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총선 때 소셜 분석을 활용해보려고 몇 가지 시도를 했다. 트위터 키워드 분석과 함께 스토리파이를 비롯한 각종 큐레이션 서비스를 시도해 봤다. 그렇게 한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같은 편집국 시스템이나 기사 작성 시스템으론 장기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 차원에서 한 건 아니었다. 그냥 개인적으로, 약간의 호기심을 섞어서 한번 해 봤다. 


실제로 트위터 키워드 분석은 꽤 재미 있었다. 시간이 없어서 대충 기사를 쓰긴 했지만, 꼼꼼하게 파고 들면 꽤 흥미로운 결과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스토리파이를 활용한 보도는, 외신들에서 많이 본 걸 그냥 따라해봤다. 파이낸셜타임스, 가디언 같은 외국 언론들은 큰 사안이 있을 때마다 스토리파이를 활용해 깔금하게 보도해 준다. 소셜 여론을 전해주는 덴 상당히 유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셜 분석과 스토리파이 같은 큐레이션 서비스를 잘 활용할 경우 걸핏하면 "트위터 아이디 A씨는~" 식으로 소셜 여론을 입맛대로 갖다 붙이는 일부 언론들과는 차별화된 보도를 할 수도 있다.


(스토리파이가 언론 보도에 어떻게 활용되는지 살펴보려면 How to Build An Interactive Map for~ 란 글을 한번 참고해봐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이내 그런 야심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기사집배신'으로 불리는 CMS 때문이었다. 


우리 뿐 아니라 대다수 언론사의 CMS는 지금 급박하게 흐르고 있는 소셜 여론을 쉽게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 10여 년 전에 개발한 것들을 그대로 쓰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CMS 혁신을 우선 순위에서 한참 뒤로 미뤄놓고 있다. 지금 당장 기사를 쓰는 데 별 불편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한번 생각해보자. 테크잇이 지적한 것처럼 현재 대부분의 인터넷 언론들은 홈페이지를 통한 유입 비율이 극히 낮은 편이다. 절반은 커녕 30%에도 미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여전히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홈페이지를 곱게 꾸미는 데 많은 정성을 쏟는다. 심지어 색깔 하나 바꾸는 것 가지고 열띤 토론을 하기도 한다. 그런 것들이 소용 없는 짓은 아니지만, 우선 순위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짓이다. (테크잇이 저 글 후속편으로 CMS를 다룬다고 한다. 그 글을 한번 기다려보려다가 그냥 내가 평소 생각하던 것들을 먼저 써봤다.)


반면 기사 최종 페이지에 대해선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다 못해 표 하나, 그래프 하나 깔끔하게 만들어붙이는 곳도 찾아보기 힘들다. 일관된 규격 없이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갖다 붙이는 곳도 적지 않다. 이래서야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가 쉽지 않다.


티스토리 블로그를 쓸 때마다 느끼는 게 있다. 최소한 언론사 CMS가 티스토리 블로그 입력창 정도만 돼도 부담이 절반쯤은 줄어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셜 분석 같은 차별화된 시도는 차치하고, 사진이나 그래프, 인용문구 같은 것들을 좀 더 깔끔하게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 트위터로 대화를 했던 이성규 님은 국내 신문과 집배신-BBC CPS와 어떻게 다른가란 글을 통해 한국 저널리즘의 적나라한 현주소를 잘 보여줬다. 


얼마 전 스타워즈 방불케하는 IT저널리즘 현장이란 포스팅을 한 적 있다. 세이란 잡지에 실린 글을 토대로 내 나름대로 의미부여를 해 본 글이었다. 당시 그 기사를 쓴 기자는 더버지의 놀라운 성공 비결로 뛰어난 편집국 인력 못지 않게 탄탄한 개발자들을 꼽고 있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편집국 기자들의 각종 욕구를 쉽게 해결해 줄 수 있는 제작 시스템을 그 때 그 때 잘 만들어낸 것이 더버지가 단기간에 엄청난 성공을 거두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었다.


반면 우리 상황은 어떤가? 대다수 언론사들은 개발자들과 편집국 기자들이 제대로 된 소통조차 하지 않는다. 언론사 내에서 개발팀은 '시스템 관리' 정도 위치를 부여받는다. 아니, 그 정도는 약과다. 그저 PC를 고쳐주거나, 기본 네트워크 설정을 해주는 인력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래 가지고서는 '작지만 강한' 언론사로 탈바꿈하는 게 불가능하다. 당장 모바일이나 태블릿 뉴스 전략까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인데, 제대로 된 CMS 하나 없이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군대의 전력을 극대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훈련을 열심히 시켜서 군인들의 전투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편집국에선 이 역할을 하는 것이 기자 교육일 것이다. 물론 데스크들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요소는 바로 무기 선진화다. 제 아무리 잘 훈련된 병사라도 M1 소총을 들고 M16 소총으로 무장한 적들을 이길 순 없다. 그런데 활 한 자루 쥐어주고선, 총들고 덤벼드는 적들과 싸우라고 하는 건 무모함을 넘어 무식한 짓이다.


이런 설명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왜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기자들의 무기를 혁신하려는 노력을 하는 언론사는 많지 않은 걸까? 최소한 머릿 속에 떠오른 각종 아이디어들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CMS가 있어야만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지 않겠는가? 


국내에 더버지나 매셔블 같은 작지만 강한 인터넷 언론을 찾아보기 힘든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몇몇 대형 광고주 외에는 대안이 없는 시장 상황, 열악한 독자 기반 등 여러 가질 꼽을 수 있다. 이런 것들에 비해 우선 순위에선 저 만치 밀릴 지도 모르지만, 개발 인력에 대한 홀대 역시 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편집국 간부와 개발 책임자 간의 원활한 소통과 업그레이드를 위한 노력, 그리고 투자. 이것 없이는 경쟁력 있는 인터넷 언론을 만드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 

버스나 기차를 길게 탈 경우 '읽을거리'가 없으면 굉장히 허전하다. 예전엔 화장실에 갈 때도 그랬다. 금방이라도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들고 들어갈 책을 찾느라 우왕좌왕한 경험이 적지 않다. 


'리드 잇 레이터(read it later)'란 서비스가 인기를 끄는 걸 보면, 나 같은 사람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이런 기능을 가진 대표적인 앱이 뉴스닷미(news.me)와 인스타페이퍼(instapaper)다. 둘은 모두 읽을 만한 글들을 지정한 뒤 나중에 시간날 때 읽을 수 있도록 해 주는 서비스다. 이 쯤 되면 스마트폰이 참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이러니 책이 안 팔리지. 이동할 때도 스마트폰에 모든 걸 저장해 뒀다가 바로 읽을 수 있으니. 책 한 권 써서 대박 내겠다는 꿈은 진작 포기해야 할 것 같다.)


