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혁신과 관련한 강의에 단골로 등장하는 언론사가 있다. 뉴욕타임스와 가디언이다. 디지털 스토리텔링부터 데이터 저널리즘까지, 혁신 얘기를 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다. 남들 강의를 들어봐도 그렇고, 나 역시 가끔 강의를 할 때면 어느 새 뉴욕타임스 아니면 가디언 얘기를 읊조리곤 한다. 


(그래서 난 저널리즘 혁신 관련 강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당장 병원비 없어 고민하고 있는 환자한테, "암을 이기려면 잘 먹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경치 좋은 별장에 가서 좀 쉬어라"고 권고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그럼 뉴욕타임스와 가디언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가디언은 고사하고, 영국조차 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개략적인 느낌은 있다. 디지털 스토리텔링 같은 콘텐츠 혁신은 뉴욕타임스가 한 발 앞선 반면, '오픈 플랫폼' 실험 면에선 가디언이 좀 더 선진적이라고나 할까? 물론 이런 차이 역시 나의 피상적인 관찰의 산물이기 때문에 얼마나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다.




가디언은 왜 느닷 없이 커피 숍을 오픈했을까?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는 지 벌써 짐작하는 분도 있을 것 같다. 가디언이 최근 또 다른 오픈 플랫폼 실험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디언 본사 근처 런던 쇼어디치 거리에 커피숍을 열었단 소식이다. 커피 숍 이름도 재미있다. 트위터 해시태그를 이용한 #GUARDIANCOFFEE가 커피숍 상호다.


이 커피숍에선 일반 커피숍들처럼 커피와 간단한 빵 종류가 구비돼 있다. 여기에다 아이패드를 공짜로 쓸 수 있도록 했다. 


가디언은 왜 느닷없이 커피숍을 열었을까? 당연한 얘기지만 기자들이 인터뷰를 비롯한 각종 취재 활동을 좀 더 편리하게 할 수 있는 장소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뿐이라면 가디언 답지 못하다. 


가디언은 #GUARDIANCOFFEE를 일종의 '오픈 편집국'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자신들이 어떤 혁신을 하고 있는지 독자들에게 직접 보여줄 뿐 아니라, 아예 독자와 직접 만나는 공간으로 활용할 생각까지 갖고 있다는 것이다. 페이드콘텐트 보도에 따르면 가디언의 소셜 미디어 편집 책임자인 Joanna Geary는 수시로 이 곳에 들를 생각이라고 한다. 인터뷰를 하기도 하지만, 아예 독자들과 직접 만나서 소통하기 위해서다.


가디언의 커피숍이 어떻게 운영되는 지는 송혜원 씨의 글을 보면 잘 나와 있다. 저 글 읽으면서 가디언이 오픈한 커피숍이 생각보다 훨씬 상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단순한 커피숍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독자들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잘 설계됐다는 느낌도 든다.



18세기 카페와 살롱, 그리고 가디언의 혁신 


처음 가디언이 커피숍을 오픈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솔직히 좀 황당했다. 하지만 곰곰 따져보니, 어쩌면 저널리즘의 근본에 대한 성찰이 잘 담긴 조치란 생각도 들었다. 왜나고?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변동'이나 미첼 스티븐스의 '뉴스의 역사' 같은 책을 한번 뒤적여보라. 18세기 프랑스와 영국에서 유행했던 카페와 살롱은 요즘 우리가 소셜 미디어라고 부름직한 모습을 그대로 구현하고 있다.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관심 있는 뉴스에 대해 토론하고 논쟁하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적과 흑'으로 유명한 평민 스탕달은 살롱에서 스타로 떠올랐다. 신분의 차이를 극복한 토론 문화 덕분이었다고 한다.)


더 재미 있는 건, 당시 카페나 살롱도 전문 분야가 있었다는 점이다. 스포츠 뉴스를 주로 토론하는 카페, 경제뉴스 전문가들이 주로 모이는 살롱, 같은 식으로. 


따라서 요즘 소셜 미디어를 통한 소통은 18세기 뉴스 문화를 기술적으로 좀 더 확대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게 내가 줄기차게 주장하는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의 연속론이다. 


가디언은 수 년 전부터 독자들과 직접 소통하려는 오픈 플랫폼 전략을 꾸준히 실험해 왔다. 2011년 가을부터는 편집회의가 끝난 뒤 곧바로 기사 아이템을 사이트에 공개하는 실험도 해오고 있다. (그 뒤 어떻게 됐는지, 잘 모르겠다.) 이번 실험 역시 '오픈 편집국 실험'의 연장선상에서 큰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솔직히, 부럽다. 저 정도 되는 회사에 몸담고 있는 기자들은 정말 일할 맛 날 것 같다. 하지만 한 편 생각해보면 책임감도 훨씬 더 무거울 것 같다. 어쩌면 혁신이 제일 힘든 건, 언론사 경영진이나 간부가 아니라 평기자들을 터이기 때문이다. 

  • 민노씨 2013.06.08 07:16

    한동안 이런저런 고민거리로 뜸했는데, '하이퍼텍스트' 블로그에는 역시나 강한 영감을 주는 귀한 사례들이 엑스리브리스 님의 중후하면서도 담백한 논평과 함께 넘쳐나네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 )

(비포 미드나잇이 개봉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9년 전 비포선셋을 본 뒤 썼던 글 한 편 방출. 
비포 미드나잇도 봐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팍팍 생긴다.) 


9년전 아쉬움을 남기며 헤어졌던 연인을 다시 만난다면?

 

누구나 한번쯤 떠올려 봄직한 질문이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는 것은 쉽지가 않다. '현실 속 좌표' 때문만은 아니다. 희미하긴 하지만, 아름답게 채색돼 있는 추억을 깨어버리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영화 '비포 선셋'은 이처럼 흔한 듯 하면서도, 쉽지 않은 소재를 택했다.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느(줄리 델피)는 9년전 우연히 기차 여행중 만나, 비엔나에서 '뜨거운' 하룻밤 사랑을 나눈 사이다.

 

이 영화의 전편인 '비포 선라이즈'를 본 관객이라면, 비엔나 기차역에서 두 연인이 이별하던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10년 뒤 여기서 만날까?" "아니 5년, 아니 1년." 그러다가 그들은 6개월 뒤 같은 장소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물론 연락처는 주고 받지 않는다. 그냥, 사랑에, 둘 사이의 운명에 모든 것을 걸었다. 하지만, 당연한 얘기지만, 그들은 만나지 못했다. 

