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토끼'를 비롯한 토끼 시리즈로 유명한 존 업다이크란 소설가가 있다. 지난 2009년 폐암으로 사망한 존 업다이크는 '토끼 잠들다'로 1991년 퓰리처 상을 수상한 작가다. 미국 현대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좌표를 갖고 있다.


하지만 내가 업다이크를 기억하는건 이런 화려한 이력 때문이 아니다. 두 번째 직장으로 옮기던 무렵 외신에서 업다이크란 작가가 '공동창작' 실험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일종의 소설 이어쓰기 실험이었다. 업다이크가 먼저 운을 뗀 뒤 독자들이 그 뒤 이야기를 이어가는 방식이었다.  


업다이크의 실험은 당시 막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던 인터넷을 활용한 것이었다. 실험정신이 뛰어난 작가답게 새로운 매체에 걸맞은 스토리텔링 방식에 대한 고민을 직접 실험했던 셈이다.


오늘 CNN 사이트에서 흥미로운 뉴스를 하나 발견했다. 역시 퓰리처 상 수상 작가인 제니퍼 에간(Jennifer Egan)이 트위터 소설을 쓴다는 소식이었다. 제니퍼 에간의 트위터 소설 창작은 미국의 고급 문화 잡지인 '뉴요커'가 진행하는 프로젝트 중 하나다. 


이번에 에간이 집필하게 될 '블랙 박스'란 소설은 5월24일부터 6월2일까지 열흘 동안 트위터에서 선을 보이게 된다. 방식은 간단하다. 에간은 매일 저녁 8시(미국 동부시간 기준)부터 9시까지 한 시간 동안 트위터에 소설을 올린다. 물론 140자 제한이라는 트위터의 특성을 감안해 한 번에 140자 이내로 글을 올리게 된다. 


작가 입장에선 소설을 집필하는 동안 독자들과 바로 소통할 수 있다. 에간 역시 이런 부분에 대해 상당한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엄밀히 얘기하자면, 집필을 끝낸 작품을 트위터에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방식이다. 에간은 트위터 공개를 위해 원래 자신이 집필했던 작품의 길이를 반으로 줄였다. 이 작업을 하는 데만 1년이 꼬박 소요됐다고 한다. 


사실 에간의 실험이 유별난 건 아니다. 일본에선 이미 휴대폰 소설이 꽤 인기를 모으고 있다. 게다가 작가들이라면 누구나 '글쓰기 공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마련이다. 내가 번역했던 '하이퍼텍스트 3.0'이나 '글쓰기의 공간' 같은 책들 역시 모두 스토리텔링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는 책들이다. 


여기서 잠시 옆길로 새어나가 보자. 영문학을 공부해보면, 시간과 의식. 그리고 그런 의식의 흐름을 잡아내는 것이 중요한 모티브라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영문학의 영원한 주제인 성경과 그리스 신화, 그리고 '잃어버린 성배' 같은 것들은 논외로 하자.)


제임스 조이스나 버지니아 울프(가 한 동안 느닷없이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떠오른 적 있다. 지금도 불가사의다.) 같은 작가들은 3차원적인 의식을 2차원 공간에서 담아내려는 노력을 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의식의 흐름' 기법이다. 그들의 소설이 난해한 건 3차원 공간의 일을 2차원 매체에 담아낸 때문이다. '율리시스' 같은 작품도 태블릿용으로 재구성하면 좀 더 수월하게 읽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난 에간의 이번 실험도 같은 차원이라고 생각한다. 글쓰기 공간에 대해 끊임 없이 고민하는 작가의 실험. 물론 여기에 잡지사의 기획이 곁들여지긴 했지만, 트위터로 소통하는 세대에 걸맞은 소설을 써보겠다는 작가의 실험정신이 없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프로젝트였을 것이다.


물론, 난 에간의 소설을 시간 맞춰서 트위터에서 읽을 생각은 없다. 실제로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많은 호응을 얻을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작가 입장에선 독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한 경험은 창작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완성된 작품을 트위터로 풀어내는 프로젝트라 하더라도 말이다.


어쨌든, 글쓰기 공간과 스토리텔링 방식을 조화시키는 문제는 영원한 숙제인 것 같다. 늘 쫓고 쫓기는 그 과정을 통해 문학을 비롯한 각종 글쓰기가 진화 발전하는 지도 모를 일이다. 


(올해 초 야심적으로 선언했던 T. S 엘리엇 '황무지' 앱 읽기는 여전히 손도 못 대고 있다. 먹고 살기 바쁜 내겐 글쓰기 공간과 스토리텔링 간의 변화 발전을 추구하는 건 너무나 먼 주제인 모양이다. ㅠㅠ)

지난 주 브라우저 시장에선 흥미로운 뉴스가 보도됐다. 구글의 크롬이 사상 처음으로 주간 점유율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제쳤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주요 외신들은 미국 시장 조상업체인 스탯카운터 자료를 인용, 5월 셋째 주 데스크톱 브라우저 시장에서 크롬이 32.76% 점유율을 기록하면서 익스플로러(31.94%)를 제쳤다고 보도했다. 크롬이 주간 점유율 1위에 오른 것은 2008년 9월 첫 선을 보인 이후 처음이다. 익스플로러가 2위로 내려간 것도 1999년 이후 처음이다. 





이런 보도가 나오면 사람들은 "이젠 크롬 세상이 된 모양이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크롬의 약진이 두드러지긴 하지만, 언제 어디서 조사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대개 사람들은 직장에선 익스플로러를 쓰고, 집에선 크롬을 쓰는 비율이 높다.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최근 자료에선 또 다시 익스플로러가 크롬을 제친 것으로 나왔다. 역시 스탯카운터 자료에 따르면 5월 들어 이날까지 전 세계 시장에서 익스플로러 점유율은 32.42%를 기록, 크롬(32.29%)을 근소한 차로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크롬이 지난 주 잠깐 1위에 등극하긴 했지만, 여전히 브라우저 시장 1위는 익스플로러란 얘기다. 


물론 5월말이나 6월말쯤이 되면 월간 점유율에서도 크롬이 1위에 오를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하지만 아직은 익스플로러 세상인 건 분명하다.


더 흥미로운 건 지역별 조사 결과다. 가디언이 오픈히트맵(OpenHeatMap)을 이용해 전 세계 브라우저 시장 점유율 추이를 지도에 표시했다. 그림에서 파란색은 익스플로러, 갈색은 파이어폭스, 그리고 녹색은 크롬이 1위를 차지한 지역이다. (점유율 차이와 상관없이 1위를 차지한 브라우저만 표시한 것이다.)





