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인터넷신문이 막 각광을 받으면서 미국의 학자들 사이에 인터넷 언론인의 새로운 역할에 대한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오고갔다. 매체 융합 시대 언론인은 어떠해야 하는가, 란 제법 묵직한 담론들이 오갔던 기억이 난다.

당시 많은 학자들은 '멀티플레이어' 로 변신해야 한다는 지적을 했다. 이를테면 글을 쓰는 역할 뿐 아니라 정보검색사, 자료수집 분석가, 사이버 공동체 관리자, 평론가, 디지털 콘텐츠 프로듀서 등의 역할을 구비해야 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이야기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이런 글들을 읽으면서 그저 먼 나라 이야기로만 받아들였던 듯하다. 나 역시도 그 이후 한참 동안 여전히 글을 쓰는 것이 기자의 유일한 '일'인 것처럼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요즘 '기자의 위기'에 대한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확실히 위기인 것 같다. 새로운 패러다임과 구시대적 패러다임이 날카롭게 대립하면서, 새로운 시대 정신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다.

이런 위기의 시대, 과연 기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물론 여러 가지 처방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자가 죽어야 기자가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명제에서 앞의 기자는 '전통적인 관점에서의 기자'를 의미하고, 뒤의 기자는 '일반 명제로서의 기자'를 뜻한다.

이건 꼭 기자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매체 전체 차원에서도 뼈를 깎는 변신의 노력이 있어야 하리라고 본다.

물론 나는 '올드미디어 vs 뉴미디어'라는 이분법에는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특히 신문, 방송 등의 올드미디어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야기는 정말 싫어한다. 신문, 방송이 왜 올드미디어인가? 그리고 인터넷신문이 꼭 뉴미디어라고 할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미디어의 형태가 아니라, 그 미디어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시대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종이신문들도, 매체 융합 차원에서 새롭게 변신을 꾀하고, 또 그에 맞게 기자들을 변신시키고 있다면, 그들을 '올드미디어'로 폄하할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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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대학 프로젝트로 진행됐던 미래의 기자 모습. 모바일 저널리스트 웍스테이션으로 중무장한 기자의 모습이 이채롭다. 출처: http://graphics.cs.columbia.edu/projects/mars/ images/AR/ISWC99/LowWithHandheldAndUserBroad.jpg

다시 원래 얘기로 돌아가보자.

기자로서의 삶을 생각하면 참 암담할 적이 적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란 케케묵은 질문이 계속 엄습해 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런 고민에 직면해서, 지극히 비과학적인 대답이긴 하지만, 난 다시 한번 '기자가 죽어야 기자가 산다'는 말을 되풀이하고자 한다.

궁극적으로는 온, 오프라인을 융합한 종합 정보 미디어로 변신해야 하는 이 시기에, 여전히 펜(혹은 키보드)을 통해 나온 글만이 유일무이한 콘텐츠라는 생각을 빨리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거창하게 UCC 전략이니 뭐니 하고 떠들 필요도 없다. 그냥 독자들의 글도 중요한 콘텐츠란 생각을 하면 그만인 것이다. 괜히 UCC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어떻게 하면 독자들의 눈을 멀게 해, 그들에게 '우리가 함께 하고 있다'는 착시 현상을 줄 것인가를 고민하기 보다는, 정말 함께 한다는 마인드 변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다양한 방식으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빨리 가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초고성능 PC를 가지고 카드 놀이나 하고 있는 우를 범해서야 되겠는가?

그런 측면에서 신문 기자들은 PD들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들의 영상을 배우라는 게 아니다. 그들이 심층 진단 프로그램을 할 때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가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기자가 살고, 그 기자들이 몸담고 있는 매체들이 사는 길이다. 기자들이여, 우리 모두 죽자. 그렇게 함으로써 영원한 삶을 모색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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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9시 30분. 서울 여의도 증권업협회 8층 기자실과 홍보실.

아침부터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다. 몇몇 기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대화를 나누고 있다.

"24일 주총에서 김진호가 밀려난다며?" "그게 어디 쉽겠어." "아냐! 아무래도 이번엔 심상치가 않아!" "금고나 농구단 인수를 놓고 반대하는 세력이 많다던데?" "아무튼 오후에 이지오스 측에서 온다니까 얘기를 들어보면 알지."

