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피디아의 아성을 뒤흔들겠다는 보수파의 야심이 컨서버피디아(Conservapedia)로 결실을 맺었다.

잘 알다시피, 위키피디아는 '집단지성'을 토대로 네티즌 백과사전의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위키피디아는 개방과 참여, 그리고 공동 작업의 힘을 등에 업고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못지 않은 명성을 얻고 있다.

하지만 보수파들은 진작부터 위키피디아가 지난치게 좌파적, 반기독교적, 반 미국적이라고 비판해 왔다. 이번에 컨서버피디아를 만든 사람들은 미국인들이 위키피디아에 물드는 것을 막겠다는 야심을 굳이 감추지 않고 있다. 

컨서버피디아 사이트에 가보니 오늘은 '미국의 공산당'이란 항목이 새롭게 올라와 있다고 돼 있다. 풀이를 읽어보니, 역시 보수파답다.

"의회는 미국 공산당이 비록 정당 형태를 띠긴 했지만 사실은 미국 정보를 전복하려는 공모 수단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렇게 선언했다." 그리곤 '조셉 매카시를 함께 참고하라'고 돼 있다. 시작 화면에는 매일 성경 구절도 하나씩 소개하고 있는 듯하다.

메인화면에는 또 현재까지 5,300개 가량의 항목이 수록돼 있다고 돼 있다. 사상의 자유 시장이라는 것이 미국의 기본 이념이니 보수주의자들의 네티즌 백과사전이 나오지 마란 법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왜 미국의 극단적인 보수파들은 기독교를 앞세우는 지, 그게 참 불만이다.
  • dcafe 2007.03.22 01:36

    한국의 보수파들중에서도 기독교와 결부된 자들이 많죠. 게다가 한국 수구파들은 기독교 뿐만 아니라 미국에 오뉴월에 뻗어버린 개마냥 침 질질 흘리며 찰싹 달라붙으려고 하죠. 유유상종이라고 해야 하나요.

애플이 1984년 선보인 매킨토시 광고를 패러디한 정치광고가 유튜브에 등장하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특히 이 광고는 유력한 대권 주자 중 한 명인 힐러리 클린턴을 겨냥한 것으로 알려져 누가 어떤 의도로 이 광고를 올렸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광고 얘기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Who is the person behind the Clinton attack ad?' 란 기사를 통해 알게 됐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게재된 기사 뒤에 이 광고를 볼 수 있는 유튜브 주소가 명기돼 있다.

유튜브에 올라온 '힐러리 1984'란 광고는 힐러리 클린턴을 빅브라더로 묘사했다. 반면 그의 라이벌인 바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신 세대의 상징으로 그렸다. 이 광고는 특히 애플의 매킨토시 광고를 거의 그대로 활용했다.

'다르게 투표하라(vote different)'란 표제를 단 '힐러리 1984' 광고가 처음 유튜브에 올라온 것은 지난 3월 5일. 당시 이 광고를 올린 사람은 파크리지47(ParkRidge47)란 닉네임을 사용했다. 이 부분에 대해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1947년 시카고 주에서 태어나 파크리지 부근에서 성장한 힐러리를 겨냥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따르면 파크리지47은 "유명한 광고를 거의 그대로 사용하면서 민주당 대선 후보 레이스에 과감한 주장을 하고 싶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광고가 눈길을 끌면서 힐러리의 최대 라이벌로 떠오른 오바마 상원의원 측은 몸조심을 하고 있는 상태다. 실제로 CNN의 '래리 킹 라이브'에 출연한 오바마 상원의원은 '힐러리 1984' 광고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고 잘라 말했다.

오바마 의원은 "어떤 면에선 이것 역시 선거운동의 민주적 과정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광고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전제한 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그런 광고를 만들 기술적 능력도 없다"라고 말했다.

이번 광고는 어쩌면 '1타 2피' 역할을 할 지도 모르겠다. 힐러리를 겨냥하고 있지만, 사실은 오바마 의원에게도 타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전략'을 쓰는 사람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래 광고는 23년 전 선보였던 애플의 매킨토시 광고 장면. 힐러리 1984와 비교해서 보시길.

사용자 삽입 이미지

Gizmo에 게재돼 있는 구글폰 사진.