조사 결과는 상당히 흥미롭다. 우선 전 세계 시장에선 익스플로러와 크롬에 이어 파이어폭스가 25.4%로 3위에 랭크됐다.


지역별로 보면 예상과 달리 북미 지역에선 익스플로러(38.3%)가 크롬(25.3%)과 파이어폭스(21.9%)를 크게 따돌리면서 1위를 차지했다. 특히 북미 지역에선 애플 브라우저인 사파리 비중이 12.5%에 달해 눈길을 끌었다. 다분히 맥북을 비롯한 애플 컴퓨터가 강세를 보인 때문으로 풀이된다. 


반면 아시아 시장에선 크롬이 37.6%로 압도적인 강세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익스플로러(32.5%)나 파이어폭스(21.4%)를 크게 따돌린 것. 


유럽에선 파이어폭스가 30.7%로 1위를 기록했으며 크롬은 29.4%로 그 뒤를 이었다. 반면 익스플로러는 28.5%로 3위에 랭크됐다. 유럽 시장에선 브라우저 3대 강자가 한 치 양보 없는 점유율 경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지역별 조사는 일반적인 예상과 상당히 다른 부분이 적지 않았다. 북미 지역에서 의외로 익스플로러 점유율이 높은 점과 아시아 시장에서 오히려 크롬이 강세를 보인 것도 의외였다. 또 유럽에서도 구글의 매출 비중이 가장 큰 영국 시장에서 오히려 크롬보다 익스플로러 점유율이 높게 나타난 것 역시 눈에 띄는 결과였다.


물론 이런 조사 결과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것이 리드라이트웹이다. 리드라이트웹은 데스크톱 브라우저 시장에서 크롬이 주간 점유율 1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전해주면서 "과연 그게 의미가 있는가?"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앞으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통해 접속하기 때문에 애플과 구글 두 회사가 각축적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미국 시민 저널리즘을 대표하는 제이 로젠이란 학자가 있다. 시민 저널리즘 분야의 고전으로 꼽히는 'What are Journalists for?'란 저술을 남긴 뛰어난 학자이면서, 동시에 활동가이기도 하다.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와이어드'와 공동으로 온라인 시민 저널리즘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했다.


로젠이 던진 화두 중 'View from nowhere'란 말이 있다. 우리 말로 옮기면 '가상으로부터의 관점' 쯤 된다. '가상으로부터의 관점'이란 사안에 대한 양쪽의 의견을 보여준후 독자에게 판단을 맡기는 일종의 '중립 저널리즘' 일컫는 말이다. 기자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고, 첨예한 사안에 대한 가치 판단을 배제한 채 보도하는 걸 의미한다. 현재 CNN을 비롯한 미국의 많은 매체들이 '가상으로부터의 관점'에 입각한 중립 저널리즘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 로젠 교수의 비판이다.


당연히 로젠 교수는 '중립 저널리즘'에 대해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중립 저널리즘이 기자들을 멍청하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헤치려는 노력 대신 그저 표면적인 사실들을 조합한 뒤 적당하게 기사화하는 나쁜 관행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비판도 하고 있다. (이 부분은 언론사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까 란 글에서 많이 참고했다는 점을 밝혀 둔다.) 


물론 '가상으로부터의 관점'이란 것이 그냥 나온 건 아니다. 대중 매체 시대엔 일정 부분 필요한 측면도 있었다. 게다가 다양한 성향의 광고주들을 모두 껴안으려면, 너무 자기 주장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 불리한 측면도 있다. 반대쪽에 자리잡고 있는 광고주는 포기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 저런 관점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특색없는 잡탕 찌개 같은 저널리즘이 탄생하게 됐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를 비롯해 다양한 플랫폼들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동안 언론을 통해 뭔가를 말해야 했던 사람들이 직접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밋밋한 중립적 관점'을 지향하는 저널리즘의 매력이 갈수록 떨어지기 시작한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맞으면서 최근 미국 주류 언론계에서도 반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 최대 일간지인 USA투데이 발행인으로 영입된 래리 크래머의 취임 일성에도 이런 자성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그는 "좀 더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여기서 기가옴에 인용된 부분을 그대로 옮겨와 보자.


I think both USA Today and CNN for a long time concentrated on the news being the voice. Now I think with Twitter and with all the different ways news is disseminated, people are looking for a little bit more of an interesting take on a story.


트위터를 비롯한 다양한 뉴스 유통 채널들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좀 더 흥미로운 뉴스를 찾게 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밋밋한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는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 힘들다는 비판인 셈이다.


이런 비유는 어떨까? 두 사람이 싸우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발단은 A란 사람이 B에게 폭언을 하면서 시작됐다. 이유 없이 한 방 먹은 B도 큰소리로 맞대응하면서 싸움이 커졌다. 그 자리에 C란 사람이 지나가게 됐다. B가 C에게 먼저 자기 얘기를 한다. 그런 다음 C는 A에게도 얘기를 들어본 뒤 "두 사람이 싸우고 있습니다. A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고, B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싸움이 꽤 길어질 것 같습니다. 누군가 중재를 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보도한다. 


예전엔 이런 목소리만 있었기 때문에 별 문제 없었다. 둘이 싸우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셜 미디어가 힘을 얻으면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이젠 A나 B의 입장에 서서 배경 설명을 해주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한 때문이다. 당연히 사람들은 C와 같은 방식으로 사건을 전해주는 사람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됐다.


프라이데이 나잇 라이트의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버즈 비신저란 사람은 이런 상황에 대해 좀 더 직접적으로 얘기한다. 언론사에서 편집 데스크를 거치면 거칠수록 기사가 더 밋밋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니먼저널리즘랩과의 인터뷰에선 이런 말도 했다. 편집자들은 지나치게 조심스럽다는 인터뷰 기사 제목에 모든 의미가 포괄돼 있다고 봐도 된다. 


We’re hiding much of our newsrooms’ value behind a terribly anachronistic format: voiceless, incremental news stories that neither get much traffic nor make our sites compelling destinations. While the dispassionate, what-happened-yesterday, inverted-pyramid daily news story still has some marginal utility, it is mostly a throwback at this point — a relic of a daily product delivered on paper to a geographically limited community.


