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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0년 만에 허영만의 '오 한강'을 다시 봤다. 그리고 20년 세월만큼이나 다른 느낌을 받았다.

내가 처음 이 만화를 본 것은 1987년. 당시 작가 허영만은 이 만화를 '만화광장'이란 잡지에 연재하고 있었다. 말년 병장이었던 나는 군대에서 이 만화를 봤고, 이내 그 엄청난 내용에 푹 빠져들어갔다.('오 한강'은 그 무렵 읽었던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과 함께 내게 만화의 힘을 일깨워준 소중한 작품이다.)

'오 한강'은 엄청난 내용만큼이나 각종 '설'이 난무했던 만화였다. 그 중 가장 유력했던 설은 바로 이 만화가 안기부의 도움을 받은 반공만화라는 내용이었다. 작가는 '세세한 내용은 간섭하지 않고 전체 메시지로 이야기한다'는 약속을 받고 이 만화를 그렸다는, 그럴듯한 소문까지 떠돌았다. (물론 이 소문은 확인 불능이다.)

그 때문에 '오 한강'의 결말이 실망스러웠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였다. 어정쩡한 반성으로 마무리되면서, 반공 만화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끝 부분이 다소 진부한 반공(反共) 내용으로 낙착되지만, ‘오! 한강’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다"는 것이 이 만화를 읽은 대다수 독자들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이 만화를 다시 보면서 난 다른 느낌을 받았다. 주인공인 이강토가 혁명적 열정에 불타 오르던 전반부보다는, 회의하고 번민하는 후반부에서 훨씬 더 진한 감동을 느꼈다. 나이 탓인지, 아니면 세월 탓인지, 그도 아니면 그 둘이 다 영향을 미친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난 3권 중반이후 고민하고 번뇌하는 주인공 이강토의 모습이 훨씬 더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작가가 어정쩡하게 현실과 타협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허영만이 하고 싶었던 얘기는 바로 그 부분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내가 보기에 '오 한강'은 예술만화였다. 주인공 이강토와 그의 아들 이석주가 예술의 참 의미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린 만화. 또 민족, 통일운동이라는 것이 직선과 같은 강렬함과 과격함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삶과 예술이라는 메시지.

아버지인 이강토와 아들 이석주가 예술을 통해 화해하는 대목에서,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여전히 통일이란 거대한 과제가 남아 있다(정확한 인용은 아님)"는 이석주의 독백은 작가 허영만의 역사의식이 녹록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내가 이데올로기적 열정에 덜뜰 나이가 지난 때문일까? 허영만의 '오 한강'은 (결말 부분까지 포함해서) 시대를 앞선 한 편의 거대한 역사 서사시로 읽어도 크게 모자람이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