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 팀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이 많은 축구팬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 적 있다. '비상'은 별 다른 각색 없이 영화 감독이 인천 선수들과 1년여 시간을 동고동락하며 그들의 일상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낸 작품이다.

선수들 역시 카메라에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행동하게 됐고, 그것이 또 다른 감동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현실이 영화보다 더 극적이다'는 명제가 그대로 적용되면서 '비상'은 다큐멘터리 영화의 성공 사례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최근 몇몇 사람들과 함께 5.18 광주 항쟁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를 봤다. 영화를 보는 내내 '참 잘 만들어진 작품'이란 느낌을 받았다. 화려한 출연진과 탄탄한 연기, 그리고 잘 짜여진 극본이 어우러져 한 편의 멋진 영화를 탄생시킨 듯했다.


'화려한 휴가'는 '가장 온순했던 사람들이 가장 열렬한 투사로 변신해야 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때론 격정적으로, 또 때론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영문도 모르고 역사의 급물살에 휘말려 총을 들었던 민초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1980년 광주의 영상'을 유감 없이 담아낸 '화려한 휴가'는 예술적 완성도 면에선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작품이다. 어쩌면 이 정도의 예술적 성취가 가능했던 것은 20년이란 세월의 더께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1980년대가 아니라 2000년대를 살고 있는 기쁨"을 몸 속 깊이 체험했다.

하지만 감동이란 측면에선 썩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었다. 충격적인 화면들과 긴박한 극적 구성이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영화 속으로 몰입하지는 못했다.

민우(김상경 역)가 사랑하는 동생을 잃고 망연자실 앉아 있을 때도, 연인인 신애(이요원 역)를 떠나보내고 돌아설 때도, 그냥 무덤덤하기만 했다. 신애가 "우리를 기억해주세요"라고 절규할 때, 내 눈에 잡힌 것은 영화 속 신애가 아니라 그 때 그 곳에서 두려움에 떨던 평범한 시민들의 얼굴이었다.

왜 그랬을까? 잘 만들어진 영화 '화려한 휴가'와 그 영화를 보는 관객인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장벽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기자는 그 해답을 '영화로 담아내기엔 너무나 극적이었던 현실'에서 찾고 싶다. 그 당시 광주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들과 화면들.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들은 영화로 그려내기엔 너무나 큰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아니, 어쩌면 현실을 그대로 전하는 화면들과 이야기들에서 영화 같은 장면들을 너무나 많이 접했기 때문에, 영화에선 그 이상 보여줄 게 없었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영화에 등장하는 잔인한 권력의 폭력은, 현실에서 행해졌던 폭력에 비해선 강도가 많이 약해 보였다.

1980년 광주를 둘러싼 이야기는 영화로 만드는 순간 그건 더 이상 영화가 아니었다. 우리들의 생생한 현실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현실을 바라볼 때 느끼는 것은 '감동'이 아니라 '두려움'과 '아픔'이다. 극적인 거리를 유지할 준비가 되지 않은 관객들에게 '현실의 아픔'은 현실 이상의 감동을 주긴 힘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화려한 휴가'는 극적 완성도 면에선 뛰어난 작품이다. 하지만, 극적 완성도만으로는 현실이란 거대한 장벽을 뛰어넘기는 힘들었던 것 같다. 그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선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일까? 아니면, 좀 더 극적인 묘사를 동원해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