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팔자에 없는 잡지 디자인 고민을 했더니, 머리가 몹시 아프다. 그래서 잠깐 쉬는 틈을 타 오랜 만에 야구 얘기를 한번 써 볼까 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 프로야구에선 '마무리 고민'이 적지 않았다. 지난 해에도 마찬가지였다. 오승환이 든든하게 자리를 지킨 삼성과 손승락이 평년 성적을 낸 넥센을 제외한 나머지 팀은 확실한 마무리 부재로 고민했다.


올해 들어선 그 상황이 더 심해졌다. 무엇보다 오승환 마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나 기아 같은 팀들은 뒷문이 여간 부실한 게 아니다. 역전패를 밥먹듯 하고 있는 한화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러다 보니까 9회 한 이닝을 확실하게 막아줄 마무리가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리베라의 시즌 아웃으로 허전해진 양키스 뒷문 


자, 그럼 시선을 미국으로 한번 옮겨보자. 그것도 내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가장 큰 뉴스는 역시 1990년대 이래 뉴욕 양키스 제국의 뒷문을 든든하게 지켜줬던 마리아노 리베라의 시즌 아웃 소식이다. 9회는 자동으로 끝내줬던 리베라가 빠지면서 양키스의 뒷문이 조금 허전해진 느낌이 든다. 게다가 임시 마무리를 맡았던 로버트슨마저 이탈하면서 '양키스의 9회'는 앞으로 흥미진진한 롤러코스트를 기대해 볼 수도 있게 됐다. 


(탬파베이 있을 때 특급 마무리였던 라파엘 소리아노가 있긴 하지만, 대도시 뉴욕으로 간 뒤론 새가슴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사정은 보스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몇 년 9회를 책임졌던 조너선 파펠본이 필라델피아로 옮긴 때문이다. 최근 불안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올해 보스턴 경기를 보면 "구관이 명관"이었단 생각을 하게 된다. 그만큼 뒷문이 부실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탬파베이는 참 특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단 탬파베이는 '9회 한 이닝을 전담하는 공식 마무리'란 개념 자체를 별로 신통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단장부터 감독까지 같은 생각이다. "한 아닝을 막는 마무리에게 수 백만 달러를 쓰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공공연하게 떠벌릴 정도다. (얼마 전 내가 번역했던 '그들은 어떻게 뉴욕 양키스를 이겼을까'에도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일종의 집단 마무리 체제를 운영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렇게 하면서도 나름 시즌을 잘 이끌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0년엔 애틀랜타에서 라파엘 소리아노를 헐값에 데려와 리그 구원왕을 만들었다. 


한 해 뒤 탬파베이는 양키스에게 소리아노를 빼앗겼다. 돈 때문이다. 다들 탬파베이의 허전해진 뒷문 걱정을 했다. 그러자 지난 해엔 카일 판스워스란 듣도 보도 못한(?) 선수를 영입해 9회를 깔끔하게 책임지도록 했다.


올 시즌이 시작되면서 또 다시 탬파베이의 마무리 문제가 이슈가 됐다. 판스워스가 부상 때문에 시즌 중반 이후에나 복귀가 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호엘 페랄타를 비롯한 여러 선수들이 마무리 후보로 거론됐다.


탬파베이는 이번에도 싼 값에 마무리 투수를 영입해 왔다. 지난 해 LA 에인절스에서 마무리로 뛰다가 셋업맨으로 밀려난 페르난도 로드니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큰 돈 들이지 않고 마무리 감을 채워넣고 싶었던 탬파베이의 필요와, 마무리 자리 빼앗긴 뒤 기분 상해 있던 로드니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진 덕분이다.


"공식 마무리 투수는 없다"는 탬파베이의 논리  


물론 로드니는 특급 마무리는 아니다. 그 부분에 대해선 대부분의 야구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오죽하면 지난 해 신인에게 마무리 자리를 빼앗겼을까? 그리고 탬파베이가 그런 선수를 영입해 마무리를 맡기는 것에 대해 그다지 놀라워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탬파베이 단장이나 감독은 전문 마무리란 개념에 대해 그다지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탬파베이 팀의 조 매든 감독은 가장 구위가 좋은 선수를 9회만 전담하게 하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7회든, 8회든 가장 심각한 위기 상황이 될 때 그 선수를 쓰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리베라 같은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면 이런 태도를 보이진 않을 것이다. 문제는 리베라 급 선수를 영입하려면 돈이 엄청 든다는 점이다. 그리고 탬파베이 같은 가난한 팀에겐 한 이닝 막아줄 선수에게 거액을 투자할 여력이 없다. 그러고 나면 매일 출전할 선수를 제대로 꾸리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금까지 로드니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경이롭기 그지 없다. 오늘 토론토 전에서 9회 한 점차 리드를 깔끔하게 마무리하면서 11세이브 째를 올렸다. 평균자책점도 0.5점 수준에 불과하다. 이 정도면 전문 마무리 못지 않은 성적이다. 


탬파베이 지역 일간지들은 당연히 이런 성적에 대만족한 상태다. 탬파 트리뷴은 로드니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는 기사를 게재했을 정도다. 하지만 탬파베이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여전히 조 매든 탬파베이 감독은 '공식 마무리'란 직함을 그다지 탐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모양이다. 


프로야구에서 불가사의 중 하나는 9회 마무리다. 멀쩡하게 잘 하던 선수들도 9회 마무리를 맡겨놓으면 버벅대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표적인 게 몇년 째 마무리 고민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LG다. 미국 프로야구 뉴욕 양키스 역시 리베라가 시즌 아웃된 뒤 로버트슨이나 라파엘 소리아노 같은 선수에게 맡겨봤지만 신통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7, 8회는 잘 던지다가도 이상하게 9회를 맡기기만 하면 불질을 해댄 때문이다.