당연히 뉴스닷미와 인스타페이퍼는 엄청나게 인기를 끄는 앱들이다. 특히 인스타페이퍼는 4달러를 웃도는 '만만찮은' 가격에도 불구하도 아주 잘 팔린다.





그런데 이런 '리드 잇 레이터' 서비스만으론 한계가 있다. 깜빡 잊고 '나중에 읽을' 콘텐츠를 지정해 놓지 않을 경우 낭패를 볼 우려가 있다. (참고로 난 화장실에 책 들고 들어가는 버릇에 푹 빠졌을 땐, 빈손으로 들어가면 볼 일 보는 게 수월치 않았던 경험이 있다.)


이런 불평들이 많았나 보다. 뉴스닷미에 이어 인스타페이퍼도 지역 서비스 기반 자동 업데이트 기능을 추가했다고 한다. 


먼저 선보인 것은 뉴스닷미다. 한 달 쯤 전 뉴스닷미는 '페이퍼보이' 기능을 추가했다. 이 기능의 기본 콘셉트는 간단하다. 일단 스마트폰 주인이 집을 나서기만 하면 최신 뉴스를 자동 업데이트해주는 것이다. 길 거리에서, 혹은 대중 교통을 이용해 이동할 때 심심한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주는 것이다. 


이번에 인스타페이퍼가 선보인 기능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집, 사무실 등 주요 장소를 10곳까지 지정해 놓을 수 있다. 그런 다음 그 곳을 나서면, 스마트폰 주인이 가장 관심을 가질만한 콘텐츠를 미리 알아서 다운받아 놓는다는 것이다. 인스타페이퍼는 "뉴스닷미 덕에 이런 기능을 추가할 수 있었다"고까지 밝히고 있다. 


이 쯤 되면 비서 부럽지 않다. 그러면서 궁금증이 스멀스멀 고개를 든다. "도대체 저게 어떻게 가능하지?"


뉴스닷미나 인스타페이퍼의 새 기능은 `지오펜싱(geofencing)` 기법을 이용한 것이다. 지오펜싱이란 사용자의 위치를 파악해 정보를 제공하는 기법을 일컫는 말이다. 포스퀘어를 비롯해 많은 위치기반 서비스들에선 기본적으로 이용되는 기법이다. 예를 들어 길을 걷다 갑자기 비를 만날 경우 우산 살 곳을 안내해준다. 한 발 더 나가면, 어떤 길로 가면 할인 판매하는 매장이 있는지도 알려준다. 한 마디로 인공지능형 비서인 셈이다. 


그 동안 주로 쇼핑에서 많이 활용되던 지오펜싱 기법이 이젠 뉴스 소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인스타페이퍼 같은 경우 데이터베이스가 쌓이면, "사무실을 나설 때 관심을 가질만한 글" "전철을 탈 때 재밌어 할 만한 뉴스" 같은 식으로 좀 더 맞춤형 콘텐츠를 모아줄 수도 있다. 


어제 큐레이션이란 용어를 남발하지 말자는 글을 올렸다가 자그마한 논란을 일으킨 적 있다. '과잉 용어' '과잉 서비스'를 경계하자는 얘기였는데, 내가 전달을 잘못 했는 지 내 본의와 조금 거리가 있는 비판들도 있었다. 


어쨌든 각설하고. 이번에 뉴스닷미나 인스타페이퍼가 새롭게 선보인 서비스도 일종의 큐레이션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지난 해 난 '아이패드가 디지털 독서 습관을 바꾼다'는 기사를 쓴 적 있다. 지오펜싱 기법을 활용한 뉴스닷미와 인스타페이퍼의 변신 역시 이런 변화에 힘을 보탤 것 같다. 누군가 디지털 시대 독서 방식 변화를 깊이 있게 연구해보면 좋은 논문이 되지 않으려나? 

얘기를 풀어나가기 전에 움베르토 에코 얘기를 먼저 해 보자. 우리나라에 인터넷이 막 대중화되던 무렵. 그러니까 1990년대 중반 쯤이었던 것 같다. 당시 막 창간됐던 '이매진'이란 잡지에서 인터넷에 대한 논문을 한 편 읽게 됐다. 그 논문에 움베르토 에코 얘기가 나왔다. 내용은 이랬다.


어느 날 움베르토 에코가 논문을 쓰기 위해 인터넷에 검색을 했다. (우리에겐 소설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움베르토 에코는 뛰어난 기호학자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인터넷으로 자료 찾는 걸 포기해야만 했다. 자기가 쓰려는 논문과 관련된 자료들이 1만 건 이상 검색됐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돌아가, 도서관에 자료를 찾으러 가야만 했다고 털어놨다.


에코 이야기는 당시 막 인터넷에 관심을 갖던 내게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에코가 겪었던 일화는 (요즘 이야기하는) 큐레이션 개념이 왜 필요한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인 것 같다.


요즘 큐레이션이 대세다. 너도 나도 큐레이션에 관심을 갖고 있다. 나 역시도 큐레이션이란 개념이 중요하다는 사실엔 전폭적으로 공감한다. 그런데 "도대체 큐레이션이 뭐야?"란 의구심이 스멀스멀 일어나는 걸 제어할 수가 없다.





도대체 큐레이션이 뭘까?


내가 이해한 바로는, 큐레이션은 무수하게 쏟아져 나오는 자료 중에서 의미 있거나, 볼만한 것들을 골라주는 걸 의미한다. 이를테면 미술관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들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관객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작품을 사오기도 하고, 또 그 작품에 대해 설명도 해주는 역할. 인터넷 상에서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신종' 큐레이터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큐레이션 설명하는 글들을 보면 이런 전제가 꼭 따라붙는다. 큐레이션은 단순하게 모아주는 것(aggregation)과는 다르다. 그 얘긴 뭔가 철학이나 관점을 갖고 선별해준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그 차이를 잘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큐레이터를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 이전에 우리가 얘기했던 'news aggregation site'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건 시비를 걸려는 게 아니라,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것임. 그러니 누가 나한테 큐레이션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설명 좀 해주시길.)


