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히트는 내게 '극작가' 이미지 보다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시를 남긴 시인으로 더 친숙하다. 1990년대였던가? 박일문이란 작가가 쓴 동명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 소설보다는 소설 끝부분에 붙어 있던 브레히트의 시에 더 진한 가슴떨림을 느꼈던 기억이 새롭다.

하지만 최근 나는 브레히트를 뛰어난 '시민 저널리즘 이론가'로 새롭게 만나게 됐다. 그의 '라디오 이론'은 이미 수 십 년 전에 요즘 웹 2.0을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콘텐츠 생산자로서의 소비자'란 개념을 만들어내고 있다.

브레히트는 새롭게 등장한 미디어인 라디오에 주목하면서 "라디오와 같이 상호작용적이라는 기술적 잠재력을 갖고 있는 미디어는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적인 구조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브레히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라디오는 공공 생활에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기구로 생각될 수 있다. 그것은 대단한 통로 체계이다. 만일 라디오가 단순히 전달할 뿐만 아니라 수신도 할 경우, 다시 말해서 청취자가 듣기만 할 게 아니라 말할 수 있게 하고, 그리고 그들을 소외시키지 않고 자신들의 관계망 안에 끌어들일 경우 라디오는 대단한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될 수 있다.
                            박춘서, <대항공론과 대안언론>. p. 38에서 재인용.
브레히트는 라디오에서 '쌍방적 미디어'의 가능성을 발견했던 것이다. 평범한 시민들이 적극 참여하는 미디어. 모두가 주인이 되는 미디어. 많은 이들은 인터넷의 등장에서, 더 '경박한' 사람들은 웹 2.0이란 말 속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하지만 시민 미디어, 양방향적 미디어에 대한 고민은 이미 그 이전부터 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독자가 기자가 될 수 있는 시민 미디어의 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다.

브레히트는 '플랫폼'만 펼쳐놓으면 '누구나 훌륭한 기자가 될 수 있는' 시민 저널리즘 세상이 펼쳐질 것이란 섣부른 기대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고 있다. 특히 요즘 '웹 2.0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것'이란 과감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한번쯤 들어볼만한 지적이다. 역시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


사람들은 갑자기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숙고하면 그는 말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박춘서. 앞의 책.  p. 37


여기까지 쓰고 보니, 내가 <블로그 파워>에 첨가했던 구절이 떠올랐다. 그래서 서둘러 그 부분을 찾아봤다. 그 부분에서 나는 맥루한과 댄 길모어를 인용한 뒤 이런 구절을 덧붙여 놓고 있었다.


라디오는 참여라는 측면에서 볼 때 전통 매체 중 블로그와 가장 흡사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워드 쿠르츠처럼 '라디오가 블로그 현상의 전조가 됐다.'는 과감한 주장을 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는 아닐테지만, 적어도 블로그 세계의 장점 중 상당 부분은 이미 라디오가 한 차례 누렸던 것들이라는 점은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블로그는 라디오의 많은 장점들을 좀 더 발전시켰다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김익현, <블로그 파워> p. 55.

<블로그 파워>를 쓸 때만 해도, 나는 브레히트의 '라디오 이론'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아니 내가 꽤 좋아하는 시인이, 사실은 뛰어난 미디어 이론가였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못했다. 큰 맥락에서보면 그리 틀리지 않았던 것 같아 다행이긴 하지만, 그 책을 쓸 때 내가 브레히트의 '라디오 이론'을 알았더라면 좀 더 풍부한 서술이 가능했을 것이란 아쉬움까지 비켜갈 수는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