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어떤 것이 옳은 방식일까?


뉴욕타임스가 플립보드와 콘텐츠 제휴를 하기로 한 바로 다음 날 뉴요커와 와이어드는 플리보드와의 제휴 관계를 끊기로 했다. 


한 쪽은 플립보드 같은 서드파티 앱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보인 반면, 또 다른 쪽은 자기만의 'walled garden'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당연히 상반된 양쪽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외신들도 이 부분에 대해선 조심스런 접근 방식을 보이고 있다. 기가옴이 뉴욕타임스의 행보에 힘을 싣는 기사를 게재한 반면, 매셔블은 플립보드의 전략에 적잖은 차질이 빚어질 것 같다는 쪽에 초점을 맞췄다.


옛 후배 둘이 열심히 운영하고 있는 테크잇은 매셔블 쪽에 가까운 글을 올렸다. 마지막 부분을 조금 인용하면 이렇다. 


매셔블 기사를 보면 플립보드가 뉴스에 있어서는 포털을 꿈꾸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미디어들과는 어느정도 헤게모니 싸움을 벌일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미디어 입장에서 수익적으로 얻는게 많지 않다면 앞으로도 유사한 사례들이 나올 것 같다. 개인적으로 써본 입장에서 플립보드는 미디어들이 최적화된 콘텐츠를 주지 않아도 다양한 뉴스를 편하게 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플립보드나 포털 사이트 뉴스 서비스 모바일판의 힘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


뉴욕타임스와 뉴요커는 왜 다른 길을 택했을까 


그런데 내가 보기엔 뉴욕타임스와 뉴요커(편의상 뉴요커만 쓰자. 그래자 운율이 잘 맞으니. ^^)의 행보는 그리 달라보이지는 않는다. 결국은 플립보드 같은 서드파티 플랫폼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는 부분이 초점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런 측면에서 한 쪽은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일 뿐이고, 다른 쪽은 그렇지 않았을 따름이다.


우선 뉴요커가 플립보드와 결별한 까닭을 살펴보자. 크게 두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자사 사이트에 있는 배너 광고를 통해 수익을 올리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플립보드에 최적화된 형태로 콘텐츠를 보여주는 현재와 같은 제휴 방식으론 그게 불가능하다. 배너 광고 대신 그냥 중간 중간에 전면 광고 형태를 끼워넣는 방식을 이용해야만 한다. 이건 국내에서도 포털과 공방을 벌인 적 있는 이슈다. 포털에 콘텐츠를 제공할 때 언론사 페이지에 있는 광고도 함께 보여주는 문제를 놓고 양측이 논란을 벌인 적 있다. 물론 포털 쪽이 허용할 리 만무하다. 


두번째는 좀 더 근본적인 이유다. 플립보드가 콘텐츠 유통의 중심지로 떠오르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자칫하면 주도권을 잃을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생긴 것이다. 이 부분 역시 국내 언론사들이 절감하고 있는 이슈다. 단, 국내 언론사들은 포털에 주도권이 넘어가고 난 뒤 다시 판을 바꾸려 했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그럼 뉴욕타임스는 이런 부분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던 걸까? 당연히 생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플립보드와 손을 잡았을까?


우선 첫번째 부분은 뉴욕타임스 쪽의 입장이 조금 다를 수도 있다. 잘 아는 것처럼 뉴욕타임스 디지털 전략의 주 수익 모델은 더 이상 '배너 광고' 중심 구도가 아니다. 지난 해부터 공을 들이고 있는 유료 전략을 좀 더 확대하는 쪽에 더 많은 관심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굳이 자기 사이트로 모든 독자들을 끌어모으지 않아도 된다. 


이 대목에서 뉴욕타임스는 한 가지 얻어낸 부분이 있다. 바로 유료화 전략의 원형을 그대로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이 부분은 플립보드가 상당히 양보했다고 봐도 된다. 그러니 뉴욕타임스 입장에선 배너 광고 수익 문제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닌 셈이다.


자, 그럼 두 번째 이유는 어떨까? 이건 사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뉴욕타임스 쪽의 공식 입장은 "독자들의 뉴스 수용 방식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현실을 인정하고, 플립보드 같은 서드파티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는게 더 낫다는 쪽이다. 


여기서 잠시 지난 해 퓨리서치센터 조사 결과를 떠올려보자.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미국 25대 뉴스 사이트를 매달 10번 이상 고정적으로 방문한다고 응답한 독자 비중이 7%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 달에 한 번 정도 방문한다고 응답한 독자 비중은 65%에 달했다. 이쯤 되면 개별 뉴스 브랜드에 대한 인식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결국 뉴욕타임스는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는 쪽을 택한 셈이다. 반면 뉴요커나 와이어드는 여전히 자신들의 고품격 콘텐츠는 자기네 사이트에 와서 봐야한다는 쪽인 셈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뉴요커가 플립보드와 제휴를 끊는다고 해서 플립보드에서 콘텐츠를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플립보드에 최적화된 형태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 뿐이다. 쉽게 비유하자면, 그냥 네이버에 기사 공급하던 것을 뉴스캐스트 방식으로 바꿨다고 보면 된다.)


뉴스 배포 경로 둘러싼 철학적 논쟁 본격화되나 


기가옴이 뉴욕타임스와 뉴요커 사례를 비교하면서 신문들이 뉴스 콘텐츠 배포 문제와 관련해 문화적, 철학적인 변화를 겪을 것이라고 한 것은 정확한 진단인 것 같다. 당연한 얘기지만, 현재로선 어느 쪽 전략이 옳은 지를 판단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그런 측면에선 플립보드도 고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매셔블에 따르면 플립보드가 지향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네이버와 비슷한 모델인 것 같다. 뉴스를 보는 관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플립보드의 전략은 '규모의 경제'가 제대로 작동해야만 가능한 모델이다. 뉴요커나 와이어드처럼 (주도권 문제든, 수익 배분 문제든 간에) 불만을 품고 이탈하기 시작할 경우엔 영향력이 급격하게 감퇴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플립보드 역시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워나가기 위해선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매셔블의 지적처럼, 차별화된 광고 모델을 선보이든, 아니면 뉴욕타임스의 유료 모델을 그대로 수용한 것처럼 언론사들의 전략을 훼손하지 않을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이 나와야 한다는 얘기다.


이래 저래 미디어 시장은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뉴욕타임스가 기술 쪽에 밝은 CEO를 찾고 있는 것도 이런 상황에 좀 더 잘 대처하자는 의도일 것이다. 이런 소식을 접하면서, 어쩔 수 없이 내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한국의 인터넷 저널리즘 환경. ^^


확실히 큐레이션이 대세는 대세인 모양이다. 뉴욕타임스가 대표적인 아이패드 앱인 플립보드와 콘텐츠 제휴 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뉴욕타임스가 25일 공식 발표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번 콘텐츠 제휴는 오는 28일부터 본격 시작된다.


