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 님이 쓴 집단지성에 대한 회의 란 글을 읽었다. 짧은 글이고, 또 약간은 넋두리성의 글이긴 했지만, 그래도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거리를 던져준 것 같다.

발단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한 한국인 23명 피랍사건이다. 나 역시도 이 사건과 관련해 인터넷 공간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서 가슴 답답한 느낌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필로스 님의 다음과 같은 발언에 대해 적지 않게 공감했다.

도무지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글들이 블로고스피어를 지배하고 있다. 현재 블로그코리아의 자동편집기능(실시간 인기태그+인기글 조합 표현)을 활용한다면 '죽으려고 갔으니 죽어라'는 글이 블로그코리아의 메인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다.
이걸 막고, 주말 내내 좀더 이성적인 글들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던 나는 메타블로그 운영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들의 판단에 맡겨 놓는 것이 메타블로그의 정신에 맞는 일일까.

나 역시 최근 들어 이런 회의를 많이 갖고 있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일을 하다보니, 네티즌들의 '광기어린(?)' 비판에 직면할 적이 적지 않다. 특히 이제 막 기자 생활을 시작하는 후배들은 네티즌들이 무심코 던지는 돌들에 적잖은 상처를 받고 있는 걸 자주 본다.

그저께였던가. 같은 팀의 후배가 '다이하드 4.0'이란 영화를 본다기에, 컴퓨터 보안 관점에서 그 영화에 대해 한번 써보라는 미션을 줬다. 물론 쉽지 않은 소재이고, 잘못하다간 크게 비판당할 우려가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 크는 것 아닌가, 란 생각에 빨리 쓰라고 재촉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취재한 기사가 출고됐다. 거기에 내가 살을 좀 붙여서 출고했다. 이 기사가 포털에 나간 뒤 네티즌들이 온갖 비판을 쏟아댔다. 주로 '기자 바보 아니냐'는 것이 네티즌들의 주장이다. 또 내가 '프리즌 브레이크' 얘기를 약간 덧붙였는 데, 그 부분이 오류가 있었던지, 바보 같은 기자라는 '폭언(이 정도는 폭언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갓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에겐 엄청난 상처를 안겨주는 말이다.)'을 해댔다.

나는 그 동안 인터넷 공간에선 네티즌들의 자율적 정화 기능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걸 집단 지성에 대한 믿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인터넷 공간, 더 정확하게는 포털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집단지성'과는 거리가 멀다.

왜 그럴까? '집단지성'이란 설정 자체가 잘못된 것일까?

곰곰히 생각해보던 난, "인터넷 공간에도 참여 장벽이 있다"는 쪽으로 잠정적인 결론을 내려 버렸다. 집단지성이 가능하려면 '누구나 참가'해야 하는 데, 인터넷 공간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 말? 이라고 할 지 모르겠다. 내가 여기서 얘기하는 건 '가능성'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인터넷은 당연히,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공간이다. (인터넷과 컴퓨터의 혜택을 볼 수 없는 사람을 빼면. 이 문제도 상당한 장벽이긴 하지만, 일단 논외로 하자.)

하지만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실제로 참여한다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일전에 포털 쪽에서 일하는 사람으로부터 "공감할 수 있는 기사보다는, 공분을 불러 일으키는 기사가 더 파급력이 크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바로 그 부분에서 '집단지성'이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 아닐까? 즉 '공분'(이란 표현은 너무 점잖고, 직설적으로 화를 내는, 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까?)에 가까운 글을 쓰는 사람들이 훨씬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다보니까, 전반적으로 필로스 님이 걱정하는 것 같은 현상이 생기는 것 아닐까?

그래서 나는 '집단지성은 절대로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집단지성이 발휘될 수 있는 시스템을 계속 고민하고 만들어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메타블로그 사이트 같은 곳에선 이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게 집단지성의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비유는 어떨까? 한국 부자들에 비해 미국 부자들이 '사회 환원'에 훨씬 더 적극적이다. 상속세를 낮추겠다는 부시 행정부를 대대적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도 바로 '부자'들이다.

그들이 왜 그럴까? 물론 도덕성을 갖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뿐일까? 단지 미국 부자들이 한국 부자에 비해 더 도덕적이기 때문일까? 난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사회의 시스템이라고 믿는다.

(잘은 모르지만) 미국에선 기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 기업은 '탐욕스런 기업'으로 찍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바로 불매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대권 주자들 역시 '탈세 차원'이 아니라 '수입에 비해 납득할 만한 기부를 하지 않았을 경우'엔 결정적인 결격 사유가 된다. 이게 바로 사회 시스템이다. 이런 시스템이 가동되는 사회에서 어린 시절부터 자라왔기 때문에 '부자의 도덕성'도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이다.

글이 두서 없이 길었다. 필로스 님의 '집단지성 불신론'에 대해서는 전폭적으로 공감한다. 당연히 그냥 놔두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메타블로그 사이트가 어려운 것 아닐까? 메타블로그에 글을 보내는 사람들이 '집단지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게 꼭 감시시스템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정말 납득할만한 당근이 있다면, 그것 역시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 있을 테니까?

