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주 동안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가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미국 정부가 구글, 페이스북 등 주요 IT 기업들의 서버에 접속해 개인 정보를 수집해 왔다는 사실이 공개된 때문이다. '프리즘' 프로젝트로 알려진 미국 정부 활동이 폭로된 이후 조지 오웰의 '1984'가 갑자기 인기를 끌 정도로 큰 충격을 안겨줬다. 


그 뒤 스노든은 영국 정부가 2011년 G20 정상회의 참가국 대표단을 조직적으로 감시했다는 사실을 추가로 폭로해 또 한번 충격을 안겨줬다. 


스노든은 전 세계를 뒤흔들 대특종 거리를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폭로했다. 하지만 이후 보도에선 가디언이 주 폭로 창구 역할을 했다. 스노든은 자기 얼굴을 공개할 때도 가디언 지면을 빌었다.





 뉴욕타임스가 느낀 상실감 


연이어 엄청난 폭로가 이어지는 와중에 누가 가장 큰 상실감을 느꼈을까? 미국이나 영국의 웬만한 매체들은 다 '낙점 받은' 가디언에 부러움을 느꼈음직하지만, 특히 뉴욕타임스의 상실감은 엄청났을 것으로 짐작된다. 세계 최고 권위지라는 자부심에 적잖은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지난 주말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마가렛 설리번 퍼블릭 에디터(Public Editor)의 칼럼이 이런 분위기를 잘 전해주고 있다. 설리번은 Sources With Secrets Find New Outlets for Sharing란 칼럼을 통해 스노든의 폭로 이후 뉴욕타임스가 왜 그 사건을 보도하지 않았(혹은 못했)느냐고 질문해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스노든이 폭로 전에 뉴욕타임스와 접촉한 적 있느냐는 질문도 많았다.


설리번은 편집국장 등에서 확인해 본 결과 스노든이 자신들에게 접촉해 온 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아예 고려하지도 않고 곧바로 가디언 쪽으로 들고 갔다는 얘기다.




그는 2005년 뉴욕타임스가 NSA의 사찰 사실을 포착하고서도 1년 이상 보도를 미룬 사건을 거론했다. 그런 전례가 스노든이 뉴욕타임스 대신 가디언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연이어 조세회피처 관련 보도를 하고 있는 뉴스타파 사례도 비슷하다. 국내 다른 유수 언론사들도 국제탐사보도기자회에 접촉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사건을 공익이란 기준에 입각해서 보도할 것이란 믿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가디언의 미국 정부 사찰 보도나 뉴스타파의 조세회피처 보도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측면도 적지 않다.


가디언이 세계적 특종을 독점한 또 다른 비결은 없을까? 페이드콘텐트의 매튜 잉그램 기자의 News is like water now-it take the path of least resistence란 글이 이 질문에 상당한 인사이트를 던져준다. 


잉그램 기자는 이 기사에서 크게 두 가지 논점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는 앞에서 인용한 설리번 칼럼을 소개하면서 '이젠 뉴스원이 뉴스 매체를 선택하는 상황이 됐다'고 진단한다. 이 글 제목 그대로 가장 저항이 적은 곳으로 정보가 흘러가게 돼 있다는 것이다. 


정보는 저항, 혹은 장애물이 적은 곳으로 흘러간다 


그럼 이번 사태에서 가디언이 '정보가 흘러가는 수로' 역할을 한 배경은 뭘까? 


우선 뉴욕타임스가 선택받지 못한 것은 설리번 칼럼에서 예로 든 2005년 사건과 무관치는 않을 것 같다고 주장한다. 꼭 그것 때문이라고 보긴 힘들겠지만,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든 것은 '집중(hyperfocus)'이다. 매튜 잉그램에 따르면 스노든이 접촉한 가디언의 글렌 그린왈드(Glenn Greenwald) 기자는 변호사 출신으로 특히 정부의 각종 부정과 비리 쪽 보도를 집중적으로 해 왔다고 한다. 당연히 정부 관련 대형 비리를 손에 쥔 제보자 입장에선 선호할 수 밖에 없는 기자였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스노든이) 믿을만한 기자였다는 것이다. 


잉그램 기자는 이런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하면서 "이젠 대형 뉴스는 스스로 길을 찾아간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 같은 매체들이 더 많은 '저항'을 보였기 때문에, 대형 정보가 다른 경로를 택해버렸다는 것이다. 