과연 야구에서 9회가 의미하는 건 뭘까? '한 이닝 마무리'는 호사스런 개념일까? 아니면 그 팀에서 가장 구위가 좋은 선수에게 9회를 맡겨야만 하는 걸까? 


뉴욕 양키스를 비롯한 많은 팀들은 '확실한 9회 마무리'를 잡기 위해 많은 돈을 쓴다. 반면 탬파베이는 현대 야구에서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9이닝 전담 마무리' 개념을 시큰둥하게 받아들이면서도 늘 괜찮은 마무리를 키워낸다. 과연 어떤 게 더 효율적인 전략일까?  

IT 뉴스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글로벌 세상'이란 말이 정말 실감난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기업 얘기 아니면 독자들의 큰 관심을 끌기 어렵다. 휴대폰이나 통신 요금 얘기 정도나 돼야 관심을 기울일 정도다. 


그건 뉴스 공급자 측면에서 봐도 마찬가지다. 이런 질문을 한번 던져보자. 삼성은 조선일보와 코리아 해럴드 중 어느 쪽을 더 두려워할까? 선뜻 대답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내가 삼성 의사 결정권자도 아니니. 하지만 한 가진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국내 독자들이 느끼는 두 매체의 영향력 지수와는 상당히 큰 차이가 있을 거란 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관심을 모은 매체가 있다. 바로 대만의 디지타임스이다. 몇 년 사이 대만이 애플의 부품기지 역할을 하면서 부쩍 디지타임스를 인용 보도한 기사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주로 신제품 관련 루머를 취합해서 전해줬는 데, 한 동안은 각 매체들이 앞다퉈 인용 보도를 했다. 


IT 기자 입장에서 솔직히 부러웠다. 디지타임스 같은 존재 하나 만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더구나 한국엔 애플과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는 삼성이 있으니, 어느 나라보다 유리한 상황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디지타임스 보면서 늘 느낀 게 '팩트 확인(fact-checking)' 문제였다. 거의 루머 수준의 기사를 마구 써 댄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얼마 전에도 애플이 울트라북에 대항해 799달러짜리 초저가 맥북 에어를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를 했다.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상황만 놓고 보면, 이 기사 역시 오보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저런 상황이 좀 짜증이 난 걸까? 타임지가 결국 칼을 빼들었다. 디지타임스가 애플 루머에 관한한 '늑대 소년' 같은 존재라는 혹독한 비판 기사를 실었다. 한 두 번 잘못된 보도를 하는 게 아니라, 아예 상습적으로 엉터리 기사를 싣고 있다는 비판이다. 


Digitimes still has an audience. It doesn’t seem to matter whether the prognostications it publishes come true or not, and no amount of being wrong is enough to ruin its reputation.


위 인용문을 보면 상당히 신랄한 비판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타임은 아예 기사 말미에 디지타임스의 각종 오보 사례를 꼼꼼하게 정리해놨다. 


디지타임스 사례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것 같다. 눈에 확 띠는 보도로 전 세계(라고 해봐야 미국)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지만, 그런 명성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콘텐츠'가 뒷받침되어야만 한다는 교훈. IT 뉴스 뿐 아니라 전반적인 언론들이 새겨야 할 교훈은 아닐지? 


구글뉴스 책임자가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전통 매체들을 향해 독설에 가까운 비판을 퍼부었다. 웹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경우엔 야후 같은 신세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독설을 쏟아낸 것은 리처드 진그래스(Richard Gingras). 현재 구글 뉴스 책임자로 몸담고 있는 그는 한 때 살롱 미디어 그롭 최고경영자(CEO)로 재직하기도 했다. 그만큼 뉴미디어 흐름에 대해선 나름대로 식견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진그래스는 지난 금요일(5월11일) 하버드대학에 있는 니먼 재단에서 뉴스의 미래에 대한 강연을 통해 기존 매체들의 변신을 촉구했다. 자세한 내용은 MIT 시민미디어 센터의 맷 스탬펙이 요약한 글기가옴의 기사를  참고하면 될 것 같다.


그날 진그래스는 여러 가지 많은 얘기를 한 것 같다. 그 중 내가 관심을 끈 몇 가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보자. 


"모든 걸 다하려다간 야후 꼴 난다"


진그래스의 주장에서 가장 눈여겨 볼 대목은 "모든 걸 다하려는 포털 같은 자세를 버리라"는 부분이다. 한 마디로 수직적인 모델은 더 이상 통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그는 야후 얘기를 했다.


초창기 야후는 '포털 전략'으로 성공했다. 당시엔 사람들이 인터넷 상에서 어떤 걸 해야 할 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러니 야후처럼 모든 콘텐츠의 관문 역할을 하는 사이트에 대한 수요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서핑에 익숙하게 되면서 더 이상 포털을 찾지 않게 됐다.


뉴스 사이트들이 지금과 같은 모델을 고수하는 한, 야후 같은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게 진그래스의 주장이다. 


그럼 그가 생각하는 대안은 뭘까? 바로 스토리 중심 구조다. 스토리 중심 구조? 다소 애매한 표현이다. 위키피디아 같은 사이트를 떠올리면 된다. 


진그래스는 온라인의 생명줄은 브랜드도 아니요, 사이트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스토리 그 자체가 바로 온라인의 생명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언론사들의 편집 방식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중앙 집권적인 사이트에서 기사를 흘러보내는 방식이 아니라, 스토리 중심으로 구성되는 사이트 디자인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다소 애매한 측면이 있다. 쉽게 얘기하자면 위키피디아 같은 구성을 생각해 보면 된다는 게 진그래스의 설명이다. 특정 주제어를 중심으로 계속 업데이트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여나간다는 것이다. 물론 영구적인 URL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구조다. 진그래스는 기자들이 출입처를 소유하듯이, 특정 스토리를 소유하면서 독자들과 소통하는 구조를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주장하고 있다. 