‘골드뱅크 경영권다툼 기자회견 현장'중에서


2000년 3월 20일. 아이뉴스24가 첫 발을 내딛던 이날은 마침 골드뱅크의 주총이 예정돼 있었다. '광고를 보면 돈을 준다'는 컨셉트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골드뱅크가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면서 전 미디어들은 이날의 주총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당시 아이뉴스24는 기자 두 명을 급파해 '현장중계' 형식으로 처리했다. '골드뱅크 경영권다툼 기자회견 현장'이란 제목의 그 기사는 당시로선 하나의 파격이었다. 신문 기사라고 하면 '점잖고, 딱딱하다'는 기본 통념을 여지 없이 깨버렸던 것.

문어체와 구어체를 적절하게 섞어 쓴 이 기사는 당시 '인터넷 미디어는 생동감 있는 매체'란 인식을 심어주는 데 한 몫 한 것으로 평가된다. 아이뉴스24와 독자들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인터넷 언론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당시만 해도 낯설었던 인터넷언론 현장을 지킨 것은 아이뉴스24 뿐만은 아니었다. 새 천년의 시작과 함께 서비스를 시작했던 머니투데이를 비롯해 오마이뉴스, 이데일리 등 주요 인터넷 언론사들이 그 무렵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한 해 뒤 창간된 프레시안과 함께 한국 인터넷 언론 8년을 지탱해 온 산 증인들이다.

연대기적으로 2000년은 '뉴 밀레니엄 원년'으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언론사적으로는 '인터넷신문의 해'로 기록하는 것이 더 정확할 듯 하다.

◆"형식을 바꾸니 새로운 세계가 보였다"

2000년 3월 20일 아이뉴스24가 첫 선을 보일 때만 해도 '인터넷신문'이란 컨셉트는 낯설기만 했다. 오프라인 기자 출신이란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취재 환경 역시 열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기자단은 고사하고, 변변한 기자실 출입마저 쉽지 않았다. 오프라인 매체들의 견제도 만만치 않았다. 지금이야 '역할 분담' 개념이 정착된 상태지만, 당시만 해도 막 출범한 인터넷 신문들에 대한 오프라인 신문의 견제는 엄청났다.

그러다 보니 시덥잖은 보도자료 하나 때문에 업체 관계자들과 언성을 높이며 다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별 것 아니었던 것들이 '인터넷신문'이란 명함을 앞세우는 순간, 엄청난 벽으로 다가올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사회는 변화하고 있었다. 종이신문 중심의 폐쇄적인 언론 환경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IT 분야의 아이뉴스24를 비롯해 경제, 증권 쪽을 주로 커버하는 머니투데이, 이데일리 등은 오프라인 신문 못지 않은 영향력을 과시하면서 또 하나의 언론으로 자리매김했다.

인터넷 언론 역사에서 오마이뉴스를 빼놓을 순 없다. 출범과 동시에 386 의원들의 광주 술판 사건 같은 굵직한 특종들을 쏟아냈던 오마이뉴스는 기사 혁신 측면에서도 많은 족적을 남겼다.

오마이뉴스는 특히 2000년 10월 27일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병관 동아일보 사장의 고려대 앞 추태'를 17시간 동안 현장중계로 처리해 성가를 드높였다. 이후 조선, 동아 등 기존 언론들이 운영하는 인터넷신문들 역시 현장 중계 방식의 기사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또 2004년 대통령 탄핵사건 당시에도 여론의 중심지 역할을 해냈다. 탄핵 반대 시위가 한창 진행될 무렵에는 아예 이미지를 모두 뺀 채 텍스트만으로 편집할 정도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왔다. 언론학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상호작용성'을 토대로 수 많은 독자들에게 청량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처럼 인터넷신문은 기사의 기본 패러다임에 쉴 새 없이 의문부호를 던졌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미디어 변형(mediamorphosis)으로 이어졌다.

◆인터넷 매체와 패러다임의 변화

새롭게 등장한 매체가 한 시대의 주류 미디어로 자리잡는 데는 그만한 계기가 있다. 라디오를 살린 게 1차 대전이라면, TV는 케네디 암살, 달 착륙 보도 등을 통해 주류 미디어로 떠올랐다.