물론 나도 큐레이션 비슷한 개념이 중요하다는 데는 동의한다. 최근 인터넷 뉴스 시장의 헤게모니가 '생산자'에서 '유통업자'로 넘어간 상황 역시 이런 생각을 하는 데 일조를 했다. 앞에서 소개했던 에코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볼만한 자료를 잘 선별해서 소개해준다면 더 없이 유용할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까지가 aggregation이고, 어떤 부가가치를 더해야 curation인지, 그걸 잘 모르겠다는 말씀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발적인 글을 하나 보게 됐다. You Are Not a Curator, You Are Actually Just a Filthy Blogger 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자신이 '말 그대로 진짜' 큐레이터(실제로 미술관에서 활동한 큐레이터)라고 소개한 이 글 필자는, 이젠 자기 표현 수단으로 큐레이션이 창작(creation)을 대체하고 있다는 표현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큐레이션, 큐레이션 하지만, 결국 당신네들은 그다지 실체 없는 존재들이란 것이다. 


좀 더 적나라한 표현도 나온다. 


Call it what you like: aggregating? Blogging? Choosing? Copyright infringing sometimes? But it's not actually curation, or anything like it.


나는 개인적으로 '용어 인플레이션'을 굉장히 싫어하는 편이다. 내가 싫어했던 대표적인 용어가 바로 웹 2.0이다. (여기서 고백 한 가지. 그런데 난 '웹2.0과 저널리즘 혁명'이란 책을 한 권 썼다. 이 모숨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 그 책을 읽어보면, 내가 그다지 모순된 얘기를 하는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아, 물론 저 책 지금 사서 볼 필요는 없다. 지금은 생명이 거의 다한 책이니까.) 

솔직히 웹(더 정확하게는 하이퍼텍스트0의 역사와 기원에 대해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탐구하는 사람이라면, 웹 2.0이라는 용어를 함부로 쓸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게다가 웹 3.0, 4.0이 마구 나오는 상황 앞에선, 그리고 그런 용어를 앞세운 담론들에 대중들이 열광하는 상황 앞에선, 그냥 할 말을 잊었다. 


어쨌든, 이 글은 애초에 큐레이션에 대해 깊이 있는 담론을 담아내려고 시작한 건 아니다. 솔직히 나는 큐레이션에 대해 잘 모른다. 그냥 앞에 적은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다. 그런데, 요즘 큐레이션이 좀 각광을 받으면서, 큐레이션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은 채, 대충 다른 사람들이 쓴 글들 중에 입맛에 맞게 몇 가지 소개하면서 큐레이션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난 그런 장면이 부담스럽고 싫다는 말씀이다.


You're buying (in the attention economy at least! If not in the actual advertising economy of websites!) what someone else is selling—and you're then reselling it on your blog. You're nothing but a secondary market for someone else's work. Oh and also? You "curators" might want to be careful with your language....


내가 인용한 부분에 전부 동의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큐레이터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그 용어를 쓸 때 좀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엔 100% 동의한다. 

PS/ 위에 소개한 글은 '더버지'가 매주 큐레이션(?) 해주는 'The Best Tech Writing of the Week'란 코너를 통해 알게 됐다. 이게 진짜 큐레이션인가? ^^

지난 달 말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최지성 삼성 CEO가 전격 회동했다. 법원이 1년 이상 법정 공방을 계속하고 있는 두 회사 CEO 회동 자리를 주선한 때문이었다. 내외신 기자들은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 알아내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아무런 얘기도 알아낼 수 없었다. 법원이 함구령을 내린 때문이다. 회동 내용이 새어나갈 경우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함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언론 플레이를 할 경우 파장이 만만치 않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고, 갑자기 국내 언론에 팀 쿡이 "삼성전자가 미친 짓을 하고 있다"고 발언했다는 내용이 기사화됐다. 월스트리트저널 계열사인 올싱스디지털 주최로 열린 D10 컨퍼런스에서 삼성을 맹비난했다는 기사였다. 


(아래 그림은 네이버에서 한번 검색해 본 화면이다. 보면 알겠지만, 신기하게도 모든 매체의 논조가 똑 같다.) 





솔직히 그 기사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내 첫 반응은 "팀 쿡이 미쳤나?"였다. 무슨 조그마한 중소기업 사장도 아니고, 세계적인 회사 CEO가 '평화협상'을 하고 돌아서서 협상 상대방을 무차별 공격한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건 상도의가 아닐 뿐 아니라, 자칫하면 진행 중인 재판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그런 말을 할 리가 없다. 


궁금증이 발동해서 기사를 찾아봤다. 외신을 인용 보도한 국내 매체들이 분명하게 어떤 매체에 보도됐는 지 밝히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D10 컨퍼런스를 주최한 올싱스디지털 기사를 찾아봤다. 일단 제목은 Patent Wars Are "Pain in the Ass," Says Tim Cook이라고 돼 있었다. 'Pain in the Ass'란 우리 말로 하면 '성가신 일'쯤 된다. (엉덩이에 고통이 있다고 한번 생각해보라. 활동하는 것부터 모든 게 불편해질 테니.)


내용도 제목과 크게 차이가 없다. 당연히 최근의 특허 공방에 대한 질문이 나왔을 테고, 그 질문에 대해 팀 쿡은 "그것 참 골치 아픈 일이다"는 취지로 답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골치 아픈 일이 생기는 원인은 바로 "미국의 특허 시스템이 붕괴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표준특허로도 소송이 가능하게끔 돼 있는 건 문제라는 것이다.


그 대목을 아예 직접 한번 옮겨보자.


“The vast majority of people suing us are suing on standards-essential patents,” Cook said. “And that’s where the patent system is broken. … No one should be able to get an injunction off a standards patent, because the owner is obligated to license it in a fair and reasonable manner.


“Apple has not sued anyone over standards-essential patents that we own, because we feel it’s fundamentally wrong to do that,” Cook continued. “The problem in this industry is that if you add up what everyone says their standards-essential patents are worth, no one would be in the phone business. It’s maddening. It’s a waste. It’s a time suck. Does it stop innovation? Well, it’s not going to stop us, but it’s overhead. I wish we could settle this stuff.”


내 영어 실력이 모자란 때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저 말에서 애플이 삼성을 "미쳤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는 근거를 찾지 못하겠다. 


찬찬히 한번 읽어보자. 대충 이런 얘기가 담겨 있다. 현재 대다수 사람들은 표준 필수 특허로 소송하고 있다. 바로 그 부분이 특허 시스템이 붕괴된 걸 보여주는 사례다. 그래선 안 된다. 적어도 표준 특허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공정하고 납득할만한 방식으로 라이선싱할 의무가 있다. 또 애플은 적어도 표준 특허로는 소송을 걸지 않는다는 얘기. 그렇게 하는 건 시간 낭비로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뭐 대충 이런 얘기가 담겨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한국의 주요 매체들은 이 기사를 "삼성이 미친 짓을 하고 있다"고 보도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일부 매체는 아예 협상을 끝내고 돌아가자 마자 바로 등에다 칼을 꽃는 발언은 했다는 식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어떻게 저 외신을 보고 똑 같이 팀 쿡이 삼성을 원색적으로 비난할 수 있다는 기사를 쓸 수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과연 원래 기사를 제대로 보고 쓴 걸까? 아니면, 내가 외신 이해를 잘못한 걸까?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심?

