽)라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 불평 뒤켠엔 친절하고 믿음직스럽게 자신의 주문을 처리해주는 상대에 대한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그 믿음이 이들의 우정을 20년간이나 이어준 원천이다.  


이처럼 프랭크와 헬렌이 나누는 우정은 수채화처럼 상큼하다. 그 속엔 문화와 인생, 그리고 예술에 대한 사랑이 절절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소한 일상의 기쁨마저 서로 나누는 모습에선, 여느 연인들 못지 않은 따사로운 정마저 느껴질 정도다.

결코 입 밖에 내지 않은 둘의 애정은 친애하는 부인으로 시작해, 친애하는 한프양을 거쳐 헬렌으로 바뀌면서 조금씩 암시될 뿐이다. 또 여자가 부르는 호칭 역시 선생님에서 친애하는 프랭크, 프랭키로 발전해나간다.

유별나지 않으면서도 유별난 두 사람의 사랑. 늘 서로를 아껴주고 위해주면서도 끝내 만나지 않는 두 사람. 프랭크와 헬렌이 나누는 '책을 매개로 한 사랑'이 여타의 사랑과 다른 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교제는, 주변의 사람들까지 자연스럽게 '공동체'로 이끌어주게 된다.

프랭크가 죽은 뒤 그의 부인 노라는 헬렌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때때로 제가 당신을 아주 질투했다는 얘기도 이젠 할 수 있겠네요. 프랭크는 당신 편지를 정말 좋아했고 당신 편지들은 어딘가 그이의 유머 감각과 아주 닮았거든요. 또 당신의 글솜씨도 부러웠답니다.”(144쪽)

이 책에서 눈에 띈 구절 몇 가지.

"저는 속표지에 남긴 글이나 책장 귀퉁이에 적은 글을 참 좋아해요. 누군가 넘겼던 책장을 넘길 때의 그 동지애가 좋고,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누군가의 글은 언제나 제 마음을 사로잡는답니다."(50쪽)
"읽어보지 않은 책을 사는 것은 제 원칙에 위배되는 일이에요. 입어보지 않고 옷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죠."(73쪽)
"그렇게 아름다운 것을 브로드웨어 영화표 한 장 값에, 또는 충치 하나 뗌질하는 비용의 50분의 1 값에 평생 소유할 수 있다니, 세상 참 이상하지요?"(83쪽)

이 책을 읽으면서 인터넷서점을 통해 간편하게 책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행복한 것만은 아니란 생각을 해 봤다. 혹시 그 속엔 '정'이 빠진 것 아니냐는, 괜한 투정도 한번 부려봤다. '영혼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책'을 읽은 부작용이다.

책을 덮으면서, 프랭크가 세상을 떠난 뒤 헬렌이 남긴 편지를 새롭게 되새김질 해 봤다. 나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끼면서.

"이 모든 책을 내게 팔았던 그 축복 받은 사람은 몇 달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리고 서점주인 마크스 씨도요. 하지만 마크스 서점은 아직 거기 있답니다. 혹 채링크로스 가 84번지를 지나가게 되거든, 내 대신 입맞춤을 보내주시겠어요? 제가 정말 큰 신세를 졌답니다."(1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