따라서 그 때부터 뉴욕타임스 구독자들은 플립보드에서 뉴욕타임스가 제공하는 모든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 물론 뉴욕타임스 구독자가 아닐 경우엔 지금처럼 일부 콘텐츠만 볼 수 있다. 참고로 뉴욕타임스는 지난 해 3월부터 사이트 전면 유료화를 단행했다. 초기엔 매달 20개씩 공짜로 볼 수 있게 했지만, 올 들어선 공짜 콘텐츠 갯수를 절반으로 줄였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부분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다. 천하의 뉴욕타임스가 서드파티 앱을 통해 자신들의 모든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왜?"라는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뉴욕타임스는 독자들에 대한 의무라고 강조하고 있다. 자체 조사 결과 구독자 중 20% 가량이 플립보드 같은 서드파티를 통해 자사 기사를 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러니 기사 제공 채널을 확대하는 것은 독자에 대한 당연한 의무란 것이 뉴욕타임스의 설명이다.


물론 언론사가 땅 파 먹고 장사하는 집단은 아니다. 당연히 콘텐츠 제휴 모델엔 수익 모델이 포함되게 마련이다. 뉴욕타임스는 플립보드 기사 사이에 전면 광고를 끼워넣을 계획이다. 이렇게 생긴 광고 수익은 플립보드와 나누게 된다.


자, 여기까지가 공개된 팩트이다. 그럼 이번 제휴가 두 회사엔 어떤 이득을 가져다줄까? 플립보드와 뉴욕타임스 측면에서 이번 제휴의 득실을 한번 살펴보자.  


1. 실속 챙긴 플립보드 


플립보드 입장에선 뉴욕타임스 가세가 큰 힘이 될 전망이다. 잘 아는 것처럼 플립보드는 2010년 아이패드용 앱으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넷스케이프에서 활약했던 마이크 맥큐와 애플에서 아이폰 작업을 했던 엔지니어 출신 에반 돌이 공동 설립한 회사다. 나오자마자 그 해 애플 측으로부터 최고 앱 중 하나로 선정될 정도로 큰 관심을 모았다. (개인적으론 플립보드보다는 CNN에 인수된 자이트를 더 좋아하는 편이다.)





언론사 파트너도 적지 않다. ABC뉴스, USA투데이, 와이어드, 배너티 페어 같은 유력 매체들이 콘텐츠를 공급하고 있다. 여기에 뉴욕타임스까지 모든 콘텐츠를 제공해주기로 함에 따라 플립보드의 위세가 상당히 강해지게 생겼다. 뉴욕타임스 독자들을 플립보드 이용자로 끌어들이는 효과도 있다. 


마이크 맥큐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이번 제휴는 우리에겐 엄청난 일"이라고 한 건 충분히 공감할만한 부분이 있다. 하긴, 뉴욕타임스의 프리미엄 콘텐츠까지 보여줄 수 있게 됐으니, 그것만 해도 엄청난 상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다. 


독자들이 기사를 보는 방식도 달라질 전망이다. 그 동안은 뉴욕타임스의 각종 사진이나 양방향 그래픽 같은 것들을 가져오지 못했다. 링크를 누르면 별도 창을 띄워서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앞으론 플립보드에서 뉴욕타임스 기사를 사이트에 있는 것과 똑 같은 모양으로 볼 수도 있게 됐다. 말 그대로 'NYT 에브리훼어'의 수혜를 받을 수 있게 됐다. 


2. 채널 확장한 뉴욕타임스, 효과는?


앞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이번 콘텐츠 제휴는 'NYT Everywhere' 전략의 일환이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자사 기사를 유통시키겠다는 뉴욕타임스의 야심이 그대로 녹아 있는 셈이다. 여기에다 플립보드식 광고 모델을 통해 추가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는 점 역시 매력적이다. 


그 동안 뉴욕타임스 디지털 버전 기사를 읽으려면 웹 사이트를 방문하거나, 아이폰 및 안드로이드 앱을 이용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제 플립보드까지 채널이 확장하게 됐다. 최근 이용자들이 급증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뉴욕타임스 입장에선 상당한 성과를 기대함직하다. 


하지만 이번 제휴가 과연 'NYT Everywhere' 측면에서 부가적인 효과를 얼마나 가져다 줄 지는 미지수다. 올싱스디지털 지적처럼 그 동안 뉴욕타임스 독자들은 이미 아이폰을 비롯한 다양한 기기들을 통해 뉴욕타임스 기사를 접해왔기 때문이다. 플립보드가 뉴욕타임스의 기존 앱들과 크게 다르진 않기 때문이다. 구독자 입장에선 플립보드 한 곳에서 모든 콘텐츠를 볼 수 있다는 정도의 편리함을 빼면 사실 큰 차이는 없을 듯 하다. (물론 이게 크다면 큰 차이이긴 할테지만)


그럼 뉴욕타임스를 구독하지 않는 독자들은 어떨까? 일단 이들은 뉴욕타임스가 공짜로 제공하는 콘텐츠만을 볼 수 있다. 뉴욕타임스의 paywall이 플립보드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욕타임스의 유료화 전략이 '트래픽'과 '구독료 수입'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것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플립보드를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사 콘텐츠를 맛뵈기로 보여주면서 구독을 유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뉴욕타임스는 'Everywhere' 전략보다는 '마케팅 채널 확충'이란 부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플립보드를 활용한 광고 영업 역시 뉴욕타임스에는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다. 


3. 혹시 플립보드 인수를 염두에 둔 건 아닐까?


이번 콘텐츠 제휴 소식을 들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전통 언론들 중에서 가장 소셜 미디어를 잘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페이스북 페이지 팬 수가 220만 명에 달할 정도다. 발행부수의 150%는 족히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미국의 다른 매체들은 페이스북 페이지 팬 수가 발행 부수의 20%를 밑돌고 있다.)


누군가는 이번 제휴를 "허핑턴포스트에 추월당한 뉴욕타임스가 소셜 미디어에 눈을 돌렸다"는 쪽으로 해석하는 것 같던데,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씀이다. 


솔직히 지난 해 허핑턴포스트가 뉴욕타임스 트래픽을 앞질렀다는 기사를 보면서 고소를 금치 못했다. 심지어 보고서에도 그런 인용이 포함되는 걸 보면서 참 웃긴다는 생각을 했다. 





한번 생각을 해보시라. 뉴욕타임스가 지난 해 3월 사이트 전면 유료화를 단행했으니, 2분기 들어 허핑턴포스트에 추월당하는 건 당연하다. 추월 안 당하는 게 오히려 뉴스 아닌가? 