언론학을 공부하다보면 숙의(deliberation)란 말을 자주 접하게 된다. 숙의 민주주의란 서로 상반되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시스템이다. 


당연히 숙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빛을 발하기 위해선 '경청'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울러 대화와 토론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수정할 수 있는 열린 마음'도 필요하다. 이 정도 얘기는 요즘 신방과 교수들 논문 한 두 편만 읽어보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전제가 있다. 바로 다양한 견해를 접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래서 숙의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기 위해선 언론 자유가 중요하다.)


정보 민주화가 숙의 민주주의로 이어질까?


한 때 인터넷이 숙의 민주주의를 꽃 피울 것이란 기대감이 높았던 적이 있다. 몇몇 국가의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금지된' 정보 유통 창구로 활용되면서 이런 기대감은 더 높았다. 멀리는 10년 전쯤 '참여군중(Smart Mobs)'이란 책을 펴낸 하워드 라인골드부터, 가까이는 '자스민 혁명'을 전해주는 수 많은 신문기사들까지 그 층위도 다양하다. 


라인골드는 필리핀 '피플 파워' 당시 휴대폰이 정보 전달 창구 역할을 담당한 부분을 상당히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당시 라인골드는 '참여군중'에서 P2P가 저널리즘과 연결되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것이란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라인골드가 10년 쯤 전에 던졌던 전망이 지금 실현되고 있다. 이제 P2P 저널리즘이라고 지칭할 만한 현상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 민주화가 우리 손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이런 기술 혁명이 우리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만 끼치는 걸까? 역효과는 없는 걸까? 당연히 역효과도 적지 않다.


'리퍼블릭닷컴 2.0(Republic.com 2.0)' 같은 저술로 유명한 선스타인(C. Sunstein)은 일찍부터 인터넷 공간의 여론 쏠림현상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블로그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링크'는 주로 끼리 끼리 이뤄지고 있다는 것. 자신과 상반된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의 토론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기는 커녕, 불편한 의견은 아예 접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들이 최근 들어 더 광범위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검색 최적화를 통해 '보고싶어 할' 결과물을 먼저 노출해 주는 구글이나, 관심 있어 할만한 사람을 알아서 찾아주는 페이스북의 뛰어난 알고리즘 덕분에 우리는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이용자들의 취향을 민감하게 반영하는 포털 뉴스 편집방식은 새삼스럽게 거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서두가 길었다. 요즘 우리가 정보를 소비하는 행태를 한번 되돌아보자. 상당수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소비한다. 평소 눈여겨봤던 사람들이 큐레이션 해주는 정보를 집중적으로 소비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당연히 정보 편식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트위터는 '필터 버블'을 조장하는 것 아닐까?


기가옴의 매튜 잉그램 기자가 쓴 'Is Twitter popping the filter bubble or inflating'란 기사는 이런 점을 잘 지적해 주고 있다. 그는 이 기사에서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란 저술로 유명한 엘리 파리서(Eli Pariser)를 인용하고 있다. 파리서 역시 이런 부분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파리서는 '필터 버블'에서 "개인들이 균형 잡힌 정보 소비를 할 책임이 있긴 하지만 구글 같은 대형 플랫폼들 역시 다양한 견해를 노출하는 쪽으로 플랫폼 설계를 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잉그램 기자는 또 타레톤 질레스피(Tarleton Gillespie)가 쓴 'Can an Algorithm be Wrong?'이란 논문도 함께 인용하고 있다. 


덕분에 나도 링크를 타고 들어가 이 논문을 읽어봤다. 당연히 머리가 많이 아프다. (늘 그렇지만, 짧은 영어 실력을 한탄하면서 읽었다. God damn English. 진작 영어 공부 좀 열심히 할 걸. 껄껄.)


질레스피는 이 논문에서 트위터의 '트렌트(Trend)' 알고리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트렌드가 뭔지는 알 것으로 믿는다. 간단하게 말해, 트위터 알고리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슈들을 주요하게 노출시켜주는 것을 말한다. 


질레스피 논문의 출발점은 지난 해 월가 점령 시위 당시 #occupywallstreet이란 해시태그가 '트렌드'에 노출되지 않으면서, 트위터 측이 검열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던 부분에서 출발하고 있다. 물론 검열 문제를 제기하는 건 아니다. 그 선에서 그쳤다면, 그건 논문이 아니라 기사다. 질레스피는 "설사 검열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과연 트위터의 알고리즘은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물론 트위터는 정확하게 어떤 알고리즘 원칙을 적용하는 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건 당연하다. 영업 비밀이기도 하거니와, 공개하는 순간, 트위터의 알고리즘을 악용해서 메인 화면에 노출시키려는 세력들이 적지 않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레스피는 트위터가 제기하는 몇 가지 원칙은 있다고 요약해주고 있다. 그 부분을 잠깐 옮겨보자. 


Is the use of the term spiking, i.e. accelerating rapidly, or is its growth more gradual? Are the users densely interconnected into a single cluster, or does the term span multiple clusters? Are the tweets unique content, or mostly retweets of the same post? Is this the first time the term has Trended? (If not, the threshold to Trend again is higher.) So this list, though automatically calculated in real time, is also the result of the careful implementation of Twitter’s judgments as to what should count as a “trend.”


대충 요약하자면 이렇다. 갑작스럽게 상승하는가? 아니면 점진적으로 상승하는 용어인가? 단일 클러스터 내의 이용자들이 촘촘하게 읽혀 있는가? 아니면 다양한 클러스터의 이용자들에게 좀 더 넓게 퍼져 있는가? 독창적인 트윗들이 많이 유통되고 있는가? 아니면, 대부분 같은 글이 반복적으로 리트윗 되고 있는가? 처음으로 제기된 용어인가? 아니면 반복적으로 등장한 것인가?  두 가지 질문 중 앞 부분에 해당될 경우에 '트렌트'로 선정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물론 전자동 시스템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 트위터 편집진이 적당한 손질을 가할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이런 기준이 적용되는 과정에서 트위터 측은 두 가지 이해 관계에 직면하게 된다는 점이다. 즉, 공중들이 가장 알아야만 하는 이슈를 집중 부각하려는 욕구와, 새로운 사람들을 대거 대화로 유인하려는 욕구 사이에서 갈등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질레스피는 트위터가 후자 쪽에 기울 가능성이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 


Perhaps we could again make the case that this choice fosters a public more attuned to the “new” than to the discussion of persistent problems, to viral memes more than to slow-building political movements.