이런 진단에서 정보 전달의 갑을 관계도 많이 바뀌고 있다는 결론을 끌어내는 건 논리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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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어제 WWDC에서 iOS7과 최신 OS X '매버릭스'를 선보였다. 최신 OS X인 메버릭스는 iOS와의 통합 기능이 두드러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다 맥북 에어 배터리 수명을 최대 12시간까지 늘리면서 드디어 모바일과 컴퓨터의 수렴이란 목표를 향해 한 발 더 나간 것으로 평가됐다.


늘 그랬듯이, 애플의 이번 신제품 발표에 대해선 역시 찬반 양론이 분분하다. 특히 iOS7에 대해선 "여러 제품들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기능을 가져와 애플스런 모습을 만들어냈다"는 호평이 있는가 하면, "결국 안드로이드 베낀 것 아니냐"는 혹평도 적지 않았다. "혁신은 없었다"는 무책임한 비판을 쏟아낸 곳도 적지 않았다.


WWDC 얘긴 워낙 많은 고수들이 평가를 내놨으니, 나 같은 컴맹 계열이 굳이 더 보탤 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왜 이 글을 쓰게 됐을까? 니먼저널리즘랩에 실린 글 두 편 때문이다. 애플의 이번 신제품 발표는 저널리즘 측면에서도 중요한 기능들이 포함돼 있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 부분을 한번 요약 정리해보자. 


[참고 기사] 


1. Push notifications for news stories, better background downloads...

2Now websites can send push notifications — not just apps 





1. iOS7 백그라운드 업데이트 강화 


애플은 iOS7에서 백그라운드 업데이트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백그라운드 업데이트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실행하지 않고 있는 동안에도 새롭게 올라온 콘텐츠를 업데이트 해주는 기능을 말한다.


특히 아이패드에서 구동되는 태블릿 잡지 같은 경우 업데이트 한번 하려면 꽤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이게 밤사이에 자동 업데이트 돼 있다면? 상당히 편리한 기능이 아닐 수 없다.


니먼저널리즘랩에 따르면 애플은 키노트에서 CNN 앱으로 백그라운드 업데이트를 시연해줬다고 한다. 또 뉴스 가판대 앱에만 적용되는 지에 대해선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만약 모든 앱에 적용될 경우엔, 언론 매체 중 일부는 뉴스가판대 대신 다른 카테고리를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2. 맥에서도 콘텐츠 업데이트 푸시 서비스 


언론사들은 OS X '매버릭스'의 푸시 서비스를 잘 활용할 수 있다. 그 동안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선 이미 적용됐던 개념. 하지만 매버릭스가 보급되면서 맥에서도 푸시 기능을 잘 활용할 수 있다. 맥 이용자가 그다지 많지 않은 우리나라에선 큰 도움이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미국 같은 곳에선 상당히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니먼저널리즘랩은 매버릭스의 데스크톱 푸시 기능을 선택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 더 좋겠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뉴욕타임스의 국제뉴스, 워싱턴포스트 정치 뉴스 식으로. 


애플은 데스크톱에서 사파리를 작동시키지 않을 경우에도 콘텐츠 업데이트 푸시 기능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 서드 파티 사이트들이 푸시 기능을 적용할 경우에 한해, 란 단서를 달았다. 언론사 입장에선 당연히 이 기능을 활용하려고 하지 않을까? 


3. 음성 검색 시리의 진화 


시리는 오픈API를 지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최신 뉴스 콘텐츠가 어떤게 있는 지 따위의 질문을 적용할 순 없다. 하지만  팔로잉하고 있는 트위터리안들의 최신 소식을 물어보는 기능을 활용하면 이런 욕구를 어느 정도는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니먼저널리즘랩에 따르면 “What is The Guardian saying?”  같은 질문을 던지면 가디언 트위터에 올라온 최신 뉴스를 알 수 있다고. 