 

그로부터 9년. 제시는 당시의 경험을 소설로 펴내 유명 작가가 됐다. 똑똑하고 야무지면서도 행동이 앞섰던 셀린느는 환경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비포 선셋'은 작가가 된 제시가 파리의 한 서점에서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 셀린느가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유명 작가가 된 제시가 조금 더 여유가 생긴 반면, 셀린느는 조금 더 '신경질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 배우 그대로 찍은' 이 영화는, 배우들의 얼굴에서 세월의 더께를 그대로 엿볼 수 있어, 보는 이들에게 실감을 더해 준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로맨스라면, 헤어진 연인들의 재회는 현실이다. 이 영화에 극적인 반전이나 휘황찬란한 로맨스가 들어갈 틈이 없는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처사다. 생각해보라. 9년 만에 만난 연인들이, 게다가 현실 속에 이미 자신들의 좌표를 마련해 둔 연인들이, 9년 전처럼 열정에 휘말린다는 것이 생각처럼 쉬울지를.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따발총처럼 많은 대사를 주고 받는다. 그리고 그 대사들은, 더 이상 영화의 대사가 아니다. 그건 현실 속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그런 대화들이다. 바로 그 점이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기의 로맨스'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뭐 이런 영화가 다 있어?'란 질문을 던질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비포 선라이즈'와 함께 늙어온 관객들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이 영화의 태생적 한계에 공감을 보낼 법도 하다.

 

그런 점에서 영화의 결말을 관객의 상상에 맡겨 버린 감독의 연출력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솔직히, 엔딩 신(scene)이 좀 허무하긴 했지만, 제시는 더 이상 "당신을 지금 보내버리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며 열차 위로 다시 뛰어들던 20대 청년이 아니질 않은가?

 

하지만 난 이 영화를 보면서 '굳이 9년 전 헤어진 두 연인들을 다시 스크린으로 불러낼 필요가 있었을까', 란 생각을 했다. 젊은 시절의 사랑은 끝난 지점에서 그냥 남겨두는 게, 더 아름답지 않을까? 아쉬워하는 두 사람을 같은 무대에 올려놓은 건 너무 잔인한 처사가 아니었을까?

 

그럼 이들의 9년전 모습은 어땠을까? 아래 사진들과 현재 모습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조금 짓궂긴 하지만.




"예술작품의 기술적인 복제 가능성의 시대에서 위축되는 것, 그것은 예술작품의 아우라이다."

발터 벤야민이 쓴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이란 글이 있다. 사진 기술의 발달과 함께 예술작품에 스며 있던 아우라가 사라졌다는 선언으로 유명한 이 소논문은 디지털 미디어 시대가 되면서 한층 더 많이 인용되고 있다. 그만큼 아우라가 살아 있는 논문인 셈이다.

이쯤 얘기하면 이 글 제목을 왜 '기술복제 시대의 저널리즘'이라고 붙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난 지금 우리 저널리즘이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된 데는 크게 두 가지 계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지금부터 하는 주장은 전혀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 그냥 감각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메일 보도자료, 그리고 포털이 몰고 온 변화 


내가 처음 기자생활 시작할 땐 보도자료를 주로 팩스로 받았다. 홍보실 사람들이 직접 들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 기자들은 팩스나 다른 경로로 전달받은 보도자료를 원고지에 옮겨 적었다. 굳이 원본(?) 그대로 옮겨 적을 유혹을 덜 받았다.

그런데 이메일 보급이 확산되면서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 기억으론, 1990년대말부터 기자 이름 뒤에 이메일을 표기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난 디지틀조선일보에서 '굿모닝 디지털' 편집팀에 소속돼 일하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기론 국내에서 최초로 기자 이름에 이메일을 명기한 건 굿모닝 디지털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보도자료도 대부분 이메일 첨부파일 형태로 받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신문 기사의 70% 가량을 점유하는 보도자료 기사 쓰기가 조금 달라졌을 것이란 추정을 한다. '기술 복제'가 가능해진 때문이다. 

지금부터는 순전히 내 개인적인 추론이다. 한번 상상해보라. 팩스를 옆에 놓고, 읽어가면서 원고지에 옮겨 적는 거랑, 이메일 첨부파일을 내려받은 뒤 카피한 다음, 그걸 토대로 기사를 쓰는 것을. 꼭 베껴 적으려고 작정하지 않더라도 자신 만의 아우라를 만들려는 생각은 아무래도 덜 하게 된다. 보도자료를 토대로 한 기사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2000년대 중반 이후 포털이 뉴스 플랫폼으로 대두되면서 상황이 좀 더 복잡해졌다. 속보에 대한 강박 관념이 좀 더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다 인터넷 뉴스 경쟁이 심화되면서 이젠 '복제 가능성'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단독 보도 같은 것들도 금방 복제가 된다. 경우에 따라선 타사 단독 보도를 살짝 갈무리한 기사들이 더 많은 조명을 받기도 한다. 


실종된 상도의 역시 아우라 상실의 또 다른 원인 


아우라가 상실된 원인은 기자 사회 내부에도 존재한다. 경쟁사의 특종이나 단독 기사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 '형편 무인지경 상도의'가 바로 그것이다. 

무슨 얘기냐고? 하다 못해 미국 뉴스 사이트를 일주일만 들여다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미국 언론들은 타사 특종 기사에 대해선 철저하게 인용 보도해준다. 제목에 반드시 'report'란 단어를 붙여준다. 당연한 얘기지만, 인용 보도할 경우엔 '아우라 있는 원본 기사'를 반드시 링크해준다. 이렇게 함으로써 '기술복제 시대'에도 '특종 아우라'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우리는 타사 인용 보도하는 걸 치욕스럽게 생각한다. 파렴치하게 베끼는 기자들 뿐 아니라 충실하게 취재하는 기자들도 그렇다. 경쟁사가 특종 보도하면, 꼼꼼하게 추가 취재한 뒤 보도한다. 이 때 경쟁사가 단독 보도한 사실은 당연히 언급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술 복제시대에 이르는 우리 언론에선 '아우라'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보도자료 기사는 '카피 앤 페이스트' 형 글쓰기 때문에, 취재 기사일 경우엔 중립적인 플랫폼에서 벌어지는 속보 경쟁에다 '실종된 상도의'가 겹치면서 역시 마찬가지 신세가 된다. 


기술복제 시대 저널리즘의 아우라는?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 저널리즘은 벤야민이 기술복제 시대 예술작품의 운명을 걱정하면서 진단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아우라가 상실된 시대. 고만고만한 작품(?)들이 마구 쏟아져나오는 시대. 굳이 특정 제품을 찾을 이유가 별로 없는 시대.

자, 이런 상황에서 우린 어디서 아우라를 찾을 수 있을까? 뻔한 얘기지만, 일회성 단독 보도만으론 아우라를 갖기가 쉽지 않다. 워낙 빠르고 손쉽게 기술 복제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두 가지 방법 뿐이다. 


첫번째. 기술복제가 상대적으로 쉽지 않은 제품 생산. 이를테면 뉴스타파 같은 곳에서 선보이는 탐사보도라든가, 기타 깊이 있게 파고든 기사 같은 것들. (그런데 이런 작품이 날이면 날마다 나오는 게 아니란 게 문제다.)