위의 논의들을 요약하면 이렇다. 현재 우리가 접하는 정보 플랫폼들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노출하도록 설계돼 있다. 그러니 당연히 정보 편식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가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는 방식 역시 정보편식을 조장할 가능성이 많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친구'들 역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끼리 끼리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이러니 소셜 미디어를 통한 정보 민주화가 진전될수록 숙의민주주의는 더 멀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보를 접할 자유 못지 않게, 귀를 닫을 자유까지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잉그램 기자는 사용자 주권을 강조하는 걸로 기사를 맺고 있다. 소비자들이 좀 더 현명하게 소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뭐, 원론적인 면에선 당연히 공감한다. 그런데, 과연 일반 소비자가 그렇게까지 골머리를 썩일 것인가? 굳이 그래야 할 필요를 느낄까? 나만 해도 조선일보 정치면 기사 읽었다간 정신 건강에 안 좋을 것 같은데. 이래 저래 참 쉽지 않은 주제인 것 같다. 


얼마 전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토끼와 거북에 비교한 뉴욕타임스 기사가 화제가 된 적 있다. 당시 뉴욕타임스 기자는 페이스북이 교활하게 전력 질주하는 토끼라면, 트위터는 우직하게 뚜벅 뚜벅 전진해나가는 거북 같다고 비교했다. 


뉴욕타임스는 이 같은 주장의 근거로 두 회사의 프라이버시 정책 차이를 들었다. 페이스북이 이용자들에 대한 데이터를 무차별 수집하면서 폭발적인 성장세를 구가하는 동안, 트위터는 그런 유혹을 뿌리치고 묵묵히 제 길을 갔다는 것이다. 아래 두 문장 속에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바라보는 기자의 시각이 들어 있다.


In the world of social networks, Facebook looks like the swift and cunning hare, Twitter the leisurely and careful tortoise. This race is not judged by speed but by a stopwatch with a much longer lifespan, one that is tied to trust.


그 보다 좀 더 전엔 월스트리트저널이 구글 플러스를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래리 페이지 구글 최고경영자(CEO)까지 나서서 구글 플러스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선전했지만, 이게 생각처럼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는 구글 플러스가 유령 도시로 전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 기사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했다. 콤스코어 조사 결과 구글 플러스의 월 평균 체류 시간이 3분 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난 것. 반면 페이스북 이용자들의 월 평균 체류 시간은 405분에 달했다. 한 마디로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는 SNS라는 것이 당시 월스트리트저널 기사의 비판이었다.



[자료: 월스트리트저널]



그런데 이번엔 로버트 스코블이 트위터를 겨냥해 독설을 퍼부었다. 언론들이 구글 플러스를 '유령 도시'라고 비판하지만, 자기가 보기엔 트위터가 그렇다는 것이었다. (이 부분은 테크잇에 게재된 파워블로그 로버트 스코블 "트위터가 유령도시 같다" 는 기사를 참고해봐도 된다.)


스코블은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이런 결론을 내렸다. 지난 해 7월 이후 구글 플러스 팔로워는 0명에서 150만 명으로, 페이스북 이웃은 1만3천명에서 26만1천 명으로 늘어난 반면, 트위터 팔로워는 24만 명에서 26만 명으로 거의 제자리 걸음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스코블은 '그렇다고 트위터가 유령 도시라는 말은 아니다'는 전제를 깔았다. 그러면서 최근 트위터가 정체 상태를 면치 못하는 이유를 몇 가지로 설명했다. 이 대목은 새겨들을 만한 것 같다.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정보 과부하'였다. 갈수록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정보 과부하에 시달리고 있는 데, 트위터는 적절한 노이즈 콘트롤 수단을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용 모델 역시 '커뮤니티'보다는 '정보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면서 활발한 소통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게 스코블의 지적이다. 


그는 또 트위터가 개별 리스트에 담을 수 있는 계정 수를 500개로 제한하거나, 계정당 운영 가능한 리스트를 20개까지만 허용하는 부분 등에 대해서도 불만을 털어놨다.


자, 여기서 다시 원론으로 돌아가보자. 현재 SNS 지형도에선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플러스를 3대 강자로 꼽을 수 있다. 핀터레스트가 있긴 하지만, 조금 성격이 다른 관계로 논외로 하자.


그 동안 세 가지 SNS 중 어떤 것이 더 유용한지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주변에도 트위터를 더 유용하게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페이스북을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트위터보다는 페이스북을 훨씬 더 유용하게 쓰고 있다. 구글 플러스는 아직 잘 모르겠다. 관련 책을 번역하기로 출판사랑 약속한 뒤 잠깐 써보려고 했지만, 요즘은 이런 저런 사정 때문에 내팽개쳐 놓은 상태다. 


그런 측면에서 스코블의 주장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트위터에 커뮤니티 적인 성격이 부족한 건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스코블의 주장 역시 자기 처지에서 털어놓은 불평불만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따라, 용도에 따라 선호하궈나 편하게 느끼는 SNS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잠깐 회사 트위터 계정을 운영한 적 있었다. 그 때 "다정 다감한 멘트를 붙여주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트위터엔 그런 것 붙여봐야 소음밖에 안 된다며, 그냥 정보만 쏴주는 게 좋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트위터보다는 페이스북이 트래픽 유발 효과는 더 크다는 게 대체적인 연구 결과다. 페이스북이 트위터에 비해 8배 정도 더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뉴욕타임스 같은 매체는 소셜 전략의 초점을 페이스북에 맞추고 있다.


반면 다른 연구 결과도 있다. 퓨리서치센터가 올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트위터는 상대적으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한다는 인식이 좀 더 강하다. 





따라서 트위터가 커뮤니티보다는 정보 창구 위주라는 지적은 정확하다. 하지만 그 때문에 더 썰렁하다는 건 절반만 맞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 부분이 트위터의 지향점이자 장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국은 트위터가 승리할 것이라는 뉴욕타임스 기사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차라리 구글 플러스가 생각처럼 잘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월스트리트저널 기사에 더 마음이 쏠린다.


그럼 스코블의 저 숫자는 어떻게 된 것일까? 내 나름대로 한번 추론해 봤다. 일단 트위터나 페이스북 팔로워가 26만 명 선에서 정리된 것은 나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가 스코블이 끌어모을 수 있는 팔로워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구글 플러스는 도대체 뭘까? 란 질문이 날아올 것이다. 1년 만에 무려 150만 명이나 모았으니까.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스코블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란 '근거 약한' 결론은 가능할 것 같다. 구글 검색과 잘 연계된 덕분에, 스코블 같은 유명 인사, 특히 소셜 미디어 관련해서 수시로 묵직한 발언을 쏟아내는 사람은 당연히 팔로워 늘리는 것이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비해 수월할 것이란 얘기다.