4. 지역 정보


앱스토어 최신 버전은 이용자 근처 지역에서 인기 있는 앱을 보여주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지방지들이 이 기능의 덕을 볼 수도 있다는 것. 이를테면 대구를 방문한 사람에겐 영남일보나 매일신문 앱이 추천 앱으로 뜰 수도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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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혁신과 관련한 강의에 단골로 등장하는 언론사가 있다. 뉴욕타임스와 가디언이다. 디지털 스토리텔링부터 데이터 저널리즘까지, 혁신 얘기를 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다. 남들 강의를 들어봐도 그렇고, 나 역시 가끔 강의를 할 때면 어느 새 뉴욕타임스 아니면 가디언 얘기를 읊조리곤 한다. 


(그래서 난 저널리즘 혁신 관련 강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당장 병원비 없어 고민하고 있는 환자한테, "암을 이기려면 잘 먹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경치 좋은 별장에 가서 좀 쉬어라"고 권고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그럼 뉴욕타임스와 가디언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가디언은 고사하고, 영국조차 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개략적인 느낌은 있다. 디지털 스토리텔링 같은 콘텐츠 혁신은 뉴욕타임스가 한 발 앞선 반면, '오픈 플랫폼' 실험 면에선 가디언이 좀 더 선진적이라고나 할까? 물론 이런 차이 역시 나의 피상적인 관찰의 산물이기 때문에 얼마나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다.




가디언은 왜 느닷 없이 커피 숍을 오픈했을까?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는 지 벌써 짐작하는 분도 있을 것 같다. 가디언이 최근 또 다른 오픈 플랫폼 실험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디언 본사 근처 런던 쇼어디치 거리에 커피숍을 열었단 소식이다. 커피 숍 이름도 재미있다. 트위터 해시태그를 이용한 #GUARDIANCOFFEE가 커피숍 상호다.


이 커피숍에선 일반 커피숍들처럼 커피와 간단한 빵 종류가 구비돼 있다. 여기에다 아이패드를 공짜로 쓸 수 있도록 했다. 


가디언은 왜 느닷없이 커피숍을 열었을까? 당연한 얘기지만 기자들이 인터뷰를 비롯한 각종 취재 활동을 좀 더 편리하게 할 수 있는 장소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뿐이라면 가디언 답지 못하다. 


가디언은 #GUARDIANCOFFEE를 일종의 '오픈 편집국'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자신들이 어떤 혁신을 하고 있는지 독자들에게 직접 보여줄 뿐 아니라, 아예 독자와 직접 만나는 공간으로 활용할 생각까지 갖고 있다는 것이다. 페이드콘텐트 보도에 따르면 가디언의 소셜 미디어 편집 책임자인 Joanna Geary는 수시로 이 곳에 들를 생각이라고 한다. 인터뷰를 하기도 하지만, 아예 독자들과 직접 만나서 소통하기 위해서다.


가디언의 커피숍이 어떻게 운영되는 지는 송혜원 씨의 글을 보면 잘 나와 있다. 저 글 읽으면서 가디언이 오픈한 커피숍이 생각보다 훨씬 상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단순한 커피숍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독자들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잘 설계됐다는 느낌도 든다.



18세기 카페와 살롱, 그리고 가디언의 혁신 


처음 가디언이 커피숍을 오픈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솔직히 좀 황당했다. 하지만 곰곰 따져보니, 어쩌면 저널리즘의 근본에 대한 성찰이 잘 담긴 조치란 생각도 들었다. 왜나고?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변동'이나 미첼 스티븐스의 '뉴스의 역사' 같은 책을 한번 뒤적여보라. 18세기 프랑스와 영국에서 유행했던 카페와 살롱은 요즘 우리가 소셜 미디어라고 부름직한 모습을 그대로 구현하고 있다.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관심 있는 뉴스에 대해 토론하고 논쟁하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적과 흑'으로 유명한 평민 스탕달은 살롱에서 스타로 떠올랐다. 신분의 차이를 극복한 토론 문화 덕분이었다고 한다.)


더 재미 있는 건, 당시 카페나 살롱도 전문 분야가 있었다는 점이다. 스포츠 뉴스를 주로 토론하는 카페, 경제뉴스 전문가들이 주로 모이는 살롱, 같은 식으로. 


따라서 요즘 소셜 미디어를 통한 소통은 18세기 뉴스 문화를 기술적으로 좀 더 확대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게 내가 줄기차게 주장하는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의 연속론이다. 