이쯤에서 우리는 한번 반성해봐야 할 것 같다. 우리 언론 역시 '가상으로부터의 관점'이란 관행에 충실하다. (우리 언론의 더 큰 문제는 '가상으로부터의 관점'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이란 비판이 바로 날아올 것 같다. 하긴, 그게 우리 언론 현장의 적나라한 현실이기도 하다. ^^) 이른바 객관보도 관행. 그런데 그게 따지고 보면, 언론의 숭고한 가치 때문이 아니라 비즈니스적 이해관계, 혹은 복잡한 사안에 얽혀들기 싫은 보신주의가 크게 작용한 측면이 있다. 그러다 보니, 기자들 역시 표면적인 상황 정리만 해주는 역할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왜, 우리에겐 프로퍼블리카가 없을까, 하다 못해 전통 매체엔 왜 주진우 같은 사람이 없을까, 라고 비판하는 건, 그리고 그런 비판을 일선 기자들에게만 날려대는 건,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말씀이다. 만약 그런 비판을 하는 사람이 (그럴 리도 없겠지만) 언론사 고위 간부라면, 정말 뭘 모르는 말씀이다. 현재 시스템이 그렇게 돼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USA투데이의 새로운 선언이 현장에서 어떤 변화로 이어질 진 알 수 없다. 그냥 의례적인 멘트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전통 언론이 처한 여러 위기의 원인을 따지고 들어가면 '가상으로부터의 관점'이란 속 편한 보도 방식에 지나치게 안주했다는 부분도 결코 적지 않게 작용했을 것이란 점이다. 


크라우드 소싱이란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크라우드소싱이란 제프 하우가 2006 '와이어드(Wired)' 실린 기사에서 처음 쓴 말이다. 당시 하우는 '작은 일거리를 수많은 개개인에게 아웃소싱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크라우드소싱이란 말을 썼다. 


하지만 그 뒤 크라우드소싱은 저널리즘 쪽에 넘어오면서 여러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보도 방식으로 널리 불리게 됐다. 대표적인 시민저널리즘 이론가인 제이 로젠 뉴욕대학 교수는 '어사인먼트 제로'란 크라우드 소싱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렇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추적 60분'이나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프로그램을 떠올려보면 된다. 그 프로그램들은 끝날 무렵이 되면 "추적 60분은 미혼모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례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있는 분들은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와 같은 문구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프로그램을 좀 더 풍부하게 만드는 방식을 크라우드 소싱이라고 한다.


늘 그렇듯, 서두가 길었다. (이게 나의 치명적인 약점인듯.) 





탐사보도 사이트로 유명한 프로퍼블리카가 의료 사고로 고통받는 사례를 취재하면서 크라우드 소싱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사실 특별할 것 없다. 그런데 크라우드 소싱을 하는 방식이 다소 특별하다. 대개 해당 기자나 팀 이메일이나 트위터 계정을 활용하는 대신 아예 페이스북에 관련 페이지를 만든 때문이다. Propublica Patient Harm Community는 공개 페이지로 운영되고 있다. 누구나 여기 와서 자기 경험을 올리고, 또 다른 사람들과 토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페이지 운영자는 프로퍼블리카의 두 기자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번에 개설한 페이지가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중립적인 플랫폼으로 만들겠다고 공공연히 선언하고 있다. 


프로퍼블리카 측이 밝히는 내용을 보면, Propublica Patient Harm Community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는 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이들은 "환자 뿐 아니라 의사, 간호사, 정부 당국자, 의료 관련 경영자 등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 곳에서 피해 상황 뿐 아니라 현황과 대안을 함께 논의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언론사 기자들도 이 페이지에서 나온 정보를 활용해 취재 활동을 해도 무방하다고 주장한다.


이번 프로젝트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니먼저널리즘 랩에 실린 기사를 참고하면 될 것 같다. 


두 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형식적인 측면이다. 그 동안의 관행과 달리 자신들이 다루는 주제를 포괄할 수 있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오고 가는 모든 정보까지도 공개해버리겠다는 자신감이다. 언론사가 중심에 있으면서, 모든 정보를 자신들이 독점하려고 했던 기존 크라우드 소싱 전략과는 또 다른 방식이라는 점에서 프로퍼블리카의 이번 실험은 상당히 눈길을 끈다. (물론 제이 로젠 교수가 했던 크라우드 소싱 실험도 있다. 하지만 로젠 교수는 어디까지나 연구자 입장에서 한 프로젝트였다는 한계가 있다.)


두 번째는 프로퍼블리카의 철저한 변신 노력이다. 2년 여 전부터 프로퍼블리카는 새로운 언론 모델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 국내에서도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한 언론 모델로 프로퍼블리카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프로퍼블리카는 2년 연속 퓰리처 상을 받으면서 자신들에게 자금 지원을 해 준 많은 시민들의 성원에 보답했다. 기자들도 1년에 한 두 꼭지를 집중적으로 취재하면서 깊이 있는 탐사 보도의 진수를 선보였다.


이런 방식을 운영해 오던 프로퍼블리카가 이젠 오픈 플랫폼 역할까지 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이번에 실험적으로 해 본 페이스북 페이지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될 경우엔 이 방식을 적극 활용할 것으로 기대해 볼 수도 있다.


프로퍼블리카의 이번 프로젝트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니먼저널리즘랩이 잘 지적했다. 그 부분만 옮겨와 보자. 


And that jibes with ProPublica’s larger social media strategy. At its core is the idea that journalists are not the only ones who can deliver important information, and traditional articles aren’t always the best distribution channel.


어쨌든 페이스북 페이지를 활용한 프로퍼블리카의 크라우드소싱 실험은 앞으로 주시해볼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성공할 경우엔 크라우드소싱 취재 실험의 또 다른 전범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


페이지에 들어가보니 5월초 처음 개설한 것 같다. 현재까지 이 페이지 참여자는 약 280명 정도. 아직까지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보긴 힘들다. 하지만 정보가 쌓이게 되면 참여에 가속도가 붙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정보사회학이란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는 윤영민 교수는 페이스북의 기본 메커니즘을 잘 드러내는 것 중 하나로 선물경제를 꼽는다. 그런 측면에서 윤 교수는 소셜 미디어 관련 책을 찾는 이들에게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을 추천한다.


(자세한 내용은 정보사회학 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글을 참고하면 될 것 같다.)