어쨌든 나름 예지력 있는 세 곳이 서로 다른 진단을 내리고 있는 건 참 흥미롭긴 히자만, 솔직히 저런 논쟁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자기 몸에 가장 잘 들어맞는 SNS를 선택한 뒤 열심히 활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터이기 때문이다. 


브라우저 시장에서 존재감이 미미한 오페라가 갑자기 '태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IPO를 끝낸 페이스북이 오페라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는 뉴스 때문이다. 


외신 기사들은 오페라 쪽 움직임을 근거로 들고 있다. 오페라 최고경영진들이 좀 더 큰 회사에 소속되길 원한다는 점과, 최근 고용을 자제하고 있다는 점 등이 그 근거였다. 영국 사이트인 포켓린트가 처음 이 사실을 보도했고, 다른 외신들이 경쟁적으로 인용 보도했다. 



사실 포켓린트가 제시한 근거만으로 페이스북이 오페라의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고 보는 건 다소 약하다. 실제로 더넥스트웹은 "페이스북 쪽에선 (오페라 인수설을) 확인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밝혔다. 명확한 증거를 찾긴 힘들단 얘기였다. 


하지만 더넥스트웹 역시 오페라가 회사 매각을 추진하고 있으며, 페이스북이 유력한 인수 희망자 중 한 곳이라고 전했다. 더넥스트웹은 또 페이스북이 오페라 인수를 노리는 건 "그럴 듯한 시나리오"하고 평가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최근 IPO를 단행하면서 모바일 사업이 생각보다 부진한 부분이 문제가 됐다. IPO 직전 제출한 서류에서 매출 전망치를 수정한 것도 모바일 사업과 관련이 있다. 게다가 모바일 사업에서 경쟁하게 될 구글이나 애플이 크롬과 사파리란 브라우저를 갖고 있다. 페이스북 입장에선 자체 플랫폼이 없다는 건 굉장한 약점이 아닐 수 없다. 


판도데일리는 최근 기사를 통해 페이스북이 모바일 뮨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브라우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방법 중 하나로 UC웹, 돌핀 등과 함께 오페라미니 등을 인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오페라는 지난 1994년 노르웨이 최대 통신사인 텔레노(Telenor)의 연구 프로젝트로 시작됐다. 한 해 뒤인 1995년엔 별도 회사로 분리하면서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오페라 측은 자신들의 브라우저 이용자가 2억7천만 명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오페라 미니 이용자도 지난 3월엔 1억6천800만명 수준이었다. 


일단 오페라는 현재 모바일 시장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는 5대 사업자 중에선 유일하게 인수를 검토해볼만한 대상이다.  


컴퓨터월드는 다른 브라우저와 달리 오페라는 '홑몸'이란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익스플로러는 윈도 운영체제, 애플의 사파리는 iOS, 그리고 구글 크롬은 안드로이드와 짝을 이루고 있다. 파이어폭스만이 운영체제와 관계가 없지만, 운영 주체가 비영리 단체인 모질라재단이란 점에서 역시 매각 가능성은 낮다. 


물론 오페라는 브라우저 시장 점유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 익스플로러, 크롬, 파이어폭스가 3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고, 애플 파워를 등에 업은 사파리도 나름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그 틈에 낀 오페라의 존재감은 극히 미미하다. 넷애플리케이션즈 자료에 따르면 지난 달 브라우저 시장 점유율이 1.6%에 불과하다. 


하지만 모바일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역시 넷애플리케이션즈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 오페라 미니 점유율은 12% 수준에 이른다. 물론 모바일 사업 쪽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12% 잠유율은 지난 해 같은 기간에 비해 반토막 수준이기 때문이다. 오페라 미니 점유율 이탈 분은 대부분 사파리로 옮겨갔다. 잘 알다시피 사파리는 아이폰, 아이패드의 기본 브라우저로 이용되고 있다.


(반면 또 다른 조사기관인 스탯카운터 자료에 따르면 4월 모바일 시장에서 오페라 점유율은 21.5%였다. 반면 사파리는 23.7%로 두 브라우저가 한 치 양보 없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덩치가 가벼우면서도 모바일 시장에선 나름대로 강점을 갖고 있다는 점이 오페라의 최대 매력이다. 여기에다 미국을 중심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페이스북을 결합할 경우엔 상당한 시너지를 낼 수도 있을 전망이다. 오페라가 올 들어 모바일 광고 업체를 연이어 인수한 점 역시 페이스북에겐 매력적인 부분이다.


물론 페이스북의 오페라 인수설은 아직까지는 '소문' 수준이다. 게다가 오페라에 군침을 흘릴만한 업체들도 적지 않다. 더넥스트웹은 얀덱스, 구글 등도 충분히 관심을 기울일만하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스북 입장에선 오페라가 상당히 매력적인 인수 대상인 것은 분명하다. 과연 페이스북이 '화려한 오페라 찬가'를 부를 수 있을까?

그 동안 뉴스는 '완성된 상품'이란 개념이 강했다. 그 얘긴, 뉴스 생산자와 소비자가 철저하게 분리된다는 의미였다. 당연히 뉴스 소비자들은 생산 과정에 참여할 여지가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독자 의견'을 통해 약간의 불만을 토로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과정으로서의 뉴스(news as a process)'란 개념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런 개념을 제기하는 대표적인 이론가는 제프 자비스다. (자세한 내용은 Product v. process journalism: The myth of perfection v. beta culture 참고.)


과정으로서의 뉴스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기자가 완성된 상품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과 함께 뉴스란 상품을 만들어나간다는 의미다. 


제프 자비스가 그린 'The new news process'란 그림을 한번 살펴보자.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이야기가 기사로 게재되기까지 적지 않은 과정을 거친다. 문제는, 출판으로 모든 과정이 끝나는 게 아니란 점이다. 그 뒤에도 독자들의 반응이나 지적 등을 반영해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일련의 과정으로 구성돼 있다. 




이를테면 이런 과정이다. 기자들이 취재를 해서 기사를 쓴다고 가정해보자. 좀 더 선진적인 기자들은 취재 과정에서 독자들과 적극 소통한다. 일종의 크라우드소싱 방식으로 다양한 뉴스 원을 수집한 뒤 기사를 쓴다. 하지만 딱 그 지점까지다. 전통적인 저널리즘의 기사 생산 과정은 이 단계에서 끝이 난다. 독자들을 참여시킨다고 해 봐야,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에 머문다.


