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은 많은 데, 하고픈 말은 별로 없다. 충격이란 말 외엔, 딱히 떠오르는 말도 없다. 그 분께서 가슴에 담고 갔을 무수한 말들을 생각하며, 그저 슬픔에 잠길 뿐이다.

'바보' 노무현. 그가 남기고 간 많은 과제들은 이제 살아 남은 자들의 몫이다. 그래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말을 되뇌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참 특이했던 17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예상대로 압도적인 표차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다. 1987년 대선부터 투표를 했던 나는, 꼭 20년 만에 개표 방송을 보지 않았다. 승부가 결판난 경기를 관전하는 것은, 결말을 알고 난 뒤 읽는 추리 소설만큼이나 재미 없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안부근은 17대 대선 최대 패배자는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했다. 나 또한 그 같은 진단에 100% 공감한다. (참조: "'李 지지' 어느 순간 한계에 이른다" ) 그만큼 이번 대선은 "**는 흠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찍는다"란 정서가 팽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노무현을 위한 변명'을 하려고 한다. 과연 그가 그렇게도 욕을 얻어먹을 만큼 잘못한 것일까? 적어도 평년작은 한 것 아닌가? 이런 생각 때문이다.

노무현이 깔끔하게 정치를 잘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 노무현 정부의 일부 정책들은 허술하고 서툴기 그지 없었다. 막 고등학교에 입학하려는 자식을 둔 내가 보기엔, 노무현 정부의 교육 정책은 낙제점에 가깝다. 경제 정책 역시 성공했다고 보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과연 상당수 유권자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과 다르면' 찍겠다고 결심할 정도로 잘못한 것일까? 나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노무현의 최대 치적으로 권위주의 타파를 꼽는 편이다. 2002년 대선이 끝난 직후 강준만(혹은 유시민?)은 "노무현의 최대 치적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고 평가한 적 있다. 이 발언은 기적에 가까웠던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었는 데,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돼 버렸다.

그리고 지난 5년 동안 '대통령 노무현'은 엄청나게 얻어 맞았다. 급기야 '가장 무책임한 사람은 노무현 찍은 뒤 이민가 버린 사람'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까지 유행했다.

하지만 난 '노무현 시대'가 갖는 의미는 분명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특히 그가 우리 사회에 몰고온 가치는 김대중의 통일 정책 못지 않은 점수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국민들로부터는 엄청난 미움을 받고 있지만, 난 노무현이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21세기의 가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발언이 노무현 정부가 엄청난 치적을 이뤘다는 뜻은 아니다. 시대 정신이라는 차원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서툴고, 또 세련되지 못한 면이 있긴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우리 사회에서 '권위주의'를 쫓아내버린 것만 해도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 노무현 정부가 '언론과의 불화'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욕을 먹고 있다고 생각한다. '출입처 대못질'로 대표되는 공격적인 언론관으로 인해 언론들이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노무현 정부의 언론관에 선뜻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자실 앞에서 농성하고 있는 기자들에게는 더더욱 동의하지 않는다. 특히 국민들의 알 권리를 명분으로 내세운 기자들이 삼성 문제를 다루면서 '국민들의 알 권리'를 전혀 보장해주지 않는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그러던 차에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란 글을 읽게 됐다. 남재희는 노무현 정부는 평년작은 한 것 아닌가? 란 평가를 하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남재희의 발언을 그대로 옮겨보자.

예를 들면 권위주의를 타파한 것. 각종 권력장치들을 전부 자율화시켰단 말이죠. 검찰을 포함해서. 그것은 상당한 업적 아니냐 이렇게 봅니다.
  남재희 : 또 가령 부동산이 많은 사람들한테 중과세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부에선 그걸 아주 대단히 공격하고 있는데 그건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입장에서 맞는 얘깁니다. 부동산 많이 가진 사람 중과세해야지 어떡합니다. 그래야 재원이 확보되고 여러 가지 사회적 정의에 맞는 거고. 그런데 그것을 엄청난 실정으로 비판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요는, 노대통령이 언론과의 상당히 감정적인 뭐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언론과의 아주 감정적인 싸움을 한 것이.

 박인규 :
뭐 전쟁을 하셨죠 사실은
 
  남재희 : 예. 전쟁이라고 해도 되죠. 그 전쟁을 한 것이 인기가 없는 아주 결정적인 요인이다. 그런 그 언론과의 싸움이라든지 말을 함부로 한다든지 이런 걸 다 제해놓고 다른 나머지만 보면 그래도 평년작은 한 게 아니냐.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남재희가 이야기한 것과 비슷한 관점에서, 난 노무현이 우리 사회에 상당히 중요한 가치를 부여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적어도 '참여정부'라는 명칭에 걸맞을 정도로 국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지는 못했지만, '참여의 시대'인 21세기적 가치를 구현하는 데는 성공했다는 것이다.

언론만 객관적으로 접근했어도, 김영삼 정부 시절 최고 권력자에게 보였던 '아량'의 절반만 보여줬어도, 노무현이 지금처럼 욕먹는 대통령이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본다.

이제 두 달이면 '대통령 노무현'은 청와대를 떠날 것이다. 그리고 떠나는 그의 발길이 그리 가볍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가 퇴임한 이후, 시간이 조금 더 지난 뒤, 지금보다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