인터넷은 1990년대 말 이후 잇단 재난 보도를 통해 그 위력을 만 천하에 알렸다. 지난 1999년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당시 이 지역 인터넷 신문들은 AP, 로이터 등 글로벌 미디어를 앞서는 탁월한 대응력을 보여줬다.

그런가 하면 코소보 전쟁은 인터넷 미디어의 위력을 만천하에 전한 첫 전쟁으로 통한다. 당시 인터넷 미디어들은 코소보 전쟁 당시 지역 주민들과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전황을 전하는가 하면, 유즈넷 등 각종 커뮤니티들의 활약 또한 눈부셨다.

언론학계에선 베트남 전쟁을 TV로 보도된 첫 전쟁, 걸프 전쟁은 처음으로 위성보도가 동원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반면 코소보 전쟁은 인터넷이 주류 미디어로 등장하는 계기가 된 전쟁이다.

그런 점에서 2002년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한일 월드컵의 열기와 그 해 말의 16대 대통령 선거는 한국 인터넷언론에겐 커다란 축복이었다. 또 한번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사실 2002년 대통령 선거 직전까지만 해도 인터넷신문들은 거대한 현실의 장벽 앞에서 무력감을 느껴야만 했다. 정간법에 등록된 매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대선 후보 인터뷰'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

이 사건은 인터넷 언론들에게 뼈아픈 경험이었지만, 반대로 인터넷신문협회란 단체가 출범하는 기회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해 10월28일 아이뉴스24를 비롯해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머니투데이, 이데일리 등 9개사가 주축이 된 인터넷신문협회가 출범하면서 본격적으로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당시 인터넷신문협회는 창립선언문을 통해 '그동안 이룩해 온 성과를 더욱 발전시키고 다가오고 있는 시련과 도전을 효율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인터넷신문협회를 창립한다'고 선언했다. 인터넷신문협회는 출범 첫 행사로 대선후보 합동 토론회를 개최, 텍스트와 동영상을 곁들인 차별화된 보도로 많은 유권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인터넷신문협회는 그 뒤 구시대적인 언론 규정을 바꾸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이같은 노력은 결실을 맺으면서 2005년 개정 신문법에서 언론사로서 법적인 지위를 보장받기에 이르렀다.

◆포털의 득세, 그리고 인터넷 언론의 시련

외형적인 면에서 인터넷 언론이 가장 활기를 띤 시기는 참여 정부 출범을 전후한 2, 3년 간이었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주류 언론들이 주춤하는 사이에 인터넷 언론들이 영향력을 급속도로 확대해나갔던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언론들의 영광의 시기는 오래 계속되지 않았다. 2003년 무렵부터 뉴스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포털들이 무서운 속도로 부상했던 것이다. 엄청난 사용자 층을 자랑하는 포털들은 뉴스 시장을 유통 중심 구도로 탈바꿈 시키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냈다.

(상당수 언론학자들은 포털들을 '재매개 저널리즘'으로 규정하고 있다. 전통적인 시각으로는 포털 특유의 독특한 저널리즘 모형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포털들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2004년 무렵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불량도시락 파동과 간호 조무사들의 신생아 학대 같은 것들은 모두 포털 뉴스 공간을 통해 사회적인 의제로 떠올랐다.

특히 네이버와 다음이 뉴스 서비스를 본격화하면서 인터넷 언론사들의 포털 종속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포털에 떠 있지 않은 기사는 존재하지 않는 기사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실제로 인터넷신문사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이런 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포털 사이트에 대한 기사 공급이 매체 접근성에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대해 50.5%의 인터넷신문사가 긍정적으로 답한 것. 인지도 제고에 도움이 되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54.5%의 인터넷신문사가 긍정적으로 답했다(2006 한국의 인터넷신문).

이런 가운데 미디어다음은 2005년 말 블로거 뉴스를 선보이면서 기존 뉴스 시장에 또 다른 바람을 불러 왔다. 이젠 블로거들이 직접 뉴스 현장에 뛰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쓰레기 시멘트' 문제를 비롯해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을 제기하면서 이용자생산 콘텐츠(UCC)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또 세계 기후 변화, 세계은행들의 문닫는 시간 취재 같은 굵직한 프로젝트들은 블로거 네트워크의 힘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포털이 영향력이 커지면서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은 편이다. '낚시형 기사'가 범람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최근 들어선 포털을 규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언론 시장이 포털 중심구도로 바뀌게 된 데는 인터넷언론사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 뉴미디어에 대한 고민 없이 기존 패러다임을 고수하느라 변화된 환경을 제대로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앞으로도 두고 두고 고민을 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미디어 융합, 새로운 도전과 기회

그리고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상황은 좀 더 나쁜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인터넷 언론 언프렌들리(unfriendly)'한 정부라는 말들도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벌써부터 '조중동'이니 '동조문중'이니 하는 말들이 유행할 정도다.