물론 선물경제와 SNS를 직접 연결하는 것에 대해선 반론도 적지 않다. 실제로 정보사회학에도 다양한 반론들도 올라와 있다. 그건 충분히 논의 가능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갑자기 마르셀 모스와 선물경제를 떠올린 건 페이스북의 최근 행보 때문이다. 지난 주 기업공개를 단행하자 마자 카르마(Karma)라는 선물 전문 앱을 인수한 것. 구체적인 인수 규모를 밝히지 않고 있으니까 그 부분은 추측만 할 다름이다. 사실 인수 규모가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다.


그런데 곰곰 살펴보니 페이스북과 카르마를 조합할 경우 상당히 매력적인 서비스가 탄생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어쩌면 페이스북과 선물경제의 절묘한 조합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판단도 들었다.


카르마의 선물추천 기능, 페이스북과 결합 땐...


일단 외신들은 카르마 인수로 페이스북이 모바일 사업 쪽에 좀 더 힘을 받을 것이란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표적인 게 리드라이트웹의 기사다. 포브스 기사도 그 쪽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두 지인이 운영하고 있는 테크잇 역시 이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물론 그 부분도 큰 의미가 있다. 페이스북 입장에선 모바일 쪽에 안정적인 터를 닦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 정도 의미에 그치는 게 아니다. 카르마는 친구나 지인들에게 어떤 선물을 하면 좋을 지 추천해주는 기능이 있다. 이거 단순한 것 같아도 생각보다 유용하다. 가족 친지들의 생일이야 알아서 챙기겠지만, 이를테면 이맘 때쯤 친구 아들이 대학을 졸업한다거나, 아니면 최근 어떤 친구가 새로운 직장에 입사했다는 등의 정보를 토대로 어떤 선물을 하면 좋을 지 추천해준다는 것이다.


여기에 페이스북이 갖고 있는 각종 데이터를 결합하게 되면 상당히 그럴 듯한 서비스로 변신하게 된다. 물론 그 동안 카르마가 페이스북과 어느 정도 결합돼 있었지만, 이번 합병을 계기로 완전하게 통합될 수 있게 됐다.


한번 생각해보라. 이제 막 데이트를 시작한 커플이 있다. 여자 친구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은 데, 뭘 선물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이럴 때 페이스북이 그 여자 친구에 대해 갖고 있는 각종 정보가 상당히 유용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게다가 카르마 앱을 이용할 경우 선물을 보내는 것도 간단하다. 그냥 페이스북 담벼락을 이용하거나, SMS를 통해 선물을 보낼 수도 있다. 


페이스북 입장에선 당연히 그냥 선물 주고받는 선에서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쇼핑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유발하는 각종 선물경제 규모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점을 감안하면, 페이스북이 카르마를 인수한 건 상당히 현명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페이스북의 기본 매커니즘이 선물경제와 상당히 닮아 있다는 윤영민 교수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편이다. 이건 내가 예전에 '블로그 파워'를 쓸 때 주장했던 것과 일맥상통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모스의 '증여론'과 퍼트넘의 '나 홀로 볼링'


난 지난 2005년 '블로그 파워'를 쓸 때 로버트 퍼트넘의 '나 홀로 볼링'을 주목했다. (박사 과정 1학기 여름 방학 때 저 책 원서를 읽느라 골머리 썩였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나니 번역서가 떡 하니 출간되더라는 슬픈 이야기.)


사회적 연결망 관련 전문가인 퍼트넘은 그 책에서 '구체적 상호관계'와 '일반적 상호관계'른 두 가지 개념을 제시했다. 쉽게 설명하자면, 구체적 상호관계는 즉각적으로 주고 받는 것이다. 친구한테 밥을 사 줬으면, 반드시 그 친구한테 한번 얻어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관계가 구체적 상호관계다.


일반적 상호관계는 좀 더 범위가 넓어진다. 이건 우리 같은 언론사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문화다. 선배는 후배의 '경제적인 봉'이 되는 문화. 만나는대로 후배한테 밥을 사지만, 꼭 그 후배한테 다시 얻어먹겠다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대신 "저 녀석도 선배가 되면, 또 다른 후배에게 밥을 열심히 살테지"라고 생각한다. 


(오해를 피하기 위한 첨언. 비유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 일반적 상호관계가 '일방적인 관게'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주고 받는 범위를 사회 전체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관계를 의미한다. 당연히 구체적 상호관계 보다는 한 발 앞선 관계다.)


이걸 다른 각도에서 보면 물물교환과 화폐경제의 차이 쯤으로 볼 수도 있다. (더 자세한 얘기는 퍼트넘의 책을 참고하시길. 참고로, 퍼트넘 책, 무지 무지 두껍습니다.)


페이스북이 선물 앱을 완전히 결합할 경우 SNS가 좀 더 활기를 띨 가능성이 많다는 데 100원을 건다. 이번에 카르마 인수가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모스의 선물경제론이나, 퍼트넘의 '상호관계' 개념을 들이밀지 않더라도 이건 충분히 추론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IPO 다음날 조촐한 결혼식을 올리고, 그와 동시에 선물 전문 앱을 사는 마크 주커버거. 내공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주말 한국경제에 눈에 띄는 기사가 하나 게재됐다. 삼성전자의 차기작인 갤럭시S3 사전 주문량이 벌써 900만대에 육박한다는 소식이다. 삼성전자 관계자 멘트를 인용한 기사였다.


잠깐 그 부분을 옮겨보자.


삼성전자 관계자는 “세계 145개국 290여개 통신사업자들로부터 받은 갤럭시S3 주문량이 900만대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17일 밝혔다. 2010년 갤럭시S 출시 때 선주문량은 100만대, 지난해 갤럭시S2는 300만대였다.


골자는 삼성전자가 전 세게 290여개 통신사업자로부터 900만대 가량을 선주문받았다는 내용이다. 2년 전 갤럭시S 때 100만대, 지난 해 갤럭시S2 때 300만대니까 엄청나게 늘어난 것은 분명하다. 또 삼성 입장에서는 이런 식으로 발표를 할 수도 있다.


일단 두 가지 논점을 지적할 수 있다. 


첫 번째. 통신사로부터 주문받은 수치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비유하자면 어떤 영화를 개봉했는 데, 전국 스크린 400개를 잡았다는 정도쯤 될까? 극장들이 흥행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는 점에선 분명 의미가 있지만, 아직 흥행에 성공한 건 아니란 말씀.


두 번째. 언론의 보도 방식이다. 한국경제가 저 기사를 어떤 의미로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독자들은 당연히 "우와, 출시하기도 전에 벌써 900만대나?"란 생각을 갖게 마련이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저렇게 주문받은 900만대가 전부 다 팔렸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영화로 치면 스크린 많이 잡은 정도 의미이기 때문이다.