솔직히 나도 뉴욕타임스의 소셜 전략에 대해선 잘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 대형 언론사처럼 소셜 미디어 활용이 서툴 것이란 생각은 아예 접어두는 게 좋다. 벌써 몇 년 전에 소셜 데스크 제도를 두면서 소셜 전략을 수행해 올 정도로 상당한 내공을 쌓아왔다.


그래서 문득 든 생각이 바로 인수다.  CNN이 자이트를 인수한 것처럼 뉴욕타임스도 혹시 플립보드 인수를 염두에 둔 건 아닐까? (플립보드-자이트가 미디어의 미래 모습일까? 참고.)


물론 플립보드와 자이트는 규모나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크다.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에서 프로젝트로 시작한 자이트와 달리 플립보드 창업자들은 실리콘밸리에서 내공을 쌓은 비즈니스 맨들이다. 가격이나 여러 가지 측면을 생각하면 녹록한 상대는 아니다. 


하지만 웬지 뉴욕타임스가 플립보드 인수에 상당한 관심을 보일 것 같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아, 물론 이건 그냥 내가 감으로 얘기한 거니,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마시길. ^^ (너무 허무하게 끝을 맺었나?)

1954년 6월8일. 잉글랜드 체셔 주 윔슬로우의 한 조용한 저택에서 시체가 발견됐다. 그 무렵 동성애자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학적 거세'란 치욕적인 형벌을 받은 앨런 튜링이었다. 


하루 전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 튜링의 곁에는 한 입 베어문 사과가 놓여 있었다. (지난 해 작고한 스티브 잡스가 앨런 튜링을 굉장히 존경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 그래서 애플이 한 입 베어문 사과를 로고로 선택한 것은 튜링에 대한 잡스의 존경심 때문이란 설도 분분한 편이다. 물론 잡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부인했다.)


앨런 튜링. 현대 컴퓨터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튜링이 1936년 알고리즘 대한 엄밀한 수학적 정의를 위해 도입한 튜링 기계란 개념은 이후 컴퓨터 과학의 토대가 됐다. 


난 개인적으로 튜링의 글을 읽어본 적은 없다. 하지만 하마터면 튜링과 인연을 가질 뻔한 적은 있다. 그러니까 지난 2010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당시 볼터의 '글쓰기의 공간(Writing Space)' 번역을 막 끝내고 난 뒤 출판사에서 튜링 책을 한번 번역해보면 어떻겠느냔 얘기를 해 왔다. 당시 난 깊이 생각하지 않고, 거절했다. 


거절한 이유는 딱 두가지였다. 대가의 책을 번역할 깜냥이 못 된다는 겸손한 마음이 하나요. 또 하나는 번역하는 수고에 비해 비해 돈(이나 명예)가 그다지 뒤따라올 것 같지 않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또 하나였다. (대중성이 없는 거야 두 말 하면 잔소리일테고, 학계에서도 그 책 읽을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아 보였기 때문. 튜링에 관심을 가질 정도 학자면 원서로 그냥 읽어볼테고.)


어쨌든 이번 달 들어 튜링 이야기가 언론에 많이 보도되고 있다. 지난 6월23일이 튜링 탄생 100주년 기념일이기 때문이다. 국내 거의 모든 언론들이 튜링의 삶을 조명하는 짤막한 기사들을 쏟아냈다.


2년 전인가 앨런 튜링을 다룬 책이 국내에 번역 출간된 적이 있다. 그 당시 책 제목이 '너무 많이 알았던 사람'이었다. 물론 원서 제목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개인적으로, 저 책 제목은 앨런 튜링이란 천재를 묘사하는 적합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잠깐 몇 년전 유행했던 '뷰티플 마인드'란 영화를 한번 떠올려보자. 역시 불행한 삶을 살았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존 내시를 다룬 그 영화에 보면 내시가 암호를 해독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또 옆으로 새면, 미국에서 주파수 경매를 할 당시 존 내시의 이론이 많이 활용된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전쟁과 암호해독에서 진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앨런 튜링이다. 탁월한 천재였던 튜링은 전쟁 당시 '에니그마'란 독일군의 암호 시스템을 해독해냈다. 덕분에 연합군이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내가 더 관심을 갖는 건 컴퓨터 과학의 기초를 닦은 부분이다. 튜링은 1936년 'On Computation Numbers ~ ' 란 논문을 한 편 쓴다. 여기서 그는 후대 컴퓨터 과학의 토대가 된 중요한 주장을 하나 펼친다. 


that any computable problem could be computed on a machine, with calculations controlled by means of encoded instructions; and that code, rather than machine, was the essence of a computer.


여기서 튜링은 기계가 아니라 코드가 컴퓨터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빌 게이츠가 도스 기반으로 돌아가는 IBM PC를 선보이기 무려 45년쯤 전의 일이다. 이쯤 되면 애플의 로고가 튜링을 염두에 둔 것이란 주장이 나오는 것도 그리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튜링은 이 외에도 현대 과학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튜링이 어떤 사람인지 개략적으로 알고 싶은 사람은 위키피디아를 한번 뒤져보시라. 20세기 초반에 21세기적인 삶을 살았던 이 천재에 대해 좀 더 깊은 관심이 생기는 사람은 몇 년 전에 출간된 '너무 많이 알았던 사람'이란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지금 영국을 중심으로 튜링을 기리는 여러 모임들이 열리고 있는 모양이다. 당연히 그의 학술적 업적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튜링이 남긴 위대한 업젝은 Allan Turing's Legacy Lives On이란 와이어드 기사가 잘 정리했다.  


여담으로 한 마디.


2차 대전 승리의 숨은 공신이었던 튜링은 전쟁 이후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독특한 성적 취향 때문이었다. 인류 역사 속의 많은 천재들이 그랬듯, 튜링 역시 동성애자였다. 지금도 동성애자의 삶이 그다지 순탄하지 못하지만, 그 때만 해도 '동성애=정신 이상자' 수준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 인류 역사상 손꼽히는 천재였던 튜링은 결국 화학적 거세를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힘들게 살던 튜링은 결국 1954년 6월7일. 짧지만 강렬했던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 앞에 적은 것처럼 그의 곁에는 한 입 베어문 사과가 놓여 있었다. 튜링 옆에 놓여 있던 사과가 매킨토시 종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 잠깐 내 의견을 덧붙이자면. 물론 나는 동성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싫어한다. 하지만 단순히 동성애자란 이유만으로, 인류의 위대한 천재에게 화학적 거세란 수모를 안긴 폭력은 참을 수가 없다. 그러고 보면, 인간들은 자기와 다른 사람은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는 독선으로 똘똘 뭉친 존재인 모양이다.)