구글이 휴대폰을 내놓을 것이란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주로 파워블로거들 사이에서 거론되면서 구체적인 시나리오까지 나오고 있다. 이들은 애플의 아이폰 출시 사실을 정확하게 예견했던 만큼, 구글폰 애기에도 상당한 힘이 실리고 있다.

최근에는 구글표 휴대폰에 대한 소문들이 좀 더 구체적으로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구글이 '스위치(Switch)'란 코드명으로 블랙베리와 비슷한 휴대폰을 준비하고 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특히 구글 휴대폰은 블랙베리보다 훨씬 뛰어난 인터넷 접속 기능이 강점이라는 구체적인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과연 구글이 휴대폰을 내놓을까? PC월드는 이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Why Would Google Want a Phone?' 이란 기사를 게재했다. 한 마디로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PC월드가 제기하는 이유를 몇 가지로 요약해보자.

우선 시장 상황. 현재 휴대폰 시장에선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이들은 시장 점유율 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이들조차 최근 주가 하락에 시달리고 있다. 지나친 단말기 가격 경쟁 여파로 수익성이 떨어진 때문이다.

PC월드는 그 예로 대만 업체인 벤큐를 꼽았다. 지멘스의 휴대폰 사업 부문을 되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던 벤큐는 결국 1년 여 만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벤큐는 그 대가로 10억 달러 가량의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둘째 구글과 애플은 다르다는 게 PC월드의 분석이다. 하드웨어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경험이 있는 애플과 달리 구글은 소프트웨어 회사라는 것이다. 실제로 몇 년전 구글이 PC를 개발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진 적 있지만 결국 '헛소문'으로 드러난 적도 있다.

게다가 구글이 휴대폰을 직접 제작할 경우엔 단말기에 자신들의 소프트웨어를 탑재하고 있는 삼성전자 같은 업체들과 경쟁 관계로 바뀌게 된다. 이 또한 구글 입장에선 그리 달가울 것 없는 상황이다.

PC월드는 이런 분석을 토대로 구글이 휴대폰 시장에 진출한다면 그건 구글답지 못한 행동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낙 실험적인 행보를 자주 하는 구글인지라, 금기 영역은 없겠지만, 지금 현재로선 구글폰은 그야말로 소문에 그칠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 같다.

  • 허름이 2007.03.21 18:52

    저는 좀 생각이 다릅니다. 구글이 휴대폰을 끌어안을 것으로 봅니다. 물론 노키아, 모토로라와 직접 경쟁하는 모델은 아니겠죠. 개인적으로는 하드웨어 업체와 협력해 구글 서비스에 최적화된 단말기를 선보일 가능성은 높다고 봐요. 왜? 모바일 광고 때문입니다. 구글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무료 무선랜 서비스를 하는 것도 모바일 광고를 위한 테스트베드입니다. ISP들과 경쟁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지요.

    이에 휴대폰도 모바일 광고 차원에서 하드웨어 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할 수 있고 파트너는 삼성전자도 포함될 수 있다 봅니다. 구글폰 루머의 전모는 이런 성격이 아닐런지요~~물론 그렇게 되면 통신 업체와의 협력 관계가 금이 갈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구글이 지금 이 문제를 놓고 머리를 굴리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만일 상해 임시정부가 해방 후 초대 내각이 되었더라면 사태는 훨씬 좋아졌을 것이다. 그들은 선거 없이 그대로 정권을 인수한다.
(~ 중간 생략~)
이렇게 해서 한 십년 지나면 일본 아이들이 멍들여놓았던 상처도 가시고 얼이 빠졌던 해골이 제 구실을 하게 된다. 누구 말마따나 마음은 원이로되 손발이 떨려서. 그럴 즈음 외국에 유학갔던 친구들이 하나둘 돌아와서 영감들 시대는 이 정도로…  하는 의견을 슬금슬글 비치면서 근대화니, 국민경제니, 실존주의니 하며 영감들이 자신 없는 시비를 걸어온다. 지저분하게 굴지 않았을 것이다. 해방후 처음되는 보통선거를 위한 계획이 발표되고 곧 이어 제헌국회가 구성된다. ( 중간 생략) 그리고 주석 이하 요인 전원은 입후보를 사양한다. 헌법이 만들어지고 젊고 유능한 정부가 서면서 신화 시대는 끝나고 실무자들의 시대가 시작된다.   최인훈 <회색인> 289-290쪽.

