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널리스트들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암울한 미래’란 말은 이젠 일상 용어가 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이나 뉴욕타임스 같은 메이저 언론사에서 인터넷 업체로 이직하더라도 전혀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뉴욕타임스, USA투데이 등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일간지로 꼽히던 워싱턴포스트가 아마존 창업자에게 팔렸을 때 보인 반응은 언론산업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워싱턴포스트에겐 정말 다행”이란 게 주된 반응이었다. 


(국내 대표적인 탐사보도 전문 언론사인 뉴스타파 대표가 ‘한갖 전자상거래 업체에 인수’ 어쩌고 하는 글을 올렸다가 호된 비판을 당하기도 했다.)


더 비참한 건, 저널리즘의 미래를 외부 동력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외부의 힘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점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궁금하신 분은 '헌집 고치기'와 새집 짓기' 란 글을 참고하시라. 


그런 점에서 내가 요즘 주시하는 인물이 두 명 있다. 야후의 마리사 메이어 최고경영자(CEO)와 이베이 창업자인 피에르 오미다르다. 


잘 아는 것처럼 오미다르는 미국 NSA의 전방위 사찰 사실을 폭로한 글렌 그린왈드 등과 함께 새로운 매체를 준비하고 있다. 난 그가 어떤 그림을 들고 나올 지 무지 무지 기대하고 있다. 그러니 오미다르 얘기는 그 때 하기로 하자. 오늘은 야후의 미디어 전략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마리사 메이어의 콘텐츠 왕국 건설기 


지난 해 여름 마리사 메이어가 처음 야후 CEO를 맡았을 때 다소 의아했다. 능력 있고 야심만만한 구글 여성 임원이 왜 야후 같은 난파선 선장 노릇을 하려고 하는 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올 초 섬리(Sumly)란 앱을 인수하는 것을 보고 생각을 바꿔 먹었다. 마리사 메이어가 왜 야후 CEO를 수락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물론 내 짐작이 틀릴 가능성도 많다.) 당시 그 뉴스를 접하자 마자 흥분해서 잠든 언론사에 돌직구 던진 17세 천재란 칼럼을 쓰기도 했다.


그 때 이후 야후의 행보를 조심스럽게 살피기 시작했다. 메이어는 지난 1년 사이에 20개가 넘는 기업을 인수했다. 인수한 기업의 면면들을 한번 살펴보라. 엔지니어 확보를 위해 인수했을 법한 기업들 빼고 나면 메이어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대충 보일 것이다. (야후 1년 새 20개 기업 인수…어떤 속셈? 참고. 특히 기사에 삽입돼 있는 표를 유심히 볼 것.)


소셜 큐레이션, 개인맞춤형 콘텐츠, 뉴스 요약, 모바일 블로그 등이 눈에 띈다. 뭔가 새로운 콘텐츠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지 않는가? 잘 모르겠다고? 내가 보기엔 마리사 메이어는 지금 ‘콘텐츠 제국’ 건설이란 원대한 꿈을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또 있다. 마리사 메이어가 최근 들어 저널리스트, 혹은 그 비슷한 역할을 할 사람을 끌어모으고 있다는 점이다. 플랫폼을 어느 정도 갖췄으니, 그 다음 단계로 그 플랫폼을 활용해 콘텐츠 제국을 건설할 장수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 같단 얘기다.


데이빗 포그 얘기는 많이 했으니, 그냥 패스하자. 


이젠 저널리스트 영입에 총력 


오늘 올싱스디지털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야후 인력 채용 담당자가 자사 기자 두 명에게 이직을 권유하는 이메일을 보냈다는 뉴스다. 그리고 메일 전문을 공개했다. (이런 뉴스를 싣는 올싱스디지털. 역시 대단하다. 이건 콘텐츠 지형도 내의 권력 투쟁이란 공적 가치가 충분한 뉴스이기 때문이다.)