IT 기자 노릇을 하다보면 한계에 부닥칠 적이 적지 않다. 주로 전문성 때문이다. 이 분야 전문가도 아니면서, 이런 저런 지적을 하는 게 과연 타당한 것일까, 라는 고민이 들 적도 있다. 


사실 기자 초년 시절부터 이런 고민을 좀 했다. 과연 기자는 전문직인가? 아니면 상식 수준의 정보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인가? 우리나라엔 기자들의 전문성이 왜 떨어지는 걸까? 


(여기서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 마디. 글을 쓰다보면, 본의 아니게 나를 포장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평소에 나와 얘기를 못해 본 사람들은 내가 굉장한 문제 의식을 갖고 있을 거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분명히 한 마디 하자면, 그냥 그 때 계기가 되어서 몇몇 선배들과 그런 문제를 놓고 잠시 토론을 한 적 있었단 얘기다.)


오늘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 프레시안에 실린 김성근 감독 인터뷰 기사 때문이다. 김성근 "SK 이미지를 망친 것은 내가 아니었다" 란 도발적인 제목의 기사였다. 전체적인 톤은 주로 SK 팀에 대한 강한 비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김성근 감독의 다음과 같은 발언이 내 눈에 확 들어왔다. 


평론가들이 하는 말도 흘러가는 말이 많아요. 그렇지? 매스컴들도. 정확히 지적을 하지 못하고. 그리고 지금 보면 기자들이 평론을 하는데, 그 자체가 틀려먹은 거라고. 기자가 과연 전문가인가? 야구의 깊은 내용을 아는가? 그 기자들의 평을 독자들이 보고 야구를 판단하는데, 기자들이 캐치볼은 해봤는가? 캐처(포수)가 어떻게 판단하고 배합하고 사인하는지를 아는가?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평을 하고, 그런 사람이 텔레비전 나와서 뭐라고 그러는데, 그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야. 우리나라 자체가 자꾸 그렇게 흘러가는 거야. 그렇지?

이 피처(투수)하고 타자의 승부를 기자들이 아나? 그런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냐고. 그런데 수비야구를 한다, 공격야구를 한다, 어쩌고 하는데, 공격야구의 에버리지(평균)를 뽑아보면 어떻게 돼있는지, 그것을 가지고 얼마나 손해보고 있는지 따지고 들어가야지. 스트라이크와 볼에 각각 얼마나 손대고 있는지 따지고 들어가야지. 깊은 곳에 들어가서 공격야구라는 것의 플러스-마이너스를 따지고 들어가야지. 무조건 초구를 치면 공격야구인줄 알아. 


현장에서 뛰는 기자들은 김성근 감독의 저 말을 듣고 상당히 분개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자들의 아픈 곳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가끔 기자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모 감독은 인터뷰할 때 굉장히 퉁명스럽다고 한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왜 하세요?"란 투로 대꾸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난,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감독이 이해가 될 적이 많다. 생각해보라. 심각하게 경기 준비하는데, 뻔한 질문 해대면 얼마나 짜증이 나겠는가? 저런 대꾸 속엔 "기자가 공부 좀 하면 안 되나?"란 불만이 담겨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남의 영역이라고 쉽게 얘기하는 지도 모르겠다. 나도 솔직히 우리나라 스포츠 저널리즘에 대해선 불만이 많다. 네이버에서 일본 키무라 기자의 칼럼을 읽을 때마다 탁월한 분석 능력과 식견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지난 해 LG와 넥센이 2대 2 트레이드를 한 적 있다. 넥센이 송신영+김성현을 LG에 내주고, 박병호+심수창을 받는 트레이드였다. 


당시 기자들은 예외 없이 넥센이 또 다시 선수 팔아먹기를 하고 있다는 식으로 썼다. "넥센이 시즌을 포기하는가?"란 기사도 적지 않았다. 단 한 명도, "이 시점에서 왜 저런 트레이드를 했을까?"란 물음을 제기하는 기자가 없었다. 당시 난 이런 기사에 대한 불만을 담아 IT 기자가 본 LG-넥센 트레이드 손익 계산서란 글을 쓴 적 있다.


(물론 지금 시점에서 보면 넥센이 훨씬 득을 봤다. 잘 아는 것처럼 김성현은 승부 조작으로 사실상 선수 생활이 끝났고, 송신영은 FA로 한화로 갔다. 반면 박병호는 넥센의 4번 타자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당시엔 LG 쪽으로 기운다고 볼 수 있는 트레이드였다.) 


이런 원초적인 전문성 부족이야 기자들의 자질 문제이니 논외로 하자. 김성근 감독이 제기한 문제는 조금 다르다. 


캐치볼 한 번 못해 본 기자가, 평론하듯 기사를 써서야 되겠느냐는 얘기였다. 아마도 뭣도 모르는 기자가 감 놔라 배놔라 하는 식으로 기사를 쓰는 것이 불편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도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도 김성근 감독이 지적한 기자의 범주에 포함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난, IT에 대해 잘 모른다. 스마트폰 시장 얘기를 하면서도, 간단한 스마트폰 작동 원리에 대해서도 모른다. 물론 통신시장을 지탱하는 각종 이론적 기반이라든가, 다양한 담론들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이런 전문성은 굉장히 떨어지는 편이다. 그건 솔직히 인정해야만 한다. 


여기서 질문을 한번 던져보자. 과연 기자는 어디까지 전문성을 쌓아야 하는 걸까? 


김성근 감독 지적대로라면, 야구 기자들은 평론성 글은 쓰지도 말아야 한다. 물론 야구 해설을 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포수의 미세한 근육 움직임을 보고, 사인을 간파해내는 프로들의 세계의 속사정을 모르는 기자들이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 걸까? 그런 전문성만이 필요한 걸까?


초창기 기자의 전문성 부족에 대한 고민에 빠졌을 때 내가 내린 결론이 있다. "기자들만큼 일반인의 언어로,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해주는 사람도 드물다." 


김성근 감독 역시 기자들이 좀 더 전문성을 가지라는 의미로 그런 얘기를 했을 것으로 믿는다. 그게 아니라, 저 말 그대로 "야구 한 번 못 해 본 기자들이 감히..."란 의미라면, 그건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결론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도대체 기자들은 어디까지 전문성을 가져야 하는 걸까? 그 분야 최고 전문가 수준? 예를 들면 일본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꼽히는 다치바나 다카시 정도? 하지만 일본에서도 다치바나 다카시는 한 명 밖에 없다.


에이 골치 아프다. 그리고 졸린다. 여기서 횡설수설 끝. 쩝. 질문은 거창하게 시작했는데, 뻔한 얘기로 마무리하고 말았구나. 