하지만 이런 외부 환경보다 더 큰 과제는 미디어 융합이란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다. 신문과 방송이 함께 가는 시대,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는 시대가 코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인터넷TV(IPTV)가 활성화되면서 미디어 융합이 본격화되고 있다. 또 모바일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뉴스의 유통 경로도 좀 더 다양해지고 있다.

전통 매체들의 반격도 매섭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의 유력 언론들은 각종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다양한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뉴미디어 시대를 선도하고 있다. 조선, 중앙 등 국내 일간지들 역시 멀티미디어 콘텐츠 강화를 외치고 있다.

'전통언론 프렌들리'한 정부의 등장과 미디어 융합 흐름의 가속화는 21세기의 뉴미디어를 자처했던 인터넷신문들에겐 또 다른 시련이 아닐 수 없다.

새로운 매체는 항상 새로운 형식을 개발해 왔다. 그런 점에서 아직도 신문이란 올드매체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터넷신문으로선 처절한 자기 반성이 필요할 것이다. 또 인터넷신문 특유의 차별화된 기사 형태, 보도 방식에 대한 고민 역시 꼭 풀어야 할 숙제다.

지나온 8년을 돌아보면서 감회보다는 자기 반성 쪽에 좀 더 무게를 싣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자기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창간 5주년을 맞던 지난 2005년 우리는 '인터넷 저널리즘 혁명은 미완'이라고 규정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미완이란 꼬리표를 떼어내지 못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 당시의 진단에서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바야흐로 미디어 융합시대다. 아이뉴스24 역시 미디어 융합 시대를 맞아 새롭게 변신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 어쩌면 이 약속은 독자들보다는, 우리 스스로에게 먼저 던져야 할 화두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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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인터넷신문과 온라인 스토리텔링> 출간 이래 댓글에 많은 관심을 가져 왔다. 인터넷 저널리즘에서 중요한 것은 독자 반응이고, 그 독자 반응 중에서 정수는 기사에 붙은 댓글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댄 길모어 등의 용어를 빌린 것이긴 하지만, 나는 이 같은 상황을 '대화 저널리즘(journalism as a dialogue)'이란 말로 표현했다. 악플 공세 때문에 다소 약해지긴 했지만, 이런 믿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난 요즘 댓글만 보면 기겁을 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댓글이 많이 붙은 기사들을 볼 때면 한숨이 나온다.

사연은 이렇다. 요즘 '박사 논문 초치기' 작업을 하고 있다. 당장 한 달 뒤까지 논문을 완성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아직 이렇다 할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그 동안 회사 일로 바빠서 논문 작업에 손을 제대로 대지 못한 때문이다.

최근 블로거들의 기사를 분석하고 있는 데, 분석 항목 중 댓글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다 보니 댓글이 100개를 넘는 기사를 만날 땐 한숨부터 나오는 것이다. 당연히 표본이 많으니 좋아해야 마땅하련만 사정은 말처럼 간단하지만은 않다.

최소한 500개 기사는 분석해야 하는 데, 만약 한 기사당 댓글이 100개씩 붙어 있다면 5만개의 댓글을 일일이 읽고 분석해야 한다는 얘기다. 5만개. 이걸 혼자서, 그것도 퇴근 이후 틈틈이 읽어서 한 달만에 분석하는 게 가능할까?

그러다 보니 댓글이 없는 기사를 만나면, 웬지 공짜로 먹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

그래서 일과 유희는 다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두껑 보고도 놀란다'고,  올 가을엔 댓글만 보면 가슴이 벌렁거릴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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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1인 미디어, 아니 더 정확하게는 블로거 공동체에 대한 관심들이 많은 듯하다. 포털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또 전문 블로그 서비스업체들도 수시로 눈길을 보내고 있다. 서로 지향하는 바는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블로거들의 양질의 콘텐츠를 하나로 모아보겠다는 생각들이 강한 듯하다.