두번째. 최소한의 상도의 회복. 사실 상도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저작물에 대해 최소한의 인정을 해주는 신사협정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돌아가면서 자신만의 아우라를 가질 수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쓰다보니 논점이 조금 흐려진 느낌도 없는 건 아니다. 아우라 얘기를 하면서, 살짝 헷갈린 느낌도 든다. 그 부분에 대해선 독자 여러분이 새겨 들을 것으로 믿는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란 책을 찾으려고 검색하다가 몽양부활 님이 디지털복제 시대의 뉴스 그리고 유료화란 글을 쓴 것을 발견했다. 역시 생각하는 건 비슷한 모양이다.)

어떤 교실에서 도난사고가 발생했다. B가 A의 물건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여러 정황 증거를 감안해 볼 때 B가 범인일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범범 행위를 한 B가 퇴학 당할 수도 있을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그런데 학생 징계조정위원회 열리기 일주일 전 학교로 탄원서가 날아왔다. 학부형들이 나서서 "학생의 앞 길을 막을 수 있는 퇴학 처분만은 내리지 말아달라"고 청원했다. B를 좀 봐달라는 얘기인 셈이다.  


이럴 경우 공개적인 탄원서를 제출하는 행위를 부당한 압력으로 불 수 있을까?


뜬금 없이 웬 학교 얘기? 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최근 미국 상하원 의원들이 국제무역위원회(ITC)에 공개 편지를 보낸 사실을 보도하는 여러 기사를 보면서 문득 엉뚱한 생각을 해 봤다. 국내 언론들은 의원들이 ITC에 공개 편지를 보낸 자체가 애플에 유리한 판결을 내리도록 압력을 행사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단 기사 몇 개만 한번 살펴보자. (그냥 눈에 띄는 것 링크했음. 아무런 의도 없음. 동업자 비판이니 이런 얘기는 하지 말란 말씀.)


미 의원들 애플에 유리한 판결 압력 

美의회, ITC에 ‘애플 편들기’서신 논란

美의원들 '애플 편들기'…ITC에 공개 서한보내


기사들은 대부분 미국 의회가 노골적인 애플 편들기에 나섰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예상된다는 제목을 단 매체도 있었다. (개인적으론 무슨 논란이 예상된다는 건지 의문이다. 논란이라고 하면 입법부가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었다는 부분일텐데, 글쎄, 아무리 눈 닦고 외신 살펴봐도 논란이라고 문제 제기한 미국 외신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미국 기자들이 단체로 애국심에 눈이 멀었단 말인가?)



1. 핵심은 표준특허 처리 


편지 내용은 간단하다. 상원의원들은 “표준특허가 문제된 사안에선 수입금지 조치를 내릴 때는 공익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표준특허가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는 근간이 된다는 점을 들어 이 같이 주장했다.


물론 상원의원들이 ITC 판결을 일주일 앞두고 공개 편지를 보낸 건 우리 입장에선 애매해보일 수도 있다. 보기에 따라선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건을 애플에 유리한 압력을 받아내려는 국수주의적인 행태로 일방적으로 매도할 수 있을까? 보기에 따라서 다를 순 있겠지만,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허 소송을 둘러싼 최근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쉽게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그 얘기부터 해 보자. 


미국 정가에선 최근 몇 년 사이에 '특허 소송 남발'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다.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소송을 거는 '특허 괴물'들의 폐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삼성, 애플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이 한치 양보 없는 소송전을 계속하면서 비판 여론이 확대되고 있다. '독창적인 지식을 공유하는 대가로 독점적 권한을 줌으로써 혁신을 극대화한다'는 특허제도 자체의 취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문제로 떠오른 것은 바로 표준특허다. 표준특허란 간단하게 말해, 어떤 제품을 만들 때 도저히 우회할 수 없는 특허권을 말한다. 이를 테면 스마트폰을 만들 때 핵심적인 3G 통신 기술은 꼭 필요하다. 표준특허권에 대해선 진작부터 '공정하고 비차별적으로 라이선스를 제공한다'는 FRAND 규정을 적용해 왔다. 


올들어 미국 정가에서 여기서 한 발 더 나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표준특허 소송에선 판매금지 판결을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계속 내놓고 있다. 가능하면 당사자들이 협상을 통해 해결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겠단 것이다. 


이번에 미국 상하원 의원들이 ITC에 편지를 보낸 것도 이런 움직임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으로 보면 된다. 앞에서 비유로 얘기한 것처럼, 웬만하면 퇴학만은 시키지 말아달라, 정도의 청원이라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이게 유리한 판결을 하라는 압력인지는, 입법부가 사법기관에 월권을 한 것인지는 개인적으로 판단해보기 바란다. 


2. 판매금지는 마지막으로 내리는 조치  


좀 더 자세히 한번 따져보자. 31일로 예정된 ITC 판결에선 크게 두 가지가 핵심 이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이슈는 살짝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애플 제품이 삼성 특허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일 것이냐는 부분이다. 우리 입장에선 원고(삼성) 승소 판결이 나올 것이냔 부분이 가장 큰 관심사다. 현재 분위기로 봐선 애플이 삼성 특허권을 침해했다는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두 번째 이슈는 첫 번째 전제가 성립될 때 제기될 수 있다. 바로 삼성 특허권을 침해한 애플 제품을 판매금지 시킬 것이냐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곰곰 따져보자. 첫 번째 이슈는 전적으로 법적인 영역에 속한다. 특허권을 침해했느냐는 여부를 법적으로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회 아니라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이 부분에 대해선 절대 영향력을 행사해선 안 된다. 그건 월권이다. 


하지만 두 번째 이슈는 조금 다르다. 이건 법적인 영역이면서 동시에 다른 여러 영역에 함께 걸쳐 있기 때문이다. 


절대 다수 소비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제품을 어느날 갑자기 시장에서 퇴출시킨다고 한번 가정해보라. 대혼란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제품이 특허권을 침해했다고 해서 곧바로 판매금지 명령을 내리는 건 아니다. 판매금지 명령은 해당 기업 뿐 아니라 소비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시 삼성의 패배로 끝난 갤럭시S 초기 모델 관련 소송을 떠올려보라. 당시 법원은 삼성 제품이 애플 특허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판매금지를 해 달라는 애플 요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삼성에게 배상금을 물라고 판결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소송도 잘 살펴보면, 가급적 판매금지에 대해선 신중하게 접근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미국 ITC는 지난 3월 판결을 5월말로 연기하면서 "삼성 특허권을 침해한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 수입 금지 조치를 내릴 경우 어느 정도 피해가 예상되는 지에 대한 의견을 달라"고 요청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 의원들이 ITC에 보낸 공개 편지 역시 비슷한 차원에서 볼 수도 있다. 설사 애플 제품이 삼성 특허권을 침해한 것으로 드러나더라도 영구 퇴출 시키지는 말았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권고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3. 아이폰 구모델 판금, 삼성에도 별 도움 안돼 


미국 의원들의 이번 편지에 대해 지나치게 흥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또 있다. 실익을 따져봐도 애플 제품을 판매금지 시키는 게 삼성 쪽에 그다지 유리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쟁점이 된 제품들은 아이폰 최신 모델이 아니다. 아이폰4S 이후 제품들은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삼성 입장에선 판금 조치 받아봐야 크게 덕 될 것 없다. 