따라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들의 판단에 맡겨 놓는 것이 메타블로그의 정신에 맞는 일일까."란 마지막 독백에 대해서는 "아니요"라고 말하고 싶다.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사람들이 수동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자동으로 구현되는 시스템.

(이런 진단에 대해 무책임하다고 할 지 모르겠다. 나도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할 순 있지만, '어떤 시스템'인지는 모르겠기 때문이다. 또 솔직히 말해, 내가 필로스 님 입장이라면,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식의 '뻔한 얘기'를 들으면 엄청나게 화가 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호흡 강한 걸음'으로 차근 차근 정진하길 바란다.  

  • snowall 2007.07.26 15:08

    제 생각에는 한국어로 된 집단지성은 아직 규모가 작아서 쉽게 변화에 휘둘리는 것 같습니다. 아직 "지성"이 되기에 작다는 뜻입니다. 집단의 크기가 훨씬 커진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올바른 집단 지성의 모습이 드러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필로스 2007.07.26 15:09

    논평 감사드립니다. 참여의 possibility와 probability 그리고 실제 참여와의 차이에 대한 지적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 부분을 간과하고 있었네요.
    무한한 격려 덕분에 항상 힘을 얻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Draco 2007.07.26 15:34

    엉뚱한 이야기지만, 10여전전에 나온 '블러드 뮤직'이라는 하드 SF가 있습니다. 인간의 임파구 세포에 유전자 변형을 가해서 세포 자체가 사고를 할수 있게 바꾸었을때 파국을 그린 이야기인데요, 인간단위가 아닌 세포단위의 사고가 이루어 졌을때 그 사고하는 주체의 숫자와 파급력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나라의 네티즌과 일부 포탈 댓글 참여자의 숫자는 상당히 제한 되어 있습니다. 엑스리브리스님의 기사에 댓글 단 사람들도 따지고 보면 집단지성이라는 불꽃이 일기에는 너무 작은 불씨...(불씨라기엔 거의 약간 높은 온도 수준)에 불과할겁니다.
    적은 인구 자원으로 집단지성이 일어날려면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참여하고, 더 자주 참여하고, 더 많은 커넥션과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며 그것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 그 기사 흥미 있게 읽었습니다. 제 생각에 "공분을 일으키는것이 파급력이 크다"라는 이야기는 댓글에도 적용됩니다. 좋게 본 사람은 댓글 안달고 나쁘게 볼 꼬투리라도 찾은 사람이 댓글 달기 마련이에요. 악플달렸다고 절대적인 의미로 나쁘게 평가받은게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힘내세요.

  • 푸른가을 2007.07.26 17:19

    어쩌면 집단지성은 없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

    아참, 저도 네이버에서 해당 기사를 본 것 같은데 악플달 정도의 글은 아니었던거 같은데.. ^^

    • 엑스리브리스 2007.07.26 22:37 신고

      그래도 집단지성에 대한 믿음까지 버린 건 아닙니다. 단지 집단지성이 구현될 수 있는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 lovol 2007.07.26 19:08

    참여의 possibility와 probability 그리고 실제 참여와의 차이는 투표행위와 선거제도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집단지성에 대한 회의는 passions간의 경합을 interest의 스케일로 잴 때 생기는 오차때문일런지.

    http://armarius.net/ex_libris/archives/000913.html

    http://cafe.naver.com/nonsulart.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075

  • 이승훈 2007.07.27 23:30

    저는 엑스리브스님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저는 이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글들, 조롱, -심지어는 배종규목사가 피살당한 날에도 네니즌들은 일일시트콤 탈레반이라는 패러디 이미지와 패러디 씨엠송을 가지고 여전히 배목사와 선교봉사단원들을 모욕을 하기까지 합니다- 딴 것이 아니라 이것이 바로 집단 지성입니다.

    인터넷세상에 빠져보면 압니다. 자기가 네티즌이 돼보면 색즉시공 공즉시색, 그냥 보면 집단적 광기로 보이는 이것이 사실은 광기가 아니라 바로 집단지성이라는 것을 느끼게되고(아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 왜 네티즌들이 그런 말도 안되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처럼 행동하는지를 느끼게됩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농담도 아니고 반어도 아닙니다. 진심이고 진지한 이야기입니다. 언젠가 미디어교육의 관점에서, 온라인상의 의사표현방식에 관해서 이 문제를 좀 더 깊이 다뤄봐야겠다고 생각합니다만.. 아무튼 지금 네티즌들의 태도는 집단적으로 볼 때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지극히 이성적인 행동입니다. 지금 집단지성이 구현될 수 있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있고 집단지성이 잘 발휘되고 있습니다.

    ps: 오래간만에 찾아뵙습니다. 저 이번에 인터넷신문 뉴스보이를 창간했습니다. 네티즌의 말과 행동은 결국 언제나 옳다는 것을 모토로하는 신문입니다.

    www.newsboy.kr 한 번 방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엑스리브리스 2007.07.28 19:29 신고

      뉴스보이 복간 소식은 들었습니다. 번창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집단지성에 대해선, 저랑 생각이 많이 다르시네요. 좀 더 깊이 있는 토론이 필요한 부분인 듯 합니다.