결국 이겼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고 험난하다. 삼성과 애플 간의 특허분쟁 얘기다. 


네덜란드 헤이그법원은 20일(현지시간) 삼성이 제기한 특허 침해 소송에서 모처럼 승소 판결을 안겨줬다. 헤이그법원이 이번에 인정한 특허는 '제어정보신호 전송 오류 감소를 위해 신호를 부호화하는 방법(특허 269)'. 법원은 아이폰3와 3GS, 아이폰4를 비롯해 아이패드1, 2가 삼성 특허를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을 비롯한 외신들은 삼성이 처음으로 본안 소송에서 이긴 부분에 의미를 부여하긴 했다. 연전연패하던 팀이 한번쯤 승리한 건 어쨌든 의미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이번 승리는 상징적인 의미 이상을 부여하기는 힘들 것 같다. 무엇보다 최신 제품인 아이폰4S와 뉴아이패드는 삼성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은 것으로 판결한 때문이다. 


아이폰4S부터 퀄컴 칩 쓰면서 공세 빠져나간 애플 


애플이 최신 제품인 아이폰4S와 뉴아이패드를 만들면서 어떤 변화를 줬기에 특허 침해에 대해 면죄부를 받은 걸까? 바로 칩셋을 교체한 때문이다. 애플은 아이폰4와 아이패드2까지는 인텔과 인피니언의 칩셋을 이용했다. 하지만 지난 해 가을 내놓은 아이폰4S부터는 퀄컴의 스냅드래곤으로 바꿨다.


퀄컴은 삼성에 정당한 로열티를 주고 칩셋을 만들었다. 바로 그 때문에 애플은 특허권 침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퀄컴을 거치면서 삼성의 특허가 세탁이 됐기 때문이다. 이런 걸 특허 전문가들은 '특허가 소멸됐다'고 하는 모양이다. 


삼성의 승리를 논하기 민망한 부분은 또 있다. 소송 비용까지 떠맡게 됐기 때문이다. 국내 언론엔 삼성이 승리했다고 보도됐지만, 엄밀하게 말해 4건을 상정해서 1승 3패를 한 셈이 됐다. 종합전적으로 졌으니까, 소송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현재 추산되는 소송 비용은 약 80만 유로. 대표적인 특허 전문 사이트인 포스페이턴츠는 삼성이 이번 손해 배상을 통해 받게 될 돈이 소송 비용에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 부분을 직접 옮겨보자. 


As I already said on Twitter, there's no question that Apple is ready, willing and able to pay a FRAND royalty rate. It just didn't want Samsung to win an injunction, or pay an excessive rate. Court documents say that Apple asked Samsung half a dozen times (!) to quote a FRAND rate before the 2.4% demand, which the court considered outrageous, was made. Considering the parameters and circumstances I just described, Samsung will be lucky to even recover its attorneys' fees with this. The dispute will continue 


포스페이턴츠에 따르면 삼성은 이전에 애플 측에 2.4% 로열티를 요구했다. 하지만 애플은 이전부터 FRAND 규정을 계속 들이댔다. '2.4% 로열티'를 요구하기 이전부터. FRAND란 소위 '표준 특허'에 대해선 공정하고 합리적인 선에서' 로열티를 주고 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말한다. 유럽에선 프랜드 규정을 위반하게 되면 바로 반독점 조사를 받게 된다. 그만큼 무시무시한 규정이다. 


출구전략 유리하게 끌고 나가는데 별 도움 안 될 듯 


삼성의 손해배상 전략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근거는 또 있다. 게다가 헤이그법원 역시 2.4% 로열티가 터무니없다고(outrageous) 지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애플 측이 삼성에 두둑한 로열티를 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게 포스페이턴츠의 주장이다. 소송 비용에도 미치지 못할 것 같단 얘기다. 


삼성, 애플 모두 소송 비용에 크게 구애받진 않겠지만, 포스페이턴츠의 전망이 사실이라면 삼성 입장에서도 참 민망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돈보다 더 큰 곳에 관심이 있는 데도 배상 규모가 왜 중요한 걸까? 그건 삼성의 출구전략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삼성 입장에선 이기더라도 큰 타격을 가해야 출구 전략을 좀 더 유리하게 끌고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생명 다된 구모델에 한해 로열티를 받게 된 상황이니, 그다지 내세울 만한 성과가 없다고 봐야 한다. 진 것 보다야 백배 낫겠지만, 연패 탈출이란 상징적 의미 외에는 큰 성과가 없다고 봐야 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경쟁'을 좋아한다. 유사 이래 스포츠가 인기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국가간 메달 경쟁이 올림픽의 기본 정신과는 한참 벗어난 것임에도 불구하고, 언론들이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메달 숫자로 순위를 매기는 것도 다 이런 본능에 충실한 때문이다. "올림픽은 원래 개인 경기다"는 건전한 문제 제기는, 늘 올림픽 때면 한번씩 나오는 소수 의견으로 치부된다.


언론이 선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보면 된다.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상품을 만들어야 잘 팔리기 때문이다. 장사만 생각하면 정말 훌륭한 접근 방식이다. 문제는 언론의 역할이 단순히 물건 잘 팔아먹는 데만 머물러선 안 되니 때문에 욕을 먹는 것이다.


서두가 좀 길었다. 지난 해부터 특허 전쟁이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삼성과 애플 간의 치열한 특허 전쟁이 연일 지면을 장식했다. 졸지에 우리 나라 사람들의 특허 지식이 확 업그레이드됐다. 박세리 덕에 골프 박사가 되고, 김연아 덕에 피켜 스케이팅 도사가 됐던 우리 국민들이 이젠 삼성과 애플 덕에 변리사 버금가는 특허 상식을 갖게 됐다(는 착각을 하게 됐다. ^^) 그 분야 전문 지식이었던 표준 특허, 프랜드(FRAND: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규정 같은 것들도 이젠 상식 수준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늘 그렇듯, 언론들은 '다툼'과 '승패' 수준에서 이 분쟁에 접근한다. 여기에다 국내 언론 특유의 삼성 편들기까지 곁들여지면서 독자들은 혼란스럽게 그지 없다. 생각했던 것과 딴 판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많은 특허로 무장한 삼성이 금방이라도 '탐욕으로 가득찬' 애플에 반격을 가해 엄청난 상처를 입힐 것 같은데, 상황은 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이 또한 당연한 결과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기자들은 특허 제도 자체에 대해 굉장히 무식하다. (내 특허 상식은 20년쯤 전에 특허법 개론을 읽어본 게 전부다.) 그러다보니 외신을 통해 쏟아져들어오는 단편적인 정보들을 재가공하는 선에서 머물 수밖에 없다. 