최인훈의 소설 <회색인> 말미에 나오는 글이다. 대학 시절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가슴 찌릿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신화의 시대'가 들어서야 할 시기에 (신화를 거부하는) 실무자들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민족의 비극이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다.

예전에 후배들한테 이런 얘기를 한 적 있다. "지금 막 입사한 당신들이 주축이 될 때 한국의 온라인 저널리즘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라고. 그건 내 솔직한 생각이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온라인 저널리즘 역사에서 '신화의 시대'에 속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영상문법보다는 텍스트 문법에 익숙한 사람. 캠코더보다는 카메라가, 카메라보다는 키보드가 익숙한 사람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세계'가 너무나 강한 세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터에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언론학회의 학술지인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투고한 '상호작용성의 두 차원과 인터넷 저널리스트의 변신'이란 논문을 읽었다. 상당히 흥미로운 논문이었다. (개인적으론 학술논문보다는, 정교하게 잘 쓰여진 르포 기사 같은 느낌을 받긴 했지만.)

특히 저차적 상호작용성과 고차적 상호작용성이란 개념이 내 눈길을 끌었다. 온라인 저널리즘은 면대면 커뮤니케이션 시대의 고차적 커뮤니케이션을 향해 가고 있다는 그의 주장 역시 신선했다. 학술 논문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수치가 뒷받침되고 있는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저차적 상호작용성을 주로 구현하는 인터넷신문들의 저널리스트는 주로 기존의 전통적 매체에서 근무해온 직업기자들이다. 이들은 기존의 저널리스트 행위, 혹은 전통적 미디어 로직을 기본적으로 유지하되 인터넷의 특성을 부분적으로 활용하는 '저차적 변신'을 한다. 고차적 상호작용성을 구현하는 인터넷신문의 저널리스트들은 주로 인터넷을 통해 새롭게 저널리스트 활동을 하게 된 시민기자, 블로거 등이다. 이들은 뉴스의 소비자에서 생산자로의 '고차적 변신'을 하며, 전통적 미디어 로직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오연호 '상호작용성의 두 차원과 인터넷 저널리스트의 변신'

2000년 초 등장했던 많은 인터넷신문들, 오연호 대표의 진단대로라면 저차적 차원의 상호작용성을 주로 구현하는 인터넷신문들이 비교적 순탄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종이신문에서 나름대로 기반을 닦은 기자들이 주축을 이뤘던 영향이 크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인터넷신문'이란 신생 매체에 몸담으면서도 기자실을 비롯한 각종 헤택을 비교적 쉽게 되찾을 수 있었다.

'빛나는 훈장'과도 같았던 이런 전력은, 하지만 매체 발전이란 측면에선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전통적인 저널리즘의 문법을 쉽게 벗어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저널리즘과 상당히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많은 인터넷신문들은, 아마 이런 태생적 한계를 강하게 안고 있을 것이다. 변화된 매체 환경을 선도해 나가기 위해선 이런 출신 성분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는 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다시 오연호 대표의 논문 얘기로 돌아가보자. 그는 이 논문을 통해 '고차적 상호작용성 복원의 곡선'이란 것을 제시하고 있다. 면대면 커뮤니케이션 이후 하락 일변도였던 고차적 상호작용성이 인터넷신문의 등장과 함께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못한 인터넷신문도 많다.)

로저 피들러의 <미디어 모포시스>에 나오는 '공동진화' 개념과 상호작용성 개념을 혼합한 오연호의 이 곡선은, 비록 그의 말대로, 아직은 선험적인, 혹은 실험적인 차원이긴 하지만, 고객를 끄덕이게 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이걸 좀 더 정교하게 발전시키면 꽤 의미가 있을 것 같긴 한데, '열심히 연구하시라'란 말을 하진 못하겠다. 그에겐 '학자의 길' 보단 다른 쪽이 더 의미가 있을 터이므로.
난 영화 보는 걸 썩 내켜하지 않는 반면, 영화를 소재로 울궈먹는 건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가슴으로 영화에 몰입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대개는 "저거 어디에 써 먹을 수 없을까?"란 불순한 의도를 갖고 영화를 뚫어지게 '쳐다' 본다.

안성기, 박중훈 콤비가 오랜 만에 손발을 맞췄다는 '라디오 스타'도 내겐 그렇게 다가온 영화 중 하나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 난 이 영화를 한 자리에 앉아서 끝까지 본 적은 없다. 언젠가는 시간을 내어서 볼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췌해서 본' 이 영화는 UCC와 소통, 그리고 교감이란 면에서 참 많은 것을 내게 안겨줬다.