내가 이런 실험들을 눈여겨 보는 것도 순전히 개인적인 필요 때문이다. 박사 논문 연구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이 바로 '온라인 시민 참여 미디어의 진화모델'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연구해보고자하는 것은 '온라인 시민 참여 미디어'에서 '1인 미디어'들을 어떻게 개념 정의하고, 그들과 운영진(다른 마땅한 표현이 없어서)이 어떤 관계를 갖는 게 바람직할까, 하는 문제다.

하지만 요즘 관심을 기울일수록, 자꾸만 미궁 속으로 빠지는 느낌이다. 생각할수록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내가 머릿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논문 형식으로 풀어내는 작업 역시 녹록하지가 않다는 점이다.

뻔한 얘기 같지만, 일본 고베대학의 미우라 아사코 교수는 "블로그 글쓰기는 포스트를 기반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해주는 사회적인 행위이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는 또 사람들이 블로그 글쓰기를 하게 되는 3대 요인으로 1) 자기 자신에 대한 혜택 2)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미치는 혜택 3) 정보 처리 기술 등을 꼽았다. (Journal of Computer-Mediated Communication 에 게재된 Psychological and Social Influences on Blog Writing 참고할 것.)

일단 1인 미디어 공동체를 구축하려는 측은 블로거들이 지속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그게 가능할까? 자아에 대한 이해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구축, 여기에다 효율적인 정보 관리 등이 결합되면 적어도 블로그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 미우라 아사코 교수 등의 논지다.

물론 이들의 연구 결과를 100% 받아들일 순 없을 것이다. 어차피 논문이라는 건 소수의 연구 대상을 토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일반화할 땐 극도로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초기 연구 결과를 가지고 '만병통치약'처럼 발표하는 연구자들을 볼 때면 그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들의 연구 자체는 상당히 신뢰할만한 부분이 있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요즘 애드센스를 비롯한 수익 창출 시스템이 인기를 끌면서 '1인 미디어'에 대해 자꾸만 '노다지의 꿈'을 심어주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수익을 창출하도록 해주고, 또 그 수익을 적절하게 배분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게 주가 되어버리는 순간, '1인 미디어 공동체'라는 것은 진정성에 기반한 온라인 공론장으로서의 기반 자체를 상실해버리게 된다. '온라인 매체 정책을 세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철학이다'는 하나마나한 얘기를 자꾸만 되뇌이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1인 미디어 공동체'를 만들 때는 좀 더 차분하게 접근했으면 좋겠다. 블로그 글쓰기를 지속하게 만드는 것은 경제적인 요인보다는 '1인 미디어의 영향력'과 '타자와의 교류' 등과 같은 사회적 요인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난, 우리나라가 온라인 미디어 강국이 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인문학적 기반이 취약하다는 점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블로고스피어에 불고 있는 애드센스 광풍도 우려스럽기 그지 없다. 광고들이 잔뜩 붙어 있는 파워블로그들은 어느 새 그렇게도 비판했던 주류 매체들의 온라인 사이트들을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벌 수 있는 돈이 과연 얼마나 될까?

좀 더 차분하게 접근했으면 좋겠다. '1인 미디어 공동체'는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소통하는 곳이라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시작했으면 좋겠다. '노다지의 꿈'이 현실로 연결된 적은 별로 없다. '정보를 소통하는 곳' '사람과 소통하는 곳' '나와 소통하는 곳.' 그것이 바로 블로고스피어요, 그것이 바로 1인 미디어 공동체의 지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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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슨/넷레이팅스가 발표한 2007년 2월 톱 뉴스 사이트 순서.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미국에서도 전통 미디어 못지 않게 포털이나 다른 사이트들이 꽤 높은 순위에 올라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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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아거님의 블로그에 올라온 '기생 매체 or 공생매체' 라는 글을 소개한 적 있다. '공정 이용권'을 믿고 그 글에서 일부를 옮겨 온다.