이 부분 약간 이해가 안 되는 측면이 있다. 또 정확하게 어떤 구조로 어떻게 구현하자는 것인지 확 와닿질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곰곰 따져보면 상당히 설득력 있어 보이기도 한다. 혹시 이런 구조는 어떨까? 정치, 경제, 사회 이런 섹션 구성이 아니라, 특정 키워드들을 중심으로 사이트를 구성한 뒤 그 키워드에 계속 얘기를 덧붙여 나가는. ㅎㅎㅎ. 내가 잘못 이해한건가? 


어쨌든 진그래스는 뉴스 사이트 구조 자체를 확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터넷 상에서 워싱턴포스트가 위키피디아에게 계속 밀리는 걸 보면서도, 왜 기존 방식을 계속 고수하는 바보 같은 짓을 하느냐는 얘기도 하고 있다.


"트래픽 비중도 낮은 홈페이지 디자인에 전력 쏟는 건 잘못"


우리와 사정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트래픽 비율에 대한 애기도 흥미롭다. 불과 3년 전인 지난 2009년만 하더라도 뉴스 사이트들의 트래픽 중 절반 가량이 홈페이지를 통해 들어왔다. 그만큼 해당 사이트의 '존재감'이 컸다는 얘기다. 검색을 통해 들어오는 비중은 20~25%였으며, 개별 뉴스 페이지로 직접 들어가는 비중은 30~35%였다.


하지만 3년 사이에 엄청나게 달라졌다. 일단 홈페이지를 통해 들어오는 비중이 절반 수준인 25%로 줄어들었다. 검색을 통해 들어오는 비중은 30~35% 정도로 소폭 상승했다. 나머지는 개별 기사 페이지로 직접 들어간다. 많게는 45%에서 적게는 40% 정도에 이른다. 물론 개별 페이지로 직접 들어가는 트래픽 중 절대 다수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유발되는 트래픽이다. 


따라서 뉴스 사이트들은 디자인을 할 때 기본 마인드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체 트래픽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에 불과한 홈페이지 디자인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 바보 같은 짓을 하지 말라는 얘기다. 


이 주장에, 전폭적으로 동의한다. 현재 시작 페이지의 주목도는 형편없이 낮아진 상태다. 따라서 사이트 개편을 할 때는 반대 관점으로 접근해 볼 수도 있다. 독자들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개별 페이지의 기본 편집 철학부터 고민한 뒤, 그것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시작화면을 디자인 하는 쪽으로 접근방식을 바꿀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온라인 상의 기사 쓰기 방식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물론 그는 "우린 이 방법을 계속해 왔고, 또 편하고 좋아한다"는 식의 접근 방식을 혹독하게 비판하고 있다.


어쨌든 진그래스의 이런 주장은 다소 급진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최근 독자들의 독서 성향 변화나, 인터넷 상의 다양한 변화를 감안하면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볼 주제인 것 같긴 하다.

1980년대 중반 '웰(WELL)'이란 인터넷 공동체가 있었다.  웰은 1960년대 반문화 운동의 핵심 멤버였던 스튜어트 브랜드가 주축이 돼 1985년 처음 시작된 인터넷 커뮤니티다. '웰'은 설립 초기 게시판 형식으로 운영되다가 차츰 웹의 특성을 살려 커뮤니티를 확장해 나갔다. 온라인 프라이버시 문제 등을 처음으로 이슈화한 것도 바로 웰이다. 


하지만 웰이 인터넷 발전 역사에 끼친 영향은 이런 부분 때문만은 아니다. 웰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많은 사람들이 훗날 인터넷 역사에 중요한 자양분들을 덧붙여 준 점이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초기 멤버로 활약했던 미치 카포와 존 페리 발로우는 그 뒤 대표적인 온라인 시민 단체인 전자 프론티어 재단(EEF)을 설립했다. 지난 해 번역 출간된 '기술의 충격' 저자인 케빈 켈리 역시 웰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다.


이들 못지 않게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인물이 있다. 바로 하워드 라인골드이다. 우리에겐 '참여군중(Smart Mobs)'이란 책으로 유명한 인물. 하지만 라인골드는 이미 1993년에 '웰' 운영 경험 등을 토대로 'Virtual Community(가상공동체)'란 책을 내놓으면서 인터넷 초기 문화에 대한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해 줬다.


휴대폰 등을 활용한 똑똑한 군중의 힘을 보여줬던 '참여군중'은 첫 저작인 '가상공동체'를 내놓은 지 꼭 10년 만에 출간한 책이다. '똑똑한 군중'이란 원제를 참여군중으로 탈바꿈시킨 건 그 무렵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시민들의 참여가 중요한 덕목으로 떠오른 걸 간파한 편집자의 재치 때문이었을 것이다. 


('참여군중'에서 읽은 내용 중 기억에 남아 있는 것. 라인골드는 당시 그 책에서 "인류 전체가 P2P 언론에 참여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란 질문을 던졌다. 당시만 해도 P2P방식의 언론은 상상도 제대로 못할 무렵. 하지만 이후 라인골드가 이야기했던 P2P 방식의 언론은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각종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실제로 구현됐다.)


그리고 또 다시 9년. 이번엔 'Net Smart'란 책을 펴냈다. '온라인 세상에서 번성하는 법'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에서 저자인 라인골드는 다섯 가지 웹 리터러시를 제시하고 있다고 한다. attention, participation, collaboration, “crap detection,” and network smarts이 바로 그것들이다. 


라인골드는 이번 책을 저술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과 만났다고 한다. 위키피디아 창업자인 지미 웨일즈 같은 거물급들. 저자 자신이 갖고 있는 통찰력에다 이들의 풍부한 경험을 결합해 소셜 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를 담아냈다는 게 외신들의 평가다.