영화가 시작되고, 약 45분 쯤 흐를 때쯤 박중훈은 방송 사고를 낸다. 뭐, 원래 의욕없이 방송을 하던 그였으니, 사고랄 것도 없겠지만, 어쨌든, PD나 제작자들 입장에서 '방송 사고'였다. 역전앞 다방(?)의 김 양에게 마이크를 넘겨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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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파악 제대로 못하는 김 양. 마이크 잡은 김에 외상 값 갚지 않은 사람들에게 독촉 멘트를 시원하게 날려준다. 그리곤 자기의 솔직한 심정을 담아, 멀리서 기다리고 있을 '엄마'에게 사랑 고백을 한다. 이 때 밖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다. (여기서 얼치기 문학도 흉내를 내자면, 영문학에서 물(비) 같은 것들은 죽음과 재생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나 소설 같은 곳에서 결정적일 때 꼭 비가 오는 건, 분위기 탓도 있지만,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영원회귀 본능'에 호소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김 양의 이 방송은 의외로 영월(?)이란 소공동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게 된다. 이 때부터 박중훈은 'UCC의 위력'에 눈을 뜨게 된다. 브레히트가 얘기했던 라디오의 대안적 성격을 유감 없이 활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난 '라디오 스타'란, 색 바랜 책갈피 같은 영화를 UCC와 시민 저널리즘의 소중한 이상을 담고 있는 영화라고 내 마음대로 해석해버리기로 했다. (이준익 감독이 이 얘길 들으면, 펄쩍 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감독의 손을 떠나는 순간,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관객이다. 그게 시민 참여 미디어와 영화의 공통점이라고 생각한다.)

'라디오 스타'에서 주인공(박중훈)이 DJ로 재기할 수 있었던 건 형식 파괴 때문이 아니라, 청취자와 소통하는 방송을 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수용자의 욕구를 잘 건드려줬기 때문이란 애기와도 통한다.

UCC와 시민 참여란 기치를 내건 온라인 미디어들은 '라디오 스타'와 브레히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 Inuit 2007.03.18 17:26 신고

    저도 유사한 생각을 한 적 있습니다. ^^
    트랙백 하나 보냅니다.

    • 엑스리브리스 2007.03.18 17:32 신고

      트랙백타고 가서 읽어봤습니다. 정말 훌륭하게 분석하셨더군요. 제 글이 그냥 인상기라면, 님의 글은 영화와 미디어를 넘나드는 정교한 분석이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ronia 2007.03.19 17:12

    저는 이 영화 썩 좋게 보지 않았거든요. 주위에 워낙 극찬하시는 분들이 많아 별 의견을 내진 않았지만, 뭐랄까요, 그 의도가 너무 눈에 훤히 보인다고 할까. 그래서 좀 유치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순진한 사람들의 순진하고 따듯한 이야기. 이거 좀 낯 간지러웠어요. 제가 너무 안 순수해서 그런가..

지난 2005년 초 쯤 나는 예전에 운영하던 블로그에 '펌글 문화에서 링크 문화로' 라는 글을 올려 놓은 적 있다. 당시 온신협이 막 시작한 '펌글 문화를 링크 문화로 바꾸자'는 캠페인을 보면서, '의도는 모르겠지만' 취지는 좋다고 생각해 올려놨던 글이다.

오늘 레베카 블러드(R. Blood)가 니만 리포트 2003년 가을호 에 게재한 논문을 읽다가, 문득 그 글을 떠올리게 됐다. 우선 그 얘기부터 시작해 보자.

 Hypertext is fundamental to the practice of Weblogging. When bloggers refer to material that exists online, they invariably link to it. Hypertext, allows writers to summarize and contextualize complex stories with links out to numerous primary sources. Most importantly, the link provides a transparency that is impossible with paper. The link allows writers to directly reference any online resource, enabling readers to determine for themselves whether the writer has accurately represented or even understood the referenced piece. Bloggers who reference but do not link material that might, in its entirety, undermine their conclusions, are intellectually dishonest.