반면 특허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변리사들은 '대중적인 언어'에 약점을 갖고 있다. 그들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아먹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분명한 싸움의 구도를 설명해줘야 하는 데, 영 두루뭉수리하다. 물론 그들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현실은 언론들이 재단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도대체 현재 돌아가고 있는 특허전쟁을 어떤 관점으로 봐야 하는 걸까?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 정우성 변리사가 쓴 '세상을 뒤흔든 특허전쟁 승자는 누구인가?'란 제목의 책이다. 제목은 언론 보도 못지 않게, 굉장히 선정적이다. 그 때문에, 이 책 역시 그저 그렇고 그런, 시류에 편승한 책 아냐? 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특허 전쟁에 맞춰 나왔으니, 시류에 편승한 건 맞다. 하지만 내용은 굉장히 깊이가 있다. 지금 왜 특허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도대체 삼성과 애플은 왜 싸우며, 애플보다 훨씬 많은 특허를 갖고 있는 삼성이 왜 판판이 깨지고 있는 지를 조목 조목 짚어주고 있다. 또 삼성과 애플 간의 특허 분쟁이 왜 쉽게 타협을 통해 해결되지 못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주고 있다. 


저자는 특허전쟁을 '시대의 움직임'이란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모바일 시장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불확실성이 증대했고, 그래서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 곧 특허전쟁이란 것이다. "평화로운 시절에는 시장 경쟁으로 충분하지만, 대전환 시대에는 시장의 경쟁만으론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저자가 전작인 '특허전쟁'에서 줄기차게 주장했던 얘기다.


이 책은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간다. 현재의 특허 전쟁이 결국은 애플과 구글 간의 헤게모니 다툼이란 것이다. 아니 구글이 특허 전쟁의 중심이라고 주장한다. 저자의 목소리를 직접 옮겨와보자. 


사람들은 글로벌 특허전쟁의 중심에 애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눈을 씻고 다시 보라. 이 격전지의 중심 그리고 배후에 있는 기업은 다름 아닌 구글이다." (26쪽)



저자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3사가 자연스럽게 반구글 동맹을 형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애플은 구글을 직접 겨냥하는 대신 제조사를 공격하고, 마이크로소프트는 협상전략으로 제조사를 공략하며, 오라클은 구글을 직접 공격한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 자체는 굉장히 흥미롭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직접 읽어보길 바란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좀 더 관심을 갖는 건 다른 영역이다. 바로 삼성과 애플의 특허 전쟁이다. 그 부분에 대해 저자는 애플과 삼성의 전략이 서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일단 애플 입장에선 삼성이 직접 상대가 아니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삼성은 구글을 공격하기 위한 타깃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죽기 살기로 싸워서 삼성을 시장에서 쫓아낼 생각이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애플의 특허 전쟁 전략은 진지전이다.


그런데 삼성이 상황을 오판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애플보다 훨씬 많은 표준특허를 앞세워, 이 참에 특허강자로 인정받고 애플을 굴복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전략 자체가 상황을 오판한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부분 역시 자세한 내용은 직접 읽어보길 권한다. 


단지 내가 굉장히 공감했던 저자의 현실 진단 한 부분을 인용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이 부분만 곰곰히 새겨봐도 현재까지 진행된, 그리고 앞으로 진행될 특허 전쟁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애플의 특허 공세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제품의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기능에 관련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제조사가 회피할 수 있는 여지가 많고, 회피할 수도 있으므로 재판부가 애플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 애플에 대한 제조사들의 특허 공세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의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기능에 관한 것과 밀접해진다면 애플로서는 관련 산업을 접으라는 공세로 비춰지고 이는 재판부가 특허제도를 이용한 선행주자들의 부당한 경쟁행위로 인식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140쪽)


그렇다고 해서 삼성이 이번 특허전쟁의 패배자란 얘기는 아니다. 또 현재의 특허전쟁이 반드시 부정적인 부분만 있는 것도 아니다. 변혁기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안정된 시장 구도를 만들어나가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작금의 특허 소송은 규칙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어서 오히려 혼돈 속에 빠진 혁신을 구원할 수 있다. 누가 누구를 판결로서 함부로 추방하기 어렵다면, 이 특허전쟁은 산업 구조적인 면에서도 긍정적인 셈이다." (143쪽)


자, 이제 글을 맺자. 현재의 특허전쟁은 삼성과 애플이란 두 기업 간의 전투가 아니다. 거대한 글로벌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려는 거대 기업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전쟁이다. 그러니 지나치게 개별 전투의 승패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특히 기자들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특허전쟁을 바라보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그런 접근 방식으론 특허전쟁이 왜 저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 특허전쟁 승자는 누구인가? 호사가들에게는 유감스럽겠지만 정복자는 없다. ~ 세계는 구시대와 신시대를 잇는 극심한 전환기에 있다. 하지만 시장은 늘 안정되기를 원한다. 글로벌 특허전쟁은 오히려 안정을 부를 것이다. 불확실성은 잦아들고 경계선이 만들어질 것이다." (151쪽)

"검색시장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글을 어떻게 해야 할까? 검색 중립성 원칙을 통해 규제를 해야 하는 걸까?"


구글을 둘러싼 각종 공방이 커지면서 '검색중립성'이란 개념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 있다. AT&T를 비롯한 통신사업자들 뿐 아니라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도 망중립성 뿐 아니라 검색 중립성 개념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냥 필요한 결과를 보여줄 뿐인 검색을 둘러싼 공방이 왜 이리 끊이지 않는 걸까? 당연하고 상식적인 얘기지만, 정보 홍수 시대엔 검색에 걸리지 않게 되면 아예 존재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기반 서비스업체들도 구글이 검색 알고리즘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 순위가 확 달라지기도 한다. 엄청나게 큰 외생변수인 셈이다.


뉴스 사이트들에게도 검색은 생명줄이나 다름 없다. 실제로 매셔블을 비롯한 많은 뉴스 사이트들은 '검색엔진 최적화(SEO)' 기법을 적극 활용한다. 구글 검색에 최대한 많이 노출되기 위해서다. 네이버 뉴스캐스트 트래픽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우리와 달리 미국에선 검색이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한 유입량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글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보니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구글이 수시로 검색 알고리즘을 바꾸면서 경쟁자들을 무력화한다는 비판도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 중 하나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는 쇼핑 비교 사이트인 넥스태그(NexTag)의 최고경영자(CEO)가 기고한 글이 게재됐다. 제프레이 카츠란 이 CEO는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 변경 때문에 넥스태크가 검색 기능을 사실상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구글이 이런 방식으로 경쟁자들을 무자비하게 압박한다는 게 카츠의 주장이다.