영향력있는 보수파 정치 블로거 글렌 레이놀즈는 An Army of Davids (다윗의 군대)라는 책(p.93)에서 통신사에서 주는 기사를 받아 “분석”과 “의견”을 다는 신문사들은 자신들이 이렇게 할 때는 “value-added journalism” (부가 가치된 저널리즘)이라고 부르고, 블로거들이 하는 것은 “기생충”이라고 부른다고 비꼬고 있다. (자기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을 연상케 함)


글렌 레이놀즈의 글과는 다른 관점에서, 요즘 보도자료 문제도 기자들을 괴롭히는 것 중 하나다. 최근 들어 보도자료만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사이트도 생기면서, 일반인들도 직접 보도자료를 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다. 보도자료를 거의 그대로 옮긴 기사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보도자료가 뉴스가 되는 오늘이 어이없다 라는 글도 바로 그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여기서도 몇 줄 인용한다.

매체와 기자가 가졌다는 힘의 원천은 독자 한 명 한 명이다. 문장을 만들어 내는 재주? '그 까이꺼'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독자 없는 기사와 매체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말하지 말고, 팩트를 검증하고 채운 올바른 정보를 담은 기사가 아니면 독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하자. 독자는 그 노력을 분명히 알아준다.

기자들에게 상당히 아픈 지적을 하고 있다. 일찍이 댄 길모어도 <We the Media>란 뛰어난 저술에서 "앞으로는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저널리즘은 힘을 잃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오픈소스 시대'에 저널리즘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를 적나라하게 지적한 말이다.

시민단체 왜 꼭 기자를 통해 말하려 할까 란 글은 이미 저널리즘 지형도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홍보대행사들이 직접 블로거 기자 같은 걸로 활동하면서 클라이언트들의 소식을 그냥 전해줘버리면 어떻게 될까?

물론 지금 당장은 어려울 것이다. 또 언론과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도 부담스러울테고. 하지만 그건 그 쪽 문제이고, 솔직히 기자들은 뼈를 깎는 변신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명함에 기자라는 걸 박아가지고 다니는 내 입장에서도 이런 변화는, 한 편으로론 기대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아직까지 대부분(거의 모든) 언론사들이 기존 시스템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여전히 보도자료를 옮겨 적고 있으며, 그렇게 나온 기사들이 지면에서 절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보도자료를 그대로 옮겨 적는 건 아니다. 나름대로 사실 확인도 하고, 또 때론 추가 취재를 통해 사안을 키우기도 한다.

문제는 개인 차원이 아니다. 물리적으로 그런 식으로 해서 쓸 수 있는 기사 건수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써야 할 기사 건수는 엄청나게 많다. 그러다 보니까 상당수 보도자료는 그냥 쓰게 되는 것이다.

변명 같겠지만, 보도자료가 그대로 기사가 되는 현실은 분명히 개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게 '기자들의 게으름 때문이 아니다'는 얘기는 꼭 하고 싶다. (이게 변명이란 건 나도 잘 안다.) 기본적인 언론 시스템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댄 길모어의 말처럼 이젠 '대화형 저널리즘' 시대가 왔는 데, 언론들은 여전히 독자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려 하고 있다. 그것도 오래 된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그대로 읽어주면서. 그 부분에 대한 각성과 변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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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시민 참여 저널리즘'이라고 써 놓고 보니, 참 막연하다. 과연 어떤 모델이 바람직한 진화 방향일까? 요즘 고민하고 있는 주제 중 하나다.

김병철 교수가 쓴 <온라인 시민 저널리즘 연구>란 책에는 세 가지 모형을 제시하고 있다. 기자 주도형 시민기자 모델, 기자-시민 공동 주도형 시민기자 모델, 그리고 시민 주도형 시민기자 모델이 바로 그것이다.

김 교수의 이 모델은 H. Aday의 모델, 즉 동반자 모델, 권력이양 모델, 그리고 정보제공자 모델 등을 좀 더 한국적인 시각으로 변형한 것인 듯하다.

굳이 따지자면 오마이뉴스의 시민 기자제는 '기자-시민 공동 주도형 시민기자 모델'이 될 것이고, 미디어다음의 블로거 기자제는 '시민 주도형 시민기자 모델'이 될 것이다. 과연 어떤 것이 한국적 현실에서, 또 온라인 시민 참여 저널리즘이란 측면에서 바람직한 모델일까?