두 번째는 더 현실적인 이유다. 같은 기준 적용하게 되면 삼성이 훨씬 더 걸릴 게 많다. 지난 해 8월 배심원 평결이 난 1차 특허 소송에 이어 내년초엔 갤럭시 S3를 비롯한 제품을 대상으로 한 2차 소송이 기다리고 있다. 


쓰다보니 길어졌다. 삼성과 관련된 기사를 쓸 때마다 늘 흥분들을 하는 것 같다. 물론 개인적으로 삼성이 글로벌 시장에서 잘 하고 있는 건 보기 좋다. 애플과 시장 경쟁 뿐 아니라 소송에서도 이겼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바램과 사실을 제대로 전해주는 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건 보도에선 국내 언론들이 좀 많이 흥분한 것 같다. 그럴 사안이 아닌데도 말이다. 


뉴스는 수명이 얼마나 될까? 하루? 한나절? 글쎄. 과학적으로 조사를 해 본 적은 없지만, 그렇고 그런 뉴스는 기껏해야 한 두 시간 정도면 관심권에서 멀어져버리는 것 같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가 버린다.


기자들의 일상을 한번 생각해보자. 하루 종일 엄청나게 많은 행사 쫓아다닌다. 제대로 뛰어다니는 기자들은, 정말 죽을 고생한다.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 열심히 뛰어다닌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열심히 써낸 기사들은, 비슷 비슷한 다른 기사들과 함께 묻혀버린다. '찬란한 유산'처럼. ^^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페이스북, 트위터를 비롯한 SNS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물론 SNS 무시하면 안 된다. 그런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가 해답이 될 수 있을까? 나 역시 (남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소셜 미디어에 대해 조금 안다고 자부하고 있고, 나름 애정도 많지만,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당장 뭘 얻을 수 있을 지 잘 보이질 않는다. 소셜 미디어는, 말 그대로 유통 채널의 하나일 뿐이다.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환상을 가져서도 안 된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데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눈에 띄었다. '특종과 객관보도의 중요성이 갈수록 줄어드는 이유는? 맥락이 모든 것이기 때문(Why scoops and objectivity matter less and less~~)'이란 긴 기사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페이드콘텐트에 실린 기사다. 그것도 내가 무척 신뢰하는 매튜 잉그램 기자가 필자다. 





맥락적 저널리즘의 도래?


이 기사에서 소개하는 논문이 더 흥미롭다. 맥락적 저널리즘의 도래(The Rise of Contextual Journalism)란 보고서다.  


맥락적 저널리즘이 다소 생소한 용어라고? 미안하지만 이 말. 전혀 생소한 용어 아니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저널리즘이 막 관심을 끌 때 미국 학자들이 엄청 많이 주장했던 용어다. 내 첫 저술인 '인터넷신문과 온라인 스토리텔링'에도 "인터넷 저널리즘의 경쟁 포인트는 맥락적 저널리즘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 있었다. 


(솔직하게 털어놓자. 저건 내 얘기가 아니라, J. Pavlik이란 학자의 주장을 요약 소개한 것이다. 물론, 절대 무단 인용하지 않았다. 파블릭이란 학자는 저렇게 주장했다, 고 친절하게 각주 달아줬다.)


콜롬비아대학 교수 두 명이 공동 집필한 이 논문은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미국 저널리즘의 추세를 연구한 논문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단순 사실 보도(fact-finding reporting)는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 맥락적인 보도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아래 그림이 이들의 주장을 잘 포괄해준다. 





흔히 이런 변화를 블로그나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SNS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최근 페북, 트위터 등을 통해 실시간 보도가 확대되면서 기자들의 사실 보도가 갖는 매력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논문 저자들은 "1950년대 이래 꾸준이 이어져 온 변화"라고 주장한다. 사실 보도 자체는 이제 '오픈소스화' 되고 있기 때문에, 맥락을 짚어주고 전해주는 뉴스로 승부하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맥락적 저널리즘이 통일된 용어는 아니다. 연구자에 따라서 심층보도(In-depth reporting), 장문 보도(Long-form journalism) 같은 말을 쓰기도 한다. 요즘 부쩍 관심이 증가한 데이터 저널리즘 역시 일종의 맥락적 저널리즘이라고 봐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맥락적 저널리즘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왜 기자들은 바뀌지 않는 걸까? '맥락적 저널리즘의 도래' 논문 필자 주장에 따르면, 그리고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논지도 비슷한데, 기자들은 수 십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사실 보도 최우선 주의'를 바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형식적인) 객관보도 형태에 대한 믿음도 절대 흔들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게 연구자들의 주장이다. 


그리고 사족으로 붙인 내 의견 


우리 시대의 뛰어난 소설가이자 문장가인 김훈이 기자 시절 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이런 말이었다.


"정확한 팩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6하원칙이 필요하다하지만  팩트 뒤에 숨겨진 인간의 진실까지 6 원칙으로 설명할  있을까."


내 석사 논문 제목은 '인터넷의 매체 특성이 인터넷신문 기사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당시 문제 의식은 제법 거창했다. 인터넷이란 매체에 글을 쓰게 되면 스토리텔링 방식이 달라질 것이란 게 내가 가졌던 문제의식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 난 문제의식은 거창한 데, 그걸 학문적으로 증명해 낼 능력이 없었다. 하다 못해 기본 통계 기법에 대한 지식도 없었으니. (ㅋㅋㅋ. 이런 학생 지도하느라 고생하신 지도교수께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


그런데, 그 때 원대했던 내 문제의식을 촉발시켰던 게 바로 김훈 기자의 저 말이었다. 아까운 저 말을 꼭 써 먹고 싶었던 난, 비교적 눈에 잘 띄지 않는 각주에 저 말을 집어넣었다. 그런 식으로라도 내게 문제의식을 안겨준 김훈 기자에게 감사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 옆으로 좀 많이 샜다. 어쨌든, 난 김훈의 저 말을 "기사도 스토리텔링이다"는 식으로 이해했다. J. Pavlik의 책에서 접했던 '맥락적 저널리즘' 역시 '제대로 된 스토리텔링'이란 관점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갈수록 팩트보다는 맥락이 중요해진다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그러니 기자들도 저런 변화에 조금은 귀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래야만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초특급 유통망이 힘을 발휘하지. 그렇지 않고, 그렇게 그런 기사 백날 트위터나 페북으로 쏴 봐야, 친구들한테 '소음'만 안겨줄 따름이다. 


