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는 유명한 말로 시작되는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이 겨냥한 것은 19세기의 타락한 산업자본주의였다. 마르크스는 이 책을 통해 산업자본주의의 모순을 예리하게 꼬집으면서 새로운 사회의 희망을 노래했다.

벤 맥토넬과 재키 후바가 공동 저술한 '시티즌 마케터'는 "떠들썩한 그들이 온다"고 선언하고 있다. 여기서 '떠들썩한 그들'은 인터넷으로 무장한 소비자들이다. 이들은 일찍이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처음 제기했던 '프로슈머(prosumer)'이기도 하다.

마르크스가 유령이라고 했던 공산주의가 19세기 사회의 기본 법칙을 뒤흔들었듯이, 이 책 저자들이 "떠들썩한 그들"이라고 명명한 시티즌 마케터(citizen marketer)들은 고전적인 마케팅 법칙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시티즌 마케터들은 스스로 메시지 역할을 하면서 마케팅 현장에서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때론 거대한 기업들을 굴복시키면서 '시티즌 파워'를 과시하기도 한다.

이 책 저자들이 소개하는 델의 사례는 '시티즌 마케터'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잠시 책 속으로 들어가보자.

제프 자비스(Jeff Javis)란 유명 블로거는 자신이 구입한 델의 컴퓨터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바로 애프터서비스(AS)를 의뢰했다. 하지만 델 사의 반응은 너무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이에 격분한 자비스는 자신의 블로그에 '델의 악몽'이란 글을 올렸다. 하지만 델은 여전히 자비스의 외침을 외면했다. 그러자 자비스는 '델의 악몽 2편, 3편'을 연이어 올렸고 같은 경험을 한 블로거들이 공감을 표하면서 델의 오만한 AS 정책에 관한 얘기가 무서운 속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처럼 블로고스피어를 중심으로 시티즌 마케터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 등 주류언론들도 델 사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델은 고객 서비스 체제를 개선하는 데 1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하면서 간신히 AS 파동을 봉합할 수 있었다.

'시티즌 마케터'는 이처럼 메가폰을 손에 쥐게 된 평범한 그들을 주목하라고 강조한다. 아니, 시티즌 마케터들을 외면하면 큰 화를 당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매스미디어 시대에는 빅 메가폰인 전문 언론인 같은 여론 주도층과 관계를 잘 구축하면 됐지만 소셜 미디어 시대에는 그것만으론 안된다는 것이다. 입소문의 진원지인 시티즌 마케터들과 관계를 잘 구축해야만 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일관된 관점이다.

그런 관점에서 '시티즌 마케터'는 소셜 미디어(social media)로 불리는 웹 기반 출판 플랫폼에 주목한다. 예전에는 무력하기만 했던 개인들이 기존 미디어의 거대 메가폰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마케팅 현장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소셜 미디어가 일상화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터넷이 모든 입소문의 플랫폼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이제 메기폰은 일반 대중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 동안 수동적으로 광고를 받아들이기만 했던 그들이 이젠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드라마, 음악 등을 직접 홍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이 쏟아내는 입소문은 전문가들의 정제된 평가 못지 않은, 아니 때론 그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최근 극장가를 뒤흔들고 있는 영화 '디워'의 돌풍 역시 '시티즌 마케터'의 힘이 유감 없이 발휘된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겠다. 언론에서 악평이 빗발칠 때도 네티즌들은 '입소문'을 쏟아내면서 '디워' 광풍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이처럼 시티즌 마케터의 힘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참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유독 최근에 와서야 시티즌 마케터에 대해 주목하게 된 것 역시 바로 블로그로 대표되는 참여 구조가 마련된 데 힘입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람들이 메시지다'는 슬로건은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잘 요약해 주는 말인 것 같다.

이 책은 커뮤니케이션과 마케팅의 전통적인 개념이 평범한 시민들인 시티즌 마케터들에 의해 민주화되고 있는 현장을 소개한다.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이런 사례들은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 감미료 구실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내고 있는 것 같다.

(벤 맥코넬-재키 후바 지음/ 우병현 옮김, 미래의 창 1만2천900원)

또래 아이들이 한 데 모여서 공부하는 제도(즉 학교)가 인류 역사 이래 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잘 아다시피 우리나라에서 대중 교육이 일반화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눈을 세계 역사로 돌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C. 브론테의 <제인 에어>나 스탕달의 <적과 흑> 같은 곳에 보면 가정 교사라는 게 당시 귀족층의 일반적인 교육 방식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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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대부분 직장이 없다는 것에 대해 상당히 조바심을 내고, 또 불안해한다. 또 실제로 불안해 하는 게 당연하다. 사업을 하는 어떤 선배는 "그래도 새경 받을 때가 속 편했다"고 하소연하기도 하는 걸 보면, 직장생활이라는 게 경제적인 안정감을 주는 역할을 하는 건 분명한 듯 하다.

하지만 직장에 매여서 돈벌이를 하는 생활 역시 그리 오래된 풍속은 아니다. 한국이야 1970년대 중순까지도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세계적으로도 똑 같은 장소에 모여 똑 같은 일을 하면서 월급 받아먹는 생활을 한 게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지 싶다.

홀름 프리베 등이 지은 <디지털 보헤미안>은 "직장을 떠나라, 그 너머에 더 나은 삶이 있다"고 부르짓는 책이다. 더 이상 정규직에 얽매이지 말고 좀 더 자유롭게 일하며 풍요롭게 살고 싶다면 디지털 보헤미안의 삶을 주목하라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이 책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전일제 근무는 예나 지금이나 이 특수한 형태의 충성심을 이끌어내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왜냐하면 매일같이 여덟시간 또는 그 이상을 한 회사 내에서 일하는 사람은 회사에 동화되지 않을 수 없을테니까 말이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사장이 하는 농담을 더 이상 비웃지 않게 되며, 오히려 그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회사의 규칙과 업무 스타일이 완전히 피와 살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마치 제2의 천성처럼 되어버리는 것이다. (66쪽)

기본적으로 저자들의 관점은 이런 주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시장으로 직접 들어가라"는 게 이 책 저자들의 주장인 것이다. 이런 주장이 보기에 따라선 다소 과격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나처럼 '직장'이란 우산 속에 들어가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들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아날로그 보헤미안들이 한정된 유통망 때문에 힘든 예술적 삶을 영위해야만 했던 것과는 달리, 디지털 보헤미안들은 인터넷이란 무한 유통망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만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꼭 이 책 때문만은 아니지만 요즘 나도 디지털 보헤미안을 꿈꾼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직장생활이 지겹고 무미 건조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게 보헤미안적인 기질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여건만 되면 과감하게 버리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정규직을 버리고 디지털 보헤미안의 생활을 감행하라는 저자들의 꼬임에는 다소간 방어막을 치고 대처했다. 하지만 시대가 디지털 보헤미안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원론에는 전폭적으로 지지를 보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저자들은 블로그에 대해서도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 중 한 구절을 소개한다.


블로그라는 세상에 발을 들여놓으면 마치 술집, 광고탑 그리고 소도시 신문들이 뒤섞여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때로는 어느 공공 포스터에 게시된 공격적인 선언문 아래서 기분 좋은 술집에서 몽롱하게 취한듯한 느낌으로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 속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 술집 안에 있으면 바깥의 넓은 세상 속에 펼쳐진 잡다한 것들이 모두 걸려들어 안으로 들어오며 밖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주변에 대해 더욱 폭넓은 정보를 얻는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2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