The Loop이란 사이트가 Samsung's bullshit pre-order numbers란 기사를 통해 이런 부분을 지적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애플은 사전 주문 수치를 발표할 때는 일반 소비자들로부터 받은 주문만 포함한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도 이런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The Loop을 인용 보도하는 기사 말미에 "5월29일 휴대폰이 출시될 때 900만 명이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선다는 얘기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 보도와 외신 보도 차이를 한국과 미국 매체의 차이라고 치부해버릴 수 있을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선뜻 대답하진 못하겠다. 


내가 즐겨 찾는 아심코 사이트를 방문했다가 흥미로운 글을 하나 발견했다. 한국 조선일보의 케니 호 기자와의 인터뷰(An interview with Kenney Ho of The Chosun Daily of Korea)란 글이었다. 


"이게 뭥미?"란 생각이 들어 바로 검색해 봤다. 그랬더니 조선일보 위클리비즈에 "시장신뢰 잃은 노키아, 과거 영광 되찾기 힘들 것"이란 기사가 실린 것을 발견했다. 조선일보 위클리비즈 커버 스토리였다. 기사 작성자는 호경업 기자로 돼 있었다. 


최근 끝없이 몰락하고 있는 노키아 문제를 커버 스토리로 다룬 감각이 돋보였다. 물론 아심코 운영자인 호레이스 데디우와의 인터뷰를 성사시킨 발 빠른 취재력 역시 남달라 보였다. 


호레이스 데디우가 올린 인터뷰 원문과 조선일보 기사를 동시에 읽어보는 건 상당히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읽으면서, 나라면 어떻게 기사를 썼을까, 생각해보는 것도흥미로웠다. 


그래서 몇 가지 논점을 한번 짚어봤다. 


우선 현재 노키아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과연 노키아는 회생 가능할까?"란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중요한 문제는 "절대 강자 노키아는 왜 단기간 내에 몰락했을까?"란 물음이 독자들에겐 더 인사이트를 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차라리 "휴대폰 시장의 독특한 상황 때문에 더더욱 회생이 쉽지 않다"는 쪽이 좀 더 부각되는 게 좋지 않았을까? 즉 단말기 제조업체가 유통업자나 이동통신사에게 한번 신뢰를 잃기 시작하면 구매를 계속 미루게 된다는 부분. 


하지만 더 중요한 부분은 다음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우선 기자는 삼성이 '패스트 팔로어' 전략으로 성공했다면서, 이 전략이 애플의 '퍼스트 무버' 전략보다 더 유리해 보인다고 질문했다. 그러자 호레이스 데디우는 이런 구분 자체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중요한 것은 혁신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삼성과 애플, 그리고 노키아의 혁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부분이 좀 더 중요하게 다뤄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호레이스 데디우는 애플과 삼성, 노키아의 혁신을 비교해주고 있다. 애플은 기기, 서비스 등의 통합을 통한 생태계를 기반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 반면 삼성은 다양한 기기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한 유통혁신(distribution innovation)을 했다는 것. 반면 노키아는 비용 혁신을 통해 로엔드 시장을 열었다. 그런데 노키아 처럼 비용 혁신을 하는 전략은 새로운 경험을 토대로 한 새로운 시장이 열릴 때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결국 PC 시장 같은 곳에서는 애플 식의 접근을 통해 기회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은 반면, 경쟁의 기본이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일 때는 노키아 처럼 비용 혁신 방식으로 접근할 경우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 하나. 10년 뒤 빅5 기업은 어디가 될까, 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데디우의 답변도 흥미로웠다.


데디우는 삼성, 애플도 10년 뒤엔 빅5를 장담하지 못한다고 봤다. 대신 중국 업체들이 상당한 위치를 차지할 가능성이 많으며, 아마존, 바이두, 페이스북 같은 온라인 서비스업체들 역시 새로운 플랫폼을 기반으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신이 노키아 CEO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란 질문에 대한 답변 역시 재미 있었다. 호레이스 데이우의 답변과 조선일보 기사를 원문 그대로 옮겨보자. 


If I were the CEO of Nokia I would set course for turning the company into a new business. I would approach the market asymmetrically and not try to compete directly with the other vendors. I would look toward services, platforms and software solutions and de-emphasize hardware.

하드웨어 중심에서 서비스·플랫폼·소프트웨어 솔루션을 중점으로 하는 비즈니스모델에 주력하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소트프웨어와 플랫폼(구글안드로이드 같은 운영체계 등) 없는 하드웨어 중심 회사는 몰락할 것이란 점이다. 


일단 플랫폼 없는 하드웨어 중심회사는 몰락한다는 부분은 찾을 수가 없다. 아마도 기자가 추가한 내용인 것 같다. 원문대로라면 자기가 노키아 CEO라면 새로운 비즈니스 쪽으로 진로를 잡을 것 같다는 얘기. 시장에 비대칭적으로 접근하고, 다른 휴대폰 판매업체와 직접 경쟁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이 부분이 조금 애매하긴 하다. 그렇긴 하지만, 조선일보가 풀어쓴 부분은 조금 단편적으로 해석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노키아의 조직 문화를 고친다면, 이란 질문 부분도 원문에서 한번 찾아봤다. 원문을 보니, 노키아가 2000년대 정상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서, 자기 만족에 빠진 것이 몰락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한 것으로 돼 있다. 이 질문에 대해 호레이스 데디우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갈라 말하면서 이런 답변을 했다. 


호레이스 데디우는 실제로 노키아는 열심히 투자를 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기사에도 나오지만 소프트웨어, 서비스, 플랫폼에 열심히 투자를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자기들의 위치에 대해 오만한 생각을 가졌다는 것. 데디우는 오만한 생각을 가졌다는 걸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This meant that they did not think the basis of competition would change. They thought they were too big to fail. They did not challenge the core business model of hardware-first and try to find an internal disruptive business.


한 마디로 노키아는 열심히 노력했지만, 경쟁의 기본 바탕이 바뀔 것이란 부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드웨어 우선이라는 핵심 비즈니스 모델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고민까지는 해보지 못했다는 것. (이런 부분들은 한 시대를 풍미하던 기업들의 몰락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다.) 