대선이란 대형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는 2007년엔 이런 온라인 시민 참여 저널리즘 모델들의 진화 방향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참 쉽지 않은 주제인 듯 같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지난 해 패널로 참가했던 미디어다음 블로거 기자 100일 기념 좌담회 기사를 다시 보게 됐다. "블로거 뉴스, 더 열리고 더 겸허해야" 란 그 기사의 제목은, 참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실천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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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사이버저널리스트닷넷에서 뒤늦게 Top online media stories of 2006 이란 글을 발견했다. 사이버저널리스트닷넷의 리스트는 편집진들이 뽑은 것이 아니라 페이지뷰를 토대로 선정한 것이다. 따라서 독자들의 '집단지성'의 산물인 것이다.

2006년의 온라인 저널리즘 뉴스 첫 번째 리스트에 Media in Second Life가 올라 있는 것이 우선 놀랍다. 실제로 지난 해엔 와이어드, C넷, BBC, 로이터 등 많은 언론사들이 세컨드라이프에 직접 발을 들여놨다고 한다.

미국 광고협회에선가? 지난 해 최고의 화제로 유튜브 대신 세컨드라이프를 선정했다고 하던데, 미디어 세상에서도 세컨드라이프가 떠오르고 있다는 건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사이버저널리스트닷넷은 인쇄 미디어의 몰락, 새로운 기술의 대두, 저명 웹 저널리스트에 쏠린 관심 같은 것들을 주요한 이슈로 들고 있다.  

물론 사이버저널리스트닷넷의 리스트가 최근의 온라인 저널리즘 환경을 100% 반영한다고 생각하는 건,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래 리스트를 곰곰히 읽어보면, 뭔가 흐름이 보일 것이다. 그 흐름을 잘 읽는 사람이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 안착할 수 있을 것이다.

1.  Media in Second Life
2. 'Can Newspaper Journalism Survive Blogs, Fox News, and Karl Rove?'
3. TV Guide Canada to become web-only publication
4. How the young consume the news
5. How to prepare your newsroom for the digital future
6. CNBC.com launches new site
7. Video player now available for Blackberrys
8. CBS Evening News with Katie Couric to use web
9. Washington Post reporter shoots video of Iraq ambush in Iraq
10. Amanda Congdon leaves Rocketboom
11. Kevin Sites on why he left network news for the Net
12. Auto-converting news articles into podca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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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올드미디어들의 뉴미디어 껴안기가 상당히 활발합니다. 그저께 BBC가 유튜브와 콘텐츠를 제휴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드린 적 있지요. 이번엔 MSNBC닷컴이 UCC 전용 섹션을 오픈했다는 소식입니다. (미국 언론들은 UCC란 말 대신 UGC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user generated contents의 약어이지요. generated와 created와 어감 차이가 조금 있지요?)

MSNBC닷컴이 독자들의 사진, 동영상, 그리고 텍스트로 된 기사들을 소화하기 위해 아예 FirstPerson이란 새로운 브랜드로 된 섹션을 하나 오픈한 겁니다. FirstPerson이란 단어가 참 의미심장한 것 같습니다.

그 얘기를 조금 해 볼까요?

요즘 제가 온라인 시민참여 저널리즘에 대해 관심을 좀 갖고 있습니다. 온라인 저널리즘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시민 참여'이란 단어를 추가한 건 최근입니다. 어렴풋이 구상하고 있는 제 학위 논문의 주제이기도 하구요.

온라인 시민 참여 저널리즘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native reporting, 혹은 original reporting입니다. 시민들이 직접 취재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직접 경험한 내용을 기사로 올리는 비중이 얼마나 되느냐는 것도 중요한 척도 중 하나인 것이지요. 외국 연구 사례들을 보면 의외로 온라인 대안 미디어들도 native reporting의 비중이 높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While the blogs studied were found to perform traditional news functions, key aspects of blogging mythology and rhetoric, such as original reporting, circumvention of mainstream media, alternative sources and- perhaps most significant in terms of political communications and democracy, suggesting action in response to news and information- were surprisingly rare. Rather than vigilante muckrakers, bloggers were activist media pundits, raising questions about their true role in political communication. (Blogging, Citizenship, and the Future of Media, p.39)


MSNBC닷컴이 UCC 섹션 이름으로 FirstPerson을 택한 것을 보면서, 바로 native reporting이란 개념을 염두에 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물론 여기서 reporting이란 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보도 활동에서 조금 더 폭을 넓힌 개념이겠지요. (네이티브 리포팅은 대안 미디어 전문 이론가인 크리스 애튼(Chris Atton)의 글에서 본 겁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한 내용을 보도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네요.)

