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탄핵방송의 공정성 문제가 화두로 떠오른 적 있다. '아무리 느슨한 잣대를 들이대더라도' 방송사의 탄핵 보도는 불공정했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결론이었다. 학회의 일부 연구자들은 획기적인 연구 업적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그 문제를 놓고 작년 학회에서 논쟁을 벌인 적 있다. PD들과 학자 몇 명이 참석한 논쟁이었다. (당시 보고서를 쓴 분이 아무도 패널로 나오지 않아서 다소 의아했던 기억은 있다. 아마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 논쟁을 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이론과 실무의 괴리였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양적 연구'의 어쩔 수 없는 한계였다. 실제로 텔레비전 화면에 나타난 기호들을 '양적'으로 비교하면 당연히 '편파적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SPSS를 돌리면, 평상시의 방송과는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편파성'만'의 문제일까? 당시 토론에 참가했던 한 PD는 이를 '선정성의 문제'로 해석했다. 신발이 날아가는 장면, 국회의원들이 울부짓는 장면 같은 것들은, 설사 탄핵이 아니더라도 '화면에 담으려고 했음직한' 그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접근하면 질적인 접근방식이 되는 것인가?

이지님이 올린 '이론과 실무'란 글을 읽으면서 난 엉뚱하게도 '이론과 실무의 괴리'를 자꾸만 떠올리게 됐다. 그건 내가 실무에 몸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내가 종사하고 있는 온라인 저널리즘 관련 논문들을 읽으면서 내가 느끼는 불만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학회에서 발표되는 상당수 논문들에서 난 '왜?' 내지는 'so what?'이란 질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적어도 실무 종사자 입장에선 그랬다는 얘기다.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다, 란 얘기만 지겹도록 들었지만, 그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 과연 실체적 진실까지 담보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는' 학위 논문을 써야 한다. ^.^)

그렇다고 해서 이론의 힘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패러다임을 바꾸는 건 이론의 힘인지도 모른다. 실무에 젖어 살다보면 자신이 지금 얼마나 답답한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는 지, 관성이란 수렁 속에서 얼마나 허우적대고 있는 지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것을 지적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이론으로 무장한 학자들이다.

이지님이 실무 담당자들에게 '놀라움'을 느꼈던 만큼이나, 나도 '이론가(?)'들에게서 보편적 진리의 힘을 자주 발견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론과 실무의 괴리를 더 강하게 느끼는 것은, '놀라움'을 주는 것은 일시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더 깊은 곳에선 여전히 강한 괴리가 자리잡고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론과 실무의 괴리를 좀 더 타파하기 위해선, 서로가 서로를 인정해야 할 듯하다. '현실을 모르는 공상가' '이론적 기반이 없는 사람들'이란 일방적 시선을 거두어들여야 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