어쨌든 조선일보 기사와 호레이스 데디우의 인터뷰 원문을 동시에 읽어보니 참 재미있었다. 하지만 조선일보 인터뷰가 호레이스 데디우의 답변을 조금은 피상적으로 다뤘다는 느낌이 들었다. 종합지인 만큼 대중적인 독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지만, 지금 현재 모바일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식견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사람과의 인터뷰라는 점을 감안하면 좀 더 깊이 있는 기사를 쓸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물론 노키아 몰락을 과감하게 주말판 톱에 올리는 감각과, 또 다양한 각도로 노키아 문제를 입체적으로 조명한 기획력은 대단히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호경업 기자의 기사 역시 시의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어제 오전에 네이버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결핵 공포 고양외고를 덮치다 란 기사였다. 고양외고는 바로 딸 아이의 모교. 당연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전교생 다섯 명 중 한 명이 결핵 잠복자인데, 학교 측은 쉬쉬하면서 덮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대학 진학에 눈 멀어 밀폐된 공간에서 공부하라고 강요한다는 내용의 기사도 있었다.


고양외고 안이한 대처 결핵 집단 발병 키웠다는 과감한(?) 기사도 눈에 띄었다. 고양외고 결핵 공포 라는 중앙일보 기사도 있다. 이 정도 보도가 나가면, 학교는 거의 쑥대밭이 된다.  


여기서 잠시 한국일보에 실린 기사 중 일부를 한번 보자. 


한 학부형은 "학교와 보건당국의 안일한 대응으로 많은 학생이 감염됐다"며 "아이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 사이트와 일부 포털사이트 게시판 등에는 "사태가 심각한데도 학교는 성적 올리기에만 눈이 멀어있다" "학교는 감염을 막기보다 학생들을 공부시키기에 급급하다" 는 등 비판의 글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학교측의 반응은 여전히 미온적이다. 고양외고 관계자는 "매뉴얼 상 1명이 발병하면 해당 학급을, 2명이 발병하면 학년 전체를, 발병 학생이 3명이면 전교생을 검사해야 한다"며 "결핵이 발생했다고 휴교 조치를 취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내가 이 부분을 인용한 것은 언론들이 잘 범하는 잘못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안이든, 한 두 명은 불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그걸 전체적인 맥락에서 봐야 하는 데, 이런 식으로 떼어놓으면 오해의 소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기사도 의심스럽긴 마찬가지다. '결핵 공포'라고 단정적으로 쓴 기사치고는 직접 취재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최소한 학교 당사자의 멘트라고 하나 들어가든가 해야 하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그냥 다른 기사 받아쓴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교수가 정부 비판 때문에 미운 털이 찍혔다고 가정해보자. 내가 만약 그 교수를 악의적으로 비난하려고 맘 먹었다면, 충분히 "수업에 충실하지 않았다"거나 "특정 학생을 편애했다" 혹은 "학생들을 배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어렵게 가르쳤다" 등의 멘트 한 두 개쯤은 받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대학 진학 성적 높이기에 혈안이 된 한 특목고가 결핵에 걸린 학생들을 비인간적으로 내몰고 있다는 논조의 기사들은 불과 하루 만에 확 바뀌었다. 질병관리본부가 전염성이 없다고 공식 발표한 때문이다. 고양외고 결핵감염 사실과 달라 란 기사에 따르면, 전체 국민 3명 중 한 명은 잠복감염 상태라고 한다. 결핵에 대한 상식만 제대로 갖고 있었어도 난리 칠 필요가 없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이번 사건은 한 학생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 발단이 된 것 같다. 그런 사안이 있으면 기자들은 당연히 취재해서 기사를 써야 한다. 만약 학교가 결핵에 집단적으로 감염됐는데, 그냥 방관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안이 있다. 직접 당사자들이 과도한 피해를 받지 않도록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당연히 취재를 해서 전후 맥락을 충분히 파악해야만 한다. 그게 기본이다.


직접 당사자(는 아니지만, 밀접한 관계자)가 되고 보니 언론 보도가 참 무섭다. 어, 다르고 아, 다르다는 걸 실감하겠다. 속보 경쟁도 좋지만, 제대로 취재를 하고,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해서 기사를 써야 한다는 기본을 잘 지켜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 그냥 마구 인용 보도해버리는 일도 좀 삼가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이번 일 때문에 맘 고생 많이 했음직한 고양외고 선생님이 올린 글를 하나 퍼왔다. (딸 아이가 굉장히 싫어할 테지만) 딸 아이가 페북에서 '좋아요'를 눌렀기에, 일삼아 들어가서 읽어봤다. (딸아. 이번 건은 정말 깜짝 놀라서 읽어본 것임. 링크 타고 들어가는 일 없음.)


그렇다고 해도요... 아이들이 토하는데 공부해야 산다고 무지막지하게 공부시키는 무식한 인간들은 아닙니다. 오늘 교장선생님은 시종일관죄송하다 얘기만 하셨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우리 교장선생님만큼 아이들을 아끼고 교사들을 귀하게 여기는 교장선생님 별로 없습니다. 정말 과실이 있었다해도 죄인처럼 몰아가지는 말아주셨으면 했습니다. 보건당국에 혼날 정도로 빠르게 빠르게 검사 재촉했구요, 보건당국에서 하라는대로 열심히 대응했습니다. 우리 바보 교사들은요, 결핵 걸렸을지도 모르는 우리 학생들 하나씩 데려다가 밥도 먹어가며 상담하는 사람들입니다.


검색엔진 최적화라는 말이 있다. 구글 같은 검색엔진에 잘 걸릴 수 있는 키워드를 적극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은 대표적인 IT 뉴스 사이트로 꼽히는 매셔블이 초기에 많은 독자들을 모은 비결 중 하나도 바로 검색 엔진 최적화 기술을 잘 활용한 덕분이다.


그런데 구글 입장에서 보면 검색엔진 최적화는 '어뷰징'과 구분이 모호한 개념이 될 수도 있다. 교묘한 키워드로 검색 랭킹을 올리는 수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가급적 관련성이 높은 정보를 우선적으로 보여주려는 구글에겐 골치거리일 수밖에 없다. 일종의 웹 스팸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구글이 끊임 없이 검색 알고리즘에 손을 대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 기사에 따르면 구글은 매년 약 500개 정도의 알고리즘을 수정한다. 늘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구글은 또 다시 검색 알고리즘을 수정했다. '펭귄'으로 불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검색 알고리즘을 대대적으로 수정한 모양이다. 


물론 구글은 정확하게 어떤 부분을 어떻게 수정했는지는 공개하지 않는다. 또 다시 악용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단지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고 검색엔진을 속이거나 조작해서 과도하게 높은 검색 랭킹을 받는 사이트들을 제재하기 위한 조치"라는 원론적 입장만 밝히고 있다.