그런데 '과정으로서의 뉴스'란 개념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뉴스란 완성된 상품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꾸준히 새로운 정보를 덧붙이며, 독자들이 잘못을 지적할 경우 그것도 바로 반영한다. 독자들과 함께 뉴스란 상품을 계속 만들어나간다는 개념인 셈이다.


이 지점에서 트위터는 어떤 역할을 할까? 여기서 일종의 '통신사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해 아랍 혁명 과정에서 트위터가 한 역할을 꼽을 수 있다. 당시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앤디 카빈(Andy Carvin)이란 NPR 편집자는 트위터를 잘 활용해 혁명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이런 역할에 대해 트위터가 통신사(newswire)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시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통신사' 역할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트위터 자체가 일종의 뉴스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기자는? 바로 뉴스 DJ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앤디 카빈 역시 자신의 역할을 뉴스DJ로 규정하고 있다. 


기가옴에서 이런 내용을 전해주는 기사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머리로는 100% 공감한다. 하지만 막상 실천이란 명제로 관심을 돌리면서 벽에 부닥쳤다. 내 한계는 딱 그 지점까지란 생각이 든 때문이다. 전통 언론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근본적인 혁신이란 명제 앞에선 늘 오그라드는 내 모습 때문이다. 


내가 석사과정에 막 입학하던 2000년 무렵. 당시 미국의 저널리즘 연구자들은 벌써 기자의 (전통적인)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지금 같은 모습을 고수할 경우엔 경쟁력 한계에 부닥칠 것이란 경고도 서슴지 않았다. 


물론 학자들의 주장은 관념적인 측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단순히 글쓰는 사람에 머무르지 않고, PD나 게시판 관리자와 비슷한 역할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주장엔, 나름 새겨들을 부분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젠 한 발 더 나간 주장들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저널리스트나 언론사가 절대적인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뉴스의 전통적인 개념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제프 자비스나 앤디 카빈이 주장하는 '과정으로서의 뉴스'란 개념을 과연 주류 언론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만약 적용하려고 한다면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일까? 당연히 가장 큰 걸림돌은 '독자 앞에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편집국 문화'일 것이다. 독자들을 과연 그 정도까지 믿을 수 있느냐는, 또는 과연 독자들과 평등한 관계를 맺는 게 가당키나 하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과연 우리는 '과정으로서의 뉴스'란 개념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소셜 미디어와도 맞붙어 경쟁해야 하는 언론사 입장에선 '완성품을 내놓는다'는 자존심까지 벗어던져야 하는 걸까? 질문은 거창한데, 막상 대답을 하려니 궁색하기 그지 없다. 언론이 위기 상황, 내지는 변혁기로 내몰리고 있는 건 확실한 것 같다. 

월트 디즈니는 1966년말에 세상을 떠났다. 저작권 보호 기간은 저자 사후 70년까지다. 그럼 각종 디즈니 캐럭터의 저작권은 언제 만료될까? (참고로 올해 헤밍웨이의 저작권 보호 기간이 끝났다. 이제 헤밍웨이 작품은 누구나 아무런 제약 없이 번약 출간해도 된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나중에 하기로 하자. 대신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법정 공방 얘기부터 먼저 해 보자. 지난 주부터 미국에선 텔레비전 방송사와 위성사업자가 열띤 공방을 벌이고 있다. '광고를 뛰어넘을 수 있는 디지털영상저장장치(DVR) 때문이다.


논쟁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위성방송사업자인 디시 네트워크. 이 회사는 2주 전 광고를 빼고 방송 콘텐츠만 저장할 수 있는 '오토 홉(Auto Hop)'이란 DVR를 선보였다. 어떤 방송을 녹화해서 나중에 볼 경우 중간 광고를 비롯한 각종 광고를 보지 않도록 해 준 것이다. 


그러자 폭스, NBC, CBS 같은 미국 지상파 방송사들이 바로 법적 조치에 나섰다. 이들은 지난 24일(현지시간) 저작권 침해 혐의로 디시를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에 제소한 것. 특히 폭스는 디시가 광고 없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을 라이선스 계약 위반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디시도 그냥 있지는 않았다. 다음 날인 25일 뉴욕 지역법원에 자사 DVR이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는 확인 판결을 요청했다.


미국 주요 방송사와 디시 간의 공방은 표면적으로는 신기술을 둘러싼 다툼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파고 들어가면 기득권을 지키려는 방송사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려는 위성방송사업자 간의 헤게모니 싸움이다. CBS 같은 미국 방송사는 스카이프 같은 모바일 인터넷 전화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 통신사들과 비슷한 상황에 내몰린 셈이다. 


저작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 명제에 대해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만은 않다. 그 이면을 파고 들어가보면,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이해 관계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서두에 던진 질문으로 한번 돌아가보자. 올 들어 헤밍웨이 소설이 여기 저기서 출간됐다. 헤밍웨이가 1961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지난 해 말로 저작권 보호 기간이 끝난 탓이다. 


이 계산대로라면 디즈니 캐릭터의 각종 저작권도 2016년말로 끝나게 된다. 그 때 이후엔 누구나 자유롭게 디즈니의 캐릭터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귀 밝은 사람들은 벌써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저작권 보호 기간을 늘리려는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저작권 보호 기간은 저자 사후 30년이었던 것이 50년, 70년으로 계속 연장돼 왔다. 저작권법이 디즈니 저작권 보호 기간이 만료되기 직전에 계속 개정된 때문이다. 따라서 앞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디즈니 저작권 보호 기간은 영원히 계속된다"가 맞다.


로렌스 레식 교수의 '코드'란 책에서 처음 이런 얘기를 읽고, 굉장히 분노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한다. 그 사이에 나이도 더 먹고, 또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좀 더 알아버린 때문이다. 비판 의식이 줄어든 대신, 현실 순응적인 자세가 좀 더 커져 버린 탓이다.


(제국주의적 이해관계가 저작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고 싶은 분은 레식 교수의 '코드 2.0'이나 '자유문화' 같은 책을 읽어보시길. 강추.)


미국 지상파 방송사와 위성사업자인 디시 간의 공방 역시 이런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이건 기술 발전이나 소비자 편의 향상 관련 이슈가 아니란 얘기다.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새로운 기술을 결사적으로 막으려는 집단 이기주의가 발현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디시의 오토 홉은 방송 당일엔 광고를 뛰어넘지 못하도록 코딩 돼 있다. 방송 다음 날 오전 1시부터 광고를 뺀 채 녹화, 재생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닐슨 자료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의 82%, 케이블 방송의 90%가 방송 당일 시청되고 있다고 한다. 그 동안의 시청 관행을 감안하면 방송사들이 그렇게 긴장할 부분은 아니란 얘기다. 