좀 길긴 하지만 원문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하이퍼텍스트가 블로그 활동에서는 근본적인 역할을 하는 데, 그 이유는 바로 링크에 있다는 것이 레베카 블러드의 주장이다. (사실 이런 주장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다. 이런 틀릴 수 없는 명제는 이름 값 있는 사람 따라가게 돼 있다.)

특히 링크는 종이신문에서는 불가능했던 투명성(transparency)을 제공해 준다. 왜? 뭔가를 인용할 경우엔 반드시 링크해 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제대로 인용한 것인지 아닌지를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당연한 얘기이다. 지난 번에 올린 '내가 네이버 블로그를 떠난 이유' 란 글에서도 링크 얘기를 한 적 있다.

레베카 블러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서 뭔가를 참고해 놓고 원 글을 링크해주지 않는 블로거는 지적으로 부정직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는 블러드의 이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종이에 글을 쓸 때는 그렇게 해 줄 방법이 없기 때문에, 원 자료를 보고 싶은 사람들은 직접 찾아봐야 했다. 필자들 입장에선 더 이상 서비스를 제공할 방법이 없으니까.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바로 연결해 줄 수 있는 데도, 여전히 링크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하기야 무차별적인 '펌질'도 적지 않은 편이니, 그나마 어디서 인용한 글이라고 밝혀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블로그를 사랑하는 사람들만이라도, 지적인 '투명성'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빌려온 아이디어나 글에는 반드시 링크를 걸어주는 센스를 발휘하자는 것이다. (물론 내가 자주 방문하는 블로그들 중에선 링크에 철저한 분들이 많다. 난 그 분들의 지적인 정직성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블로그의 성공과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운동 사이에 상당한 유사점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역시 '니만 리포트 2005년 겨울호' 에 실린 Shayne Bowman & Chris Willis의 논문에 나오는 얘기다. 오픈소스란 게 바로 '소스 공개' 아닌가? 그런 점에서 '누군가의 글을 인용해 놓고 링크를 걸지 않는 사람은 지적으로 부정직하다'는 레베카 블러드의 주장은 꼭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 총천연색 2008.11.08 04:42

    링크의 생활화로 블로그의 투명성을 유지하자!
    잘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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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cret to sucess in big business and politics in the twenty-first century, I think, will involve figuring out a way to capitalize on the phenomenon of lots of people doing what they want to do, rather than-as in previous centuries- figuring out ways to make lots of people do what you want to them to.
                         Glen Reynolds <An Army of Davids> p. 21

테네시대학 법학 교수이면서 인스타펀딧(Instapundit.com)이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글렌 레이놀즈의 <An Army of Davids>를 읽고 있다. <An Army of Davids>란 책의 존재는 아거님의 '기생 매체 공생 매체' 포스트를 통해 알게 됐다.

아직은 도입 부분인지라 책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을 말하긴 이른 상황이고. 전철에서 쪼그리고 읽다가 눈에 띄는 구절을 발견했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서둘러 밑줄을 긋다 보니,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고- 즉 비뚫어진 밑줄이 글씨를 덮어버리는 사고-가 생겼다. ^.^

레이놀즈는 'Small is the new big'이란 장에서 "21세기의 비즈니스와 정치에서 성공하는 비결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럼 그 전에는? "우리가 그들에게 원하는 것을 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언뜻 보기엔 너무나 당연해서, 더 이상 토를 달 가치도 없어 보인다. 당연한 얘기 아니냐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선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보려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인 경향이 강하다. 어쩌면 자기 세계에 푹 빠져서 더 이상 외부와의 소통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곤 자의적으로 판단해버리는 것이다. "그들은 이걸 원할 것이다"라고. 사실은 내가 그들에게 바라는 것인데, 말이다.

A society characterized by generalized reciprocity is more efficient than a distrustful society, for the same reason that money is more efficient than barter. If we don't have to balance every exchange instantly, we can get a lot more accomplished. Trustworthiness lubricates social life. Frequent interaction among a diverse set of people tends to produce a norm of generalized reciprocity.  Robert Putnam. <Bowling Alone> p. 21

로버트 퍼트남의 <혼자서 볼링치기(Bowling Alone)>에 나오는 글이다. 여기서 구체적 상호관계(specific reciprocity)와 일반적 상호관계(generalized reciprocity)란 개념이 나온다.