실제로 구글은 유럽연합(EU)에선 불공정 관행 문제로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다. 하긴 세계 검색 시장의 82%를 독식하고 잇는 기업이니 당연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런 비판에 대해 구글도 할 말은 많다. 검색 알고리즘 변경은 최적의 검색 결과를 제공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취하는 조치일 뿐이란 것이다. 


기기옴은 구글의 이런 변명이 틀린 건 아니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일련의 사태 때문에 '검색 중립성(search neutrality)'의 중요성이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검색 중립성? 물론 이 말은 망중립성에서 따온 것이다. 현재 미국을 비롯해 각 나라에서 첨예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망중립성은 한 마디로 망 사업자가 자신들의 망을 운영할 때 횡포를 부려선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안다, 나도. 이런 설명이 사안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란 점을. 망중립성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각자 열심히 공부해보시길.)


검색 중립성 원칙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검색 역시 인터넷의 기간망 비슷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오픈 인터넷' 원칙이 지켜지려면 검색 중립성이 꼭 필요하다는 논리다. AT&T 같은 업체들은 구글이 사실상 게이트키퍼 역할을 하면서 어떤 것이 중요한 정보인지를 결정한다고 비판했다. 여기에다 구글이 스폰서 검색 비중을 늘린 부분 역시 '검색 중립성' 원칙 도입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망중립성 원칙을 도입할 경우 가장 혜택을 보는 기업이 구글이란 점을 들어 검색 중립성 원칙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미네소타대학의  앤드류 오딜즈코(Andrew Odlyzko)이다.             


하지만 검색중립성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검색중립성에 대한 몇 가지 회의론'이란 논문을 쓴 제임스 그리마이맨은 검색은 굉장히 주관적인 행위란 점을 강조한다. 그런 관점에서 그는 검색 중립성이란 개념 자체엔 몇 가지 편견이 담겨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검색결과는 늘 같아야 하며, 올바른 객관적인 검색이 있다는 잘못된 관념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또 외부 검색에 트래픽의 절대적인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사이트들이 검색 엔진 때문에 방해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편견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구글 역시 최근 보고서를 통해 검색엔진도 뉴욕타임스처럼 표현의 자유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어쨌든 구글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검색중립성이란 개념을 둘러싼 공방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과연 검색에도 통신망에 적용되는 것 같은 중립성 개념을 도입해야 하는 걸까? 겉보기엔 간단해보이지만, 보면 볼수록 복잡한 질문인 것 같다. 

요즘 소수정예형 미디어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러다보니, 지금 몸 담고 있는 회사가 처음 출범할 때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우리도 소수정예였다. 당시 IT 담당 기자들 중 나름 실력 있다는 기자들이 모여서 출범했다. (이 대목에서 인상 쓰는 분께 한 마디. "그래, 나는 뺀다, 빼.")


출범하자마자 우린 꽤 많은 특종 기사를 쏟아낸 기억이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2000년 4월엔가 썼던 남북 IT 협력 관련 기사였다. 그 기사가 인상적이었던 건, 바로 그날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 사실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는 정부 발표를 보면서 짜릿한 경험을 맛봤다. "휴, 기사 하루만 묵혔어도…"라며 안도하기도 했다. (잘 아는 것처럼, 그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그 해 6월15일 평양 순안공항을 통해 북한을 방문하는 장면이 생중계됐다.)


생각해보라. 정부가 해방 이후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 사실을 공식 발표하는데, 그 전날 저녁 '남북 IT 협력' 관련 기사를 톱으로 썼을 때의 기분을. 그 기분 때문에 기자 생활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지금 돌이켜봐도, 당시 우린 열정과 꿈, 그리고 희망으로 똘똘 뭉쳤던 것 같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초기의 열정은 사라지고, 하나 둘 조직을 떠났다. 하지만 그 때 우리가 갖고 있던 열정과 맨파워라면, 적어도 IT 언론에선 전혀 뒤질 게 없었던 것 같다. 


이 대목에서 이런 질문을 한번 던져 본다. "과연 그 때 우리는 진정한 소수정예였던 걸까?"


예전 같으면 이 질문에 대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 우리가 소수정예 미디어였다"는 대답을 하진 못하겠다. 대신 "적어도 편집국 기자들은 소수정예였던 것 같다"고 좀 더 분명하게 대답할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우린 '반쪽만' 소수정예였다. 편집국 이외 다른 조직에 대해선 큰 신경을 쓰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다보니, 다른 쪽의 혁신에 대해선 잘 몰랐다. IT를 전문으로 다루면서도, 조직 전반적으로 IT 활용도가 떨어졌던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한계로 작용했던 것 같다. 


비단 이런 상황은 우리만 그런 건 아니었을 게다. 당시 출범한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기자'만 있으면 모든 게 다 되는 걸로 생각했다. 회사의 분위기도 편집국 문화가 강하게 지배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회사에서 기자 정신이 대접받지 못하는데 환멸을 느꼈던 기자들 입장에선 이런 분위기가 상당히 좋았다. 정말 아무 걱정없이 기사만 쓰는 되는 문화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당분간은. ^^)


혁신적인 조직이 되려면 여러 가지가 잘 맞아 떨어져야 한다. 물론 스티브 잡스처럼 강력한 카리스마와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조직에 혁신 DNA를 심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넓다는 미국에서도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니 절대 지존 같은 지도자가 조직의 문제를 단 번에 해결해줄 것이란 기대는 아예 접는 게 좋다.


다시 처음의 고민으로 돌아가보자. 이런 상황에서 중소 인터넷언론사들이 혁신적인 시스템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기자들도 그렇지만, 기자 이외 직종 사람들에게 중소 인터넷언론사는 선호 대상에서 한참 뒤진다. 능력 있는 기획자, 능력 있는 개발자는 언론사를 싫어한다. 특히 중소 인터넷 언론사는 더 싫어한다. 이런 저런 일은 많은데, 정작 자신의 능력을 십분발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단순하고 반복적인 유지보수 업무만 실컷 처리하다가 나가 떨어지기 십상이다. 게다가 중소 언론사들은 높은 연봉을 주고 쓸만한 인물을 데려올 재력도 없다.


어쨌든 가면 갈수록 21세기형 언론사는 기자만으론 안 되는 조직이란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된다. 개발과 기획 분야의 맨파워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경쟁력을 발휘하기 힘든게 21세기 언론 지형도이다. 


10여 년 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가장 먼저 이런 문제를 고민할 것 같다. 일단 한 번 그려놓은 그림을 고치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제대로 그리는게 훨씬 손이 덜 가기 때문이다.


점심 식사 후에 이런 저런 우울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곰곰 따져보니, 난 다음 주에 휴가구나. 갑자기 기분이 업~ 되는 느낌. 그러고보면 인생 참 단순한 듯. 아니면 내가 단순한 건가?