최근 스마트폰을 늘 손에 지니고,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쉴 새 없이 활용하면서 사람들이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이런 입장을 보이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The Shallow)'이란 책을 내놓은 니콜라스 카이다. 


그 동안의 행보로 보면 당연할 테지만, 하워드 라인골드는 이런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가 이번 책에서 5가지 웹 리터러시를 제시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교육을 통해 잘 활용하기만 하면 생활에서 유용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책을 안 읽어봐서 모르겠지만, 나는 니콜라스 카보다는 하워드 라인골드 쪽에 한 표를 던진다. 사실 뉴미디어 때문에 사람들이 사고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플라톤 이래 수 많은 사람들이 경고해 왔던 메시지다. 하지만 그런 접근은, 스마트폰 조차 사람 몸의 확장이라고 간주하게 되면, 또 다른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다. 따라서 기술의 위협을 경계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우리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뉴미디어를 어떻게 하면 좀 더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을 담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번에 출간된 하워드 라인골드의 'Net Smart'가 기대되는 건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다. 영어 잘하고, 뉴미디어에 밝은 분이 이 책을 빨리 번역해줬으면 좋겠다. 나처럼 원서 한 권 들고 몇 달씩 낑낑댈 여유가 없는 사람이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


읽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 책에 대해 더 아는 척 하는 건, 거장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10년 정도 성찰의 시간을 가진 뒤 농익은 통찰력을 담아내는 라인골드인 만큼, 이번 책 역시 기대에 충분히 부응할 것이란 점. 외신들의 소개를 보면 이번 책은 이전 책들에 비해 학술적인 외피를 좀 덜 두르고 있는 것 같다. 자기 주변 얘기를 하면서, 상당히 흥미롭게 서술해 나갔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하워드 라인골드가 MIT 미디어랩에서 한 강의를 소개하는 니먼저널리즘랩의 기사포브스의 서평 기사를 참고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더애틀랜틱 지에 발췌 소개한 에세이를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마지막 보너스 선물. 하워드 라인골드는 'Net Smart'를 소셜미디어 리터러시란 과목의 교재로 쓸 예정이라고 한다. 뉴미디어 강의를 하시는 분들은 라인골드의 강의계획서를 살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얼마 전 조선일보는 10개 조항으로 구성된 SNS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뒤 구설수에 올랐다. 특히 기자협회보가 제목부터 강하게 비판했다. 지나치게 금지 일변도로 돼 있다는 비판이었다. 이를테면 SNS 활동으로 사회적 파문을 불러 오지 말며, 사내 기밀은 올리지 마라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조선일보의 가이드라인이 다른 언론사에 비해 훨씬 더 금지 정도가 강한 지는. 이렇게 말하면 돌이 날아올 지 모르겠지만, 언론사의 SNS 가이드라인은 금지 규정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가이드라인을 만든다는 얘기는, 어느 정도 한계를 지어줄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링크한 기자협회보의 기사는 '조선일보에 대한 편견'(?)이 개입돼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선 중립적으로 소개한 온라인미디어뉴스의 관점이 좀 더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기자협회보 기사 말미에 보면 AP통신 얘기가 나온다. AP통신은 진작 소셜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최신 버전은 올해 1월에 수정한 것이다. 


만만찮은 AP의 소셜 미디어 규제 


AP의 가이드라인도 비슷하다. 업무상으로 트위터 계정을 쓸 경우엔 반드시 AP 구성원이란 사실을 밝힐 것. 편향되지 않은 보도를 하는 AP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 심지어는 공개적인 포럼에서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하지 말라는 내용도 있다. AP통신은 심지어 리트윗도 규제하고 있다.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방식으로 리트윗하지 말라고 규정해 놓고 있다. 이 정도만 봐도 조선일보의 규정 못지 않게 강력하다. 


전 세계 어느 언론사를 막론하고, 일단 회사가 소셜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면, 대개는 불편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좀 미안한 얘기지만, 요즘 트위터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몇몇 기자들은 AP통신에 소속돼 있었더라면 전부 징계를 당했을 판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 마디. 이건 절대로 그들의 트윗 활동을 비판하는 게 아니다. 기자들이 트위터 공간에서 인기를 끄는 것은 개인적인 의견을, 그것도 직설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사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순간, 그런 행동은 전부 금지 당하게 돼 있다. ^^)


자, 서두가 길었다. 


디지데이라는 사이트에 AP통신의 소셜 전략에 대한 글이 실린 걸 발견했다. 이 글을 간략하게 정리해봤다. 


일단 AP통신이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라고 한다. 정보를 수집하고 배포하기 위한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말씀이다. 또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대해서도 서로 다르게 접근한다고 한다. 이 또한 당연한 말씀이다.


AP통신의 메인 트위터 계정 운영에 가담한 인력만 약 12명 정도. AP는 메인 계정 외에도 20개 가량의 트위터 계정을 더 운영하고 있다. 모두 합해서 약 100명 가량의 AP 직원이 트위터 운영에 관여하고 있다고 한다. 