이번 공방을 지켜보면서 10여 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냅스터 사태'가 생각났다. P2P로 불렸던 이 기술은 불법복제의 온상으로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음반회사들은 불법 복제 때문에 자신들의 수입이 줄어들었다고 아우성을 쳤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음반회사들의 수입이 줄어든 것은 불법 복제 보다 기술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게 더 크다. '곡당 구매'란 소비자들의 욕구를 외면하면서 수요 창출에 실패했다는 얘기다. (참고로, 앞에서 소개한 로렌스 레식은 냅스터 사태 때 냅스터 쪽 변호인으로 활동했다.)


어쨌든 이번 재판이 어떻게 진행될 지 관심이 쏠린다.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추세만 지켜보면 지상파 방송사들이 이길 것 같다는 쪽에 100원 건다. 그 동안 논리보다는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이해 관계가 더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슬프다. 


(디시와 미국 지상파 방송사 간의 공방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알고 싶은 분은 내가 쓴 "TV의 미래일까, 제2의 냅스터 될까"란 기사를 눌러 보시길.) 

지난 2005년. 사상 최악의 허리케인이 뉴올리언스 지방을 강타했다. 도시 전체가 쑥대밭이 됐던 그 참사는 많은 얘깃거리를 남겼다. 


탐사보도 전문 매체인 프로퍼블리카는 뉴올리언스 참사 당시 병원의 안락사 문제를 다룬 Deadly Choices란 기사로 2010년 퓰리처 상을 받았다. 하지만 프로퍼블리카의 보도는 사건이 있는 지 무려 4년 여 만에 나온 것이다. 사건 당시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낸 것은 타임스 피케윤이란 지역 신문이었다. 도시 전체가 물바다가 된 상황에서도, 기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상황 보도를 한 때문이다. 


물론 당시 타임스 피케윤은 신문을 제대로 발행하진 못했다. 윤전 시설이나 배달망을 가동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대신 온라인 상에 계속 뉴스를 올렸다. 사상 최악의 허리케인 파동 속에서도 사명을 다한 타임스 티케윤에겐 수 많은 찬사가 쏟아졌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도 묵묵히 버텼던 타임스 피케윤이지만, 미디어 시장을 강타한 태풍은 피하기 힘들었나 보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타임스 피케윤 모회사인 어드밴스 퍼블리케이션즈(Advance Publications)는 결국 타임스 피케윤을 격일간지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한다. 줄어드는 독자와 광고 수입 압박을 견뎌내지 못하고 발행 일자를 절반으로 줄여버리기로 한 것이다.


타임스 피케윤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당시 하루 발행 부수가 26만 부 수준이었다. 하지만 올들어선 13만2천부까지 줄어들었다. 7년 사이에 발행 부수가 반토막이 난 것이다. 


타임스 피케윤이 둥지를 틀고 있던 뉴올리언스는 이제 일간지가 존재하지 않는 도시가 됐다. 문제는 뉴올리언스는 인터넷 보급 비율도 그다지 높은 편이 못 된다는 점이다. 2010년 자료에 따르면 뉴올리언스 주민 중 36%는 아직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추락하는 신문은 날개도 없다?


미국 신문 시장은 '날개 없는 추락'을 계속하고 있다. ABC 자료에 따르면 발행 부수 2,5000부 이상 신문들은 지난 2007년부터 2012년 사이에 구독자 수가 21% 가량 줄었다고 한다. 퓨리서치센터 조사 역시 암울하다. 지난 해 미국 신문들의 매출은 2010년에 비해 7% 이상 줄어든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간지에서 격일간지로 덩치를 줄이는 신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역시 어드밴스 계열인 앤 아버 뉴스는 이미 지난 2009년 주 2회 발행 체제로 전환했다. 디트로이트 뉴스 역시 주 2회로 발행 횟수를 줄였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타임스 피케윤이 격일간지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지 불과 몇 시간 뒤에 앨러배마 주의 3대 신문사가 같은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당연히 인력 감축 조치도 함게 병행한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위의 수치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신문 시장은 더 이상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내몰리고 있는 것 같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익숙해진 젊은 독자들은 앞으로 종이신문을 더 멀리할 가능성이 많다. 





타임스 피케윤 사태를 전해주는 미국 언론들의 논조는 암울하다. 기가옴은 '종말의 시작'이라는 헤드라인을 붙였다. 니먼 저널리즘 랩을 비롯한 미디어 비평 전문 사이트들 역시 우울한 미국 신문 시장의 현 주소를 가감 없이 전해주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몰락해가는 종이매체에 자꾸 미련을 가져봐야 '죽은 자식 XX 만지기'에 지나지 않는다. 안 될 땐 과감하게 버리는 것도 필요하다.


왜 종이신문이 인기를 잃을까? 물론 사람들의 독서 행태가 바뀐 게 가장 클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9년 쯤 전, 처음 대학에 강의를 나갔던 나는 대학생들이 신문을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란 경험이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뉴스를 보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 때 벌써 그들은 종이신문 대신 포털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다.


또 하나는, 종이신문을 매일 발행하는 것이 갖는 한계다. 우선 속보 경쟁은 불가능하다. 외신 같은 경우는, 자칫하면 하루 지난 뒤에 게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깊이 있는 분석이 가능하지도 않다. 매일 매일 기사를 마감하는 기자들에게 깊이 있는 분석 기사를 써내라는 건, 대중 소설 작가에게 갑자기 문학성 뒤어난 본격 문학 써내라는 것보다 더 가혹한 처사다.


그런 점에선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사례도 눈여겨 볼 만하다. 역시 비슷한 위기를 겪었던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3년 전에 종이신문 발행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종이매체는 주간지로 전환한 뒤 온라인 쪽에 올인했다. 그 결과 3년 만에 매출이 증가하는 성과를 이뤄냈다고 한다. 


매체 변화는 피할 수 없다. 타임스 피케윤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허리케인 카트리나보다 더 무섭다. 이런 무서운 현실에 직면한 언론들이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말은 쉽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사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처럼 잘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노키아 기사를 쓰면서 늘 "불타는 플랫폼 위에 서 있는 회사"라고 살짝 비꼬았는 데, 지금 언론이 처한 환경이 그렇다. 매체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늘 변형이 일어나고 난 뒤 대책 마련에 골몰하는 순발력 없는 태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남의 나라에서 들려온 소식에 괜히 우울해지는 주말 오전이다. 


고커의 다음과 같은 분석에서 그나마 위안을 삼아야 할까?


The good news is that while the newspaper industry itself is shrinking, the public's appetite for journalism is not. We're in a transitional phase, in which everything is fucked up while everyone figures out the proper economic and journalistic models necessary to shift from old technologies to new technologies. Eventually journalism will be properly monetized online, and the media industry will stabili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