구체적 상호관계란 '즉각적인 주고 받음'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내가 친구에게 밥을 사면, 바로 그 친구는 나에게 밥을 한번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관계이다. 학생 때 주로 이런 경우가 많다. 쓸 돈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특히 선후배 개념이 생기면서 이제는 대인관계가 조금 달라지게 된다. 내가 후배에게 밥을 사면 그 후배도 자신의 후배에게 밥을 살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마치 내가 선배에게 엄청나게 많은 밥을 얻어 먹었듯이. 이것을 퍼트남은 '일반적 상호관계'라고 묘사한다.

 퍼트남은 이런 관점에서 일반적 상호관계를 기반으로 한 사회는 신뢰성이 없는 사회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물물교환보다 화폐 경제가 훨씬 더 효율적인 것과 같은 차원이다.

서두가 좀 길었다. 블로그 공간에서도 '구체적 상호관계'와 '일반적 상호관계'라는 걸 생각하게 된다. 예전에 네이버 블로그를 할 때 나는 '구체적 상호관계' 때문에 '이웃맺기'를 한 경우가 참 많았다. 어떨 땐 '쪽지'로 이웃 좀 맺어달라는 요청이 오기도 한다. 이럴 경우엔 '인정상' 거절하기가 참 힘들었다.

블로고스피어가 좀 더 발전하고, 또 이슈 중심적인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구체적 상호관계'에서 '일반적 상호관계'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관계라는 것이 말처럼 안되는 게, 문제긴 하다.

이런 생각을 할 즈음, Kaye Trammell과 Ana Keshelashvili가 공동 연구한 'Examining the new influencers: A self-presentation study of A-list blogs'란 논문을 읽게 됐다. <Journalism and Mass Communication Quarterly> 82-4호에 게재된 논문이다. 이 논문에서도 A-리스트 블로거들이 남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구체적 상호관계'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되어 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사람 관계에서는 '정'이 참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최근 저는 어떤 책에서 윤** 씨가 쓴 글을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구절을 발견했기 때문이지요. 왜 그랬을까?

일단 저를 괴롭게 만들었던 구절을 먼저 보시지요.

지난 2000년 4월, 분단 이후 처음으로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을 최초로 기사화하여 게재한 inews24를 시발점으로 하여 지금까지 인터넷 저널리즘 현장을 굳게 지키고 있는 대다수 인터넷신문들은 초기부터 '특종 행진곡'을 힘차게 불렀다. 오마이뉴스의 소위 386 의원들 광주 술판 사건 보도도 초창기 인터넷신문의 대표적인 특종 중 하나였다. 당시 이 기사는 동아일보 등 주요 일간지들이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오마이뉴스를 인용 보도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데일리 역시 사이트 출범한 지 불과 사흘 만에 ‘제일제당, 삼구쇼핑 인수’ 특종 기사를 터뜨렸다. 당시 이데일리에 이 기사가 나가면서 바로 증시에 반영되어 '인터넷신문의 위력'을 다시 한번 과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무렵 '인터넷신문=특종 제조기'란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굵직한 특종들이 잇따라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다.

이처럼 인터넷신문이 연착륙할 수 있었던 데는 각 사들이 출범 초기부터 굵직한 특종을 터뜨린 것이 크게 작용했다. 반신반의하던 독자나 투자자, 업계 관계자들은 오프라인 신문에 비해 결코 기사의 질이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쉴 새 없이 기사를 생산해 내는 인터넷 신문 기자들을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별도 마감 시간 없이 수시로 기사를 쏟아내는 인터넷신문은 ‘정보의 바다’라는 21세기의 콘셉트와도 잘 맞아 떨어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때를 기점으로 생소하기만 했던 사이버 저널리즘의 거론과 함께 언론학계에선 '온라인 저널리즘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논의하기 시작했으며, 언론환경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학계에서도 인정하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뒤져 봤습니다. 제가 2005년 3월 20일에 출고한 '인터넷신문 5년 아이뉴스24 5년' 이란 제목의 기사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창간 5주년 기념으로 쓴 기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위의 글을 읽으면서 '친근한 느낌'을 갖게 해 준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아이뉴스24 뿐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인터넷 저널리즘 현장을 굳게 지키고 있는 대다수 인터넷신문들은 초기부터 '특종 행진곡'을 힘차게 불렀다.