메인 계정과 부서별 계정의 차별화된 운영 방식 


특히 AP의 트위터 전략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메인 계정과 다른 계정 간의 운영 방식 차이다. 이를테면 패션 계정 운영자들 같은 경우 약 20만에 이르는 팔로워들과 수시로 대화를 한다고 한다. 패션에 관한 각종 속보 뿐 아니라, 패션 전시회에서 보고 듣고 느낀 점들에 대해 팔로워들과 대화를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반면 팔로워가 약 90만 명에 이르는 메인 계정(@AP)은 좀처럼 독자들과 대화를 하는 법이 없다. 워낙 관심사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AP통신은 메인 계정과 각 부서별, 혹은 팀별 트위터 계정을 상당히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부서별 계정 같은 경우엔 해당 부서의 특성에 맞게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AP통신 페이스북 계정은 팬이 약 8만명 수준이다. 트위터에 비해선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AP는 페이스북은 독자들과의 소통 도구로 트위터보다 훨씬 더 적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다 보니 페이스북을 통해 크라우드소싱도 자주 하는 편이다. AP의 소셜 미디어 에디터인 에릭 카빈은 디지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엔 9.11 10주년을 맞아 크라우드소싱 방식 보도를 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AP통신은 최근 페이스북에 내보내는 기사의 양을 축소했다. 예전엔 한 시간에 하나 꼴로 내보냈는 데, 이젠 하루에 4~6건 정도만 내보낸다고 한다. 속보가 발생할 경우엔 주로 트위터 계정으로 먼저 쏘기 때문이다. 그 건이 아주 중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만 페이스북에 올린다고 한다. 


AP통신의 소셜 미디어 가이드라인에서 흥미를 끄는 것이 하나 있다. 속보는 절대 소셜 미디어에 먼저 내보내지 않는다는 원칙이 바로 그것이다. 그 이유는? AP통신의 기본 비즈니스 모델이 B2B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에게 돈을 낸 고객들에게 먼저 쏴주는 것이 상도의에 맞다는 것. 이런 정책에도 불구하고 큰 사건이 벌어질 경우엔 AP의 트위터에서 가장 먼저 그 소식을 접하게 될 것이라는 게 AP통신 측의 주장이다. 그만큼 재빨리 움직인다는 얘기다.  

내가 학교 다닐 땐 뒤늦게 철 든 아이들이 꽤 많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본고사가 폐지되면서 내신 비중이 커지긴 했지만, 우리 학번 땐 학력고사가 어렵게 출제되는 바람에 막판 뒤집기가 가능했다. 고등학교 1, 2학년 때 땡땡이 치다가 고2 겨울부터 대오각성해서 좋은 대학 간 친구들도 더러 있다. 그 중엔 지금 모 대학 교수로 열심히 활동하는 친구도 있다. 


갑자기 옛날 얘기를 꺼낸 건 어제 읽은 기사 때문이다. 중앙일보에서 본 '개천서 용 날 수 없나' SKY진학률 비교해보니 란 기사다. 외고나 강남 3구 일반고등학교의 SKY(공교롭게도 서울대, 연대, 고대의 이니셜이 스카이라니, 괜히 기분 나쁘다.) 진학 비율이 월등하게 높다는 기사다. 


지금은 모대학 교수로 활동하는 친구.... 요즘이라면?


저 기사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지금은 모 대학 교수로 활동하는 한 친구다. 아마도 그 친구는 지금 같았으면, 명문대 진학도 불가능했을 뿐더러, 교수는 아예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물론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열심히 공부했을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그건 논외로 하자.) 


그리고 생각한 건 선행학습, 소위 '과외발'이다. (이 뒤에서부턴 읽기에 따라선 자식 자랑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겁니다. 혹시 그런 얘기 빈정 상하시는 분들은 그만 읽으세요. 난 자식 자랑을 하는 게 아니라, 가슴 아픈 고백을 하는 겁니다.)


우리 집 아이는 소위 말하는 학원, 과외 근처에도 안 갔다. 당연히 선행 학습은 전혀 안 했다. 

(마눌의 항의 때문에 내용 조금 수정. 과외는 전혀 안 한 건 아니고, 중학교 때까지 5년 정도 어떤 선생님과 영어 공부를 같이 했다고. 그 때 그 선생님은 문법이나 영어 시험 대비법을 가르친 게 아니라, 같이 신문읽고, 책읽으면서 영어를 즐겼다고 한다. 따라서 과외를 전혀 안 했다는 건 팩트와 다른 얘기.)


중학교 땐 진짜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했다. 자세한 얘기는 딸 아이의 사생활이니 생략하기로 하자. 참고로, 외고 입시 한 달 쯤 전에 미국에 오케스트라 연주 여행을 2주 정도 다녀왔을 정도다.


남들 학원, 과외 받을 때 자유롭게 생활했지만, 하여간 어떻게 외고에 들어가게 됐다. 외고 들어가선 엄청나게 고전을 했다.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했지만, 시험 칠 때마다 한 바탕 전쟁을 벌여야 했다. 들어가보니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미 영어, 수학 공부를 따 끝낸 상태였다. 학교에서 시키는 만큼만 공부했던 우리 아이는 당연히 남들보다 두 배는 노력을 해야 헸다.


학교에서 중간, 기말고사 칠 때마다 우린 조마조마. 집에 오기 전에 전화가 오면 시험 망쳤다는 의미. 그럴 땐 남들보다 선행 학습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들어야만 했다. (다행히 나는 회사에 출근했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마눌이 그 불평불만 다 들었다.) 


그리고 나면 딸 아이는 분이 풀리고 평상심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때부터 우리는 갈등을 해야 했다. 학원이나 과외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란 의구심. 괜히 나중에 후회하는 것 아닌가 라는 불안감. 뭐 그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밀려 왔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던 딸 아이는 2학년 2학기가 되면서 성적이 최상위권으로 뛰어 올랐다. 그 때 이후 수능 때까지 그 성적을 쭉 유지했다.


나중에 물어봤다. "네가 2학년 2학기 때 모의고사 성적이 확 오른 이유가 도대체 뭐냐?"고. 그랬더니 딸 아이는 "그 때 쯤 모든 과목 한 바퀴 다 돌았어요."라고 대답했다. 결국, 그 때쯤이 되어서야 다른 아이들하고 비슷한 지점까지 갔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다. "열심히 공부하면, 정말 열심히 공부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가능할 것 같다는 자신감은 있어요. 하지만 진짜 극복하기 힘든 애들이 있어요. 구름 위에 있는 애들이요."