  • delight 2007.07.30 16:42

    울나라 집단지성의 위치가 여기까지겠지요. 가야할 길은 있는듯. 아직은 감정의 표현이 지나치게 많고.

    블로고스피어에 올라오는 글들이 반이성적으로 보이기는 해도 솔직하다는 생각은 들때가 있어요. 톡까놓고 말하는게 좋아보일때도 있고.

    꼭 블로고스피어의 여론이 사회적인 잣대와 맞아야 하는건지 하는 생각도 들때도 있고.

    하여튼 헷갈립니다.^^

  • nooe 2007.08.09 18:10 신고

    좀 작게 시작하더라도 '촘촘하게 엮여야' 집단지성이란게 생길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한국 블로그 사이트들 아쉬운 부분이 많아서 그냥 지나가다 살짝 답글 남깁니다. ^^

요즘 올블로그와 딕닷컴(digg.com)이 추천수 조작 논란에 휘말렸다. 특히 올블로그에선 하루에도 몇 건씩 추천 시스템과 관련한 글들이 올라온다. 이를 집단지성의 위기로 진단하는 글들도 수시로 눈에 띈다. 그 얘기를 하기 전에, 잠시 현학(?)을 뽐내어보도록 하자.

Johnson notes that to manage the growth of Slashdot's audience while maintaining its open and participarory structure, Sashdot relied on emergent behavior, allowing decentralized control and interactions between the audience without the interference of the sites's creator. <Blogging, Citizenship, and the Future of Media> p. 228.

스티브 존슨의 <이머전스(Emergence)>에 나오는 글을 필자가 인용한 것이다. 슬래시닷은 공개, 참여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늘어나는 독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emergent behavior'에 의존했다는 얘기다. Emergence는 '창발' 정도로 번역되는 것 같다. 복잡계 경제학에서 주로 사용되는 용어로 '복잡계의 구성요소가 개별적으로 갖지 못한 특성이나 행동을 구성요소를 함께 모아높은 전체 구조(유기체)에서 자발적으로 돌연히 출현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무슨 얘기인 지 알듯 모를 듯 하다.

뭐, 그 얘긴 그 정도로 넘어가고. 슬래시닷은 결국 독자들에게 분산 통제 시스템을 도입하고, 독자들간의 상호작용을 허용하는 방식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 스티브 존스의 진단이다. 물론 이런 시스템 도입을 통해 나름대로 성공했다는 얘기인 셈이다.  

슬래시닷을 꼼꼼하게 살펴보지 않은 입장에서, 위의 진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분명 올블로그에선 그런 노력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참여=방임이란 등식은 절대 성립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질서유지 노력(사실 말이 최소한이지, 이게 무식하게 검열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다)은 분명 뒤따라야 한다고 본다.

올브로그처럼 'winner takes all' 시스템을 유지하는 사이트에선 당연히 '추천수 조작'은 있게 마련이다. 포털에서 5분 먼저 올리면 10만 클릭(100만 클릭이었나?) 차이가 난다는 얘기가 있던데, 그 정도는 아니어도 올블로그 역시 비슷한 매커니즘으로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추천수를 조작하려는 욕구를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은 반드시 필요하다. (대중은 선하다는 것은 망상이다. 대중을 선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의 '착한 마음'이 아니다. 선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해주는 시스템이 그들을 선하게 만들어준다.)

추천수 조작=집단지성 위기?

위에 인용한 글의 필자는 커뮤니티 블로그들은 특히 다수의 폭거(tyranny of the majority)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연한 얘기이고, 별다른 토를 달 필요가 없는 주장이기도 하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따로 있다. 집단지성이란 말이 남발되고 있다는 얘기다. 추천시스템이 곧 집단지성은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추천 시스템만으로는 진정한 집단지성을 구현했다고 하기 힘들다는 게 내 생각이다. 즉 '추천수 조작=집단지성의 위기'가 아니라, 추천 시스템을 뒷받침해줄 진정한 집단지성 체제가 구축되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나는 황우석 사태가 한창일 때 브릭 사이트에서 집단지성 시스템을 제대로 구경했다. 당시 그 사이트 운영자들은 집단지성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엄청나게 고생한 것으로 안다. 그 덕에 우리는 정말 좋은 구경할 수 있었다.)

따라서 딕닷컴이나 올블로그가 추천수 조작 시비에 휘말리게 된 것은 집단지성의 위기가 아니라는 게 내가 주장하고 싶은 요지다. 그건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집단지성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란 얘기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delight님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괜히 제목으로 낚시질 한 것 같아 좀 민망하기도 하다. 딕닷컴이야 자주 이용하지 않으니 잘 모르겠고, 올블로그는 제대로 된 집단지성 시스템을 구축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