오마이뉴스의 소위 386 의원들 광주 술판 사건 보도도 초창기 인터넷신문의 대표적인 특종 중 하나였다. 당시 이 기사는 동아일보 등 주요 일간지들이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오마이뉴스를 인용 보도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데일리 역시 사이트 출범한 지 불과 사흘 만에 ‘제일제당, 삼구쇼핑 인수’ 특종 기사를 터뜨렸다. 당시 이데일리에 이 기사가 나가면서 바로 증시에 반영돼 ‘인터넷 신문의 위력’을 새삼 과시했다는 후문이다.

이 무렵 '인터넷신문=특종 제조기'란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굵직한 특종들이 잇따라 쏟아져나왔다. 인터넷신문이 연착륙할 수 있었던 데는 각 사들이 출범 초기부터 굵직한 특종을 터뜨린 것이 크게 작용했다.

반신반의하던 독자나 투자자, 업계 관계자들은 오프라인 신문에 비해 결코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쉴 새 없이 기사를 생산해 내는 인터넷 신문 기자들을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

특히 별도 마감 시간 없이 수시로 기사를 쏟아내는 인터넷신문은 ‘정보의 바다’라는 21세기의 컨셉과도 잘 맞아 떨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임영호 교수는 지난 1997년 '신문과방송'을 통해 ‘마감 개념 무의미, 심층취재 활성화: 사이버 저널리즘 시대가 열렸다’고 규정했다.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이 같은 진단은 인터넷신문이 본격 등장한 2000년 초중반부터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이 때를 기점으로 언론학계에선 ‘온라인 저널리즘과 새로운 패러다임’(연세대 윤영철 교수,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회 학술대회, 2000) 같은 제목들이 심심찮게 등장했다. 언론 환경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학계에서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터넷신문 5년, 아이뉴스24 5년'

참고로 윤** 씨가 쓴 위의 글은 2006년 말에 출판된 유명한 연구서에 게재된 겁니다. 제 기사는 2005년 3월 출고된 것이구요.

물론 위의 글 중에서 오마이뉴스가 언제 특종했고, 이데일리가 무슨 특종을 했다는 식의 내용은 제가 크래딧을 주장할 순 없을 겁니다. 그거야 주지의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이 정도로 문장이 똑같다면, 이건 표절 아닌가요?

제가 이런 문제 제기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조만간 박사 논문을 써야하는 저는, 자칫하면 제가 쓴 기사를 인용하지도 못할 상황이 돼 버렸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저 비슷한 내용의 글을 쓰게 되면, 그리고 그가 충실하게 인용 표시를 달아주는 양심적인 학자라면, 저 내용 밑에 (윤**, 2006)이라는 표시를 해주지 않을까요?

제 기사야 일반인들, 혹은 학자들이 전혀 접하지 않을 글인 반면, 상당한 권위를 인정받을 위의 책은 꽤 많은 사람들(적어도 학자들)이 두고 두고 참고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위의 부분을 잘못 사용했다가는 도리어 표절했다는 손가락질(왜냐하면 제가 유명인사가 아니기 때문에 표절 의혹까지 제기하지는 않을 겁니다.)을 받기 딱 좋게 돼 버렸습니다.

이거 참 황당하지 않나요? 분석 내용 자체는 정말 읽을 만했는 데, 별 것 아닌 내용 가지고 사람 기분 완전히 망쳐 버렸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란 이름 앞에는 꼭 '악의 제국'이란 접두어가 따라다녔다. 그동안 MS가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는 것이 일반인들의 뇌리에 깊숙하게 박혀 있는 것이다. 수 년동안 반독점 공방이 끊이지 않았던 것 역시 MS에 '악의 제국'이란 가면을 덧씌워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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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들어 'MS=악의 화신' 이란 등식이 상당히 흐려졌다는 지적이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다. 어떻게 그런 변화가 가능했을까?

로버트 스코블과 셸 이스라엘이 공동 저술한 '블로그 세상을 바꾸다'는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블로그'에서 찾는다.

물론 이들이 자신있게 MS와 블로그를 연결시킬 수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 책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로버트 스코블은 ‘악의 제국’이라 불리던 MS에 인간의 모습을 부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채널9' 블로그 운영자로 활동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채널9' 뿐 아니라 MS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던 '스코블라이저'란 블로그를 운영하기도 했다.

MS의 대외 이미지가 지나치게 부정적이라는 점에 충격을 받은 몇몇이 처음 블로그를 도입할 때만 해도 회사 내에선 걱정도 적지 않았다. 행여 문제를 만들 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티브 발머 CEO를 비롯한 경영진들은 결국 블로그를 허용하기로 했다.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스티브 발머 CEO는 이렇게 설명한다.