어땐 애들이냐고 물어봤다. 초등학교 때 미국 다녀온 애들. 그 곳에 가서 영어 마스터하면서, 수학 과외까지 같이 받아온 애들. 그리곤 중학교 때 돌아와서 과학 과목 선행 한 애들. 이런 애들은 도저히 물리적으로 따라잡을 방법이 없다고 했다. 자기는 죽어라 공부할 때, 여유를 부리는 데도, 늘 1, 2등을 찍더라는 애기였다.


대학가서도 여전히 영향력 미치는 '선행학습 효과'


어쨌든, 수능을 왕창 망친 딸 아이는 다행히 내신과 스펙, 기타 면접을 잘 한 덕분에 카이스트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학원, 과외 일절 안 하고 명문대 보낸 성공 사례야."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명문대학에 들어간다고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니었던 게다. 지금도 딸 아이는 고등학교 저학년 때 했던 고생을 또 하고 있다. 대학 들어가보니 벌써 대학과정 끝내고 들어온 애들이 수두룩했던 때문이다. 죽어라 밤샘 공부해서 준비해갔더니, "언니, 나 어제 그냥 놀았어요" 하던 애들보다 성적이 더 안 나오더란다. 왜 그런지 봤더니…. "그게 우리 고등학교 때 다 배운 거에요."란 답이 돌아오더란다. (참고로 과학고등학교 출신들은 99% 2학년 마치고 온다.)


그런 애기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남들은 학원, 과외 안하고 소신있게 (물론 대부분 마눌의 소신이지만) 대학 보냈다면서 굉장히 부러워한다. 하지만 다시 선택하라면, 또 다시 선행학습 안 시킬 지는, 솔직히 자신 없다. 먼저 출발해서 저 만치 달려가고 있는 애들 따라가느라 죽을 고생하는 딸 아이 모습을 너무나 애처롭게 봐온 때문이다.


개천에서 옹이 날 수 없는 구조. 간혹 개천에서 키워낸 용들이, 본 무대에 가서 또 다시 좌절할 수밖에 없는 구조. 이런 구조를 어떻게 봐면 바꿀 수 있을까? 

"SNS에 트래픽을 기대는 것은 영혼을 팔아 먹은 파우스트와 같은 격이다."


내가 좋아하는 기가옴의 매튜 잉그램 기자의 직설적인 표현이다. 통제불가능한 '외생변수'가 너무나 크다는 게 그 이유. 네이버에 영혼 뿐 아니라, 몸까지 팔아버린 한국 매체들이 들으면 '지나치게 가혹한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런 비판이 나온 건 계기가 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 가디언 등 주요 매체들이 페이스북 오픈그래프를 통해 들어오는 방문자 수가 뚝 떨어진 때문이다. 잘 아는 것처럼 워싱턴포스트와 가디언은 주류 언론들 중 SNS 전략을 가장 잘 짜는 곳으로 유명하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일부에선 소셜 리더 앱이 일종의 스팸이기 때문이란 분석도 제기됐다. '은밀한 뉴스'를 본 것까지 다 까발려져서 민망해한다는 분석도 있었다.


언뜻 듣기엔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테크크런치가 진짜 이유를 밝혀냈다. 페이스북이 지난 4월 중순부터 오픈그래프 표출 방식을 바꾼 때문이었다.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예전엔 오픈그래프를 이용할 경우 대 여섯 건 가량 표출되던 것이 4월 중순부터는 한 건만 보이도록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언론사들이 제 아무리 SNS 전략을 잘 짜더라도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가디언, 워싱턴포스트처럼 SNS 뉴스 전략을 누구보다 잘 짜는 언론사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자세한 내용은 테크크런치 기사를 참고해보면 된다. (워싱턴포스트의 소셜뉴스 전략에 대해선 워싱턴포스트의 맞춤형 소셜뉴스 도전장과 딕닷컴 핵심인력 인수한 워싱턴포스트의 속내는? 을 참고하세요.) 


이런 사건이 벌어지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앞서 인용한 매튜 잉그램 기자는 이번 사건이 미디어 회사들이 늘 마음에 새겨야 할 교훈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그 교훈이란 뭘까? 원문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Facebook is the information gatekeeper now, and you are just a provider — and only one of many.


페이스북은 정보 게이트키퍼이며, 여러분들(언론사)는 콘텐츠 제공업체에 불과하다는 것. 그것도 많은 콘텐츠 제공업체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교훈. 당연히 이 말에서 오버랩되는 게 있을 것이다. 미국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한국의 언론환경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네이버가 어느날 갑자기 시작화면에 있던 뉴스캐스트를 뉴스섹션으로 옮겨버렸다고 가정해보자. 현재 언론사들의 트래픽이 얼마나 줄어들까? 한 발 더 나가, 이런 저런 비판에 시달리던 네이버가 "에잇, 우리 그만 할래"라면서 뉴스캐스트를 폐지했다면?


다 없어졌으니, 이젠 똑 같은 상황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 뉴스캐스트가 있기 전과 지금은 독자들의 독서 습관 자체가 달라졌다. 이젠 '북마크' 같은 귀찮은 행동은 안 한 지 오래됐다. 미국에서도 이미 개별 매체들의 브랜드 인지도가 크게 떨어진 지 오래 됐다.


그러니 참 갑갑하다. 잉그램 기자 말대로 "네이버에 영혼까지 팔아버린" 한국 인터넷 언론이 다시 예전 같은 패러다임을 만들어낼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우린 네이버 종속을 탈피할 방법 중 하나로 SNS 활용을 이야기한다. 물론 훌륭한 대안이다. 하지만 가디언, 워싱턴포스트 등의 '트래픽 대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SNS 전략 역시 외생변수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래 저래 답은 보이지 않고, 그저 갑갑하기만 하다. 

