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아거님의 블로그에 올라온 '기생 매체 or 공생매체' 라는 글을 소개한 적 있다. '공정 이용권'을 믿고 그 글에서 일부를 옮겨 온다.

영향력있는 보수파 정치 블로거 글렌 레이놀즈는 An Army of Davids (다윗의 군대)라는 책(p.93)에서 통신사에서 주는 기사를 받아 “분석”과 “의견”을 다는 신문사들은 자신들이 이렇게 할 때는 “value-added journalism” (부가 가치된 저널리즘)이라고 부르고, 블로거들이 하는 것은 “기생충”이라고 부른다고 비꼬고 있다. (자기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을 연상케 함)


글렌 레이놀즈의 글과는 다른 관점에서, 요즘 보도자료 문제도 기자들을 괴롭히는 것 중 하나다. 최근 들어 보도자료만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사이트도 생기면서, 일반인들도 직접 보도자료를 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다. 보도자료를 거의 그대로 옮긴 기사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보도자료가 뉴스가 되는 오늘이 어이없다 라는 글도 바로 그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여기서도 몇 줄 인용한다.

매체와 기자가 가졌다는 힘의 원천은 독자 한 명 한 명이다. 문장을 만들어 내는 재주? '그 까이꺼'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독자 없는 기사와 매체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말하지 말고, 팩트를 검증하고 채운 올바른 정보를 담은 기사가 아니면 독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하자. 독자는 그 노력을 분명히 알아준다.

기자들에게 상당히 아픈 지적을 하고 있다. 일찍이 댄 길모어도 <We the Media>란 뛰어난 저술에서 "앞으로는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저널리즘은 힘을 잃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오픈소스 시대'에 저널리즘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를 적나라하게 지적한 말이다.

시민단체 왜 꼭 기자를 통해 말하려 할까 란 글은 이미 저널리즘 지형도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홍보대행사들이 직접 블로거 기자 같은 걸로 활동하면서 클라이언트들의 소식을 그냥 전해줘버리면 어떻게 될까?

물론 지금 당장은 어려울 것이다. 또 언론과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도 부담스러울테고. 하지만 그건 그 쪽 문제이고, 솔직히 기자들은 뼈를 깎는 변신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명함에 기자라는 걸 박아가지고 다니는 내 입장에서도 이런 변화는, 한 편으로론 기대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아직까지 대부분(거의 모든) 언론사들이 기존 시스템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여전히 보도자료를 옮겨 적고 있으며, 그렇게 나온 기사들이 지면에서 절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보도자료를 그대로 옮겨 적는 건 아니다. 나름대로 사실 확인도 하고, 또 때론 추가 취재를 통해 사안을 키우기도 한다.

문제는 개인 차원이 아니다. 물리적으로 그런 식으로 해서 쓸 수 있는 기사 건수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써야 할 기사 건수는 엄청나게 많다. 그러다 보니까 상당수 보도자료는 그냥 쓰게 되는 것이다.

변명 같겠지만, 보도자료가 그대로 기사가 되는 현실은 분명히 개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게 '기자들의 게으름 때문이 아니다'는 얘기는 꼭 하고 싶다. (이게 변명이란 건 나도 잘 안다.) 기본적인 언론 시스템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댄 길모어의 말처럼 이젠 '대화형 저널리즘' 시대가 왔는 데, 언론들은 여전히 독자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려 하고 있다. 그것도 오래 된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그대로 읽어주면서. 그 부분에 대한 각성과 변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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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cret to sucess in big business and politics in the twenty-first century, I think, will involve figuring out a way to capitalize on the phenomenon of lots of people doing what they want to do, rather than-as in previous centuries- figuring out ways to make lots of people do what you want to them to.
                         Glen Reynolds <An Army of Davids> p. 21

테네시대학 법학 교수이면서 인스타펀딧(Instapundit.com)이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글렌 레이놀즈의 <An Army of Davids>를 읽고 있다. <An Army of Davids>란 책의 존재는 아거님의 '기생 매체 공생 매체' 포스트를 통해 알게 됐다.

아직은 도입 부분인지라 책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을 말하긴 이른 상황이고. 전철에서 쪼그리고 읽다가 눈에 띄는 구절을 발견했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서둘러 밑줄을 긋다 보니,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고- 즉 비뚫어진 밑줄이 글씨를 덮어버리는 사고-가 생겼다. ^.^

레이놀즈는 'Small is the new big'이란 장에서 "21세기의 비즈니스와 정치에서 성공하는 비결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럼 그 전에는? "우리가 그들에게 원하는 것을 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언뜻 보기엔 너무나 당연해서, 더 이상 토를 달 가치도 없어 보인다. 당연한 얘기 아니냐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선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보려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인 경향이 강하다. 어쩌면 자기 세계에 푹 빠져서 더 이상 외부와의 소통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곤 자의적으로 판단해버리는 것이다. "그들은 이걸 원할 것이다"라고. 사실은 내가 그들에게 바라는 것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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