가디언은 수 년 전부터 독자들과 직접 소통하려는 오픈 플랫폼 전략을 꾸준히 실험해 왔다. 2011년 가을부터는 편집회의가 끝난 뒤 곧바로 기사 아이템을 사이트에 공개하는 실험도 해오고 있다. (그 뒤 어떻게 됐는지, 잘 모르겠다.) 이번 실험 역시 '오픈 편집국 실험'의 연장선상에서 큰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솔직히, 부럽다. 저 정도 되는 회사에 몸담고 있는 기자들은 정말 일할 맛 날 것 같다. 하지만 한 편 생각해보면 책임감도 훨씬 더 무거울 것 같다. 어쩌면 혁신이 제일 힘든 건, 언론사 경영진이나 간부가 아니라 평기자들을 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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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미드나잇이 개봉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9년 전 비포선셋을 본 뒤 썼던 글 한 편 방출. 
비포 미드나잇도 봐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팍팍 생긴다.) 


9년전 아쉬움을 남기며 헤어졌던 연인을 다시 만난다면?

 

누구나 한번쯤 떠올려 봄직한 질문이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는 것은 쉽지가 않다. '현실 속 좌표' 때문만은 아니다. 희미하긴 하지만, 아름답게 채색돼 있는 추억을 깨어버리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영화 '비포 선셋'은 이처럼 흔한 듯 하면서도, 쉽지 않은 소재를 택했다.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느(줄리 델피)는 9년전 우연히 기차 여행중 만나, 비엔나에서 '뜨거운' 하룻밤 사랑을 나눈 사이다.

 

이 영화의 전편인 '비포 선라이즈'를 본 관객이라면, 비엔나 기차역에서 두 연인이 이별하던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10년 뒤 여기서 만날까?" "아니 5년, 아니 1년." 그러다가 그들은 6개월 뒤 같은 장소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물론 연락처는 주고 받지 않는다. 그냥, 사랑에, 둘 사이의 운명에 모든 것을 걸었다. 하지만, 당연한 얘기지만, 그들은 만나지 못했다. 

 

그로부터 9년. 제시는 당시의 경험을 소설로 펴내 유명 작가가 됐다. 똑똑하고 야무지면서도 행동이 앞섰던 셀린느는 환경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비포 선셋'은 작가가 된 제시가 파리의 한 서점에서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 셀린느가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유명 작가가 된 제시가 조금 더 여유가 생긴 반면, 셀린느는 조금 더 '신경질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 배우 그대로 찍은' 이 영화는, 배우들의 얼굴에서 세월의 더께를 그대로 엿볼 수 있어, 보는 이들에게 실감을 더해 준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로맨스라면, 헤어진 연인들의 재회는 현실이다. 이 영화에 극적인 반전이나 휘황찬란한 로맨스가 들어갈 틈이 없는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처사다. 생각해보라. 9년 만에 만난 연인들이, 게다가 현실 속에 이미 자신들의 좌표를 마련해 둔 연인들이, 9년 전처럼 열정에 휘말린다는 것이 생각처럼 쉬울지를.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따발총처럼 많은 대사를 주고 받는다. 그리고 그 대사들은, 더 이상 영화의 대사가 아니다. 그건 현실 속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그런 대화들이다. 바로 그 점이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기의 로맨스'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뭐 이런 영화가 다 있어?'란 질문을 던질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비포 선라이즈'와 함께 늙어온 관객들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이 영화의 태생적 한계에 공감을 보낼 법도 하다.

 

그런 점에서 영화의 결말을 관객의 상상에 맡겨 버린 감독의 연출력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솔직히, 엔딩 신(scene)이 좀 허무하긴 했지만, 제시는 더 이상 "당신을 지금 보내버리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며 열차 위로 다시 뛰어들던 20대 청년이 아니질 않은가?

 

하지만 난 이 영화를 보면서 '굳이 9년 전 헤어진 두 연인들을 다시 스크린으로 불러낼 필요가 있었을까', 란 생각을 했다. 젊은 시절의 사랑은 끝난 지점에서 그냥 남겨두는 게, 더 아름답지 않을까? 아쉬워하는 두 사람을 같은 무대에 올려놓은 건 너무 잔인한 처사가 아니었을까?

 

그럼 이들의 9년전 모습은 어땠을까? 아래 사진들과 현재 모습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조금 짓궂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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