우리나라 IT 기사에서 삼성과 애플은 양극단에 자리잡고 있는 기업이다. 그러다 보니 기사 논조도 극도로 상반된다. 한쪽은 지나치게 우호적으로, 또 한 쪽은 지나치게 까는(?) 논조가 문제가 된다. 엄밀하게 따지면 사실 두 가지는 결국 같은 연원을 갖고 있는 문제다.


저런 현상은 일정 부분 어쩔 수 없다. 한국 기업이란 '명분'에다 최대 광고주라는 '실리'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나도 기사를 쓸 때 손이 오글거린다. 


하지만, 비판할 때 비판하더라도 팩트까지 엉터리로 쓰면 안 된다. 제대로 된 외신 기자라면 미묘한 뉘앙스도 가급적 그대로 전해줄 필요가 있다. 기사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한쪽으로 기우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일단 선택한 기사를 다른 톤으로 바꿔버리는 건 상도의가 아니다.


자, 그럼 오늘 발견한 기사 얘기를 한번 해보자. 애플 직원들, 헤드헌터 찾는 이유가… 란 기사였다. 비즈니스인사이더를 인용한 걸로 돼 있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그 동안 낮은 연봉과 엄청난 업무 강도에도 묵묵히 버티던 애플 직원들이 요즘 들어 헤드헌터 회사를 부쩍 많이 찾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더 이상 회가 자신들에게 혁신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구체적으로 "애플 직원들이 이력서를 제출하는 일이 이전 보다 두배는 늘었다"는 부분까지 있었다. 애플에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내용도 있었다. 


읽는 순간 좀 이상했다. 내가 주목한 건 크게 세 가지 부분이었다. 


1. 회사가 자신들에게 혁신을 주지 못한다 

물론 회사가 혁신을 주지 못한다고 판단할 때 떠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알기론 극소수 능력 있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사에 남아 있는 이유를 혁신에서 찾지는 않는다.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나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정당한 보상, 등이 주된 요인이다. 


2. 이력서 제출하는 일이 두 배는 늘었다는 부분

직접 멘트로 나왔는데, 헤드헌터에 이력서 제출하는 게 두 배로 늘었다는 자체가 좀 이상했다. 이걸 어떻게 집계하지? 란 생각이 우선 든 때문이다. 물론 인터뷰한 사람이 자기네 헤드헌터 회사 사례만 얘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원 기사를 쓴) 기자가 저런 식으로 직접 인용 처리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3. 애플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잡스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건지, 아니면 팀 쿡이 제대로 못한다는 건지 궁금했다. 


그래서 일 삼아 비즈니스인사이더 기사를 살펴봤다. Apple Employees Are Sending Out Resumes Like Never Before 란 제목이었다. 이전보다는 이력서는 훨씬 많이 제출하고 있다는 뉘앙스였다. 





1. 애플에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부분


원 기사엔 애플에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얘기는 없었다. 그나마 비슷한 게 "Apple culture has started to change with the new leadership on top."란 부분이었다. 새로운 리더십이 들어오면서 애플문화가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이 부분 외에는 그 어디에도 애플에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내용은 없었다. 만약 그렇다면 저 부분을 오역했을 가능성이 있다. 


번역 기사는 또 "외신엔 한 달 전부터 애플이 혁신에 문제가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고 쓰고 있다. 이것도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가 안 됐다. 한 달 전에 무슨 일이 있었지? 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부분도 찾아봤다.


A month ago, top Apple reporter/analyst John Gruber of Daring Fireball said that retention has become "the single biggest problem that Apple faces, and almost nobody is talking about."


한 달 전에 애플 전문 기자/애널리스트인 존 그루버가 한 얘기를 인용하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얘기하진 않지만, 애플이 직면한 최대 문제는 직원들을 눌러 앉히는 것"이란 정도 의미다.


그런데 번역 기사는 이 부분을 이렇게 표현했다. 


존 그루버 애플 담당 애널리스트는 "애플이 가장 큰 문제에 직면했으나 누구도 이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직원을 눌러 앉히는 게 가장 큰 문제'란 부분이 '애플이 가장 큰 문제에 직면했다'고 바뀌어버린 것이다. 


2. 애플 직원들이 이직을 고려하는 이유  


After speaking with some of these job-seekers, this source says the cause for the increase is two-fold: startups are paying more and "Apple culture has started to change with the new leadership on top."


번역 기사에선 혁신 부족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원 기사에선 크게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1) 스타트업들이 보수를 더 많이 주기 때문 2) (팀 쿡 체제 이후) 애플 문화가 달라지기 시작했기 때문. 


그리고 이런 내용도 있었다. 


Gruber says: "The consensus among the people I’ve spoken to is that this is in no way a "rats leaving a sinking ship" scenario, but rather the inevitable churn of talented people capitalizing on the success of the company."


아직까지 애플에선 "난파하는 배에서 쥐들이 탈출하는 것 같은 상황'은 아니다는 내용이다. 단지 재능 있는 인물들 사이에선 회사의 성공에 합당한 대가를 받고자 하는 욕구는 있다는 정도. 게다가 원 기사엔 이런 부분까지 있었다.


Reached via email, Gruber says that in the month or so since he sounded the alarm, departures from Apple have not "accelerated. "But it hasn’t slowed down either."


놀랍게도 애플에서 떠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지 않다는 내용이다. 물론 줄고 있지도 않다는 단서가 있긴 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혁신 없는 회사는 더 이상 희망이 없으니 떠나자는 내용은 아니란 얘기다. 


3. 이력서 제출이 두 배로 늘었다는 부분 


도대체 이력서 제출이 두 배로 늘었다는 건 어디에서 따 온 얘기일까 궁금했다. 혹시 아랫 부분에서 'two-fold'를 잘못 해석한 것 아니었을까? 물론 아닐 것으로 믿는다. 그런데 그 부분 외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This source says the cause for the increase is two-fold: startups are paying more and "Apple culture has started to change with the new leadership on top."

  • 꿈꾸는곰 2013.04.16 16:42

    국내언론이라는게 편향도 넘어 아예 삼성을 위해 기사를 쓰죠.
    상도덕도 없어요.. 최소한 팩트만으로 까든가.. 없는 사실 날조해서 기사 쓰는걸 보면
    애플이 고소를 하면 어쩔려고 저러나 싶죠.
    데이타 왜곡, 실력이 달려서 오역하는지 아님 알면서도 오역하는지 궁금한게 만드는 기자들
    과연 언론인이라 칭할수 있는지

'재활용 저널리즘(recycling journalism)'이란 말이 있다. 말 그대로다. 이미 만들어놓은 콘텐츠를 재활용해서 새롭게 수익을 올리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일종의 '콘텐츠 마케팅'이라고 해도 크게 그르진 않다.