[야후가 올싱스디지털 기자에게 스카웃 제안한 사실을 폭로한 기사]


이 기사를 쓴 기자 이름이 카라 스위셔다. 월터 모스버그와 함께 올싱스디지털을 이끌고 있는 인물. 이 기사에 링크돼 있는 또 다른 기사를 보니 카라 스위셔는 데이빗 포그 때 이미 나와 비슷한 해석을 하고 있었다. (물론 난 올 초부터 그런 느낌을 받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얘기. 절대로 내가 카라 스위셔보다 더 뛰어난 통찰력을 가졌단 ‘깔대기’가 아님. ㅋㅋㅋ 이런 얘기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는 분 없겠죠?)


이 메일에서 야후 관계자는 ‘테크 버티컬’의 새로운 움직임을 선도할 능력 있는 저널리스트를 물색한다고 돼 있다. 


카라 스위셔의 기사에는 야후가 CBS의 인기 앵커 케이티 쿠릭도 노리고 있다고 돼 있다. 케이티 쿠릭이 누군지 궁금하신 분? 여성 앵커로는 사상 최초로 미국 3대 지상파 TV 중 한 곳인 CBS의 저녁 뉴스를 단독 진행하고 있는 인물이다. 


마리사 메이어는 케이티 쿠릭을 영입한 뒤 인터뷰 형식의 뉴스 쇼를 만들 계획이란 소문이 있는 모양이다. 아마도 성사된다면 손석희 씨가 JTBC 9시 뉴스 앵커 맡는 것 만큼 센세이셔널하지 않을까 싶다.


야후는 또 미키 로젠의 이직 이후 공석인 미디어 책임자 자리를 채울 인물도 물색 중이라고 한다. 이렇게 진용을 갖춘 야후가 어떤 미디어를 갖고 나타날 지 심히 궁금하다. 


동영상과 테크 뉴스가 야후 콘텐츠 전략의 출발점 


야후 미디어 전략의 핵심은 동영상(video)과 테크 뉴스인 것 같다. 하지만 카라 스위셔는 메이어는 표면에 드러난 것보다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 마디로 테크 뉴스를 앵커(anchor)로 삼아서 확장해나가려는 것 같단 얘기다. 


(앵커가 뭔지 궁금하신 분. 월드와이드웹이나 하이퍼텍스트에서 연결 고리를 의미한다. 우리가 클릭하는 곳이 앵커라고 보면 된다. 그 앵커들이 링크로 거미줄처럼 연결된 것이 바로 웹이다.)


메이어는 구글에 있을 때도 콘텐츠 쪽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구글의 자갓(zagat)인수를 주도했다고. 하지만 카라 스위셔는 메이어가 구글에 있을 때는 콘텐츠 쪽에서 별다른 재미를 보진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야후에선 상황이 다를 수도 있다. 거대한 콘텐츠 제국을 만들겠다는 마리사 메이어의 꿈. 아니 야후의 꿈은 성공할까? 참고로 난, 마리사 메이어가 야후 부활 전략의 초점을 잘 잡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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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나온 영화 ‘트로이’를 한번 떠올려보자.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건 병사가 아니었다. 장수간의 ‘맞장’에서 승패가 갈렸다. 역사가 기억하는 건 헥토르와 아킬레스 같은 영웅들 뿐이었다. 


이번엔 눈을 동양으로 돌려보자. 뻥이 심하게 들어가 있는 나관중의 ‘삼국지’를 한번 보라. 조자룡은 헌 창 한 자루로 조조 백만대군 속을 휘젓고 다닌다. 장비는 장판교 위에서 홀로 조조 군을 막아낸다. 역시 역사는 도원결의 삼형제와 조조, 손권 같은 영웅들만 기억한다. 


이런 시기를 우리는 ‘영웅시대’라고 부른다. 신들의 시대에서 인간의 시대로 넘어가던 과도기. 소설가 이문열은 자신의 얘기를 담은 소설에 <영웅시대>란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여기 또 다른 영웅이 두 명 있다. 월터 모스버그와 데이빗 포그란 영웅. 둘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 무렵부터 고정 코너를 맡아온 칼럼니스트들이다. IT시장이란 거대한 전장터에서 이들은 내로라하는 영웅이었다.



[월터 모스버그의 Personal Technology 칼럼]. 