세르게이 브린 구글 공동창업자는 지난 4월15일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웹의 자유가 그 어느 때보다 위협받고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당시 그는 "폐쇄된 정원(walled garden) 정책을 주도하는 애플 같은 업체들 때문에 웹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해 논란을 불러왔다. 


파문이 커지자 "웹의 자유를 위협하는 것은 애플 같은 업체가 아니라 정부의 검열 때문"이라고 부가 설명을 했다. 하지만 브린이 작심한 듯 애플의 정책을 비판한 것은 결코 우발적으로 나온 말은 아니다. 전략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어떤 부분 때문일까? 잘 아는 것처럼 구글의 출발점은 검색이다. 세상 곳곳에 흩어져 있는 콘텐츠를 시의적절하게 찾아주는 게 구글의 경쟁력이다. 당연히 구글 입장에선 웹에 장벽이 쳐지는 것에 대해 혐오감을 나타내지 않을 수 없다. 담장 너머에 있는 콘텐츠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건 구글에겐 엄청난 손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팀 버너스 리가 웹을 창시할 때 기본 정신도 '개방'과 '공유'였다.


그런데 최근 모바일 시대, 더 정확하게는 앱이 새로운 콘텐츠 소통 수단으로 떠오르면서 이런 부분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앱은 대표적인 'Walled garden'이기 때문이다. 어떤 앱이 있는 지는 검색할 수 있지만, 앱 안에 어떤 콘텐츠가 있는 지는 잘 알 수가 없다. 


최근 들어 앱 검색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건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최근 애플에 인수된 촘프를 비롯해 앱스파이어, 앱포리셔스, 그리고 Xyologic 같은 업체들이 대표적이다. 야후도 최근 앱 검색 서비스를 선보였다.


그런데 검색전문 사이트인 서치엔진랜드가 앱 검색업체 중 경쟁력이 뛰어난 퀵시(Quixey)를 소개하고 있다. 퀵시를 전 세계에서 유통되고 있는 앱의 80% 이상을 찾아준다고 한다. 


서치엔진랜드 기사에 따르면 퀵시가 다른 앱 검색엔진들과 차별화되는 건 바로 '내용'까지 알려준다는 점이다. 앱 검색 뿐 아니라 기능 검색까지 수행하기 때문에 단순히 앱을 찾고 목록화해주는 정도에 머무는 다른 앱 검색엔진들과는 차별화된다는 것이다. 앱에 어떤 콘텐츠가 담겨 있는 지도 알려준다. 




따라서 퀵시 이용자는 특정 앱이나 앱 카테고리 대신 하고자 하는 작업을 검색해 볼 수도 있다. 서치엔진랜드는 '프랑스어 학습(learn french)'이란 키워드를 입력한 결과를 보여준다.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부가 설명들까지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필요한 앱을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퀵시는 구글의 직접 경쟁자를 자처하진 않는다. 하지만 특정 앱을 찾거나, 앱 콘텐츠를 검색하는 덴 구글보다 좀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앱 콘텐츠에 대한 부가 정보는 개괄적이긴 하다. 그렇긴 하더라도 지금까지 봐 왔던 앱 검색엔진에 비해선 상당히 유용한 편이다. 


다시 서치엔진랜드 기사를 좀 더 읽어보자. 퀵시는 지난 2009년 설립됐으며, 지금까지 약 400만달러 가량을 투자금을 유치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건 퀵시 투자자 중엔 에릭 슈미트 구글 전 최고경영자(CEO)도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물론 HTML5 시대갸 본격적으로 열리게 되면 폐쇄적인 앱 세상은 막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퀵시 같은 앱 검색 전문업체에겐 다행스럽게도 적어도 아직까지는 HTML5 세상은 조금 멀어보인다. 퀵시가 앱 영역에선 구글을 대신하려는 야심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과연 트위터는 저널리즘 도구인가? 트윗을 날리는 것은 저널리즘 행위인가?


어찌보면 식상한 질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통에 방점을 찍고 있는 뉴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과연 저널리즘 도구인가?"란 질문이 제기됐다. 블로그 때도 그랬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대세로 떠오른 요즘도 마찬가지다.


이런 가운데 미국 인디애나 대학 연구팀이 흥미로운 연구를 했다. 정치 전문 트위터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 이들의 행위가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 지 탐구했다. 


아직 연구 초기 단계라 딱 부러진 결론을 이끌어낸 것 아니다. 하지만 니먼 저널리즘 랩 보도에 따르면 연구자들은 "플랫폼 성격상 트위터 이용자는 프로 저널리스트가 하는 것과 같은 유형의 행동을 한다"고 결론내렸다. 공개적으로 아이디어나 정보를 공유하고, 정치적인 이슈에 적극 참여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 마디로 "트위터는 뉴스원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위터 이용자들 역시 저널리스트는 아니지만, 사실상 저널리스트와 비슷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스 입볼드와 에밀리 메츠가란 두 연구자는 해시태그를 이용해 정치 전문 트위터를 가려냈다. 그런 다음 인디애나대학의 트위터 분석 프로그램인 트루시(Truthy)를 이용해서 분서 작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크게 검증(verification), 설명(assertion), 긍정(affirmation) 그리고 특별한 관심(special-interest) 등 네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했다. 이 네 가지는 빌 코바치 등이 연구할 때 사용했던 것들을 빌려온 것이다. 코바치 등은 이런 연구 결과를 Blur 란 책에 담아 냈다. 입볼드 등은 여기에 '해당사항 없음' 항목을 하나 더 추가했다고 밝혔다.


입볼드 등은 다섯가지 카테고리 외에 공격, 칭찬, 반박 등 세 가지 분류기준을 더 적용했다. 이런 연구 틀을 토대로 다중분석을 실시하고 있다. (약 2천500개 트윗 중 현재까지 250개 가량 분석했다고 한다.)