언론사들이 잘 나갈 땐 재활용 마케팅 같은 것에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광고와 구독료 수입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언론사들 상황이 그렇게 여의치 못하다. 다들 죽을 상들이다. '뉴스캐스트'가 없어지면서 울상을 짓고 있는 국내 언론사들 사정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 미국도 사정은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최근 발표된 미국 신문미디어 산업(NAA) 매출 현황 보고서를 한번 살펴보자. 


지난 해 구독료 수입은 5%가 증가했다고 한다. 최근 많은 언론사들이 온라인 (부분) 유료화를 단행한 덕분이다. 하지만 광고 쪽은 참담하다. 신문광고 수입이 9%나 감소한 것. 디지털 광고 수입이 5% 가량 증가했지만, 덩치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에 머무른다. 디지털 광고 수입 증가분이 인쇄 광고 감소분을 상쇄하는 '디지털 크로스오버'는 아직은 먼 얘기다.


결국 지난 해 미국 신문업계는 전체 매출 2% 감소란 쓰라린 성적표를 받아들어야만 했다. 신문업계의 최대 과제가 '0% 성장 달성'이 될 정도로 상황은 절박하다.


왜 이런 상황이 생겼을까? 당연한 얘기지만 수익원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광고 아니면 구독료. 그게 전부다. NAA 자료에 따르면 광고와 구독료를 제외한 매출 비중은 8%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진 않을 듯 하다.)


자,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부터 소개하는 건 니먼 저널리즘랩에 실린 'The newsonomics of recycling journalism'을 요약한 것이다. (NAA's new revenue report란 글도 참고해볼 만하다.) 


그 대안 중 하나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재활용'이다. 좀 더 유식한 용어로 하자면 '고객 맞춤형 큐레이션'이다. 기왕 만들어놓은 무지 무지 많은 콘텐츠들 중 개별 고객들의 필요에 맞도록 모아서 제공하자는 것이다. 


재활용 저널리즘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1. 만들어놓은 콘텐츠 그대로 제공(using content already published)

2. 고객 입맛에 맞게 재가공(creating or customizing content)


1번은 간단하다. 그냥 풀 패키지로 모아서 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삼성 관련 각종 뉴스들을 모아서 삼성에 제공하는 방식. 콘텐츠를 전혀 수정하지 않은 채 클라이언트가 관심 가질 만한 것들을 풀 패키지로 준다. 그럼 클라이언트는 그걸 활용해서 자기네 고객들을 좀 더 유인한다.


2번은 조금 복잡하다. 여기선 누가 콘텐츠를 재가공 하거나, 혹은 만들 것이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경우에 따라선 스폰서 기사와 다를 것이 뭐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큐레이션이란 것도 단순히 모아주는 것과 다를 게 뭐냐는 비판이 가능하긴 하다. 그래서 콘텐츠 마케팅이란 게 참 어려운 모양이다.)


콘텐츠 마케팅은 두 가지 전제 위에서 성립되는 비즈니스다. 


첫째. 편집자와 출판업자, 즉 콘텐츠 제공자는 콘텐츠 기반한 경험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 

둘째. 대형 브랜드-혹은 중소 브랜드-들은 고객을 좀 더 많이 유치하기 위해선 콘텐츠 기반 경험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여기도 두 가지 사업 유형이 있다. 하나는 자기네 콘텐츠를 직접 활용해서 하는 경우. 대표적인 사례는 메리디스 퍼블리싱(Meredith Publishing)이다. 메리디스는 'Better Homes' "FamilyCircle' 등 많은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이런 콘텐츠를 클라이언트의 욕구에 맞게 재가공해 주는 것이 메리디스의 기본 콘텐츠 비즈니스 모델이다. Kraft, Acura, Jeep, 코카콜라, 뱅크 오브 아메리카, NFL선수연합 등이 클라이언트들이라고 한다. 





결국 메리디스는 잡지 출판사에서 콘텐츠 마케팅 대행업까지 하는 경우라고 보면 된다. 


반면 완전히 중개업자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도 있다. 뉴스크레드(NewsCred)가 대표적인 사례다. 뉴욕타임스, 블룸버그를 비롯한 대형 언론사들의 콘텐츠를 라이선싱한 뒤 클라이언트들의 수요에 맞게 제공해 준다. 펩시, AIG, 존슨&존슨, 제너럴 일렉트릭, 오버스톡닷컴 등이 대표적인 클라이언트다. 특히 뉴스크레드는 최근 뉴욕타임스를 콘텐츠 제공 파트너로 영입하면서 큰 힘을 받고 있다고 한다.


뉴스크레드 주장에 따르면 지난 해 콘텐츠 파트너들에게 수 십 만 달러 가량의 매출을 만들어줬다고 한다. 또 올해는 뉴욕타임스, 블룸버그 등 일급 파트너들에겐 수 백 만 달러 수준의 매출을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만큼 재가공 저널리즘이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언론사의 수익 구조는 다소 기형적이었다. 핵심 상품을 통해 직접 올리는 수익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광고도 엄밀히 말해 콘텐츠로부터 발생하는 매출이다. 하지만 콘텐츠 자체의 가치 때문이라고 보다는 다른 측면이 더 많이 고려된 측면이 있다. 그리고 정당한 가치에 비해 과도하게 비싼 편이다. 


콘텐츠로 수익을 올리는 방법은 유료화를 비롯해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유료화 역시 녹록치가 않다. 우리나라에서 콘텐츠에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계층이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B2C로 접근할 경우엔 그 기반이 정말로 얕다.


위에 소개한 콘텐츠 마케팅은 일종의 B2B적 접근 방식이라고 봐야 한다. 미국처럼 시장도 크고, 매체도 많은 곳에선 충분히 가능한 모델이다. 


그런데 우리 상황에서도 이게 통할 수 있을까? 쉽지 않아 보인다. 시장도 좁은 데다, 각 매체들의 논조도 큰 차이가 없다는 한계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텐츠 마케팅 역시 장기적으론 언론사의 매출 포트폴리오 상에서 꼭 필요한 영역인 것 같다. 

요즘 미국에선 앤드류 설리번이란 인물이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미디어 변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초미의 관심 인물로 부상했다. 스타 블로거인 그는 연초 1인 미디어 창업을 선언하면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그 동안 앤드류 설리번은 자신의 블로그 디시(Dish)를 데일리 비스트 내에서 운영해 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데일리 비스트로 트래픽을 몰아주는 대신 일정 대가를 받아온 것이다. 그러다가 이젠 완전히 독립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성공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데일리 비스트'란 이름이 생소한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웬 듣보잡?"이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렇게 설명하면 좀 알까? IAC가 운영하는 데일리 비스트는 2년 전 미국 유수의 시사잡지 뉴스위크를 매입한 곳이라고. 나름대로 콘텐츠 업체로 탄탄한 기반을 과시하고 있는 곳이다.