"직원들이 블로그에서 자신을 표현하게 한다는 것이 밖에 나가서 스스로 고객을 만나게 하는 것보다 더 리스크가 있는 일이 아닌 겁니다. 블로그는 그저 더 많은 사람들을 접촉할 뿐이죠. 사람들이 훈련받을 필요가 있다면 우리는 훈련을 시킬 겁니다. 하지만 난 블로깅이 고객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데 아주 훌륭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29쪽)

이처럼 MS를 변화시킨 것은 바로 블로깅과 대화 마케팅이었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블로그 세상을 바꾸다'의 저자들은 블로그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블로그가 대화 채널이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블로그를 통한 대화는 신뢰를 구축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그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 책을 준비하던 1년여의 집필 기간 동안 북미뿐만 아니라 유럽, 아시아 등 전세계의 유명 블로거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또 그들이 관찰한 내용과 대화를 블로그에 올렸다.

그리곤 책을 집필해 나가는 과정에서 댓글 형태로 참여한 방문객들의 의견들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참여과 공유라는 정신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영국의 한 무명 재단사가 블로그를 시작함으로써 일약 세계적인 재단사로 유명세를 떨치게 된 마혼의 블로그, 제품을 제조한 회사보다 소비자에게 더 신뢰를 받는 트레오너츠 블로그, 소비자 가격이 4.95달러짜리의 아이디어 상품을 블로그에 소개한 후 아마존과 미국에서 두 번째 규모의 할인점 체인인 타깃과 공급이 체결된 일화 등 개인이 블로그를 이용해 성공을 거둔 사례 등 이 책에서는 블로그를 비즈니스에 성공적으로 활용한 사례들을 자세하게 소개해 주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이런 외적인 사례들이 아니다. 이 책 원제인 'naked conversation'이 잘 나타내주듯이, 블로그는 바로 '하나의 거대한 입소문'이라는 점을 깨닫는 데 있다.

실제로 이 책 저자들은 소비자들이 미사어구로 현혹시키는 기업의 대변인과 잘 짜여진 각본같은 보도자료에 대해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고 진단한다. 또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는 매스미디어의 광고에 대해서는 싫증을 넘어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저자들은 진단하고 있다. 한 마디로 일방향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는 더 이상 고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블로그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참여 정신이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적 흐름이라고 해도 크게 그르진 않을 듯하다.

물론 이 책을 읽으면서 다소 불편한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MS에 대한 과도한 애정과, 상대적으로 MS의 대척점에 서 있는 기업들에 대한 소홀한 대우가 심심찮게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주장하듯이 "MS의 이미지가 달라졌는지"에 대해서도 솔직히 자신있게 얘기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저자들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을 이런 종류의 편애가 이 책의 가치까지 훼손하지는 못할 듯하다. '변해야 산다'는 당위 명제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그가 기업의 체질을 바꾸려 한다면, 적어도 '진솔한 대화'를 하려는 마음가짐은 꼭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고객이든, 아니면 자기 회사 직원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솔직하게 대화하려는 열린 마음이다. 그리고 블로그는 그 마음을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최상의 도구이다. 그 마음을 깨달은 경영자라면, 그는 고객과 직원 모두에게 큰 복을 안겨줄 자질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르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열린 마음'과 '블로그'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다소 극단적인 질문을 받는다면, 난 주저없이 블로그 대신 열린 마음을 선택하겠다. 이 책 저자들 역시 나의 이 같은 선택에 공감하리라 믿는다.

그런 차원에서 블로그를 통해 진솔한 대화를 실천하는 방법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블로깅과 오픈소스 둘 다가 새로운 '참여의 시대'를 도래시킬 것이라는 이야기다. 우리는 그(조나단 슈워츠)에게 이 새로운 시대에 블로깅의 역할은 무엇인지 질문했다. 그는 "불 붙은 기름이지요, 참여의 시대는 이메일이 등장하면서부터 인터넷에 이미 존재했어요. 거기서 블로깅으로 이동하는 것은 통신용 비둘기에서 전화로 옮겨가는 것과 같죠. 블로그의 등장은 우리가 초기의 조잡한 도구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어떻게 모든 것이 관련되는 지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야기합니다."  (7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