이를 토대로 이들은 몇 가지를 탐구했다. 이를테면 트위터 이용자들이 공유한 정보에 대한 검증 작업을 하는지? 아니면 단순히 정보를 긍정하는 정도에 머무르는지. 혹은 이미 갖고 있던 기존 인식을 좀 더 강화하는 지, 그도 아니면 다른 틀별한 관심을 선전하는지? 


지금까지 연구 결과 '설명' 항목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한다. 선행 연구자인 코바치 등은 '설명' 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속보와 기사의 양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며, 상대적으로 수동적인 정보 수용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 적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저널리즘적인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트위터에서는 설명보다는 기존 사실을 확증하는 성향이 강했다. 또 반박이나 칭찬보다는 공격 성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정치적인 성향에 따른 트윗 경향 분석도 흥미롭다. 상대적으로 좌파 성향이 강한 트위터리안들이 우파 성향이 강한 사람들에 비해  "뚜렷한 맥락 없이 리트윗(retweet without any context)"하는 성향이 좀 더 강했다. 좀 더 감정적인, 혹은 집단적인 성향이 강했다는 의미 쯤 될 것 같다. 좌우파 불문하고 스캔들 편향적인 내용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성향이 강했다는 분석도 재미 있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연구 결과는 따로 있다. 트위터 이용자들이 전통 저널리즘 매체들을 무시하는 성향이 강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트위터 이용자들이 '검증'을 하기 위해 외부 자료를 링크하는 경우에도 전통 저널리즘 매체를 링크하는 경우는 드물었다고 한다. 


'반향효과(echo chamber effect)'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반향효과는 일종의 집단 극화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인터넷이란 밀폐된 공간에서 끼리 끼리 대화를 나누면서 기존 생각이 한층 더 고착되는 현상을 말한다. 


아직은 3천 피트 상공에서 조망한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앞으로 좀 더 깊이 파고들 예정이라고 연구자들은 밝히고 있다. 이들의 연구가 마무리되면 트위터에서 이루어지는 저널리즘 활동에 대한 좀 더 명확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넷에는 '1%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전체 사용자 중 독창적인 콘텐츠를 생산하는 비중은 1%에 불과하며, 리트윗을 하는 등의 방식으로 콘텐츠 유통에 기여하는 비중은 9% 수준이라는 것. 따라서 콘텐츠 유통에 일정 정도 기여하는 비중이 전체의 1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1% 법칙'의 골자다. 


그럼 나머지 90%는? 그냥 '눈팅'만 하는 사람들이다.



SNS에서는 1% 법칙(혹은 1/9/90법칙)이 진리로 통했다. 실제로 적극 참여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전제 하에 이런 전략을 짰던 것이다.


물론 1% 법칙은 과학적인 근거로 도출된 것은 아니다. 추론에 가까운 법칙이다. 하지만 실제로 SNS를 운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졌다.


최근 영국의 BBC방송이 이런 가정을 정면으로 뒤집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BBC 연구팀이 조사한 결과 영국 네티즌들은 77%가 '적극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BBC는 이 같은 변화의 이유를 '예전보다 참여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기술적인 장벽 때문에 참여 비중이 낮았지만, 이젠 선택의 문제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BBC는 그 근거로 "연구 결과 참여에 소극적이었던 23% 중 10%는 얼리어답터였다"고 주장했다. SNS나 인터넷 토론에 적극 참여할 능력은 있지만, 참여하지 않기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BBC의 이번 연구는 네티즌들의 참여를 실제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더구나 전체 이용자 중 77%가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부분은 상당히 눈에 띄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SNS를 중심으로 한 마케팅이나 미디어 운영자들에겐 고무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당연히 "과연 그럴까?"란 질문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대해 기가옴은 "잘못된 접근"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우선 BBS가 1% 법칙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1% 법칙은 전체 인터넷에 대해 일관된 패턴을 도출하려는 것이 아니라,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나 서비스에서 기대할 수 있는 참여의 정도를 개략적으로 서술한 것일 따름이란 게 기가옴의 반박이다.


그런 관점에서 기가옴은 "77%에 이르는 사람들이 특정 순간, 특정 서비스에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를테면 특정 사람이 트위터에선 적극 활동하면서 '1%'에 속하지만, 메타필터 같은 다른 사이트에선 침묵하는 90%에 속할 수도 있다는 것이 기가옴의 반박이다. 그도 아니면 위키피디아에서는 적극적으로 편집자로 활동하지만, 인스타그램에서는 그냥 사진을 훑어보는 쪽에 속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기가옴의 반박을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특정 서비스가 아니라, 그냥 두루뭉수리하게 '적극 참여하느냐'고 묻게 되면 당연히 높은 비율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 이를테면 나한테 누군가가 "인터넷에서 적극 참여합니까?"라고 묻는다면, 페이스북은 적극 이용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확률이 높다는 것. 또 사진 올리는 걸 즐기는 사람 역시 '그렇다'고 답할 가능성이 높고. 


결국 100명이란 모집단을 대상으로 연구했는데, 실제로 그들이 활동하는 모집단을 합하면 그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얘기가 된다. 


BBC의 연구 결과는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하는' 오류에 빠졌다는 것이 기가옴의 주장이다. 기가옴은 이 기사에서 BBC 라디오1 사례에선 '1%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1% 법칙'이란 것도 엄밀히 말해선 과학적인 연구의 결과는 아니다. 따라서 정색을 하면서 논쟁을 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BBC와 기가옴 간의 논쟁에선 웬지 기가옴 쪽에 좀 더 신뢰가 간다. 아무리 양보를 하더라도, 77%가 적극 참여 네티즌이란 BBC의 연구 결과엔 선뜻 동의하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