구글은 한 페이지에 지나치게 많은 키워드를 끼워넣거나, 링크 걸어주는 대신 돈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트래픽을 유발하는 전략을 굉장히 싫어한다. 검색 알고리즘 변화는 주로 이런 사이트를 겨냥한 것들이다. 


문제는 이렇게 한번 알고리즘이 바뀔 때마다 '선의의' 피해자가 생긴다는 점이다. 그냥 선의의 피해자 수준이 아니다.트래픽이 왕창 빠지면서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위협받는 사례가 심심찮게 발생한다. (잘 아는 것처럼, 구글 검색에서 첫 번째 페이지 이후에 나타나는 키워드는 주목도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검색한 뒤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보면 사람은 거의 없다.)


월스트리트저널에 게재된 사례 중 하나만 소개하자. 샌프란시스코에서 '오 마이 독 서플라이스(Oh My Dog Supplies)'란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앤드루 스트라우스란 사람 얘기다. 


구글이 최근 알고리즘을 바꾸고 난 뒤 오 마이 독 서플라이스의 트래픽이 96%나 빠졌다고 한다. 이전엔 'dog beds'나 'dog clothes' 같은 검색어에서 오 마이 독 서플라이스가 사라져버린 때문이다. EzineArticles.com이나 Squidoo.com 같은 사이트에 기고를 한 뒤 자기 사이트로 링크를 걸도록 했는 데, 이런 부분들이 문제가 됐을 수도 있는 것으로 스트라우스는 파악하고 있다. 


미국에서 일어난 일을 소개하려고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아니다. 이번 사건은 인터넷 비즈니스, 더 초점을 좁히는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인터넷 저널리즘에도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페이스북의 정책 변화로 워싱턴포스트와 가디언 등의 트래픽이 폭락한 얘기와도 상통한다.


사실 우리나라 언론들은 과도할 정도로 '키워드 어뷰징'을 많이 했다. 관계도 없는 연예 기사를, 그것도 그날 핫이슈가 된 연예 기사를 관련 기사로 링크해놓는 건 가장 기본적인 전략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면 아예 기사 안에 관계도 없는 키워드를 은근 슬쩍 집어넣기도 한다. 


물론 '오 마이 독'(어감이 영…)은 선의의 피해자였다. 느닷 없이 한 방 맞은 케이스다. 하지만 저런 사례는 다른 사이트들도 늘 겪을 위험이 있는 사례다. 인터넷 저널리즘 쪽으로 초점을 좁히면 네이버가 뉴스캐스트 정책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 순식간에 사이트 순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이런 기생적이고 비정상적인 비즈니스 모델도 찾기 힘들 것이다. ^^)


이런 사태를 해결하려면 어떤 방법을 찾아야 할까? 결국 '포트폴리오 관리' 밖에 없을 것이다.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얘기지만, 네이버 뉴스캐스트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을 때 빨리 다른 쪽 비중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변덕부릴 가능성 많은 한 사람에게 모든 운명을 내맡기는 것처럼 위험한 전략은 없다.


그럼 월스트리트저널이 생각하는 해결책은 뭘까? 물론 아주 원론적인 얘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경청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얘기다.


첫째, 구글 알고리즘 변화를 늘 주시하라. 구글의 웹 마스터 블로그를 늘 주시하고 있으라. (당연히 우리 나라에서도 네이버 뉴스캐스트 정책 변화를 늘 주목하고 있어야 한다. 서글프긴 하지만.)


둘째, 뭐니 뭐니 해도 콘텐츠가 왕이다. 구글은 가장 훌륭한 이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사이트를 가장 높이 평가한다. 그러니 늘 최적의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 (지극히 당연한 말씀. 특히 우리 같은 중소 IT 언론사들은 '분식점'이 아니라 '전문점'이 되어야만 한다. 김밥, 떡볶이, 순대를 다 팔려고 하면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못 팔아 먹는다.)


셋째, 구글로부터 들어오는 트래픽을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도록 하라. 이용자들이 주로 어떤 검색어를 통해 들어오는 지 추적해보면 비즈니스 전략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당연히 언론사들도 어떤 경로를 통해 독자들이 들어오는 지 알아야만 한다. 최소한 주에 한 번 정도는 이런 동향 보고서를 놓고 열띤 토론과 회의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것 제대로 하는 언론사, 의외로 많지 않다.)


넷째, 소셜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라. 지극히 당연한 말씀. 지난 번 글에서 내가 페이스북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사례를 비판한 건, 그게 네이버 비슷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위험 때문이었다. 당연히 분산 투자를 해야 한다. (오래된 증권가 금언을 하나 떠올려 보자. 자고로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는 게 아니여.)


다섯째, 구글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려 들지 마라. 두 말 하면 잔소리. 네이버 뉴스캐스트에 목 매고 있다가는 목 달아난다. 


여섯째, 컨설팅을 받아라. 아루리 해도 사이트 순위가 안 올라갈 경우엔 검색엔진 최적화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보도록 하라. 


미국 IT 언론을 매일 접하면서 부러운 게 딱 두 가지가 있다. 엄청나게 넓은 시장이 그 첫번째요, 작지만 강한 미디어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그 두 번째다. 물론 두 번째는 첫 번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부럽다. 


대충 꼽아봐도 만만찮은 IT매체들이 상당히 많다. 테크크런치, 매셔블, 리드라이트웹에다 올싱스디지털까지. 엄청나게 쏟아져나오는 다양한 IT 소식들을 개성 있게 전해주는 사이트들이 적지 않다.


요 몇 년 미국 IT 저널리즘 지형도를 보고 있노라면 춘추전국시대나 스타워즈 생각이 난다. 그만큼 흥미진진하다. 어떤 사이트가 무섭게 떠오른다 싶으면, 이내 다른 사이트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절대 강자가 없는 구도. 그러면서도 늘 새로운 강자들이 등장하는 구도. 그래서 그 시장을 바라보는게 참 재미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차에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발견했다. 세이란 잡지에 실린 'Rise of Tech Bandits'란 기사다. 스타워즈를 연상케하는 화려한 인포그래픽까지 곁들인 기사다. 그 바닥 얘기 잘 모르면 쉽게 쓰기 힘든 명품 기사다. 



