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신정아 관련 기사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변양균, '아내보다 5배 소중한 애인 신정아'"란 제목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그 전에 '23세 차' 변양균-신정아 이메일 첫 문장은
이란 기사를 본 기억이 있었기에, 난 당연히 변양균 씨가 이메일에서 "아내보다 5배 소중한 쩡아"라고 고백한 줄 알았다. 이 사람 정말 해도 너무하는군, 이란 생각이 들어서 기사를 눌러봤다.

'변양균, 아내보다 5배 소중한 애인 신정아'란 기사의 리드 부분은 다음과 같았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신정아 씨는 자신의 부인보다 최소 5배 이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웃지 못할 사실이 드러났다.

'웃지 못할 사실이 드러났다'는 굉장히 자극적인 단어가 눈에 확 들어왔다. "정말 그랬나보구나"라고 생각하며 다음 문장을 읽다가 하마터면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질 뻔했다. (물론 이 표현은 엄청나게 과장된 것이다. ^_^)

기자가 '아내보다 5배 소중한 애인'의 근거로 제시한 내용은 바로 이것이었다.

신정아 씨 관련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 서부지검은, 변양균 씨가 흥덕사에 10억 원의 예산이 지원되도록 한 것 외에도 부인인 박모씨가 다니는 과천 보광사에 2억 원 이상의 예산이 지원되도록 한 사실을 확인했다.
(중간 생략) 흥덕사는 동국대에서 신정아 씨를 비호하던 동국대 이사장 영배 승려가 주지로 있던 사찰이고 보광사는 변양균 씨와 변 씨의 부인이 신도로 등록된 사찰이다. 변양균 씨가 신정아 씨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볼 수 있는 정황 가운데 하나다.
요지는 자신의 부인이 신도로 등록된 사찰에는 2억원 밖에 지원하지 않았는 데, 신정아 씨와 관계있는 사찰에는 10억원이나 지원했다는 내용인 것이다. 쓴 웃음이 나왔다.

그러면서 갑자기 엉뚱한 생각을 해 봤다. 아마 이 기자가 나에 대해서 취재를 하면 '김익현, 아내보다 * 배 소중한 ***'란 기사 몇 개 정도는 충분히 쓸 수 있을 듯했다. 여자 후배들과 밥 먹을 때 내준 밥값이 얼마든가? ^_^ 반면 아내에게 외식하면서 쓴 돈은?

이 기사는 또 변, 신 두 사람이 수시로 만나고 이메일을 주고 받은 내용을 소개한 뒤에 "이 역시 변양균 전 정책실장이 신정아 씨를 얼마나 끔찍하게 챙겼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란 표현을 덧붙여 놓고 있다.

물론 기자가 기사를 쓸 때 개인의 느낌이나 감정을 넣지 마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얼마나 끔찍하게 챙겼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라니. 피의자 신분이라고 해서 무차별 사살을 해대는 것 같아 씁쓰레한 기분마저 들었다.

신정아 씨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들이 권력형 비리나 횡령으로 확대되는 부분은 꼼꼼하게 보도해야 할 것이다. 그건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기자들이 당연히 감당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들의 사생활을 지나칠 정도로 상세하게 까발려 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야릇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는 건 그리 건강해 보이지 않았다. 지난 번 문화일보의 누드사진 파문도 그랬지만, 도대체 왜들 이러는 지 모르겠다.

  "변양균, '아내보다 5배 소중한 애인 신정아'"란 기사는 그런 점에서 객관적인 자세를 포기해버린 언론의 폭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정아 씨를 둘러싼 사태가 정리되고 나면, 언론들의 도를 넘어선 선정 보도 얘기는 누군가 꼼꼼하게 되짚어 볼 가치가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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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학력위조가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동국대 신정아 교수로부터 시작된 학력위조 파문은 이창하 씨를 거쳐 이젠 문화, 연예계까지 강타하고 있다. 주영훈, 최수종 씨 등 인기 연예인들도 구설수를 겪고 있다.

어떤 이유로든 학력을 속인 사람들은 책임을 져야 마땅할 것이다. 특히 위조된 학력이 자신들의 출세 밑바탕이 됐다면, 그 부분은 다시 '토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론들도 연일 그 문제를 대서특필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학력 숭배 주의를 진단하는 기획기사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뭐, 당연히 써야할 기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력위조 파동을 겪으면서 그 동안의 보도 태도를 반성하는 기사를 본 적은 별로 없는 듯하다. 과연 언론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학력숭배주의에서 책임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조선일보에 게재된 그들을 사랑했던 이유마저 의심하나란 칼럼에는 가수 한영애 씨 이야기가 나온다. 잠시 그 부분을 읽어보자.


가수 한영애 씨는 1970년대 말 '해바라기'의 멤버로 활동하다가, 프랑스로 건너가 연극을 공부한 적이 있다. 1980년대 중반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한 신문에 '파리 시립 음악원 졸업'이라고 보도됐다. 이후 한씨는 말했다. "왜 들어가지도 않은 학교를 나왔다고 썼느냐고 물었지만 오히려 '그래야 음반이 더 잘 팔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음악원에 다니지 않았다는 걸 주변에 일일이 설명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이 기사는 "물론 틀린 신상 정보들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걸 고의로 방치했던 문화예술인도 반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영애 안숙선 백건우의 경우에서 보듯 그들이 대중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면 그건 자격증이 아니라 음악적 성과 때문이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로 끝을 맺고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예술인들을 옹호해주기 전에 학력을 제대로 쓰라는 항의에 대해 '그래야 음반이 잘 팔린다'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던 언론의 반성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학력숭배를 조장하는 대표적인 곳 중 하나가 바로 언론이다. 요즘이야 그렇지 않지만, 한 때 대학입시 때마다 학교별 서울대 합격자 수를 친절하게 보여줬으며, 세칭 명문대 이외에는 별다른 관심도 갖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약과다. 언론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게 '명문대 여대생 자살' 같은 기사다. 아예 사례를 묶어서 쓴 '명문 여대생 잇단 자살' 같은 기사도 있다. 여기서 왜 '명문대 여대생'이란 말이 헤드라인에 들어가야 할까? 또 명문대는 어디까지를 말하는 걸까?

좀 오래된 기사이긴 하지만 '통닭집 배달원'의 성폭행과 '명문대' 여대생의 자살 이란 기사는 이런 문제를 잘 지적해주고 있다.

정리해보자. 학력위조. 이거 분명 사회적인 문제다. 또 학력을 부풀려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위조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특히 그 사람이 교수 같은 연구직에 있는 사람이라면, 학력위조는 범죄행위나 다름없다.

하지만 연예인들 같은 경우는 조금 다르다.
따라서 이런 분위기를 타고, 언론들이 또 숨어 있는 넘 없냐며 샅샅이 뒤지고 나서는 건 썩 건강해 보이진 않는다.

그에 앞서 언론들부터 '학력강조형 보도'에 대해 철저하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시라. '명문대 여대생 절도 행위'라는 기사 제목을 보는, '안 명문대 재학생' 혹은 '대학 문턱에도 못 가본 사람들'의 심정이 어떨지를.

학력위조 못지 않게 심각한 것이 '은연 중에' 쏟아내는 '학력강조' 기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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