허핑턴포스트가 단기간에 성공을 거둔 비결은 뭘까? 물론 아리아나 허핑턴의 탄탄한 인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실제로 허핑턴은 영국에 사이트를 개설할 땐 토니 블레어 전 총리를 필진으로 영입할 정도로 막강한 인맥을 자랑한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전직 총리를 시민 기자로 영입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기에다 편집국을 지탱한 뛰어난 인력들 역시 성공의 밑거름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난 번에 미국 IT 사이트들의 경쟁 구도를 설명하면서 예를 들었던 더버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차별화된 콘텐츠를 잘 구현할 수 있는 CMS를 비롯한 각종 기술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허핑턴포스트에서 그 역할을 맡았던 인물이 폴 베리 전 최고기술책임자(CTO)였다. 




폴 베리는 허핑턴포스트 초기 검색엔진 최적화를 비롯해 각종 소셜 미디어를 잘 구현, 허핑턴포스트가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실제로 허핑턴포스트는 페이스북을 비롯한 각종 SNS와 뉴스 사이트를 유기적으로 결합한 대표적인 언론사로 꼽히고 있다.


이처럼 허핑턴포스트가 성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폴 베리가 이번엔 소셜 플랫폼 서비스를 선보여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바로 레벨마우스(RebelMouse) 란 소셜 플랫폼이다.(참고로 레벨마우스란 명칭은 미키마우스와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레벨마우스의 마스코트는 미키마우스와 상당히 닮았다.)


레벨마우스는 아직은 베타서비스 단계다. 따라서 전모를 파악하기는 다소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해도 상당히 관심을 끄는 서비스다. 한 마디로 각종 소셜 미디어에 있는 콘텐츠를 갖고 개인 홈페이지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서비스라고 보면 된다. 


요즘 사람들은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잘 쓰지 않는다. 대부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를 사용하고 있다. 페이스북 같은 것들은 굳이 긴 글을 쓸 필요도 없을 분 아니라, 그 때 그 때 이슈가 된 것들을 바로 연결할 수 있어서 굉장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SNS는 '휘발성'이 너무 강하다. 흐르는 강물같은 존재다. 한번 지나가고 나면 다시 보기가 힘들다. 게다가 시간 역순으로 쭉 나열되는 구조로 돼 있어 어떤 것이 중요한 지 강조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레벨마우스는 바로 이 부분을 파고 들었다. 다양한 콘텐츠를 가져와서 자기 나름대로 홈페이지 비슷한 것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좀 더 강조할 수도 있다. 소셜 미디어와의 연결에도 신경을 썼다. 특정 포스트가 소셜미디어에서 많은 반응을 얻거나, 팔로워가 많은 사람이 그 포스트를 링크하는 등의 활동을 했을 경우엔 바로 필자에게 알려준다.




폴 베리의 레벨 마우스는 저널리즘 활동에도 잘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포인터연구소는 레벨마우스를 콘텐츠 큐레이션용으로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언론사 입장에서도 뉴스 수집용 플랫폼으로 쓸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선 크라우드소싱 프로젝트용 플랫폼으로 쓸 수도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활용해 멋진 시민 저널리즘 실험을 했던 기자들이라면 레벨마우스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도 있다. 현재는 페이스북, 트위터만 연결할 수 있지만 조만간 텀블러, 핀터레스트 같은 SNS를 추가할 계획이라고 한다. 잘만 하면 SNS를 망라하는 플랫폼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있다. 


내가 레벨마우스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폴 베리란 인물 때문이다. 허핑턴포스트에서 탁월한 CMS를 선보이면서 멋진 뉴스 사이트를 만들어냈던 인물인 만큼, 지금까지 나온 각종 큐레이션 서비스 중 뉴스 사이트에 가장 가까운 방식의 CMS를 구현할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실제로 몇몇 기자들이 시험삼아 구현해 본 것들을 보면 상당히 유용해 보인다. 과연 폴 베리가 허핑턴포스트에 이어 또 한번 소셜 혁명을 주도할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뭐라고 판단하긴 힘든 상황이긴 하지만, 성공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쪽에 100원을 걸어본다. ^^ 

지난 달 기업공개(IPO)를 단행한 페이스북은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사전에 정보를 유출했다는 등의 의혹이 제기된 때문이다. 이후 주가가 폭락하면서 페이스북은 졸지에 'IPO 바람을 주도할 구세주'에서 '애물덩어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당시 문제가 됐던 게 바로 페이스북의 모바일 매출 부문이었다. 모바일 부문 매출이 이용자 증가 추세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털어놓은 것. 그 여파로 2분기 매출 전망치가 예상보다 낮을 것이란 정보를 일부 핵심 애널리스트들에게만 제공했다는게 페이스북을 둘러싼 구설수의 핵심이다. 


물론 모바일 부문에서 수익을 올리기 위해선 검색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모바일 공간에선 배너보다는 검색 광고가 훨씬 더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이 최근 자체 검색 서비스 출시를 고려하고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2011 세계 모바일 광고 시장 규모 (단위: 100 달러)

 지역

 디스플레이

검색 

메시지 

 

 유럽 

367 

900 

114 

1,380 

북미 

572 

811 

295 

1,677 

남미 

31 

74 

83 

188 

아시아태평양 

491 

1,384 

41 

1,916 

중동-아프리카 

44 

124 

172 

 합계 

1,504 

3,292 

536 

5,323 

                                                                                               (자료: IAB)

 

이런 가운데 미국 온라인광고협회(IAB))가 의미 있는 보고서를 하나 발표했다. 지난 해 모바일 광고시장에서 검색 광고가 디스플레이광고보다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는 게 이번 보고서의 골자다. 지난 해 전 세계 모바일 광고 시장 규모는 53억3천300만 달러. 이 중 검색 광고는 32억9천200만달러로 전체 60%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스플레이 광고는 15억400만달러 수준에 불과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아시아태평양 지역이다. 이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해 아태 지역 전체 모바일 광고 시장은 약 19억달러 규모. 이 중 13억8천400만달러 가량이 모바일 검색 광고 쪽이었다. 반면 디스플레이 광고는 4천910만달러 수준에 불과했다. 


생각하기에 따라선 이런 결과 자체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화면이 작은 모바일 공간에선 상대적으로 디스플레이 광고의 효과가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모바일 광고는 검색 기술을 기반으로 한 개인 맞춤형 정보로 승부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번 보고서는 이런 일반론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IPO 이후 이런 저런 구설수에 시달렸던 페이스북 입장에서도 '제2의 도약'을 위해선 모바일 검색 광고 쪽을 어떻게 할 지에 대한 고민을 상당히 강도 높게 할 때가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