앤드류 설리번은 The New Republic과 뉴욕타임스 매거진 등에 몸 담은 경력이 있는 언론인 출신. 그는 그 뒤 디시(Dish)란 블로그를 통해 미국 정치와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기사를 써 왔다.타임, 애플랜틱에 이어 지난 2011년부터 데일리 비스트의 지원을 받으면서 글을 써 왔다. 







1인 미디어 실험, 첫 출발을 괜찮은 편


연초 설리번은 독립 선언과 함께 연 20달러를 내는 구독자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27일 독자들로부터 약 50만달러를 모금했다고 공개했다. 50만 달러면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6억원 정도다. 이 정도면 1인 미디어로 몇 년 동안은 무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자금이다.


당연히 부럽다. 자신 있게 1인 미디어 선언을 할 수 있는 용기가 부럽고, 또 한 달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2만5천명 가량의 구독자를 끌어모을 수 있는 능력이 부럽다.


실제로 설리번은 독립 선언한 지 불과 며칠 만에 30만 달러를 모금했다고 한다. 그 뒤에는 구독자 증가 추이가 급속하게 줄어들긴 했지만, 어쨌든 50만 달러 가까운 규모까지 모금하는 데 성공했다. (아래 그림 참고) 





페이드콘텐트는 이 소식을 전해주면서 전통 미디어에게는 엄청난 충격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전통 미디어에 몸담고 있는 수 많은 기자나 능력 있는 필자들이 앤드류 설리번의 뒤를 따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리번의 1인 미디어 전략이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면서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 또 다른 인물이 있다. 바로 네이트 실버다. 네이트 실버는 지난 해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귀신 같이 예측하면서 큰 인기를 모았다. 그 바람을 타고 'The Signal and The Noise'란 책을 출간해 꽤 많이 팔아 먹었다.


페이드콘텐트에 따르면 네이트 실버는 뉴욕타임스 전체 트래픽의 20% 가량을 몰아다주고 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가 콘텐츠 유료화 이후에도 어느 정도 트래픽을 유지하는 데 네이트 실버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네이트 실버와 뉴욕타임스간의 계약 기간이 조만간 만료된다고 한다. 당연히 네이트 실버는 뉴욕타임스에 엄청난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자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엔 독립하면 될 테니, 칼자루는 뉴욕타임스가 아니라 네이트 실버가 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야구로 비유하자면, 이승엽이나 류현진 같은 인물이 구단에 대해 갖는 영향력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내가 네이트 실버라면, 독립할 것 같다.


설리번의 독립이 미디어 지형도에 던지는 의미는?


이제 미디어 지형도는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 전통 매체에 대한 브랜드 인지도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반면 개인 브랜드에 대한 관심들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추세다. 능력과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프리 선언'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됐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1인 미디어로 활동하면서 제대로 수익을 내는 사람이 많지 않다.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선) 메이저리그 전문가인 민훈기 기자 정도가 그나마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민훈기 기자 역시 엄밀히 따지자면 네이버란 우산 아래서 활동하고 있다.




왜 우리나라는 안 될까? 란 질문이 뒤따를 수 있을 것이다. 안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이 작기 때문이다. 미국과 한국의 인구만 따져도 엄청나게 다르다. 여기에 미국 사람들은 영어라는 또 다른 장점이 있다. 글로벌 독자들을 겨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얘긴 그만하기로 하자. 중요한 건 설리번의 이번 실험이 미디어 지형도에 던지는 의미다.


늘 해온 얘기지만, 갈수록 조직 보다는 개인 미디어의 영향력이 강해질 것이다. 여론 소구력만 따지면, 이미 개인 미디어 시대가 도래했다고 해도 크게 그르진 않다. 설리번의 이번 실험이 의미를 갖는 것은, 1인 미디어로 돈을 벌 수도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페이드콘텐트 기사를 쓴 매튜 잉그램 기자가 지적한 것처럼, 앤드류 설리번의 실험 결과에 따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독립 선언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경우 가뜩이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전통 매체들에겐 또 다른 고민거리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자주 듣는 얘기 하나가 젊은 사람들이 책이나 신문을 읽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른들이 한탄조로 하는 말이다.


사실 이런 얘기는 요즘 들어서 나온 아닐 것이다. 멀리 거슬러올라가면, 소크라테스 때도 아테네 젊은이들의 경박함이 논박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젊은 사람들은 '책도 읽고, 생각도 없는' 존재였다.



일견 당연해보이는 명제.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정말로 젊은이들은 책도, 신문도 읽지 않는 걸까? 아니 질문을 좁혀서, 정말 젊은이들은 신문을, 뉴스를, 읽는 걸까?


하나. 요즘 젊은이들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만 붙들고 산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와 맞물려 최근 들어 TV 이용량이 줄고 모바일이나 태블릿 기기 이용량이 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많다. 여기서 다른 질문이 가능하다. 그럼 젊은이들이 모바일이나 태블릿 기기로 도대체 볼까? 


퓨리서치센터가 미국 성인 9513( 4638명은 모바일 기기 보유)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모바일 뉴스의 인구통계학(Demographics of mobile news)' 보고서가 해답을 제시해 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젊은 사람들이 훨씬 뉴스를 많이 본다. (보고서는 길다. 전문을 보고 싶은 사람은 링크를 누리면 된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18 이상 29 이하 스마트폰 보유자 37% 매일 모바일 기기로 뉴스를 본다고 대답했다. 30세부터 49 사이 계층은 비율이 40% 조금 높았다. 반면 50 이상으로 넘어가면 모바일 뉴스 습득 비율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50세에서 64 까지는 31%, 65 이상은 25% 불과했다.  






태블릿 이용자들의 뉴스 구독 비율은 연령층이 비슷한 수준을 나타냈다. 그림에서 있는 것처럼 50 미만은 59% 태블릿으로 뉴스를 본다고 응답했다. 반면 50 이상은 45% 불과했다. 


당연하지만, 젊은 층은 뉴스 공유비율도 훨씬 높았다. 태블릿에서 뉴스를 공유하는 비율이 49 이하는 37% 반면, 50 이상은 21% 불과했다.니먼저널리즘랩 젊은 층의 뉴스 공유 비율이 높다는 것은 언론사들에겐 희소식이라고 강조했다. 젊은 층의 뉴스 공유 비율이 높다는 것은 젊은 층을 껴안으려는 언론사들에겐 희소식이라는 것이다. 특히 눈길을 부분은 광고다. 


이번 연구 결과에 따르면 18~29 사이 연령층은 모바일 뉴스에 있는 광고를 누르는 비율이 30~49 연령층의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적으로 이런 부분을 활용하면 모바일 뉴스에서 수익을 올리는 것이 수월해질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수도 있다. 

  • jaket online 2012.12.21 14:24

    좋은 콘텐츠입니다. 더 많은 우리를 표시합니다. 모든 방문자가 게시 된 게시물에서 도움이 될 것입니다.