MSNBC는 최근에는 'Trading Places: Caring for Your Parents'란 시리즈물에 대한 시청자들의 의견을 한 데 모아서 사이트에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현재까지 6000건 이상이 올라와 있다고 하네요. 이런 시도들 자체가 독자/수용자와 함께 하려는 노력에서 나온 게 아니겠습니까?

올드미디어들의 최근 움직임을 보면서 1, 2년 내에 미디어의 기본적인 미디어 패러다임이 상당히 바뀔 것이란 예상을 해봅니다. 전 이런 변화의 결과들이 두렵기도 합니다만, 한편으론 굉장한 기대감을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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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는 내게 '극작가' 이미지 보다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시를 남긴 시인으로 더 친숙하다. 1990년대였던가? 박일문이란 작가가 쓴 동명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 소설보다는 소설 끝부분에 붙어 있던 브레히트의 시에 더 진한 가슴떨림을 느꼈던 기억이 새롭다.

하지만 최근 나는 브레히트를 뛰어난 '시민 저널리즘 이론가'로 새롭게 만나게 됐다. 그의 '라디오 이론'은 이미 수 십 년 전에 요즘 웹 2.0을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콘텐츠 생산자로서의 소비자'란 개념을 만들어내고 있다.

브레히트는 새롭게 등장한 미디어인 라디오에 주목하면서 "라디오와 같이 상호작용적이라는 기술적 잠재력을 갖고 있는 미디어는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적인 구조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브레히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라디오는 공공 생활에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기구로 생각될 수 있다. 그것은 대단한 통로 체계이다. 만일 라디오가 단순히 전달할 뿐만 아니라 수신도 할 경우, 다시 말해서 청취자가 듣기만 할 게 아니라 말할 수 있게 하고, 그리고 그들을 소외시키지 않고 자신들의 관계망 안에 끌어들일 경우 라디오는 대단한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될 수 있다.
                            박춘서, <대항공론과 대안언론>. p. 38에서 재인용.
브레히트는 라디오에서 '쌍방적 미디어'의 가능성을 발견했던 것이다. 평범한 시민들이 적극 참여하는 미디어. 모두가 주인이 되는 미디어. 많은 이들은 인터넷의 등장에서, 더 '경박한' 사람들은 웹 2.0이란 말 속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하지만 시민 미디어, 양방향적 미디어에 대한 고민은 이미 그 이전부터 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독자가 기자가 될 수 있는 시민 미디어의 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다.

브레히트는 '플랫폼'만 펼쳐놓으면 '누구나 훌륭한 기자가 될 수 있는' 시민 저널리즘 세상이 펼쳐질 것이란 섣부른 기대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고 있다. 특히 요즘 '웹 2.0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것'이란 과감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한번쯤 들어볼만한 지적이다. 역시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


사람들은 갑자기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숙고하면 그는 말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박춘서. 앞의 책.  p. 37


여기까지 쓰고 보니, 내가 <블로그 파워>에 첨가했던 구절이 떠올랐다. 그래서 서둘러 그 부분을 찾아봤다. 그 부분에서 나는 맥루한과 댄 길모어를 인용한 뒤 이런 구절을 덧붙여 놓고 있었다.


라디오는 참여라는 측면에서 볼 때 전통 매체 중 블로그와 가장 흡사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워드 쿠르츠처럼 '라디오가 블로그 현상의 전조가 됐다.'는 과감한 주장을 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는 아닐테지만, 적어도 블로그 세계의 장점 중 상당 부분은 이미 라디오가 한 차례 누렸던 것들이라는 점은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블로그는 라디오의 많은 장점들을 좀 더 발전시켰다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김익현, <블로그 파워> p. 55.

<블로그 파워>를 쓸 때만 해도, 나는 브레히트의 '라디오 이론'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아니 내가 꽤 좋아하는 시인이, 사실은 뛰어난 미디어 이론가였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못했다. 큰 맥락에서보면 그리 틀리지 않았던 것 같아 다행이긴 하지만, 그 책을 쓸 때 내가 브레히트의 '라디오 이론'을 알았더라면 좀 더 풍부한 서술이 가능했을 것이란 아쉬움까지 비켜갈 수는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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