1990년대 후반. 윈도95를 비롯한 수 많은 제품들을 다룬 모스버그의 칼럼은 그 시대의 성전(聖典)이었다. 덕분에 모스버그의 칼럼을 게재한 월스트리트저널도 큰 수혜를 봤다. 데이빗 포그가 쏟아낸 하드웨어 칼럼도 많은 IT 마니아들을 흥분시켰다. 


(그런데 난 왜 ‘성전’이란 단어에서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이 떠오르는걸까? 그 만화 초반부. 떠돌이 까치에게 초등학교 친구 엄지가 보내준 편지는 삶의 유일한 희망이자 목표였다. 나중에 엄지를 만난 그는 “네가 곧 나에게 신이었고, 그 편지는 내게 성전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이 둘이 자리를 옮긴다. (자세한 얘기는 지난 번에 올린 글을 참고하시길.) 월스트리트저널이 월터 모스버그와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한 것.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올싱스디지털과 제휴 계약을 끊었다. 그래서 모스버그는 더 이상 월스트리트저널과 관계를 갖지 못하게 됐다. 게다가 올싱스디지털이란 명칭 역시 남겨두고 떠나게 될 것 같다.


포그는 잘 아는 것처럼 뉴욕타임스의 품을 떠나 야후로 옮겼다. 이런 비유가 가능할 진 모르겠다. 동부 영웅이 서부로 건너가버린 셈이다.


뉴요커와 기가옴의 '같은 진단, 다른 해법' 


영웅의 부재. 그건 곧 권력 공백을 의미한다. 누가 그들을 대신할 것인가?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 궁금증을 참다 못한 뉴요커가 칼럼을 하나 실었다. WAITING FOR THE NEXT GREAT TECHNOLOGY CRITIC이란 칼럼. 제목에서부터 어떤 내용일지 확 들어온다. 


뉴요커의 논조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이제 테크 칼럼은 기술이 아니라 문화로 접근해야 한다. 이를테면, 성능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으론 독자들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한다. 생태계라든가, 생활이란 관점에서 좀 더 폭넓게 접근할 줄 알아야 한다. 


그 부분을 직접 인용해 보자. 


What people are choosing is less an iPhone 5s over a Moto X than an entire digital ecosystem that surrounds and permeates their life, and which will affect every other piece of technology that they buy. Not only are these decisions becoming more divorced from the traditional product cycle—it’s increasingly difficult for reviewers to fully evaluate these ecosystems as they grow deeper, more personalized, and more dependent on the technologies used by someone’s social circle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어떤 제품을 살 것(what to buy)이냐, 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how to live)를 고민하게 됐다는 것이다.


둘째. 그렇기 때문에 모스버그나 포그 같은 ‘영웅’들이 여전히 필요하다. 단순히 제품의 기술이나 성능을 설명하는 칼럼이 아니라 삶과 문화까지 포괄할 수 있는 내공을 가진 영웅. 과연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은 그 부분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란 걱정을 하고 있다.


이 칼럼이 나오자 기가옴의 매튜 잉그램 기자가 곧바로 반박하는 글을 실었다. 이제 영웅들의 시대가 가고 민중들의 시대가 열릴 것이란 관점을 견지한 글이다. 


이젠 모스버그나 포그 같은 장수들이 전투를 좌우하는 시기가 아니란 것. ‘차세대 모스버그’를 찾겠다는 건 ‘차세대 크롱카이트’를 찾아 헤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게 매튜 잉그램 기자의 주장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젠 그런 시대는 지났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뉴요커와 기가옴은 같은 관점에서 다른 해법을 내놓고 있다. 무슨 얘기인가? 둘은 IT가 이젠 기술이 아니라, 생활이고 문화라는 덴 인식을 같이 한다. 


그렇기 때문에 뉴요커는 모스버그나 포그 같은 영웅들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기가옴은 영웅들의 시대는 갔고, 이젠 무수히 많은 민중들이 그 자리를 충실히 메워줄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난 개인적으로 기가옴의 의견에 살짝 동의하는 편이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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