개인 브랜드 영향력 확대, 그리고 기술인력 중요성 증가 


자, 그럼 이 기사를 중심으로 해서 내가 생각하는 IT언론 얘기를 한 번 해보자. 아니, 더 정확하게는 소셜 미디어 시대 저널리즘이 어디를 향해 가야하는 지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내가 처음 IT 외신 기사를 쓸 때 대세는 씨넷이었다. 그런데, 요즘 씨넷은 최신 트렌드에서 한 발 비켜 선 느낌이 든다. 최근 몇 년 사이엔 테크크런치와 엔가젯, 기즈모도 같은 사이트들이 대세였다. 매셔블 역시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테크크런치와 매셔블은 모두 2005년에 첫 선을 보였다. (매셔블의 성공 비결은 CNN과 합병 앞둔 매셔블 창업자 피터 캐시모어를 참고할 것.)


한 해 뒤인 2006년에는 내가 좋아하는 기가옴을 비롯해 새너제이 머큐리 뉴스 출신인 맷 마샬이 만든 벤처비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2003년 등장한 리드라이트웹은 세이미디어에 넘어간 뒤 지금도 만만찮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IT붐이 한창일 때 잘 나가는 애널리스트였던(그래서 IT 붐 조장의 주범이란 비판을 들었던) 헨리 블로짓이 운영하는 비즈니스인사이더 역시 차별화된 보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엔 또 다시 무서운 신예가 등장하고 있다. 지난 해 11월 첫 선을 보인 더버지다. 더버지는 지난 3월 월 순방문자 수가 650만 명에 이르면서 IT 은하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페이지 뷰도 3천만 수준. 불과 6개월 남짓한 사이트 치곤 엄청난 성장세를 보여준 셈이다. 


도대체 이런 지형 변화를 몰고 온 요인은 뭘까? 세이미디어가 'Rise of Tech Bandits'에서 크게 두 가지를 들고 있다.


하나는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힘의 균형추가 개인 브랜드 쪽으로 치우치게 됐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내가 몇 년 전부터 줄기차게 주장해 온 얘기다. (물론, 아무도 내 말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니, 억울하면 출세해야 한다. ^^ 후훗, 아시죠? 농담인 것.) 이젠 미디어보다는 뭔가 할 이야기를 가진 똑똑한 사람들이 훨씬 더 영향력을 행사하기 수월한 구조가 됐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뭔가를 출판하려는 회사들에겐 소프트웨어가 갈수록 더 중요해지게 됐다는 점을 꼽고 있다. 이게 뭔 말? 이라고 할 지 모르겠다. 이 것 역시 내가 계속 주장해 온 것이기도 한 데, 한 마디로 기사를 얼마나 잘 쓰고 특종을 얼마나 하느냐 못지 않게, 그렇게 쓴 기사를 어떻게 표출하며, 사이트나 기사 페이지 디자인을 어떻게 해서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느냐는 것이 더 중요해지게 됐다는 것이다.


이건 첫 번째 요인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플랫폼이 평평해지면서, 개별 미디어 브랜드 대신 개별 기사나 기자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록 이런 부분이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언론사라면 '편집국이 최고, 기자가 왕'이란 똥고집 부릴 시기는 지났다는 말씀이다. 이번 기사를 쓴 기자는 편집 파트 못지 않게 제품 엔지니어링 파트(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개발이나 기획 파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는고 강조하고 있다. 


더버지의 놀라운 성공 비결 


더버지가 단기간에 뜬 이유도 이런 상황 변화에서 찾고 있다. 이 기사를 쓴 기자는 더버지의 장점을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미디어 환경 변화를 잘 짚어주고 있다. 


일단 더버지는 콘텐츠 품질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동영상 리뷰는 경쟁자들을 압도한다. 물론 여기엔 뛰어난 맨파워가 한 몫했을 것이다. 실제로 더버지를 지탱하는 핵심 인력의 맨파워는 만만치 않다. AOL에 인수된 엔가젯의 핵심 인력들이었다. 이들이 그대로 더버지로 옮겨왔으니, IT 시장에 대한 이해와 미디어 감각은 남다르다고 봐야 된다. 


선택과 집중 역시 대단하다. 올 초 CES땐 아예 트럭 한 대를 빌려 편집국 전원이 라스베이거스로 날아갔다. 기사가 있는 곳에 역량을 집중하는 능력이 대단한 것이다. 하긴 괜히 한 줄 걸치는 기사는 굳이 더버지가 쓰지 않아도 된다. 그건 다른 곳에 가서 보라고 하면 되니까. 그리고 오프라인 공간에서 하는 토크쇼 역시 만만찮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좀 더 꼼곰하게 더버지를 관찰한 기자는, 앞에서 얘기했던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란 덕목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언론사 CMS를 잘 개발하는 문제부터 갖가지 차별화된 보도를 쉽게 처리할 수 있는 탬플릿을 신속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 아닐까?


더버지 보도의 차별점은 큰 이슈는 한꺼번에 쭉 보여주는 방식(오마이뉴스가 10년 전에 선보인 현장중계 기사 같은 컨셉)과 뛰어난 그래픽 솜씨라고 한다. 여기에다 제품 을 비교할 수 있는 엔진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해 각종 제품 기사도 깊이 있게 써낸다고 한다. 한 마디로 개발자와 콘텐츠 생산자 간의 시너지가 잘 발휘되고 있는 언론사라고 한다.


확실히 패러다임이 달라지고 있다. 이젠 전통적인 편집국 구조와 시스템, 그리고 고리타분한 현실 인식으로는 발 빠르게 변화하는 IT 뉴스 트렌드를 쫓아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매셔블, 더버지 같은 '강소 뉴스 사이트'들의 성공 사례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뉴욕타임스가 씨넷으로부터 기사를 공급받는다고 했을 때 대대적인 화제가 됐다. 그 때만 해도 그랬다. 전통 언론이 IT 전문 온라인 뉴스 사이트로부터 뉴스를 공급받는 게 엄청난 뉴스였다. 하지만 이젠 적어도 IT 뉴스에 관한 한 전통 언론의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다. 작지만 강한 온라인 사이트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도가 더 없이 부럽다. 


* 잡지 세이에 실린 기사는 멋진 편집과 뛰어난 인포그래픽이 돋보인다. 잡지 기사를 직접 감상하고 싶은 분은 세이미디어 매거진 사이트로 직접 방문하면 된다. 스타워즈 컨셉으로 접근한 인포그래픽도 감상할 만 하다. 참고로, 매셔블을 만든 피터 캐시모어는 사이보그에 비유했다.