  • عبدلله@1@ 2013.03.30 16:25


    ((( O 사람들 말 : 더 신이하지만 알라가 영원한 구원을 달성 )))

    단어의 의미 - 더 신이하지만 알라가

    1. 알라를 제외하고 예배의 가치가 아무도 없습니다.

    2. 알라를 제외하고 순종의 가치는 아무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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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12년 전으로 시계를 되돌려보자. 때는 2000년 10월 어느 날. 장소는 고려대학교 정문 앞. 주인공은 김영삼 전 대통령.


당시 김 전대통령은 고려대 함성득 교수가 진행하는 대통령학 수업에 특강을 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나라를 망친 전직 대통령을 '민족 고대' (고려대 출신들에겐 미안하지만, 이 표현은 좀 웃긴다고 생각한다.) 정문에 들어오는 걸 허락할 수 없다고 맞섰다. 18시간 가량 학생들과 대치하던 김 전 대통령은 결국 다음 날 새벽 돌아섰다.


이 정도 사건이면 기사 가치가 어느 정도나 될까? 내 판단으론 사회면 가십 기사, 잘 봐주면 사회면 준톱 정도 될 것 같다. (1980년대 방송사나, 요즘의 M본부 같으면 톱 기사로 나올 지도 모른다.)


그런데 당시 신생 인터넷 언론사였던 오마이뉴스는 좀 색다르게 접근했다. 18시간 동안 진행된 대치 상황을 실시간 중계해준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당시 20건 가까운 기사를 올렸다. 마치 개인 블로그에 올리듯, 최신 기사가 위에 붙는 방식이었다. 


기껏해야 사회면 가십 정도 될 사건이었던 김 전 대통령의 '고대 정문앞 오기 발동' 사건은 졸지에 인터넷 언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사건으로 탈바꿈했다. (당시 인터넷 언론에 대한 고민을 조금씩 하고 있던 나 역시 오마이뉴스의 뛰어난 감각에 감탄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있다.)



과정으로서의 뉴스 


오마이뉴스의 'YS 고대 정문 앞 대치' 사건 보도를 어떻게 봐야 할까? 제프 자비스나 제이 로젠 같은 미국의 뉴미디어 전문가들은 '과정으로서의 뉴스'(news as a process)라고 평가하지 않을까? 


여기서 또 다시 언론학 교과서를 펼쳐 보자. 우리는 지난 100여 년 동안 '역피라미드형 기사'에 익숙했다. 중요한 내용이 앞 부분에 나오는 것이 역피라미드형의 골자. 당연하지만 이런 기사 유형은 전신 시대의 산물이다. 전신으로 기사를 전송하던 시절,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가능하면 압축해야만 했던 시절의 산물이다. 종이신문 시대에도 지면 제약이 있기 때문에 역피라미드 기사는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됐다.


전통 저널리즘, 특히 신문의 또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바로 '완성품' 개념이다. 판갈이를 하긴 하지만 독자들에게 뉴스가 도달할 때는 완성품 형태로 전달된다. 말하자면 독자들은 완성된 건물을 구경하는 것이다. 조선일보 빌딩, 동아일보 빌딩, 한겨레신문 빌딩.


그런데 인터넷 저널리즘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아나가면서 이런 개념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진전된 내용을 수시로 업데이트하는 보도 형태가 주류로 떠오르기 시작한 때문이다. 


최근 들어선 변수가 하나 더 생겼다. 바로 스마트폰 바람이다. 갈수록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소비하는 독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들어 SNS나 모바일 기기를 통해 뉴스를 접하는 비율이 갈수록 늘고 있다.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지난 해 7%, 9%였던 SNS와 모바일 뉴스 습득 비율은 올 들어선 20%와 15%로 증가했다. 패러다임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언론사들도 모바일 뉴스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다. (뉴스는 완성품이 아니라 완성되어 가는 과정 참고)


하지만 고민 뿐이다. 현재 언론사 중 모바일에 특화된 뉴스를 선보이는 곳은 없다. 그냥 인터넷용으로 쓴 기사를 모바일 화면에 맞게 코딩해서 내보내고 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언론들 역시 마찬가지다. 뭐, 당연하다. 새롭게 모바일 뉴스 팀을 꾸려서 기사를 만드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플립보드나 자이트 같은 모바일 뉴스 앱도 완성품들을 여럿 보여주는 방식이다. 문제는 플립보드 같은 것들이 태블릿용으론 적합하지만, 스마트폰에는 다소 걸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Circa의 의미 있는 실험 


최근 등장한 Circa는 바로 모바일 시대에 새로운 뉴스 경험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한다. 기가옴의 매튜 잉그램 기자는 Circa가 "제프 자비스와 제이 로젠의 '과정으로서 뉴스' 개념을 잘 구현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Circa의 기본 개념을 잠깐 살펴보자. Circa는 뉴스 텍스트를 전부 보여주지는 않는다. 대신 그 뉴스를 원자 단위(atomic unit)으로 나눈다. 이 원자 단위들은 뉴스 팩트 뿐 아니라 배경 정보, 사진, 인용 같은 요소들이다. 독자들은 주어진 시간 내에 이 정보들을 얼마나 읽을 지를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예를 들면 미국 허리케인 관련 뉴스를 본다고 하자. 그 동안은 여러 언론사에서 배포한 뉴스를 골라서 읽는 방식으로 정보를 습득했다. 그러다 보면 상당 부분은 겹치는 내용들을 다시 읽어야 한다. 제목만 살짝 바꿔 놓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Circa는 뉴스를 조각낸 뒤 계속 덧붙여준다. 건축에 비유해보자. 그 동안은 완성되어 있는 집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이젠 각종 건축 기자재들 중 자신에게 적합한 것들을 골라서 자기 만의 집을 지을 수도 있다. 


Circa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팔로우(follow) 기능이다. '팔로우'는 이를테면 관심 있는 뉴스를 북마크하는 것과 비슷하다. 특정 이슈에 관심이 있을 경우 팔로우하게 되면 관련 뉴스들이 계속 덧붙게 된다. 위키피디아와 비슷한 뉴스 소비 방식인 셈이다. (구글 뉴스 책임자 "뉴스 사이트, 위피피디아 구조로 가야" 참고)


아직 Circa를 제대로 써 보지 못한 터라 딱 부러지게 뭐라고 하긴 조금 애매하다. 기가옴 기사에 붙은 댓글을 잠깐 읽어보니, 여기서도 찬반이 뚜렷하게 엇갈리는 것 같다. 모바일 시대 새로운 뉴스의 전형을 만들었다는 평가부터, 도대체 저게 뭐냐는 반응까지 다양하다. 와이어드 기사 역시 한번 읽어볼만하다. 


어쨌든 Circa에 대한 진지한 비판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듯 하다. 하지만 모바일 시대 새로운 뉴스 소비에 대한 고민을 짙게 담고 있는 앱이란 점만은 인정해 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